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
05-03-19 17:36
정말 긴글이지만 시간 흐르는줄 모르고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에 흠뻑 취했습니다
독도 수비대 원조님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조국을 알기에, 애국이란걸 알기에, 우리 선조는 그렇게 온 몸으로 지켜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젠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독도 수비대 원조님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조국을 알기에, 애국이란걸 알기에, 우리 선조는 그렇게 온 몸으로 지켜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젠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수향
05-03-19 18:29
그들이 아니었다면 독도는 벌써......
독도의용수비대에 관한 글을 퍼 왔습니다...
[* 독도의용수비대 *] 그들은 누구였나 국민일보 1996-02-13 27면
◎“외로움·배고픔 이기며 우리의땅 지켰죠”/일이 팻말세우자 36명이 자발경비/식량·땔감 각자마련… 오징어배로 53년 「출정」/보급선 안와 해초로 1주일씩 연명하기도/생존15명 유공자 지정안돼 “어려운 노년”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독도가 우리땅으로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켜온 「독도의용수비대」의 처절한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 했다. 일본이 6·25전쟁을 틈타 독도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돼 있을때 우리땅을 지켜야 겠다는 일념에서 가족조차 내버려두고 3년8개월동안 독도를 사수해온 독도의용수비대 36명. 그러나 이들의 완강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 현재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고 떳떳이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독도의용수비대(대장 홍순칠·작고)는 정부의 명령에 의해서 창설된 것이 아니라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사랑과 국토방위의 정신에서 자발적으로 결성한 순수 민간조직. 이들은 지난 53년 일본이 우리정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따 독도에 상륙해 「죽도」「일본영」이라는 팻말을 세우는등 일본 영토표시를 하고 수시로 근해에 순시선을 보내 독도점령을 노골화하자 이에 맞서 수차례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각자 무기를 모으고 집에서 식량과 땔감을 준비해 6t짜리 오징어잡이배를 타고 독도로 「출전」했던 이들은 거친 풍랑으로 3∼4일씩을 예사로 굶는 등 악조건에서 싸워야 했다.
의용수비대는 2개전투분대와 보급대 수송대 후방지원대등으로 편성됐으며 0.5t보트 한 척,미군과 정부에서 구입한 박격포 직사포 경기관총 각 1정,M1소총 20정과 실탄 2만4천발로 무장했다. 의용수비대는 2개분대가 한달씩 교대로 근무하며 독도근해에 나타난 일본순시선을 10여차례 물리쳐 일본이 한국정부에 수차례항의각서를 보낼정도로 용맹을 떨쳤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 정부에서 어느정도 여유를 찾자 56년12월 울릉경찰서에 임무를 인계하고 철수했다.
당시 수비대에 참가했던 이규현씨(71·박격포사수·울릉군 도동3동)는 『보급선이 제때 오지않아 1주일을 해초로 연명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의 힘으로 독도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배고픔과 외로움을 싸워 이겼다』고 말했다. 이들은 독도에서 철수한뒤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를 결성,홍대장을 중심으로 70년대 초반에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방파제 설치등 독도개발을 건의하기도 했다. 66년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홍대장이 공로훈장을,대원들이 방위포장을 각각 받았지만 국가유공자로는 지정되지 않아 대부분 어려운 생활을 했으며 생존자 15명은 늙고 병들어 울릉도와 서울 포항 경주등지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홍대장의 부인으로 유일한 여성대원이었던 박영희씨(63·보급대원·서울 개포동)는 『87년 남편이 돌아가셨을때 한자리에 모인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대원들이 많다』고 말했다.〈박주호〉
◇생존대원 15명 김병열 양봉준 이규현 박영희 정원도 서기종(67·1분대장·경북 경주) 최부업 (66·경북 포항) 김용근(68·경북 울진) 김영복(68·경북 포항) 하자진(68·경북 포항) 김영호(66·울릉군 도동) 이필영(72·울릉군 저동) 구용복(75·대구) 정현권 (77·울릉군 저동) 유원식(67·울릉군 도동)
◎「몸 늙었지만 독도사랑 변함없어」/독도수비대 정원도씨/“당시 대원 애국으로 독도 사수/일본 이제와서 생떼 분노솟아”
『우리 대원들이 어떻게 지켜온 독도인데 일본이 이제와서 생떼를 쓰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독도의용수비대 제2분대장직을 맡아 독도를 사수해온 정원도씨(67·울릉군 울릉읍 도동3리 297의2). 정씨는 『비록 몸은 늙었지만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40년이 지난 지금 조금도 변함이 없다』며 『당시 대부분 20대였던 대원들이 적극적으로 내일처럼 나섰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없이도 3년8개월동안이나 독도사수가 가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씨는 지난 54년 군복무를 마친뒤 일본사람들이 독도에 와서 「일본영」이라는 비석을 세우고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우긴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독도의용수비대에 스스로 자원했다.
