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남긴 낚시-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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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남긴 낚시-에필로그

G 3 577 2003.10.01 22:30
일 자:2003년 시월 초 하루
장 소:경주 소리못
누 구:붕달씨,아지매, 차군, 이대일
참 고:아지매는 붕달씨 부인이고 조행기 내용 모름

에필로그

1

방죽이 보이는 들국화길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태풍에 누운 벼는 손도 못 쓰고 감밭 옆 가실배추 추스리다 막걸리 생각에 차군을 불렀다. 치킨집이 없어지고 매운탕집이 생기는 바람에 새참 안주가 붕어탕으로 바뀌었다. 찜통에 담아 온 매운탕을 한 술 맛 본 아지매가 여지없이 차군을 쥐어박았다.
"시상에 이 게 뭐꼬! 아무리 고추흉년이라지만 이게 맹물탕이지 매운탕이가? 마흔이 다 되어도 헛끼다."
"그라이 아지매보고 끓이라 했는데..."
갑자기 아지매가 차군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보소, 둑에 내려올 때 절구통 옆에 고추가루 퍼오고 소금도 가져오고 마늘 여나므개 가져오소. 오다가 깻잎도 훑어 오고 배추 소가리도 뜯어 오소! 알았능교!"
돈 쓰고 좋은 소리 못 들은 차군이 머쓱해 있자 한 마디 거들어 줬다.
"괜찮다. 그라이 남자 여자 할일이 따로 있제. 성님이 낚은 고기로 이십 년을 탕을 했으니 니나 내나 할 말이 없능기라."

원래가 착한 차군이다. 고향은 대충 부산근처이고 조실부모하여 어려운 생활에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까지 갔다왔다. 제대후 하우스 작물단지로 부촌이 된 보뚜막에서 곁방살이로 눈치밥을 십 년이나 먹었다.
백열등 정전으로 시금치가 얼어버려 쫒겨났을 때, 그는 소리못 못둑에서 울고있었다. 갈 데 없던 그를 붕달씨가 초당으로 데려갔고 아지매는 헛간을 손질해 보일러를 놓게했다. 재배교육을 붕달씨로 부터 삼 년간 단단이 받았으나 아무도 그를 써주지 않았다. 나는 그 때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포기하기엔 늦었다. 직접 재배해 봐라. 형산강 하천부지를 얻어 줄테니 손쉬운 토마토부터 시작해라."
나는 그 당시 명령하다시피 말한 걸로 기억한다. 쉰 밥과 식은 밥을 번갈아 먹으며 밭자락 한 자데기 소출을 저금하던 날, 막걸리 한 주전자를 들고 나를 찾았다.
"못난놈! 니 지금 울 때가 아니다!"
다시 삼 년이 흘렀고 그는 일어섰다. 처음으로 그가 승새미 무논 땅을 두 마지기 샀을 때, 등기부 등본을 들고 소리못둑을 망아지 새끼처럼 뛰며 기뻐했다. 나에게 혼날까 봐 입은 웃는데 눈엔 눈물이었다. 콧날이 맵던 그날을 어찌 잊겠는가! 붕달씨와 셋이서 종일 퍼마셨다. 붕달씨 붕어즙을 단지 째 동을 내고 소리못에 셋이 빠졌다. 그의 작은 성공이 바로 우리 것이었기에 말이다. 겹경사로 참한 색시 만나 장가도 들었다.


