거문도의 굴욕, 한 달 남은 시즌이 아쉽다

기자가 처음 거문도에 들어간 때는 1999년. 낚시기자에 처음 입문해서 말로만 들어왔던 원도의 고전. 그 원도라는 곳에는 들어가기만 하면 대물이 퍽퍽 튈 줄로만 알았다. 아마 낚시꾼들의 기대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잡지 지면을 장식하던 거문도 관련 기사는 한계점에 다다른 듯 한 거문도의 상황을 안타까움 반, 실망 반인 분위기로 전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거문도는 원도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원도와 조황으로 겨루기에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추자군도나 가거도 같은 원도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원도의 고전으로서 낚시꾼들의 뇌리에 자리 잡고 있는 거문도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고, 그러한 거문도에 대한 꾼들의 애정이 크고, 꾸준했기 때문이다.
▲서도의 바깥제립여
낚시꾼들에게 거문도는 매우 특별한 섬이다. 원도권 첫 경험 장소는 대부분이 거문도 이며 낚시깨나 했다는 꾼들에게 고기 많던 시절 대물 조과를 책임지던 곳이 바로 거문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야기 하던 좋은 시절의 이야기에는 항상 거문도가 있다. 그 때문에 거문도는 조황이 좋건 나쁘건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듯 많은 꾼들의 기대를 100% 만족시켜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거문도인데’라는 일말의 기대를 놓을 수 없도록 간간히 사건을 일으켜 주는 곳도 거문도 인 것이다.
2% 부족한 조황, 그래도 거문도 인데
꾼들의 높은 기대는 거문도의 조황을 상대적으로 폄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4짜 감성돔이 어느 정도 나와도 5짜가 나오지 않으면 거문도의 조황은 바닥을 기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5짜가 나와도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나마 6짜 감성돔이 나와야 비로소 뉴스거리가 된다. 거문도의 이름값은 요즘 같은 어한기에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조황란에 통 소식이 올라오지 않는 거문도의 근황을 직접 보기 위해 이틀간의 일정으로 거문도를 찾았다. 고흥 지죽의 영진호를 이용해 거문도로 진입한 새벽. 기상예보와는 달리 바람은 강하게 불고 있었다. 종선을 위해 마중 나온 협성민박의 배를 타고 곧장 서도로 향했다. 바람이 남동-북동으로 불고 있었다. 내린 포인트는 솔고지. 날물 포인트였지만 들물에도 간간히 대물이 나온다는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낚시를 했다. 우연히 동행하게 된 이는 지난 팀긱스 출범식에서 만난 구윤국씨. 각각 전유동 채비와 2호 반유동 채비로 공략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초날물까지 상황은 무소식. 결국 포인트를 옮겼으나 고기가 될 만한 곳으로 가지 못하고 일단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심한 바람으로 인해 첫날은 아무런 소득 없이 철수해야만 했다. 오후 늦게부터 날씨가 좋아진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
이렇다할 조황이 없는 상황. 노래미 마저 간사한 입질을 보였다. 찌가 잠깐 깜빡하는 것을 보고 살짝 견제를 해 주어야 그나마 ‘톡톡’하면서 본신을 받을 수 있었다. 노래미가 이렇듯 약으니 감성돔은 오죽할까. 오후가 되면서 오히려 더 떨어진 수온은 9℃를 찍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날 거문도 전체에서 확인된 조황이 없었다고 한다.
기대를 안고 동도로
첫날의 참패를 딛고 다음날 필승의 포인트로 선정한 곳은 동도 코직이와 낭끝. 코직이에서는 감성돔을, 낭끝에서는 참돔을 공략하기로 했다. 거문도 현지에 민박을 하는 꾼들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날씨가 좋아졌기 때문에 반드시 이른 시간에 포인트를 선점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새벽 3시에 나섰다. 무사히 포인트에 안착. 날이 밝을 때까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참돔을 기대하고 전자찌 채비를 흘려 보았으나 무소식. 날이 밝으면서 곧바로 감성돔 채비로 바꾸어 공략을 했다. 코직이 공략만은 자신있다던 부산꾼 황원근씨. 코직이를 적극 추천하면서 반드시 한 마리를 장담하던 인물이었다. 어스름이 걷혀 가고 해가 막 떠오를 무렵. 그의 장담을 확인하듯 40cm급 감성돔이 수면을 박차고 올라왔다. 시원스럽게 흐르는 조류, 적당한 물색과 쾌청한 날씨로 인해 더 많은 조과를 기대했으나 코직이에서의 조과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드디어 왔다. 한 마리를 장담하던 부산꾼 황원근씨는 동도 코직이에서 첫 입질을 받았다
▲공기를 몇 번 먹이자 완전히 제압당한 감성돔을 뜰채로 떠 내기 직전.
