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 3구에서 등대밑까지 도보 낚시 여행

회원랭킹(월 글등록)


공지사항


NaverBand
낚시인 > 조행기

가거도 3구에서 등대밑까지 도보 낚시 여행

G 6 2,648 2005.05.05 14:28
어느 겨울이었을까?
가거도 대풍리 3구 마을.
객선은 오늘도 들어오지 않았다.
바람이 터졌기 때문이다.
포효하는 바다. 몰아치는 바람.
이런 날씨에는 구들장 신세가 아니면
3구 마을에서 가까운 간대취나 빈지박,사끼미로 간단한 장비를
챙겨들고 조행에 나선다.
교통이 불편함에도 3구를 선택한 것은 주의보시에 다른곳에서의
진입이 허락하지를 않기에 3구권에서는 그런대로 포인트에 도보로
진입하여 낚시를 할 수 있다는
유리함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곳을 찾는 것이다.
대흑산에서 무조건 일박하고 다음날 새벽에 새마을호를 타고 다닌 시절부터
매년 3-4회씩 출조길에 올랐으니 한 70여회 출조길이 아니었나 싶다.
편리함만을 강조한 요즈음 낚시에서 무거운 밑밥을 들고서
도보로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산길로 난 작은 길이 오르막으로 이어져 있었고
밑밥통을 어깨가 자꾸 밀어냈다.
땀은 비오듯했고...
몇걸음 걷다가는 쉬기를 여러번.
모자라는 것 보다는 남아야 하는 밑밥을 메고
산행을 하는 어려움은 알피니스트가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행위와
다를것이 없을 것이다.
삼십대에는 쉽게 갔었던 등대가 오늘따라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다.
등대는 그대로 그곳에 있을까?
산길을 오르고 내리고 나무숲을 걸어서 어느덧 저 아래 반가운
흰등대가 보였다.
등대는 떠나질 않고 그대로 그곳에 굳건하게 자릴하고 있었다.
등대길로 내려가면서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힘은 들었지만 드는 것 만큼 마음은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동중국해를 건너온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어느 시절엔가 등대부근에서 야영도 했던 추억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추억의 얘기가 되곤 말았다.
그 당시엔 휴대전화도 없었고
불편함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낚시만 생각하고 낚시에 온 열정을 쏟았던 것이다.
유일한 통신수단인 자석식 전화기가 등대에 있었다.
등대도 당시에는 근무했던 사람이 꽤 여러분이셨는데 요즈음에는 살림하시는
부부가 계실 뿐이었다.
등대에 잠시 들러서 커필 한잔 얻어마시고는 등대밑으로 내려 달렸다.
흰파도가 끝없이 갯바위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발아래 포효하는 바다.
숱하게 대물을 쏟아냈던 검은여.
소국흘도 누에머리. 작은여.
개린여가 그림처럼 다가온다.
바로 앞의 검은여로 본류대가 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최고의 포인트인 칼바위가 끓어 오르고 있었다.
바람도 한풀 꺽였고 파도는 그런대로 낚시할 만한 여건은 되어졌다.
억세고 투박한 감성돔이 은빛 비늘을 날카롭게 세우고
저 파도속을 헤집고 다니는 상상을 하며 첫 케스팅을 했다.
찌가 구름에 달 가듯이 미끄러져 가고
던지고 감아들이기를 반복......

온 바다에 혼자였다.
사방 갯바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나 혼자였다.
우람한 갯바위와 몰려드는 파도와 대자연의 풍경에
잠깐의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자연앞에 겸손해져야 한다는 마음을 가다듬고서 낚시에 열중했다.
얼마나시간이 흘렀을까...
파도를 타고 넘나들던 찌가순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호흡은 일순간에 정지되고 모든 사물의 움직임도 멈춰졌다.
입질일까?
파도에 묻혀버린걸까?
찰라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줄을 사르고 릴을 감으면서 잠깐,
파도에 묻혀버린 찌를 들어올린 순간,
대를 타고 손끝에 전해오는 투박한 전율.
놈은 거친 조류에서도 먹이활동을 취하고 있었고
깐새우는 이미 놈의 입 언저리에 지옥걸이로 깊이 박혀있었다.
끝도 없이 난바다로 치고 달아나려는 놈과
대를 뺏기지 않으려는 한판 승부!
대가 원을 그리면서 휘어지기 시작했고 손에 힘을 주고
놈이 가는 방향을 주시하면서 대를 세우기 시작하기를 여러번...
거짓말같이 줄에서는 그야말로 기타소리가 들렸다.
아무생각이 없었고 오직 놈의 얼굴을 봐야한다는 동물적인 감각과
욕심이 앞서곤 했다.
거는것이 문제가 아니라 처리가 문제였고
이 파도에 뜰채질이 쉽지가 않았다.
산전수전 공중전 수중전을 치룬
갯바위에 올라온 오십이 넘은 감성돔은
분이 삭지 않아서인지 날카로운 등가시를 곧추 세우고 나를 쏘아본다.
파도속에 감성돔은 있었다.
저 파도속에서 끓어오르는 파도와 조류의 갯바위 벽을 타고 놈은
칼바위쪽으로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파도를 타고 넘나들던 찌가 또 스르르 잠기고...
윙윙거리는 소리와 손잡이대까지 휘어질대로 휘어지는 대를
세우고 버티다 보니 어느새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갯바위낚시에 이런 상황의 연출이 몇번이나 있을까만은
미끼를 갈아끼우는 손은덜덜 떨리고 입술은 바짝 타들어가고
목이 말라왔다.
가슴은왜 이리도 쿵쿵뛰는지 사춘기때 동네 약국집 딸
영순이의 가슴으로 손이 갔을때 처럼 떨려온다.
그렇게 부드러웠던 감촉은 그이후에는 없었다.
영순이....

