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4. 24. 4시 진입 ~ 12시 철수
위치 : 사량도 oo섬(평균수심8m)
물때 : 13물
일기 : 맑음
바람 : 북서풍 6~10m/sec
파도 : 0.5m
드러누운 대물감성돔의 눈망울이 왠지 애처롭다
자정이다. 신호탄이 오르자 어둠속에 이 나라 대한민국의 꾼들이 민첩한 동작으로 작전 개시한다. 노피클 부산 영건3인방(올드건 아닌감..)이 오랜만에 뭉쳤다. 김해에서 합류한 영등감씨는 키를 잡은 검은바다와 연신 전투력 북돋우는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고성에 도착하기까지 비몽사몽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못 잔 잠을 보충했다. 목적지는 얼마전 검은바다님이 욕지 갔다 철숫길 배위에서 눈대중으로 포인트임을 알아 본 아랫사량 oo섬이다. 모두 처음 내려보는 생자리라 난항이 예상된다.
새벽 2시 고성군내. 잠에서 부시시 깨니 엥! 낚시방은 없고 왠 족발집이냐고.. 요즘 시기가 몰황을 염두에 둘 때라 검은바다님이 왕족발을 사가잔다. 여기서 잠깐팁 하나. 즐거운 여행의 3요소 : 먹거리, 볼거리, 대화를 나눌 친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그 일차가 먹거리 확보다. 우리는 다시 고성군청을 지나 공룡발자국으로 유명한 하일면 해안도로를 따라 5분정도 더 달려 낚시방에 도착했다. 발빠른 몇몇 꾼들이 벌써 삽질 중이다. 생자리 한 물때 낚시라 3명 모두 릴찌낚시만 준비해왔고, 가덕도만 가다 기왕에 멀리 나왔으니 아쉬움을 남길 수 없는 일.. 평소 보다 더 넉넉한 밑밥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도 크릴과 파우더를 섞는 그 삽질 후 바로 옆 선착장으로 짐을 옮겼다. 배는 3시 출발이니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짐을 정리하다 족발이 보이자 검은바다님이 날 쳐다보며 씨익 웃는다. 검은바다와 난 눈빛만 봐도 심중을 아는 사이.. 막간에 쇠주 한 병 까자는 말로 들었고 나 또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한 잔. 캬~
하선 후 채비에 여념이 없는 영등감씨님(위) 검은바다님(아래)
3시 출항. 옆사람 말도 잘 들리지 않는 요란한 엔진소리.. 선실 안쪽엔 이미 두 다리 쭉 뻗고 누운 열 명 남짓 꾼들이 오밀조밀 붙어 대박을 꿈꾸며 행복한 단잠을 잔다. 편안한 잠자리 놔 두고, 이역만리 밤새 달려와 비싼 돈 들여 고생하는 사람들.. 보통사람들은 상상 못 할 상황이다. 약한 술기운에 나도 앉아서 한참 졸다 선장의 하선명령이 떨어진 후 정신을 차린다. 검은바다님이 낚시방에서 선장에게 미리 그 포인트를 지정했지만, 많이 알려진 자리라 선점한 사람이 있으면 욕지로 갈 참이었다. 욕지는 이곳 보다 두 배 정도 더 먼 곳인데 경과시간을 보니 이곳이 사량도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파도는 없었지만 늘 조심스런 하선.. 칠흙같은 어둠속 작은 섬.. 이 섬에 지금 우리 셋 말고 아무도 없다. 이 음산함이 대박을 낳고, 사실 낚시할 분위기로는 더없이 좋다. 바다 짠내음 얼마만인가.. 좋다!!
