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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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림자처럼.....

G 4 2,526 2002.12.24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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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림자처럼.....




      김일석



      서면 한 복판.
      거리를 걷다보니 온갖 캐롤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무엇엔가 들뜬 분위기의 젊은이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노점 앞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며 웃고 있다.
      적당히 추운 날을 감쌀만한 외투를 입은 모습이
      꽤나 풍요로워보이는 도심의 저녁나절.



      주눅이 들 만큼
      어둡고 거대한 빌딩의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갑자기 환하게 밝아진 거리를 보다
      그 소란스런 도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감수성 예민한 내 감각으로
      "또 한 해가 가는구나"하는 생각으로 착잡해졌다.



      막둥이 유치원에서 성탄절 행사가 있었다.
      그간 연습한 귀염둥이들의 재롱은 역시나 볼만 했다.
      한 아이 한 아이의 그 진지한 표정들을 보노라니
      그 풋풋한 생명감각!
      사특한 생각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감동이
      무대의 초라한 커튼이 열릴 때 마다 가슴으로 들어왔다.



      행사가 마칠 때 쯤
      연로하신 원장수녀님께서 본당 내 장애자시설 지원과
      나누는 삶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까닭없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의 우정..."
      행사를 마치는 시간의 소란스러움 속에 울려 퍼진
      윈스턴 쳐칠과 프레밍의 유년기 이야기는
      좌석을 정리하던 내 귀에 송곳이 되어 꽂혀왔다.



      내가 술집에서 흥청망청 술 마시고
      마이크를 들고 "술과 노래는 인생의 휘발유"라며
      깜빡 세상의 그늘진 곳을 잊고 있을 때에
      주름살 가득한 왜소한 수녀님께서
      기름 땔 단 돈 백원의 작은 도움이라도 청하신다는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상을 뉘우치는 떨림이 눈물이 되어 흘렀다.



      추운 겨울,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씻기고 입히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에
      그림자처럼 헌신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이웃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수녀님께 듣고 알았다.



      꼭 누군가 죽어 슬픈 것은 아닐테지.
      혹 내 마음 속에
      세상과 타협하며 나날이 누우렇게 길들여져온
      나만의 승리와 패배에 울고 웃으며
      나만의 작은 성 안에 숨어 살다가
      마치 들켜버린 듯한
      어쩌면 부끄러움과 슬픔 같은 것일테지.



      아, 찬란한 새 해엔
      부디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지만
      도심 거리에 넘쳐나는 저 가난과 풍요를 함께 바라보며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방 채 베란다에 던져둔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낚시장비도
      내 정신의 허접한 그림자일테지만......



      아, 새 해엔
      많은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조금씩만 더...
      정말 조금씩만 더 살기가 나아지고
      새 해엔
      정말 조금씩만 더 행복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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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G 찌매듭 01-11-30 00:00
청승맞기는....즐거워야할 이브에.... 빨리온나, 한잔하게 ^^;; --[12/24-17:23]
--

G 캄피대 01-11-30 00:00
김일석님 오랜만에 글 남기셨군요. 항상 님의 쉼터는 따뜻하고 --[12/25-02:58]
--

G 캄피대 01-11-30 00:00
정이 묻어납니다.
자칫 단순하고 욕심이 앞서는 낚시문화를 보다 건전하고 생각하는 분위기로
항상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울산에서 캄피대 드림.. --[12/25-03:00]
--

G 김일석 01-11-30 00:00
매듭성님, 마음은 꿀뚝같이 가고 싶은데 일이 어떻게 되려는지......^^
캄피대님~감사해요....^^
울산에 계시는군요....울산에 자주 가는 편이지요....
새 해 하시는 일들, 잘 되시길 바랍니다....안녕히......^^ --[12/25-2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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