정신없이 낚시에 빠져들고
파도를 덮어쓴 옷은 젖어서 질척거렸지만
땀으로 범벅이되고 흥분으로 달아오른 감정은 고조되어 갔다.
감정조절이 필요했다.
조류의 방향이 바뀌고 조금씩 상황이 변해갈 즈음에
입질이 어느 순간 끊어져 버렸다.
정신없이릴링하고 끌어내고 올려놓았던 감성돔은
갯바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파도는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평상내리에서 너무 많은 감성돔을 잡았다가 들고갈 일이
큰일이여서 입질 중간에 끝을 내고 돌아가야 했던
추억도 있었기에 돌아가는 일도 걱정이 앞섰다.
이런 걱정은 해 본 꾼들이면 이해가 가리라고 생각이 든다.
크릴백에 우겨놓은 감성돔.
돌아오는 길은 가까웠다.
크릴백에 들어가지 못하는 오십이 넘은 감성돔을 잡아서 돌아오는 길은
개선장군이 따로 없었다,
3구 민박집에 도착했다.
들고온 감성돔을 바닥에 내려놓았을때,
구들장을 메고 누워있던 민박집의 꾼들은 난리가 났다.
구들장을 지고 있었던 사실을 후회하면서 땅을 쳤고 자신이 잡았을 고기를
촌님이 다 잡았다는 것으로 편한대로 해석을 하고 있었다.
고기를 못잡은 사람은 조용했고 말수도 적어진다.
그렇다고 본인이 흥분하지고 않았고 말도 많이 하질 않았다.그날 낚시꾼들 모두 술로 죽었었고 후유증도 다음날까지도 이어졌다.

난리는 다음날, 그 다음 날에도 이어졌고
주의보가 해제되고 배로 포인트에 진입하고이곳 저곳 갯바위에서도
감성돔의 풍년사태는 진정할 줄은 몰랐다.

그이후로,
그날 같은 불상사는 다시한번 연출되어지질 않았다.
그날 활화산 같은 열정으로 감성돔을 눕혔던 추억은
아쉽게도 재방송을 불허했다.
숱한 곳에서의 갯바위 낚시에서 감성돔을 끌어내어 봤지만
그날 악천후에
도보로 등대밑에 진입하여
손맛을 보게 한 것은 밑밥메고 고생하고 남들 편히 있을 시간에
고생했다고 가엽게 여기시어 하늘이 도와주고 바다속의 용궁의 협조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가거도 3구
2구 성건여를 돌아서 등대를 보면
혹 지나다 어디선가 등대 그림을 보게 되면
난 영순이의 부드러웠던 가슴과
곧추세운 감성돔의 등지느러미와
나를 노려보는 눈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겨울에 가면 등대는 그곳에 그대로 있을까?
그 자리에 있을까?
꼭 있어야 할텐데........

@동해시 묵호 동해피싱프라자
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6 댓글
G 파라솔 05-05-06 15:59
^^* 저역시 가거도소리만들어도 3구 대풍리가 눈에선 하답니다

임선장<수진이엄마에게 >동해 사장님 님의소식도 들었구요.

저도 주의보때 도보로 가무락지쪽을 무수히 다녔답니다
2호찌가가벼워 거쎈바람에 찌를 못내리고있을때 옆에서 3~5호찌로
거쎈파도속에서 덩치큰 감생이를 걸어내는걸 지켜보고만있었던추억....

