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얽힌 인연 속에 다음 생에서도 다시 만나고 싶은 인연이 있는 가하면
문득 떠오름으로 진저리 처지는 인연도 있으리라
스치듯 가볍게 만나 영원을 맹세하지 않아도
생을 다 할 때 까지 이어지는 인연이 있는가하면
전부를 걸어도 순식간에 등을 돌리는 인연도 있는 생이란 굴레
오남매 중 위로 오빠하나 동생 셋
둘째인 나는 그래서 인가 언니란 호칭을 참 좋아한다.
시집와 마주치는 동네 형님들
형님이란 소리가 익숙하지 않아
언니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철없는 며느리 더 철없다 하실까봐..
시집오자마자 첫아이가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일 잃었다.
연달아 둘째까지 그리되니 노시부모님 뵐 면목조차 없어지고
지금은 돌아가신 시어머님께서
조용히 타이르시며
“아가 아마 촌살림이 힘든가보구나
얼마동안 이라도 나가 살아 보렴“
싫다고 고집 부리는 둘째 며느리 손을 잡으시며
“그러지 말고 아이를 낳고 다시 들어와 살면 되는 것이니
서운타 생각지 말고..“
그렇게 시댁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난후 맺게 된 인연이니
언니와의 인연도 20년이 넘었다.

그때만 해도 남편이 사고 나기 전이라
남편은 거제도도 좁아 갯바위 낚시 원정을 다니곤 했는데
거의 한 달에 줄잡아 못해도 20일은 바다에서 출근을 할 정도니
낯선 동네에 덩그러니 남겨진 내 속은 상하다 못해 문드러질 것 같았다.
저 버릇을 고쳐야지 싶어 남편이 좋아하는 술 한 병 놓고
들꽃도 꽃아 장식하고 안주도 모양을 내서 만들어 차려 놓으면
퇴근하기가 바쁘게 빛의 속도로 밥 한술 뜨고는 낚싯대 챙겨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남편
저 오토바이를 내다 팔아 버릴까 아님 구멍을 내 버릴까
아니면 아작 을 내서 엿 바꿔 먹어버릴까
애인을 만나러 간들 저리 급하진 않을 텐데..
남편이 지나간 자리 뒤엔 아무리 좋은 봄날이라도 늘 휑하고 스산해
별별 궁리를 다하다 깨달은 어느 날
어쩌면 나에 지나친 욕심인지 몰라
시 아버님 56세에 남편을 보셨으니
그 세대의 아버지상에서 보고 배운 것이란 케케묵은 판에 박힌 관습일터
그것을 내가 빼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저사람 마음이라도 편하게
바다에 장가한번 더 보낸 셈 치자
바다가 저사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애첩이라 생각하고
숨 한번 크게 쉬고 눈 한번 찔끔 감아주자
일하러 오라면 못 일어나도 낚시 가자면 오밤중도 새벽도 없이 나서는 사람 아닌가.
저리 좋아하는 걸 못하게 하면 저사람 은 또 무슨 낙이 있겠나..
그러고 나니 낚시 간다 해도 의연해 지는 자신
부업거리도 찾아보고 알아보다 동네에서 발 넓기로 소문난 한사람

언니를 알게 되어 많은 사람을 접하며 이어 온 인연
처음 그때부터 언니야~~하고 부르면 이모, 새댁, 누구 엄마, 가 아니라
아직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한사람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대형 H빔이 강타한 남편의 생사 갈림길에서도 으스러지는 나를 부축해 주었고
몇 해 전 모진 인연에 기력을 잃고 쓰러진 나를 잡고 일으켜 세워
미음을 떠 넣어 주던 사람
한 성질 올라오면 저 여린 몸에서 욕이란 욕은 다 퍼붓는 욕쟁이
이 미*가스나가 니 *고싶나
모친 가슴에 대못을 박을 라고 니가 제정신 이가
니 새끼들 좀 봐라 눈 떠라 눈 안뜨나 이 가스나야
조 **이
니가 그것밖에 안되었나
정신 바짝 차리고 내말 잘 들어라.
느그 엄마 생각해서라도 니 이라모 안되는기라
사고 후 힘든 일은 못하는 남편이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지금의 이업
가계 바로 뒤에 시어른 댁이 있고
연세 드신 노부모에 아이들과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찬 갯바위에 오래 서있으면
허리에 무리가 오는지라
작은 쪽배를 장만 할 때도 내일처럼 나서는 고마운 인연들