혼자 지형정찰로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낚시자리를 찍었다. 직선거리 30m 정도 떨어져 본대가 빤히 눈에 보이고, 두 명 하기엔 비좁을만한 낚시자리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각기 여뿌리가 주욱 물밑으로 뻗어있어 마치 홈통 형국이었다. 어둠속이었지만 전방은 아랫사량 본섬이 마주 보이고, 수중여로 짐작되는 거무튀튀한 몰이 멀리 세 군데 보였다. 바로 여기야! 본부로 다시 돌아와 채비 중인 영등감씨에게 능청스럽게 물었다. "어디서 할래?" "여기서 하지뭐.." "그라모.. 니 여기해라. 비좁으니 난 저쪽에서 할께.(오 예~ ^^)" 검은바다가 미리 찍어둔 그 자리에서(배를 댄 자리) 영등감씨는 같이 하기로 하고, 먼저 채비를 끝낸 영등감씨가 캐스팅에 들어간다. 밑밥도 애초 두 통으로 나눴기에 난 간단히 짐을 들고 본부에서 혼자 이동해 따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본부는 비교적 넓은 낚시자리였지만 세 명이 한 자리에 하기엔 불편해 보였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몰황에 대비한 위험분산 포트폴리오 전술이었다. 어둠속 정체불명의 배가 다가오길래 후레쉬로 사람이 있슴을 알렸더니 돌아간다. 또다른 배가 오더니 섬에 다른방향으로 한 팀이 하선한다. 나는 채비완료 후 오전 풀타임 낚시를 위해 힘을 비축하려 한 잔의 쇠주를 삼키고 아직은 차가운 갯바위에 몸을 눕혀 잠시 잠을 청했다.
선잠에서 깨어보니 어느듯 여명이다. 어스름한 바다에, 초들물에, 뭔가 벌어질 듯한 이 불같은 예감.. 긴장된 한 물때 드디어 시작이다. 저쪽을 보니 영등감씨는 계속 열심이었고, 바로 뒤 검은바다는 세상모르고 아직 잔다. 일어나라 고함을 쳐 깨우고 우리 셋은 조용히 밑밥과 찌를 날리기에 바쁘다. 사위가 완전히 밝아졌다.그렇게 두 시간 흘렀을까.. 전혀 입질이 없다. 영등감씨가 물빨이 시냇물이라며 이쪽으로 넘어 오길래 물었다. "입질 좀 하더나?" "망상어 두 마리 올리고, 잡어 때문에 감생이는 힘들겠네.." 난 아직 잡어새끼 입질도 한 번 못받았는데.. 대를 잡은 손목에 힘이 빠진다. 저쪽에서 검은바다가 힘차게 챔질하더니 쫄복 한 마리 올라온다. 입질이 계속 없어 속으론 반쯤 포기하고, 아까 마신 술이 덜 깨 일부러 국이 든 보온도시락을 까먹었다. 만조가 되려면 아직 시간 많으니 포기할 단계 아니라고 영등감씨에게 위로하고, 왼방향 조류니 오른쪽 여뿌리 쪽으로 계속 밑밥을 친다. 다시 힘을 내 캐스팅을 시작했지만 크릴만 똑똑 때이고, 입질 정말 더럽게 없다. 슬슬 입에서 욕 나올 타임이다. 아 씨.. 아침물때에 우째 입질도 한 번 없냐고.. 물빨이 약해지자 영등감씨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잠깐팁 둘. 한 자리 고수냐, 발낚시냐.. 조우 영등감씨는 사실 부지런한 발낚시요, 천성이 게으른 나는 낚시자리 한 번 잡으면 기상악화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한 자리이동은 거의 없다. 발로 뛰는 낚시는 우리가 조과정보를 보고 포인트를 선정하는 경우처럼 고기가 있는 자리를 찾아가는 적극성을 반영하므로 조과에 낫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한 자리 고수도 나름대로 밑밥효과의 집중으로 한 물때 중 언젠가는 좋은 기회를 한 번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고기만을 잡으려는 어부가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궂이 발낚시를 권유할 생각은 없다. 이런 일장일단이 있으니 어떤게 좋다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힘들고, 개인 취향의 문제이므로 알아서들.. 그런데 이번 조행에는 한 자리 고수한 내가..^^
낚시자리 우측 본부쪽 검은바다님
낚시자리 정면
9시가 넘어가면서 점점 더 지쳐간다. 수온 좋고, 바람 적당하고, 파도가 너무 잔잔한게 흠이지만 입질이 전혀 없는 지금 모두들 너무 피곤하다.. 크릴만 계속 따먹는 그놈이 대체 어떤 놈인지 잡아 올려 얼굴이라도 함 보자. 어차피 밑걸림으로 1.75호 목줄 갈면서 바늘도 감생이3호에서 제일 작은 1호로 바꿨다. 밑밥을 쳐도 뜨지않는 요놈에 잡어들 정체가 뭘까.. 캐스팅. 잠시 후 릴링.. 헛!! 크릴이 그대로 있네! 감생이들이 들어왔나?? 다시 낭창거리는 연약한 0.8호 릴대로 캐스팅.(1년 전부터 1호대는 낚시가방 속 스페어로 전락했슴)