흔들바위..춘내리..등대선창..개망치.... 언재들어도 설레이는 포인트들이지요.. 아~~~~

저역시 한해도 거르지않고 3구 대풍리를찾는 .. 3구 골수꾼입니다
웃기는건 한게임 아듸도.. 가거도 장박꾼이라할정도지요...ㅋ

전엔 4~5~6박으로 한해 여러번같으나.. 언제부터인가 가고오고가
부담스러워서 이젠 겨울에 12월 말경에 20일정도쉬었다오곤하지요

작년에도 수진엄마가 동해사장님 얘기하더군요..
<작년엔 임선장이 많이아프더군요>

가거도 조행기 잘읽었구요 올겨울 대풍리에서 뵙고십군요.. ^^*

가끔 가거도 다녀오신분들의 조행기를접할때마다 저에게도 좋았던추억.
좋지않았던추억 많이있어서 조행기에 올리고십었는데..글솜씨가 엉망이라..ㅎㅎㅎㅎㅎ 이렇게 다른분들이 올린글보며 대리만족한답니다.

지난겨울에 칼바위에내려서 갑짜기터진 남서풍으로 2~3시간을 파도와싸우며 배오기만을 기다리며 사투를벌이던일..<문득 얼마전에 칼바위에서 죽은 삿갓..등대장.. 생각에 떨었던기억이 지금도... ㅎㅎㅎ >
G 동해피싱프라자 05-05-06 16:54
파라솔님.
안녕하신지요?
댓글 잘 읽었습니다.
별일 없으시지요?
올 겨울 대풍리에서 꼭 뵙고 싶습니다.
임선장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겨울에는 만날 수 있도록 약속하구요.
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 되시길 빕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G 찌매듭 05-05-06 21:50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이 있답니다 ^^
3구쪽의 도보낚시가 얼마나 힘든지 시행하기가 쉽지가 않지요.

오래전 등가방에 밑밥을 담고 허걱대면 정상에 올라선 순간,
강풍에 휘청여 중심을 잃고 땅을 짚어본 적이 있었는데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가 있는 곳이었죠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잡은 고기를 가지고 되돌아 간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꼭, 3구에 있을 사장이 없었고 원래 2구쪽 부터 알았기에 3구는 두번 가보았군요.
2구쪽 선장도 업을 떠났기에 지금의 1구선장을 만나 1구의 구름집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

새마을을 타고 다니셨고 70회 정도면 저보다도 곱절이나 되는 가거도 마니아십니다.
많은 추억의 이야기 꺼리가 궁금합니다
예전보다 가거도에도 고기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가거도는 찾고싶은 곳이죠.

아련한 추억의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오애도록 가거도를 찾으시길....

추신: 임원방파제도 가끔, 진달래 감생이도 만나러 가곤합니다
근래에 시작된 연어병치도 금년에는 만나볼수 있을런지 모르겠군요
G 동해피싱프라자 05-05-07 00:55
찌매듭님
안녕하신지요?
찌매듭님의 홈에 들어가서 너무 잘 보았습니다.
갯바위 사진과 아름다운 글들 읽고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토요일 새벽입니다.
금요일 오후에 비가 조금씩 잦아드는가 싶더니만 계속해서
지금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저도 3구권과 2구권으로 다니다가 지금은 1구에서 낚시를
다니고 있답니다.
혹 동해쪽으로 오실 기회가 계시면 한번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요즈음 이곳은 봄 감성돔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답니다.
어제도 갯바위에 나가서 몇수 올리고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파도가 높아서 내일 낚시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좋은 봄날 되시고 건강하십시오.
G 벨라지오 05-05-07 12:43
님에글 제가 직접낚시를 하는것처럼 전율이 온몸에 느껴짐니다..

조행기 정말 실감나게 잘 보았습니다..
G 찌매듭 05-05-08 22:08
제 홈에 다녀가셨더군요 성격상 옮겨두었습니다.

가거도 이야기도 끝이 없습니다.
예전같이 집비우기가 쉽지않아 교통이 좋아진 지금은 오히려 가보기가 쉽지않군요.
점점, 연세가 늘어가시는 어머니와 순박한 사슴에서 호랑이로 변해가는
마나님,
또..일들로.... 지금은 1년에 두세번 가보는 곳입니다.

추자의 야인이 약관의 나이에 처음, 낚시대를 드리웠을게고
그때 만난 꼬마가 가거도 최초의 전문가이드로 낚시종선을 최초로 장만했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엔진오일도 안넣고 달려보다 엔진이 달라붙어
다시, 배를 고치노라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이제는 전설에 속하겠죠..

고 유주방님이 전문낚시인으로는 최초로 사람들과 찾았다는
가거도 돈녀 신랑의 이야기는 재미있기도합니다. ^^

벌써 봄감생이가 끝이라니 시즌파악이 잘못되었군요.
회원들과 진달래감생이를 그리도 기다렸는데요....
날씨가 어려운 곳이 동해쪽입니다.

언제고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
 
포토 제목
게시물이 없습니다.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