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이바구님과 이바구 하다

어제는 고성, 오늘은 녹동 식의 보기만 해도 땀이 나는 출조 강행기를 볼 때마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무리 낚시가 좋다고 한들 그렇게 까지 낚시를 하고 싶을까. 그래서 나는 낚시꾼이 되지 못하고 그들은 천상 낚시꾼 인가 보다.
‘낚시이바구’라는 닉네임을 처음 만난 것은 온전히 인터넷바다낚시 때문만은 아니었다. 취재를 위해 한 낚시점을 찾아갔을 때 인낚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차에 그 낚시점의 가이드로 있던 분이 낚시이바구님의 조행기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 이 사람 조행기는 재미있는데 줄이 너무 띄엄띄엄 있어서 읽으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라는 말.
그때부터 나는 낚시이바구라는 닉네임을 기억하게 되었고 조행기란이나 다른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면 눈여겨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낚시이바구님과는 온라인상에서 조차 글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저 그의 글을 읽고 나름대로 평가하거나 ‘아, 이 분은 이렇게 낚시를 다니는 구나’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글을 통해 본 낚시이바구님에 대한 느낌은 ‘낚시를 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예의 전투낚시와 같은 일정으로 낚시를 다니는 모습을 조행기 상에서 쉽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낚에서 만난 사람 취재를 위해 낚시이바구님께 연락을 취하기 전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만약 취재 일정을 낚시이바구님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면 까 놓고 말해 ‘좀 빡시게 돌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그러나 그게 정말 낚시이바구님의 모습이라면 그 일정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어코 쪽지를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일정이 잡혔고, 아니나 다를까 밤 11시 부산 출발, 새벽 3시 안장덕 진입 후 야영, 그 다음날 11시 철수라는 초 강행군의 출조였다.
첫 만남, 첫 대화
필자의 집과 낚시이바구님의 집은 차로 약 15분 거리다. 그러나 타고난 길치인 나는 빙빙 돌아서 30분 이상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집 근처에. 약 10분간의 헤맴과 세 번 정도의 전화 통화 끝에 이바구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 슬림한 내피에 모자를 딱 맞게 쓰고 있는 모습을 처음 보고 ‘자세 나온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의 스타렉스에 옮겨 타려고 차문을 여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밑밥 냄새. 낚시꾼의 차를 타면 대부분 맡을 수 있는 이 냄새로 나는 그 사람이 얼마나 낚시를 자주 가는지에 대해 가늠해 본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의 출조로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 아니면 집중적으로 며칠을 낚시를 다니는 꾼의 차에만 밑밥 냄새가 고이는 것이다. 물론 겉으로나 안으로나 이바구님의 차는 무척 깨끗한 편이었고, 낚시를 하지 않는 사람이 보기에는 업무용으로 쓰는 평범한 차량이었을 따름이다.
“얼마나 자주 낚시 다니세요?”
“일 없으면 대중없이 다니는 편입니다”
그의 조행기를 보면 익히 알 수 있다. 정말 대중없이 다닌다는 것을.
“그렇게 다니시면 식구들이 안 좋아 할 텐데요?”
“그래도 술 마시고 하는 것 보다야 낫지 않습니까? 집사람도 친구 만나서 술 마시고 돌아댕기는 것 보다는 낚시 다니는 게 차라리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낚시 가지고는 뭐라 안 해요. 그렇다고 맨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일 없을 때만 다니는 거니까요”
▲가왕도에서 열심히 참돔을 쪼아 보는 낚시 이바구님. 그러나 결과는 ‘황’
“낚시는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어릴 때 영도 쪽에 살았는데요. 그 때부터 아버지 따라 다니면서 했던 것 같아요. 뭐 지금 낚시하고는 전혀 딴판이라도 어쨌든 그때 경험이 낚시를 하게 만든 것이죠”
그렇다면 최하 조력 30년.
“어떤 낚시를 제일 좋아 하십니까?”
“딱히 어떤 낚시만 고집하기 보다는 그때그때 마다 잘 되는 낚시 합니다. 요즘은 참돔 함 낚아 볼라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참돔 잡으러 가면 안 잡히던 감생이가 잡히질 않나...어복이 다 됐나?”