잠깐팁 셋. 바늘 크기와 조법의 상관관계.. 감생이 낚시에서 릴찌낚의 경우 3호를 주로 쓰는데 경우에 따라 1호바늘에서 4호까지 쓴다. 고기가 낚이려고 기를 쓰는 경우라면 1호에 말라 비틀어진 크릴 하나로도 낚인다. 물론 깊숙히 삼키게 해 아가미 가까이 바늘이 걸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겠지만. 입질이 아주 없거나 약할 때 흡입시 이물감이 거의 없는 작은바늘로 효과적인 반전을 노릴 수 있다. 영등철 바닥층을 벅벅 긁을 때도 밑걸림이 심하면 작은바늘이 오히려 낫다. 밤에 막장대에는 바늘을 5호 ~ 7호까지 쓰는데, 7호바늘에 큼직한 크릴 12마리 옆으로 꿰기 해도 가을날 30cm 안되는 살감시들 한 입에 쏙 들어간다. 큰 바늘은 챔질시 입언저리 정확한 후킹으로 뒷처리가 간편하고, 가을날 밤 바쁜 속전속결에 좋다.
낚시자리 좌측 여뿌리가 주욱 뻗어있고 멀리 수중여가 잘 발달해있다
영등감씨가 제자리로 돌아간 후 10분쯤 지났을까.. 그날의 첫 입질이 드디어 왔다. 막대찌가 스믈스믈 다 잠기더니 잠시 뜨는 순간 여유줄 견제하기 위해 릴을 세 바퀴 연속 감았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찌가 잠기는 걸 보고 챔질.. 분명 찌의 행태로는 밑걸림이 아니었다. 입질이다 이건!!! 혹시나 했던 기대감은 잠시 역시나로 바뀌었고, 갯바위를 걸었구나 하고 실망하는 순간 꾹꾹! 갯바위가 두 번 처박는 게 아닌가. 직감적으로 감생이라는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릴링 앤 펌핑.. 이때껏 느껴보지 못한 가공할 파워.. 릴대는 완전히 ㄱ자로 꺽겼다. 대를 세우고 탄력으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이거 5짜다.."라는 생각을 하자 자연스레 혼잣말로 입에서 흘러나왔고, 대 손잡이 부분을 아랫배에 걸고 저쪽 검은바다에게 왼손을 다 펴 5짜임을 싸인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고기와 내가 원줄과 목줄로 하나 되는 순간이다. 영등감씨가 대 휨새를 봤는지 뜰채 매고 달려오는 모습이 저 멀리 보인다. 바보.. 뜰채 여기도 있는데. 가덕에서 0.8호 대로 4짜 걸어올릴 때 수차례 경험했었지만 그땐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느껴보지 못한 파워라 애써 침착하려 해 보지만 흥분을 가라앉힐 방법이 도무지 없다. 꾸준히 처박던 고기.. 잠시 후 희뻔득 물속에서 모습을 보여주더니 다시 내리 꽂는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영등감씨 입에서도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와.. 5짜다" 우.. 릴대가 운다. 또다시 겨루기 일 합. 드디어 고기가 떴다. 뜰채질 하던 영등감씨가 다 잡은 고기를 뜰망에 반쯤 넣었다가 철퍼덕 놓친다. 간이 철렁하는 순간이다. "야 대가리부터 넣어야지!" 고기는 물속으로 잠시 사라지고 난 다시 대를 세운다. 다시 두 번째 뜰채질.. 무사히 쏠랑 들어간다. 휴~ 이제 안심이다. 한숨을 내쉬는 순간 검은바다가 느긋하게 소리친다. "밑밥 치라.." 잠시 무아지경에 빠졌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밑밥 치고, 꼽힌 바늘 뽑으려니 1호바늘이 정확히 왼쪽 입술 끝에 걸려있다. 뽑는 순간 바늘 허리가 톡 부러져 반은 박혀있다. 실로 바다 입문 14년만에 오짜 조사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담뱃불 붙이고 한 모금 빠는데 손이 가늘게 떨렸지만 나의 조우이자 제자인 영등감씨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 한다. 검은바다와 영등감씨의 죽어가던 전투력은 배가 되고, 눈에는 불꽃이 튄다. 다시 바늘을 묶고, 살림망에 담긴 고기를 계속 주시하며 이미 이쪽으로 옮겨온 영등감씨와 함께 캐스팅.. 찌를 주시하지만 마음은 콩밭이라 살림망을 쳐다보는 시간이 더 많다. 영등감씨와 크로스로 원줄이 흘렀는데 흥분한 영등감씨 앞뒤 안보고 한 챔질 후 내 낚싯대 채비가 이상하게 허전하다. 챔질 순간 영등감씨 원줄에 쓸려 내 낚싯대쪽 원줄이 나가버렸다. "야.. 이 바쁜 시간에 채비를 통째 다 날리게 하냐" "...ㅡ,,ㅡ..." 결국 대를 접고 영등감씨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유일한 입질 한 방에 대물 한 마리로 나의 낚시는 일단락, 살림망을 다시 올려 고기를 본다. 이 흐뭇함..