『당시 일본 해상보안청소속 순시선이 하루가 멀다하고 독도주변을 정탐하자 한번은 우리측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를 총동원해 이들을 공격하자 그들이 혼비백산해 되돌아간 적도 있었습니다』정씨는 『젊은 세대들이 애국심으로 뭉친다면 일본의 침략의도를 물리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울릉=김재산〉
독도의용수비대에 관한 글을 퍼 왔습니다...
[* 독도의용수비대 *] 그들은 누구였나 국민일보 1996-02-13 27면
◎“외로움·배고픔 이기며 우리의땅 지켰죠”/일이 팻말세우자 36명이 자발경비/식량·땔감 각자마련… 오징어배로 53년 「출정」/보급선 안와 해초로 1주일씩 연명하기도/생존15명 유공자 지정안돼 “어려운 노년”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독도가 우리땅으로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목숨을 걸고 이곳을 지켜온 「독도의용수비대」의 처절한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 했다. 일본이 6·25전쟁을 틈타 독도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돼 있을때 우리땅을 지켜야 겠다는 일념에서 가족조차 내버려두고 3년8개월동안 독도를 사수해온 독도의용수비대 36명. 그러나 이들의 완강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 현재 독도가 우리의 영토라고 떳떳이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독도의용수비대(대장 홍순칠·작고)는 정부의 명령에 의해서 창설된 것이 아니라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사랑과 국토방위의 정신에서 자발적으로 결성한 순수 민간조직. 이들은 지난 53년 일본이 우리정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따 독도에 상륙해 「죽도」「일본영」이라는 팻말을 세우는등 일본 영토표시를 하고 수시로 근해에 순시선을 보내 독도점령을 노골화하자 이에 맞서 수차례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다. 각자 무기를 모으고 집에서 식량과 땔감을 준비해 6t짜리 오징어잡이배를 타고 독도로 「출전」했던 이들은 거친 풍랑으로 3∼4일씩을 예사로 굶는 등 악조건에서 싸워야 했다.
의용수비대는 2개전투분대와 보급대 수송대 후방지원대등으로 편성됐으며 0.5t보트 한 척,미군과 정부에서 구입한 박격포 직사포 경기관총 각 1정,M1소총 20정과 실탄 2만4천발로 무장했다. 의용수비대는 2개분대가 한달씩 교대로 근무하며 독도근해에 나타난 일본순시선을 10여차례 물리쳐 일본이 한국정부에 수차례항의각서를 보낼정도로 용맹을 떨쳤다. 이들은 전쟁이 끝나 정부에서 어느정도 여유를 찾자 56년12월 울릉경찰서에 임무를 인계하고 철수했다.
