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지치면 한 번씩 찾아가 뭉쳐진 가슴을 풀고 오는 곳이 나에게도 있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의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곳
이태백이 달과 놀았던 곳이라서 유명한 곳
진짜로 이태백이 다시 태어나도 이 곳에 와서 놀 것만 같은 그런 곳
의항 구룡포...
32번 국도를 열심히 따라가다가
한동안 비포장도로로 이어지는 그런 곳
비포장도로는 잘 정돈된 도로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이 있다.
과연 비포장 끝에는 뭐가 존재할까?
내가 꿈꾸던 그런 것이 기다리고 있을까.
가끔은 긴장하게 만드는 비포장길
비포장길을 운전하노라면 잠깐잠깐 많은 생각이 흘러간다
가끔 비포장길이 나에게 흥분과 기대, 그리고 희망을...
선물꾸러미의 어여쁜 포장을 풀 때와 같은 기쁨을 준다
밤늦게 도착한 의항
술 한 잔 마시고 보름달만 쳐다보아도 안주가 필요 없는 그런 곳
생각 없이 저절로 시가 흘러나오는 곳
상큼한 바다향기가 몸 속으로 스며든다
사면이 바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끝에 해변과 푸른 물결
바닷바람도 무섭지 않은 듯 절벽 위에 소나무 한 그루
길가와 조그마한 골짜기 옆에 갖가지 만발한 꽃들
말만 듣고 느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었다.
너무나 빨리 다가오는 새벽 앞에서 보름달과의 대화는 너무나 짧았다.
커다란 바다가 웃을지 모르지만
고기를 잡기 위해
너무나 작은 낚싯대 두 개를 준비했다.
아니, 맨몸으루 가기엔 너무 허전해서 낚싯대를 준비했다.
이곳에 오면 준비하는 것 (기미테-배멀미 방지용, 귀밑에 붙이는 거)
거대한 바다에 비하면 한없이 허약해 보이는 발동어선에 몸을 실었다.
조금은 멀리 나갈 거니깐
출항 신고하고, 경찰들이 확인하구, 허가가 나오기까지
잠시의 대기시간...
신선한 굴로 끓였다는 굴국을 한사발 먹었다.
반찬만 12가지, 바다음식으로만...
신비할 정도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바닷가 사람덜은 좋겟다
이렇게 시원한 국에 밥 한 술 하믄
이게 바로 신선이 아닌가
굴국에 소주 한 잔이 벌써부터 가슴을 뜨겁게 한다.
드디어 출항 허가가 떨어졌다.
발동선 선장은 구면이다.
전에 낚시 왔을 때는 어선이었는데
지금은 낚싯배로 다시 허가를 받았다구 한다.
선장은 나랑 나이가 비슷하다...
친구 같아서 좋다 무식하게 생겼지만...
선장이 말한다--
소주하구 초장하구 매운탕 끓일 거 준비했어
어여덜 타, 가자구!
서울놈덜이라서 그런지 빛깔이 허였구먼, 빨랑!
조심덜혀 허허허...
고깃배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난 그놈의 타이타닉 영화 때문에 뱃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파도를 헤치고 나가노라면 뱃머리는 상하 2미터 정도는 오르내린다
선장 왈----뒤질라구 환장했군. 꼭 잡어!
그래도 넓은 바다가 보구 싶었다
아무 장애물 없는 바다가.....
한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태안해안국립공원 내에 있는 섬무리
육지의 평야에서는 볼 수 없는
작은 섬들의 밀집지대를 지날 때의 감상은
바닷가가 고향인 사람들이
타향에서 고향의 냄새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거구나 싶었다.
거기엔 생에 대한 고통도, 불만도, 불평도 찾아볼 수가 없으며
그들끼리의 경쟁 없는 평화, 공격 없는 안전한 에덴의 사회...??
너무나 벌거숭이
이 바다의 위엄은 하늘로도 가릴 수 없다.
칼로 그은 듯 일직선의 수평선...
저 멀리 눈에 아롱진 곳이 이 지구의 끝인가??
물거품에 지나지 않은 이 조그마한 생명체가
바다풍경 속에 잠기고 보니
약하디 약한 인간의 천명을 개탄치 않을 수가 없구나.
나 또한 바다 한가운데서 시인이 되어본다
배는 낚시할 수 있는 곳에 멈췄다.
고기가 잘 잡힌다는 곳
낚시줄을 내리자마자 물고 올라오는 고기들
선장은 바로바로 회를 뜬다
하하 ----- 표현하기가 싫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우선 먹기 위해서...
말 한마디 보다는 회맛이 더 중요한가보다
자연산 신선함이라 소주를 아무리 마셔두 취하질 않는다
바다 위에서 먹는 회 맛이란 표현하기가 정말로 싫다
선장이 바다 위에서 매운탕을 끓인다
배위에서 점심식사라 재미가 절로난다 흔들거리는 점심식사
밥 먹는 동안에 중학교때 소풍 가던 생각이 난다
사이다 한 병에 김밥, 과자 한 봉지
이런 느낌들이 살아날 때 나는 가끔 흥분하게 된다
고기 한바구니씩 잡아서
잠시나마 뱃놈 기분을 내다가 시간의 아쉬움을 접어두구
되돌아갈 것을 걱정한다
심한 파도에 일행덜은 배멀미에 혼나고
나는 아직두 어린지라 신나서 펄쩍펄쩍 뛰고
선장은 가끔 하품만 하고
귀항길에 오른다
마치 전투에 참가했다가 되돌아오는 거 같은 기분으로..............
포구에서 바라보는 바닷가에서 꼭 교향곡이 들려오는 것같다
지휘자는 찾아볼 수 없는데도 말이다
저녁노을도 사라지고 어스름...
포구 바위틈 사이로 파도치는 물결과 같이
불빛을 내며 사라지는 뱃고동소리는
섬의 정취를 더욱더 아늑하게 하고 있다
동구밖까정 배웅 나온 식당 아줌마와
적당히 무식한 선장이 손을 흔드는 것을 뒤로하고
되돌아가는 비포장길
비포장길에 올랐다
--분명히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아는 비포장길
올 때와 느낌이 다르다
멀리서 서울 하늘이 보일 때쯤 흘러나오는 한숨...
인자부터는 투쟁이요, 싸움이요, 긴장이요, 전쟁이라
핸들을 다시 한번 굳게 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