윗사량 지리산
철수시간은 두 시간이나 남았다. 검은바다가 한 마리 걸고 뜰채 요청했다가 고기 확인하고 그냥 들어 올린다. 살감생이 한 마리.. 이미 느긋해진 나는 그 모습이 간지럽기만 하다.^^ 무료하게 기다리느니 다시 구멍찌 채비로 영등감씨와 함께 같은 자리를 협공했지만 도무지 입질이 없다. 정오가 다 될 무렵 다시 살림망을 주시하며 대를 접었다. 고기 들고 사진도 찍고, 주위 풍경도 찍었다. 이후 검은바다와 영등감씨는 계속 열심이더니 드디어 두 번째 고기가 왔다. 낚시입문 3년차 영등감씨가 걸었다. 4짜도 아직 경험이 없던 영등감씨.. 예의 어마어마한 휨새라 또 5짜임을 알았다. 대박이다. 고기가 잠시 떴다 얼굴만 보이고 이내 물속으로 처박는다. 이어지는 힘겨루기.. 과연 영등감씨가 이 대물을 걸어낼까. 내 고기를 자로 쟀더니 52cm였는데 이놈은 더 컸다. 줄잡아 55는 되어보였다. 이번엔 내가 뜰채를 힘차게 폈다. 영등감씨 릴링이 성급하더니 릴대의 허리를 순식간에 고기에게 빼았겼다. 오른쪽 여뿌리가 불안하다. 왼쪽으로 대를 세워야 한다. 여에 쓸리면 끝이다. 원줄과 대가 一자로 눕더니.. 곧바로 대 끝이 하늘로 솟구친다. 팅~ 망연자실.. 우리의 영등감씨 아무 말도 못한다. 나도 멍~ 저쪽에서 구경하던 검은바다도 멍~ 하니 쳐다본다. 으아... 우째 이런일이! 평생 함 볼똥말똥한 5짜를 방생하는 순간이었다. 천추의 한을 남긴 영등감씨의 대성통곡에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바다도 그렇게 울었다. 그놈만 웃었다.
상황 끝났다. 배가 오고, 윗사량 아랫사량 사이 바닷길로 철수했다. 배에서 바라보니 윗사량 지리산 암릉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윗사량 옥녀봉 정상에서 육지쪽으로 보면 지리산이 보여 '지리망산(智異望山)'이라 하는데 사람들이 그냥 '지리산'이라 부른다. 등산코스로는 거의 환상이다. 발 아래 좌우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암릉 타는 재미.. 안 타본 사람은 모른다. 영등감씨는 아직도 못내 아쉬운지 지리산 경치는 볼 생각도 않고 탄식만 계속 이어진다. 놓친 고기가 확실히 더 커 보이는 법. 후유증이 적어도 한 달은 갈 것이다. 낚시방에서 점주가 조황속보로 올린다고 해 고기들고 사진 한 방 찍고, 핸들을 기분좋게 내가 잡았다. 귀가길은 늘 피곤해 졸음이 쏟아지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졸리지도 않는다. 영등감씨도 안 잔다. 그 날 둘은 완전히 다른 이유로 부산 도착하기까지 조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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