당시 수비대에 참가했던 이규현씨(71·박격포사수·울릉군 도동3동)는 『보급선이 제때 오지않아 1주일을 해초로 연명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의 힘으로 독도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배고픔과 외로움을 싸워 이겼다』고 말했다. 이들은 독도에서 철수한뒤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를 결성,홍대장을 중심으로 70년대 초반에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방파제 설치등 독도개발을 건의하기도 했다. 66년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홍대장이 공로훈장을,대원들이 방위포장을 각각 받았지만 국가유공자로는 지정되지 않아 대부분 어려운 생활을 했으며 생존자 15명은 늙고 병들어 울릉도와 서울 포항 경주등지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홍대장의 부인으로 유일한 여성대원이었던 박영희씨(63·보급대원·서울 개포동)는 『87년 남편이 돌아가셨을때 한자리에 모인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대원들이 많다』고 말했다.〈박주호〉
◇생존대원 15명 김병열 양봉준 이규현 박영희 정원도 서기종(67·1분대장·경북 경주) 최부업 (66·경북 포항) 김용근(68·경북 울진) 김영복(68·경북 포항) 하자진(68·경북 포항) 김영호(66·울릉군 도동) 이필영(72·울릉군 저동) 구용복(75·대구) 정현권 (77·울릉군 저동) 유원식(67·울릉군 도동)
◎「몸 늙었지만 독도사랑 변함없어」/독도수비대 정원도씨/“당시 대원 애국으로 독도 사수/일본 이제와서 생떼 분노솟아”
『우리 대원들이 어떻게 지켜온 독도인데 일본이 이제와서 생떼를 쓰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독도의용수비대 제2분대장직을 맡아 독도를 사수해온 정원도씨(67·울릉군 울릉읍 도동3리 297의2). 정씨는 『비록 몸은 늙었지만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40년이 지난 지금 조금도 변함이 없다』며 『당시 대부분 20대였던 대원들이 적극적으로 내일처럼 나섰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없이도 3년8개월동안이나 독도사수가 가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씨는 지난 54년 군복무를 마친뒤 일본사람들이 독도에 와서 「일본영」이라는 비석을 세우고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우긴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독도의용수비대에 스스로 자원했다.
『당시 일본 해상보안청소속 순시선이 하루가 멀다하고 독도주변을 정탐하자 한번은 우리측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를 총동원해 이들을 공격하자 그들이 혼비백산해 되돌아간 적도 있었습니다』정씨는 『젊은 세대들이 애국심으로 뭉친다면 일본의 침략의도를 물리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울릉=김재산〉
호미
05-03-19 19:07
독도의용수비대 할배님들께~~~~~~ 경례 !!!! m(_ _)m
그라고 쓰벌넘들아~
지금이라도 국립묘지에 모시고 합당한 대우를 해줘라~~ 잉~
존말~할때 !!!
그라고 쓰벌넘들아~
지금이라도 국립묘지에 모시고 합당한 대우를 해줘라~~ 잉~
존말~할때 !!!
하얀민박집
05-03-19 21:26
호미님 께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뭐~ 축구 한번 하는데 잔듸를 3억 짜리 깔아
정신차리라 국민들 독도는 우리땅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
안들리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진짜 잘해라
뭐~ 축구 한번 하는데 잔듸를 3억 짜리 깔아
정신차리라 국민들 독도는 우리땅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
안들리냐
분위기 파악 못하고
진짜 잘해라
백도사랑
05-03-19 23:08
더욱더 강력한외교로 독도의주권을 확고히해야합니다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석양의뽈라구
05-03-19 23:20
정말 생을 달리하신분은 국립묘지에 안장하시고 합당허게 국가유공자로
되었음 하는 바램 입니다. 쪽쌔끼들 헌테 돈만 않빌렸음.
정말 이나라가 싫습니다. 자기땅 가지고 바른소리 한번 못내는 이나라...
전국민이 아니더라도 울인낚회원님은 부디 큰소리을 내 주시길 바랍니다.
자장면 한그릇 먹꼬 내는세금 아깝다 아까워....아까워
되었음 하는 바램 입니다. 쪽쌔끼들 헌테 돈만 않빌렸음.
정말 이나라가 싫습니다. 자기땅 가지고 바른소리 한번 못내는 이나라...
전국민이 아니더라도 울인낚회원님은 부디 큰소리을 내 주시길 바랍니다.
자장면 한그릇 먹꼬 내는세금 아깝다 아까워....아까워
부산 대물의꿈
05-03-20 01:43
이것을 영화로 만들면 대 히트 ................돌아온 독도수비대 ^^
허거참
05-03-20 01:58
감동입니다.
우리의 애국선배님들,,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국가적 차원의 보상과 배려를 마땅히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낚시인이 나서서..인낚에서 앞장서서 한번 해보면 어떨지..
우리의 애국선배님들,,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국가적 차원의 보상과 배려를 마땅히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낚시인이 나서서..인낚에서 앞장서서 한번 해보면 어떨지..
호미
05-03-20 13:12
남천동 메가리님~ 바람쇠러 안가셨읍니꺼~ ^^
송프로
05-03-20 19:55
~부산 대물의꿈님 글처럼~이것을 영화로 제작 한다면..무척 감동적인
영화가 될듯 싶군요..꼭 대어 낚으세요~
영화가 될듯 싶군요..꼭 대어 낚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