낚시이바구님이 최근 참돔낚시에 꽂혀 있는 관계로 취재 당일 우리의 목적지는 통영 안장덕암이었다. 곰네바리님 - 이분도 역시 전투낚시인. 취재 전날 낚시를 다녀 왔지만 다음날에 바로 합류하여 또 나섬 - 까지 합류하여 출조를 나섰다. 필자는 인터넷바다낚시 운영자에게 참돔 장비를 빌렸으며 사무실을 나올 때는 ‘고기 필요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일행이 모두 안장덕암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야영을 하고 있다는 안장덕암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통영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낚시이바구님과 곰네바리님은 인낚의 인맥을 총동원 조황을 알아보았고 최종적으로 가왕도로 출조지는 결정되었다.
“다른 싸이트도 있는데 굳이 인낚에서만 활동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뭐 다른 싸이트에서 활동한다는게 귀찮기도 하고, 그동안 인낚에서 알아온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분들하고 같이 다니는데도 시간이 모자라는 걸요”
그래도, 인낚 취재기자가 한 질문인데 적어도 ‘인낚만한 싸이트가 있나요?’ 정도의 정치적인 멘트를 날려줄 것으로 기대했건만 낚시이바구님의 요지는 ‘딱히 인낚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처음 낚시 사이트를 접한 것이 인낚이다’ 정도라는 말이었다. 다행스런 일이다. 맛깔스런 조행기를 올려주시는 분이 인낚에 머물러 있어서.
“그렇다면 인낚에 바라고픈 부분이 있는가요”
“얼마전에 싸이트 개편을 하면서 좀 불편해 졌어요. 기능상으로는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저 같이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쓰기에는 단순한 것이 더 좋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컴퓨터 공부 좀 하십시오.
▲갑자기 나타난 큰 입질에 긴장! 그러나 정체는 눈치 없는 갈매기였다. 이바구님과 나는 갈매기에 낚인 셈.
“낚시에 어떤 부분이 좋아서 하시는 겁니까?”
“다 좋습니다. 낚시 하러 가는 것부터 갯바위에서 먹고, 자고, 사람 만나는 일까지. 그렇다 보니 지금은 오는 전화의 80% 이상이 낚시가자라는 내용이네요”
그렇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걸려온 전화의 대부분이 낚시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우리는 거제 저구항에 도착했다.
애꿎은 소주만 들이 붓고…
아직 시즌이 이른 가왕도에 도착한 우리 일행. 가왕도 최고의 참돔 포인트에 내렸지만 해가 뜨고 난 한참 뒤에도 입질 한번 받지 못했다. 낚시자리 앞의 조류는 장마 때 범람한 개천처럼 콸콸 흘렀고 때마침 터진 바람은 채비 관리조차 어렵게 했다.
“어서 한 마리 해서 썰어 먹어야 하는데 말이죠” 라고 이바구님은 말했지만 그렇게 쉽사리 고기가 잡혀줄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조해진 우리 일행은 대상어에 대한 기대는 버리고 노래미나 볼락 같은 고기라도 잡혀주길 바라게 되었다. 그래도 갯바위에서 먹는 밥인데 횟감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꾼의 자존심(?)이랄까.
▲정말 제대로 된 염장질. 가뜩이나 채비 흘릴 곳이 없었는데 그나마 남은 포인트에는 선상낚시배가 유유히 떠 있다.
도시락은 이미 까 먹은지 오래. 출출해진 배를 달래기 위해 볼락 두 마리, 노래미 한 마리, 게맛살로 소주를 먹기 시작했다. 어느새 두병을 마시고 알딸딸해진 채로 횡설수설.
“아, 저는 말이죠. 이바구님 따라 오면 거나하게 썰어서 한잔 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오늘 정말 안되네요. 긴장해서 그런가?”
이런 날이 없었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안절부절하는 낚시이바구님. 그런 사이 오기가 발동했는지 술잔을 놓자마자 낚시에 임한다. 딱 한번, 깜짝 놀랄만한 입질을 받은 이바구님의 낚싯대가 재빠르게 세워졌다. “어억” 하면서.