먹고 살기 바쁘다고 얼굴 한번 내 비치지 않는 날 위로하며너무 자주 보는 것도 재미없다 한 번씩 만나야 새롭고지나는 길에 내가 들르마..그렇게 살아온 며칠 전계절이 주는 그리움 때문인지 언니야~ 바람 불어 바다 안가니나 오늘 언니 집에 갈라고~
딱 일주일 후면 아들 장가보내야 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짐만 되는 못난 동생 위해
살 붙이를 맞는 들 이리 살가울까..
두 내외가 반갑게도 맞아 갓 지은 밥에 된장을 끓여 내오고
차 한 잔 마시고 도란이다 보니 탐스런 국화 밭에서 찍은 사진이 있길레
저기가 어디냐 물으니
거제 국화축제다 몰랐나.
곧 하는데 여가나면 같이 갈래~

(한지로 만든 등꽃)
서툰 솜씨로 운전대를 잡고 네명의 언니들을 모시니
마음 저 안까지 따뜻해지고
김양의 수다보다 언니들의 수다가 더 정겨워 그걸로 대신 길 안내를 받고 있으니
**이 초본데 정신없겠다 우리 고마 여기서 입 좀 다무는 게 어떻겠노
잠시 조용~
운전 연습 한다고 아이 셋 태우고 다녀서 익숙합니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왁자지껄~
여자 셋만 모여도 접시가 깨진다는데
다섯 여인네라 작은 차안은 대형 스피커 볼륨 올려놓은 듯 하고
언니들의 날랜 걸음 뒤로 사진 몇 장 찍으려다
어미 닭 뒤를 이은 병아리처럼 종종 걸음을 치기도 하면서
처음 들여다 본 국화꽃 축제는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만들었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한 국화꽃 축제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 하는 국화 향보다 더 예쁜 사람 향에 취 할 즘
이맘때면 친정 모친이 피우신 국화 향으로 넘실거릴 작은 섬도
내가 사랑했고 존경했던 먼저 가신 이들이
진동하는 국화 향에 저려
혈류처럼 흐르는 그리움
해마다 가지 잘라 그 긴 그리움을 홀로 피우시는 내 어머니
이 광경 보시면 얼마나 감탄 하실까
내년엔 꼭 모시고 와야지..

생전에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꽃이라
한해도 거르시지 않고 송이송이 정성으로 그리움 매다시는 내 어머니
글을 막바지 매듭짓다 어머니 생각에 죄스러워 먹먹해 지는데
울리는 전화
엄마~ 안 그래도 엄마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왜? 먼일 있는가?아네요 날도 추워지고 긍께(그러니까) 안 그래도 되네 어멘 잘지내고 있씅께엄마..엊그제 국화꽃 구경하러 갔는디..순간 명치끝이 아리다 못해 목울대 타고 넘는 불효에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 여식에게 어머닌 나직이 타이르신다.
오메 내 딸 시방 운당가
오늘 아그들 학교도 안갔을 것인디 울지마소
어멘 새끼들 앞에서 울면 안되제
어메가 울면 새끼들 까정 맘 아픈것이여
그래서 어멘 아무나 어메가 되는 것이 아니라네
그러니 울지마소잉
어메.. 전화.. 끊네 이..
이미 내안에 국화는 시들지 않는 그리움의 꽃으로 만발하다.

2012년 11월 10일 거제 국화꽃 축제를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