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짜 조사
2005년 6월
신나는 주말이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서천화력 방조제 낚시를 다녀왔다. 어제는 비온 뒤라서 그런지 수온도 내려가고 물색도 탁한데다가 바람까지 불어서 흔하던 숭어와 학공치도 보이지 않았다. 황금 물때인 아침 중들물부터 오후 중날물까지 여섯 시간 동안 부지런히 밑밥을 뿌려주면서 열심히 낚시를 했지만 겨우 20센티 정도 되는 우럭 한 마리 잡고 철수하였다. 한 마디로 '꽝'을 했다.
일요일, 어제는 비록 '꽝'을 했지만, 오늘은 혹시나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또다시 낚시 준비를 한다. 이른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하듯 얼굴을 씻고 간단하게 식사를 한 다음 낚시가방과 음료수와 먹을거리 등을 챙겨서 신나는 낚시 여행 출발!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 종천과 비인을 지나서 동백정에 도착하자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5시가 조금 지났다. 동백정 주차장에 주차한 다음 서둘러 낚시가방과 밑밥 통을 둘러메고 북쪽 방조제로 10여 분 정도 걸어간다. 포인트에 도착하여 낚시 짐을 정리하고 낚시를 하기 전 앞쪽에 밑밥을 너댓 주걱 뿌려 준 다음, 서둘러 채비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게스팅을 한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날씨도 포근하고 바다 상황이 좋다. 바람도 없고 물색도 좋고 조류 흐름도 적당하여 낚시여건이 좋다. 그런데 황금 물때라는 새벽 중들 물부터 초썰물까지 세 시간 가까이 부지런히 밑밥을 뿌려주면서 열심히 낚시를 했지만, 이상하게 우럭 새끼 입질 한번 없다. 입질은커녕 바닥 걸림만 서너 번.....,
그렇게 초썰물이 끝나갈 무렵, 세 시간 가까이 잡어 입질 한번 없고 오늘도 어제처럼 '꽝'을 치는 것이 아닌가? 슬슬 짜증이 나고 이런저런 잡생각에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1호 막대찌가 보이지 않는다. 바닥에 걸린 건지 아니면 우럭 새끼가 입질한 건지, 아무튼 엉겁결에 챔질 아닌 챔질!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묵직하고 둔탁한 느낌이 바닥에 걸린 것 같기도 한데 무언가 묵직하게 움직이는 느낌도 온다.
무얼까?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낚싯대를 세우고 낚싯줄을 감자 갑자기 아래로 쿡쿡하면서 묵직하게 처박는 느낌이 온다. 지나가던 참숭어라도 걸렸나?! 어쨌든 참숭어라도 좋다. 오랜만에 손맛이라도 보자. 힘껏 낚싯대를 세우자 1호 낚싯대가 활처럼 멋지게 포물선을 그린다. 2~3분 정도 낚싯대를 세우고 릴링을 한 다음 낚싯줄을 감자 잠시 후 물속에서 무언가 넙적하고 시커먼 그림자라 비친다. 음! 저게 뭐지? 생각했던 참숭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대물 광어인가? 갑자기 심장이 뛰고 긴장이 된다. 앞쪽에 있는 데트라포드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릴링을 하면서 계속 줄을 감고 낚싯대를 세우자 드디어 물 위로 은빛 찬란한 물체가 떠오른다. 아니! 저게 뭐야? 말로만 듣던 도미! 감성돔이 아닌가? 그것도 대물 감성돔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혹시 잘못 보지 않았나 싶어서 또다시 쳐다봐도 틀림없는 감성돔이다.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가슴 벅찬 흥분에 심장이 벌렁 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가까스로 진정을 한 다음 겨우 뜰채 안에 넣었다. 그런데 감성돔이 얼마나 크고 무겁던지 뜰채가 위로 접혀지지 않는다. 한 손에 낚싯대를 잡고 조심조심 테트라포드 아래로 내려가서 두 손으로 뜰채 망을 잡은 다음 겨우 걷어 올렸다. 올려 놓고 보니 정말 엄청나게 크다. 과연 이걸 내가 잡았나?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뜰채 속에 있는 감성돔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서 손으로 대충 길이를 재보니 세 뼘 가까이 된다. 낚시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오짜가 훌쩍 넘을 것 같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자랑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들뜬 기분으로 집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대뜸 "잡았다. 잡았다. 나 방금 전에 엄청 큰 감성돔을 잡았다."라고 자랑을 하였다. 집사람에게 한바탕 자랑을 하고 난 다음 감성돔이 더 붙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옆에서 낚시하던 대전에서 오신 분과 오후 중들물까지 서너 시간 가까이 낚시를 하였다. 하지만 우럭과 노래미 새끼 입질 몇 번뿐이었다. 오후 늦게 낚시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자로 재보니 57센티가 조금 넘는다.(아마 살아있을 때 크기를 재었더라면 58센티가 넘었을 것 같다.)
흔히 하는 말로 초보가 일을 낸다고 하더니, 그야말로 초보 조사인 내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초보조사가 얼떨결에 오짜조사가 된 것이다. 왕초보인 내가 대물 중의 대물을 그것도 가까운 도보 포인트에서 잡는 행운을 누렸다. 어느 선배 낚시인이 감성돔은 그렇게 쉽게 잡히는 고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믿기지 않는 행운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마 이렇게 큰 감성돔은 내 생애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는, 그야말로 용왕님이 점지해 준 고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참고로 오늘 내가 사용한 채비는 1호 낚싯대에 원줄은 2.7호, 목줄은 1.7호를 사용하였고 바늘은 감성돔 바늘 3호를 사용하였다. 입질 받은 시간은 초날물이 끝나갈 무렵이었으며 테트라포드 가까이에서 입질을 받았다. 그리고 수심은 4미터 정도 주었고 목줄은 비자립 막대찌를 사용하기 때문에 1.5미터 정도로 비교적 짧게 주었다.
퇴직 후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이 되면 낚시를 다니고, 바닷물이 많이 나가는 날은 소라와 골뱅이 등 해루질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