▲뭐라도 떠 먹어야 낚시 온 맛이 난다. 볼락 두 마리와 노래미 한 마리로 차린 눈물의 술자리. 회를 뜬 곰 네바리님은 “고기 세 마리에 장갑 두 켤레 쓰니 정말 아깝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물에 뜬 밑밥을 먹기위해 갈매기가 줄을 채 가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나마 그날 낚시 중 가장 긴장했던 순간이었다. 그 뿐 만이 아니었다. 낚시 할 만한 자리 앞에는 떡하니 선상낚시배가 닻을 내리고는 보부도 당당하게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갯바위에서는 채비를 잘 흘리지도 못하도록 말이다. 이 날 낚시는 이것으로 끝.
방파제에서 이차전에 돌입
어차피 고기 안 되는 곳에서 야영은 무의미하다고 느낀 일행은 오후 4시에 철수를 결정, 곧바로 여러 군데 연락을 취해서 고성의 한 방파제로 진입하게 되었다. - 이 부분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뜩이나 모기가 많은 갯바위에서 어떻게 다음날 오전까지 낚시를 하나 싶었으므로 - 꼬불꼬불한 길을 몇 번이나 헤맨 끝에 도착한 방파제에서 몇 마리의 볼락을 잡아내는 동안 낚시이바구님은 특제 찌개를 준비했다.
▲각종 야채와 볼락으로 버무린 회무침. 이바구님의 정성스런 야채와 가정식 초장이 곁들여진 환상적인 맛.
고등어와 꽁치 통조림, 그리고 김치와 야채만으로 만들어진 찌개. 점심까지 굶은 마당에 뭣 인들 맛이 없을 리 있겠느냐 마는 이바구님의 찌개는 정말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다’ 정도의 수준을 뛰어넘는 맛이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준비해 가지고 다니십니까?”
“먹는 것도 낚시 재민데요. 야채랑 찌개 준비는 항상 합니다. 제가 끓인 찌개 먹어 본 사람은 그 맛을 못 잊어져서 같이 낚시 가자고 합디다. 이건 머, 낚시 잘 한다는 자랑도 아니고 음식 솜씨 자랑 같아서 뭣 하지만”
▲낚시이바구님의 짐은 보물상자다. 없는 게 없다. 마치 잘 차려진 세간 살이를 보는 것 같았다. 열심히 저녁 준비 중인 낚시이바구님.
낚시도 그렇지만 낚시이바구님은 낚시의 모든 것을 정말 즐기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꼼꼼하게 챙겨온 야영짐이나 낚시장비, 그리고 낚시는 이렇게 해야 재밋다는 확실한 철학까지. 그것이 남들은 수긍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만큼은 본인의 낚시를 확실하게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부러웠다. 아, 나는 언제쯤 낚시의 조그만 부분까지도 즐길 수 있을까.
이바구님과의 일정은 그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내가 지쳐서 차안에서 잠을 좀 청하려고 할 때 이바구님과 곰네바리님은 “고기 안 되네요. 전부 피곤한데 오늘은 이만 철수 하지요”라며 채비를 접었다. “저 때문에 이러실 필요는 없는데요”라고 말하자 “아뇨, 고기 안되는데 굳이 고집 부릴 필요 있나요. 또 오면 되는데.”
▲당장이라도 간판을 내 걸면 추천 맛집으로 등록 될만한 낚시이바구님의 고등어/꽁치 김치찌개. 그 맛에 취해 사진 찍는 것을 깜빡해 다 먹어 갈 무렵에야 카메라에 담았다.
‘또 오면 되는데’라는 멘트는 역시 낚시이바구님 한테 어울린다. 다른 이들에게 출조길이나 철수길은 인고의 시간일지라도 그것마저도 재미라는 이바구님. 철수 길에 나와 곰네바리님은 곯아 떨어졌고, 이바구님 혼자서 졸음과 싸우며 부산까지 운전을 했다. 안타까운 것은 다음날까지 취재가 예정되어 있었던 까닭에 좀 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야영을 하면서 술 한잔 마시면서 낚시이바구님의 인생이바구를 듣고 싶었는데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부산에 도착해 헤어지면서 물었다.
“언제 또 가실거지요?”
“글쎄요. 좀 쉬어야 할텐데. 또 모르죠. 조 맞춰지면 내일이라도 가게 될지”
그의 낚시 이바구는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