▲코직이는 비스듬한 포인트의 발판이 무척 위험하다. 고기를 걸면 완전히 자세를 잡고 천천히 제압을 하면서 뜰채질을 할 장소까지 안전하게 견인해 내야 한다.
▲반갑다 감생이! 꾼들에게 이 보다 더 가슴벅찬 순간이 있을까?
▲‘그렇게 원하는 포인트에 왔으니 고기 못 잡으면 낚시 접으세요’라는 기자의 강압적인 부탁을 듣고 ‘그건 아니고’라고 얼부머렸던 황원근씨. 장담대로 감성돔을 낚자 비로소 부담감을 떨쳐낸 듯 활짝 웃었다.
중들물이 시작될 즈음 건너편의 낭 끝에 내린 일행의 부산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한참을 실랑이 하던 끝에 뜰채에 고기를 담는 것이었다. 망원렌즈를 통해 확인한 어종은 참돔. 하지만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었다. 차오르는 물로 인해 낭끝으로 포인트를 옮겨 일행과 합류한 후 확인한 참돔의 크기는 50cm 전후였다. 그나마 실망스러웠던 것은 거문도 특유의 분홍빛 이쁜 참돔이 아니라 거무스름한 ‘탈참’이었다는 사실이다.
철수 시간이 2시간 정도 남은 상황. 바쁘게 도시락을 먹고 다시금 낚시를 시작했다. 그래도 거문도 인데 뭔가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열심히 채비를 흘렸으나 입질은 오지 않고 새벽추위를 우려해 껴입은 옷들은 짜증스런 땀을 배출시키고 있었다. 그 찰라 구윤국씨의 낚싯대가 휘어졌다. 체념하고 흘리던 채비가 감성돔을 가져온 것이다. 역시나 씨알은 크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서도는 씨알, 동도는 마릿수라는 말이 언뜻 생각났다. 그나마 ‘동도니까 고기 구경이라도 시켜 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낭끝에서도 신호가 왔다. 힘차게 챔질 후 파이팅을 벌이는 모습을 망원렌즈로 담았다.
▲발판이 나빠 옆 사람이 뜰채질을 해 주고 있었다. 코직이에서 이 장면을 찍으면서 고기가 얼마나 크길래라고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을 것 같아 발만 동동 굴렀다. 최대한 확대해서 찍은 장면이라 역시나 손이 떨려서 화질이 좋지 않다.
▲카메라 상으로 확인한 고기는 참돔이었다.
▲50cm급 참돔을 낚아낸 부산꾼 김광모씨. 탈참이라서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래도 제사상에 쓰겠단다.
▲철수 직전 낭끝에서 받은 또 한번의 입질
▲감성돔임을 확인하고 서둘러 뜰채를 펼쳤다.
▲의외로 시원스런 입질을 보여준 거문도 감성돔
▲철수 직전에 받은 입질이라 기쁨은 더했다. 그나마 입질조차 받지 못한 꾼들의 부러움이 대단했다.
▲40cm급 감성돔으로 거문도 출조비는 건졌다는 구윤국씨. 이틀 동안 고생한 까닭에 씨알은 적어도 예뻐보이기만 하다는 소감.
마지막 한 달, 변수는 날씨
“4월 정도까지는 거문도에서 감생이가 안 빠져요. 그때부텀 참돔, 벵에돔도 간간히 섞여서 나오는데 여러 가지 손맛 볼라믄 4월도 좋소. 사실 지금은 큰 거 한 마리 보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고기가 잘 안 물어주니 가이드 하는 저도 얼굴 들기가 좀 그러지라” 서도 협성민박 이영삼 사장의 말이다. “그나마 날씨라도 좋으면 큰 거는 아니라도 40cm급은 꾸준히 나오는 곳들도 꽤 있는데 시즌이 시즌이라 큰 거 아니면 고기로 잘 쳐 주지도 않는 모양이라”고 한다.
▲코직이 옆에서 또 한 사람의 꾼이 고기를 걸었으나 무슨 고기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카메라를 피해 서둘러 고기를 갈무리했다.
▲여러가지 변수로 인해 부진한 조황을 거두고 있지만 여전히 거문도 대물 감성돔에 대한 기대치는 높다.
취재팀이 직접 경험했듯이 날씨가 나빴던 첫날에는 거의 몰황수준이었다가 좋아진 이튿날에는 고기가 나왔다. 수온이 워낙 낮아서 활성도는 좋지 않았지만 기대치는 한껏 높아졌다. 아, 이대로 며칠만 날씨가 좋다면 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비록 올해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거문도지만 갯바위에 서면 큰 놈 한 마리는 물어 줄 것 같은 분위기는 여전하다. 그 분위기가 현실이 되고 대박이 될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한달 정도. 그것을 자신의 고기로 만드는 것은 순전히 개개인의 판단 나름이다. 거문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낚시꾼을 설레게 하는 포인트들이 빈자리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취재협조
지죽영진호 061-834-6027
거문도 서도 협성민박 061-666-05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