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 가다 아닌줄 알았습니다.
너무 지나치면 해가 되지만 간간한 오락은 침해 예방에도
좋다고들 합니다.
근거가 있는 이야긴지는 우연도 확실힌 모르오니
너무 믿진 마시구요.
유쾌하고 갑니다^^
동양화 공부
(2002년 12월)
오랜만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러니까 엊그제 저녁, 가까운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한 다음 뒤풀이로 서너 시간 가량 동양화 공부를 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이기는 확률보다 지는 확률이 더 많은데 일진이 좋았던지 재미 좀 보았다.
이십대 후반 무렵부터 지금까지 동양화 공부를 해보았지만 엊그제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했다. 그러니까 중반전을 지나서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이었다. 한번은 동양화를 받아보니 삼자와 육자 그림이 각각 세 장씩 들어오고 나머지 한 장은 오자 그림이 들어왔었다. 동양화 공부를 해본 사람들이면 아는 사실이지만 동양화 공부는 영양가가 많은 그림이 골고루 들어와야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똑같은 그림이 동시에 두세 장 씩 들어오면 구상할 수 있는 작전이 제한 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낮다. 그야말로 옆 손님이 실수를 해 주던지 아니면 대박 운이 따라주어야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기기 어려운 그림인 것이다. 하지만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낮지만 반대로 운 좋게 이기면 몇 배로 대박을 칠 수 있는 그림이다. 마침 이전까지 약간의 재미를 보았던 터라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희박했지만 두 개의 그림 중에서 하나의 그림이라도 폭탄이 터진다면 성공 할 가능성이 있는 그림이라서 욕심을 냈다. 비록 가능성은 낮았지만 “어차피 이것도 도박이다.” 생각하고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오기가 발동하여 그야말로 못 먹어도 고를 했다. 삼자 석장과 육자 석장으로 두 번 흔드는 패를 가지고 도전을 한 것이다.
첫 번째 차례에는 바닥에 오자 그림이 있어서 오자를 쳤다. 이어 두 번째 순서가 돌아왔는데 삼자나 육자 그림이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영양가가 낮은 육자 그림을 하나 해제하였다. 그런데 일이 벌어지려고 그랬는지 첫 번째와 두 번째 차례에 바닥 그림에서 피를 두 장 정도 땄었다. 이때까지 다른 두 친구들도 그림책을 많이 따질 못했었다. 드디어 운명의 세 번째 차례가 왔었다. 해제했던 육자를 친 다음 “설사를 해라.”라고 농담을 하면서 바닥그림을 땄다. 마침 옆에서 구경하던 지점장도 웃으면서 “뻑! 뻑! 설사다!” 라고 맞장구를 했다. 그런데 웃으면서 농담으로 했던 말이 현실로 나타났다. 해제했던 육자를 친 다음 바닥 그림을 때리자 설마 했던 육자 그림이 나왔다. 그야말로 자뻑(두 장 가지고 있는 그림 중에서 한 장을 쳤는데 같은 자가 나와서 설사를 하는 것을 말하며 이때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 두 장을 받는다.) 그야말로 실낱같은 확률이 현실로 나타났었다. 다음 네 번째 차례가 오자 자뻑을 했던 육자 그림을 따고 피를 두 장 씩 받은 다음 바닥 그림까지 치자 순식간에 피가 열장이 되었다. 다음 네 번째 차례에서 피가 두 장만 붙으면 점수를 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 이때 상황은 선이었던 부원장은 점수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고 꼴찌였던 한 친구가 광이 한 개 있었다. 공교롭게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두 개의 그림을 흔든 나 이외 다른 두 친구는 이길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육자를 해제한 내가 피가 많아지자 문득 선인 부원장이 꼴찌인 친구가 광이라도 나게 하려고 견제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번 째 차례가 오자 부원장이 한참 견제를 하려고 광을 풀었다. 설마 했는데 내가 들고 있던 삼자였다. 삼자가 나오는 순간 두 번째 폭탄이 터졌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황 끝이었다. 옆에서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던 지점장이 계산도 해보지 않고 큰소리로 “무조건 양쪽 상한가!”라고 하면서 얼른 그림책을 흩어버렸다. 오랜만에 호탕하게 웃었다. 열장의 피에서 폭탄으로 4장의 피를 받고 바닥에서 다시 한 장을 더 보탰다. 그림 점수를 계산하면 피 열일곱 장으로 8점을 났던 것이다. 두 번 흔들고 8점을 났으니까 계산을 하면 8점에 8천원이고, 피박이니까 16천원, 여기에 두 번 흔들었으니까 32천에 다시 64천원이 되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따따따불을 기록한 것이다. 아마 동양화 공부의 묘미는 이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더 흥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진은 중학교 하계 동창 모임에서 / 왼쪽이 저입니다.)
사실 동양화 공부를 하다보면 쉰한 개(1에서 12까지 마흔여덟 장에 보너스가 세장)의 동양화 중에서 같은 그림이 동시에 세 개 들어오는 확률도 그리 많지가 않다. 하물며 같은 그림 세장이 동시에 두 개씩이나 들어오는 확률은 그야말로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다. 이렇게 들어오기 어려운 그림을 가지고 그 중 하나를 해제하고 다음 차례에 똑같은 그림으로 설사를 할 수 있는 확률은 글쎄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마지막 기회에서 또 한 번의 폭탄이 성공하는 확률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로또에 당첨되는 확률 보다 더 어려운 확률일 것이다. 지금까지 24년 동안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수많은 동양화 공부를 해 보았지만 이와 같은 사례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고 구경해보지도 않았다.
아무튼 부담 없는 친구들과 네 시간 가까이 동양화 공부를 하면서 오랜만에 엔도르핀이 팍팍 나오도록 호탕하게 웃었다. 동양화 그림공부 덕분에 스트레스도 풀고 덤으로 자동차 기름을 두어 번 정도 넣을 수 있는 보너스까지 챙겼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했다고 해야 하나? 사실 나는 성격상 동양화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체질이다. 동양화 공부를 잘 하려면 그때그때 변하는 상황판단과 점수계산을 빨리 해야 하는데 고지식하고 순발력이 부족한 나는 그런 상황판단과 계산을 빨리 하지 못한다. 여기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는 조급한 성격이다 보니 친구들과 어울려서 동양화 공부를 하면 대개 열에 예닐곱 번은 손해를 보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손해를 보면서 친구들과 종종 동양화 공부를 하는 것은 비록 약간의 손해를 보는 대신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퇴직 후 아카시아 꽃이 피는 오월이 되면 낚시를 다니고, 바닷물이 많이 나가는 날은 소라와 골뱅이 등 해루질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