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숭어가 뛴다
김일석
비가 오면 숭어가 뛴다.
하수구에서 나오는 누우런 물
섞여 떠내려오는 고양이 시체와
때로는 배설물
때로는 다른 생명에 치명적인 독성을 드러내는
중금속이 바닷물과 적당히 섞여
제 놈들에겐
히로뽕 같은 환각제
그런 냄새일지도 모르는 일
바닷가에 나온 사람들은
술병 아니면 아이스크림을 들고
멀리 바다와 한가롭게 떠있는 배
규칙적인 교각의 아름다움을 볼테지만
바닷가에 사는 난 비가 오면
물 속을 들여다보고
그 물 속에 감추어진
만조수위 아랫쪽에 만들어진 하수구와
그 주위를 배회하며 헐떡이는 숭어를 본다.
비가 오면 숭어가 뛴다.
바다를 오랜만에 보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드넓은 수평선에 취하거나
거대한 교각을 장식하는 불빛에 취할 수 있지만
매일 바다를 보거나
창을 열어 여름바다의 냄새와
끈적거리는 해풍을 매일 들이키다보면
저 바다도 지긋지긋할 수 있다.
이 시끄러운 도회지를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탈출하고픈 낚시꾼은
바다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섬과 넘실대는 조류
혹은 전율하는 손맛과
야만적인 수렵행위를 떠올리며
대물포획 무용담과
오르가즘을 느낄 수도 있을테지.
비가 오면 숭어가 뛴다.
수면을 뛰는 저 바보같은
더러워도 더러운 줄 모르는 저 물고기를 보며
난 낙동강 하구의 똥물이
하수구를 쏟아져나온 누우런 생활하수가
숭어, 감성돔, 벵에돔 따위의
바보같은 물고기의 환각제란 걸 안다.
얽매이기 싫어하는 사람은
바다를 보며 자유를 느낀다지만
매일 바다를 보는 난
냄새나는 여름과 시끄러운 폭죽소리
백사장을 메운 수많은 사람들
혹은 여느 모텔의 룸 마다 켜진 불빛과
새어나오는 신음소리와
숭어처럼 헐떡이던
아, 젊은 날의 후회를 듣는다.
비가 오면 숭어가 뛴다.
세월이 흘러
폭죽을 터트리며 고함 지르는
저 백사장의 철부지들이 어른이 되고
또 그들의 아이들이 바다에서 보게 될
여름바다의 후줄그레한 냄새와
물 위를 떠다니던 생리대와 누우런 속옷
그 누우런 수면 위로
숭어는 변함없이 뛸테지.
헐떡이는 숭어를 보며
퍼붓는 빗속에서
한 웅큼의 절망과
그 한 가운데를 난도질 하는
여름바다의 무질서와 시끄러움
군데군데 피를 흘리는 도시 한 복판의
일탈(逸脫)한 문명을 본다.
방파제 구석 마다에서 풍기는 지린내
버려진 음식찌꺼기를 보며...
비가 오면 숭어가 뛴다.
만조 수위 아래의 하수구를 흘러나오는
누우런 똥물과 그 수면 위를
바보같은 물고기
숭어가 뛴다.
photo....http://www.chuja-fish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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