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 그리고 지금 43살이 된 둘째 여동생)
밤의 진통 거쳐야 잉태되는 태양에 찬란함처럼
가을은 어쩌면
여름이 뜨겁도록 아파 낳은 소중한 결실의 계절일 것이다.
한참 어여쁠 나이 나의 가을은
여느 숙녀들처럼 독서에 계절 이였고
낙엽 진 거리 바바리코트 깃 세우고
사색에 잠겨 걷는 남자의 뒤태에 설레는 계절 이였으며
열어놓은 창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양 손으로 턱 받치고 상상을 덧칠하며 꿈꾸던 계절 이였다.
그러던 가을이 어느 순간부터
내 그리움을 자극해 모닥불을 지피더니 일제히 타오르게 한다.
내 고향은 여천군에 속해 있는 5가구가 살던 우승도란 작은 쪽 섬 이였다.
나를 낳아 그곳으로 들어 가셨는지 아님 그곳에서 나를 낳으셨는지는
한 번도 부모님께 여쭤 본적은 없지만 내 기억 속 오롯한 고향은 우승도가 전부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리운 게 고향이라더니
그래서인가
쪽 섬에 대한 이야기나 사진 한 장에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있는걸 보면
나도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개발이란 명분하에 고향을 잃은 사람이 어디 나뿐이런가?
해당화 맑은 자태가 은모래에 반사되고
여린 찔레 줄기가 간식 이였으며 꽃잎 몇 개 뜯어 씹으면
하루 온종일 찔레향이 입안을 감돌았던 유년시절
그리움 솟구쳐도 다시 가볼 수 없는 그곳이
어린 마음에 오살 나게 싫어 나도 오빠랑 동생 있는 할아버지 댁으로 데려다 달라고
생떼를 쓰곤 하였다.

훤칠한 키에 호남 형 이신데다 멋쟁이 시던 아버지께선
어린 내가 혼자 섬에서 노는 게 안쓰러우셨는지
세간을 정리하시고 적량 읍으로 이사를 해서 호남 정유에 취직 하셨고
할아버님 여하 오빠와 동생,
흩어진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살게 되었다.
어머니 애창곡은 당연 이미자님의 노래인데
비가 오면 어머닌 이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고
공치는 날에는 임 보러간다 “
이 부분만 기억이 난다.
언젠가 어린 소녀는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비가 오는데 왜 공을 쳐?”
응~·그건 비가 오면 아버지처럼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비를 맞고 일을 하실 수 없으니 쉰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그 공은 치는 공이 아니지
추적추적 가을 비 오는 어느 날
어머니께서 가서 아버지 식사 하시게 모셔오너라,
하시면
숫기 없는 난 네모난 유리문 넘어 안을 빠끔히 들여다보고만 있다가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면 움찔 놀라 이내 몸을 숨기곤 하였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시곤 일어 서실라하면
대폿집 여자가 젓가락 장단을 놓고
시뻘건 동백꽃색 베니(립스틱) 바른 입술로 홀리던 울 아부지
하늘이 뵈지 않던 동백 숲 꽃비는
소녀의 기억 속에 결코 순결하고 아름답지 만은 않았다

(46세인 동생 미쓰때)
기다리시다 지친 어머니께서 동생을 보내면
서양 아이처럼
노랑머리에 눈은 왕방울만한 동생이
언니!! 아작 이러고 이쓰믄 어쩐당가 비켜~
용감하게 유리문을 밀치고
막무가내
아부지 집에 가잔께요 싸게 가잔께요
아버지 손을 줄다리기 하듯 잡아당기면
막걸리 한 사발 거나하신 아버지께선
허메 ~이삔 내새끼 왔는가
어이~~보드라고 요로코롬 이삔아가 내새끼랑께 ~그려어 가자 가
그때서야 마지못해 일어나시던 울 아버지
동생을 안거나 업거나
크신 그림자 뒤로 난 저만치 작은 발자국 종종 걸음 쳤었지.
어느 해
아버지 손잡고 동생과 연극 한편을 보았다.
초등 입학 후 몇 학년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1~ ·2학년 쯤 된 것 같고
노랑머리에 빨간 세라복을 입은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은 학교를 다니기 전이였다
삼일절에 대한 연극 이였는데
여수시내 극장 안
짚을 엮어 목 아래 까지 덮어씌우고 하얀 한복이 찢어 진체
줄줄이 손이 묶여 끌려 들어오던 독립투사들
일본순사는 완장을 차고 내키만 한 장총을 들고 설쳐댔다.
앞이 보이지 않는 독립투사들을 발로 차고 장총을 들이미는 과정에서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니
장총 부리가 어린 소녀의 눈앞에 박혔다.
금세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 같은 두려움에
아버지의 가슴팍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묻었다.
무서움 속에서도 그 무서움 보다 더 크게 느껴졌던 아버지의 심장 소리
딘 한번 가까웠던 그 소리

아버지께서는 풍운아셨다.
누구에게 간섭 받는걸 싫어 하셨고
바람처럼 바람 따라 나서시길 좋아하셔
목적지도 정착지도 가족들에게 한마디 없으신 체..
그 자유의 혼을 지니셨으니
어머니 마음고생이 어떠셨을까?
어머니의 무던한 희생이 아버지의 원망으로 자리 하던 때
어쩌다 바람타고 집에 들르시면 잘못만 들키게 되어
아버지의 회초리는 유난히 매서운 아픔으로 멍울 졌었고
돌파구를 찾지 못한 반항은 차고 넘쳐 몇 년 동안 연락 두절 한 적이 있다.
그일 때문에 홧병이 생기신 노모는 한 겨울에도 아직 이불을 덮지 못하고 주무신다.
이 나이 되고 세끼 셋 키워보니
아이가 조금 만 늦어도 조바심 나는데
나의 부모님 속은 어떠셨을까?
돌이켜 보니
문제는 나였다.
그리우면 그립다고 달려가 안기면 되는 것을
센 고집에 시위를 당겨 겨누기만 했던 방자함이
그 큰 산을
어쩔 거라고 밀어 내기에 버둥 거렸다
그런다고 산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거늘
아버진 거대한 산처럼 늘 자리 그 모습으로 계셨는데..

아버지 돌아가신지 열여덟 해 맞는 가을...
내 아버지가 사랑하신 계절
내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꽃이 피고
그 향기 시들어 질 때
그 향기 따라 매몰차게 떠나신 계절이다.
그런 아버지 뵙고픔에 못내 서러운 이 계절
만삭된 보름달이
물든 나뭇잎 걸치는 어느 해
달빛보다 환한 얼굴로 아버지 마중 나와 주시면
그 따신 큰 손 잡고
아부지 ~ 당신 딸 원없이 살다 왔당께요
보고 기셨지라~높은디서 내려다본께 안장합디여
징허게도 멋지게 살다와부렀쏘...
그날까지
여닫는 오늘에 감사하며 내 삶에 충실 하리라...
2012년 10월5일 우연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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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동백섬
윤기로 미끄러진 살갗위에
붉디붉은
몸살 앓고 솟아난 꽃이여!
몰아치는 비바람에
행여,
목숨 거둘지라도
처참함은 용납 못해
깔끔한 단명이여!!
남겨진 자의 그리움은
모질게도 푸르러
뼛속 깊이 욱신욱신 통증을 유발 한다.
어찌할꼬!
이 아련한 향수병을...
우연 낙서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