2

"지미, 재피가루가 빠졌네! 아까 전화할 때 시켜야지!"
"정지(부엌)에 손만 뻗으면 되는데 머리가 그리 안 돌아 가능교."
아지매가 기어이 토를 몇 번 달자 붕달씨 본색이 나와 버렸다.
"니 방금 뭐라했노! 머리가 머시 어째! 이게 환장을 했나, 뭘 잘못 쳐 묵었나? 하늘 천짜 위에 점이 왜 있는지 아나? 하늘보다 높은 게 지아비 부짜라 말이다!"
그렇게 쫑알거리다가도 손바닥이 바람을 가를라치면 아지매는 타이밍에 맞춰 줄행낭이다.
"재피가루가 없으니 마늘을 좀 더 넣으소."
"넣지마라. 오 분 안에 다시 온다. 보거래이." 붕달씨가 멋적은 듯 빈 잔을 들고 흔들었다.
"차군아, 성님 혈압올랐다. 한 잔 권해라."
차군이 못 본척 시계를 봐두었고 그 행동에 내가 동의했다.
"그런데 자네는 십 년이 다 된 이야기를 전국적으로 공개하면 우짜노? 내가 팔푼이짓 한 게 그리 조으나 말이다. 서울있는 막내 제수씨 전화오면 우짤기고!"
"성님요, 낚시 좋아하는 사람들만 보는 게시판이니 상관없심더."
"참말이제, 그라머 다행이다마는..."
" 성님, 사 분 사십오 초 걸렸심더."
아지매 손엔 재피가루가 들려 있었다. 둑 너머 초당까지 뛰지 않고는 어려운 길이라 나는 내심 탄복했고 붕달씨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살면 저렇게도 궁합이 잘 맞을까!
"이십년간의 연구 과제라..."
뜬금없는 내 소리를 차군만 알아 들었고, 붕달ㅆ는 재피로 맛들이고 아지매는 붕달씨 막걸리잔에 빠진 날파리를 건져내고 있었다.
"우리 거문도 갔을 때 말이다. 마당바우에 뿌린 술이 맥주에서 막걸리로 바낀 거 알고 있나 자네?"
"주의보 치던 전 날 성님이 나발 불었심더."
차군이 취기로 어제 일 처럼 대답하니, 아지매가 기억을 더듬는 듯 하자 붕달씨 슬금슬금 일어나더니 싸리가쟁이를 꺽어왔다. 다시 간을 맞춰 매운탕을 데우느라 아지매는 옛일을 잊어버렸고 차군은 부인에게 줄 들국화 화관을 만들다가 역시나 붕달씨에게 쥐어 박혔다.
"등신아, 사흘에 피죽 한 그릇 묵더라도 기집이 자물새야 바가지가 없능기라."
그의 진솔한 말이 민들래 홀씨가 되는 동안, 세월은 훌쩍 차군으로 옮겨 가는가 보다. 얼굴 빨개진 차군이 또 실수를 해버렸다.
"성님! 붕어낚시로 콘베아 기름 대주기 내기하입시더."
"허허, 이누마 자석 좀 보거래이, 대이라, 자네 들었제! 이누마가 도전을 한다 아이가? 우째 생각 하노?"
나도 못 해본 도전을 차군이 하다니 용기는 가상치만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있다는 건 차군도 알고 있었다. 그는 붕달씨 콘베아에 가실추수 기름을 모두 넣어주고 싶어했다. 한 번이라도 적으나마 그를 위해 돈을 쓰고 싶어했다. 그냥 받을 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한 번만 받아 주소! 심판은 내가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딱 잘라서 말하면 붕달씨는 못 이긴 채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내사 참, 몬살겠데이. 좋다! 내일 새벽에 한 시간 동안 일곱치 이상이다. 저게 지 정신이가?"
어쨌거나 올해 붕달씨 가실기름은 잊어버렸다. 차군이 나를 보더니 빙긋이 웃었다. 아지매는 영문도 모르고 아직도 매운탕 간을 맞추고 있었고, 소리못 논길에 핀 들국화는 화관에 시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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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G cello714 02-11-30 14:00


님의 글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물론 이전 글도요)
TV문학관의 한장면을 보는 듯 하네요.
항상 행복하시길... -[10/02-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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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그냥 02-11-30 00:00
이 글에 답글을 쓰기 위해 회원등록을 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한편의 단편소설로 큰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 그리고 아래 댓글을 다신 분이 "자물새야"라는 말에 대하여 얘기해 주셨는데, 전라도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저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잠을 쓰다"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마도 자물새야 라는 표현하고 비슷한 것으로 생각되며, 표준말로 하면 "자지러지다"라는 표현하고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글 잘 읽었다는 말씀 전하며,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10/02-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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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경주월드낚시 02-11-30 00:00
과분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본문과 에필로그에 '자물새야'의 표현에 의견을 주셨는데 이희승 박사의 한글대사전의 풀이는 자동사 원형으로 '자물쓰다'이며 '까무러치다'로 되어 있습니다. '자지러지다'도 근사한 표현입니다만 까무러칠려면 의식이 없는 상태이니 기절에 가깝다고 생각함이 어떨까요. 역시 몸으로 푸는 남도 방언의 곡조는 대단합니다.
늘 행복하시길... -[10/02-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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