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0 출발
10:20 진해도착
도착지가 거제도인줄 알았더니 진해더라구요.
진해에서 동경팀원들과 서경팀원들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전부 42명이었나요 그 중 여인네는 저 혼자뿐이었는데요
모두들 출조준비를 하느라 어수선해 보이는 가운데
설레는 마음들이 역력해 보였지요.

춥다고 혼자 차안에서 꼼짝을 않고 있었는데
멀리 반짝이는 불빛들의 어찌나 따스해 보이던지요
고생이야 이미 각오한 일이었지만서도 뭐 이쯤이야 하면서
너무 얕잡아봤다가 속으로 엄청 후회하고 있었지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겨울산 정도로만 생각했었으니...
침낭을 가져왔다느니 번개탄을 몇 개씩 가져왔다느니 겹겹이
두꺼운 옷을 껴입고 한마디씩 걱정담긴 말들을 건네줘서
고맙기야 했지만 뭐 설마 얼어 죽기야 하겠어요.
11:44 승선
엔진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인데 배가 앞으로 나가는지
뒤로 밀리는지 전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깜깜한 선실 안에서
누군가는 눈을 붙이고 또 누군가는 손전화기로 문자를 보내고
차츰 도시의 불빛들이 아스라이 멀어집니다.
지난번엔 그래도 구석자리였지만 누워서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는데 작은 선실 안에 겨우 엉덩이만 붙인 채 꼼짝을
못하고 있었지요.
0: 30
멀리 도시의 불빛이 아스라이 보이고 수평선 너머
오징어잡이 배 집어등 불빛만이 수평선을 밝히는 겨울 밤바다
한가운데 갯바위 위에 남편과 단 둘 뿐입니다.

밤하늘을 쳐다보았지요.
이튿날이 그믐이라 달은 볼 수 없었는데요
달그락 소리가 날만큼 꽁꽁 언 하얀 달이 걸려있는
겨울밤하늘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적이 있었지요.
사뭇 달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대신 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은 참으로 오랫만이었지요.
열 몇 살까지 시골에서 보던 그 밤하늘까지는 아니어도
북극성과 북두칠성 그리고 오리온자리와 카시오페아
그리고 수많은 별 별 별들...

낚시채비를 끝낸 남편이 라면을 끓여 먹자며 버너에
불을 붙이는데 까스가 시원찮은겁니다.
남은 하나마저 시원찮은 불길에 막 화가 나기 시작하는데
예전에 쓰던 걸 2개 가져왔다는 둥
2개면 충분할 거 같아서 준비를 안했다는 둥
'아니 이 사람이 여유분으로 더 챙겨와야지
남들은 침낭이니 번개탄이니 많이들 준비를 했다더만...'
그건 생각뿐이고 아무런 말조차 나오질 않더라구요.
겨우 겨우 라면을 끓여먹긴 했지요.

지례 겁을 먹은 때문인지 생각보다 바람도 많이 불지 않고
비교적 갯바위도 넓은 편이라 천만다행이었어요.
아마도 선장님과 여러 팀원들의 세심한 배려 때문이겠지요.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그래도 견딜만하고 주의보까지
내려졌던 바다였는데도 그정도면 준수한거였지요.
밤은 점점 더 깊어가고
바닷물이 절벽을 때리는 소리
바닷물과 바닷물이 부딪히는 소리
무뚝뚝하고 힘차고 거세게 들려오는
어둠과 바다의 소리소리 소리들...

남편 옆에 나란히 서서 낚시 대를 들고 있자니 고기가
아니 잡어조차 건들지를 않은지라 것도 그만두고 앉았는데
가만히 앉아 있자니 눈꺼풀이 내려앉습니다.
그 추위 속에서도 졸음은 쏟아지고...
달밤에 체조한다고 혼자서 스트레칭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별동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이루어진댔는데 네 개나 떨어지는 동안
소원하나 빌지 못한걸 아쉬워도 하고 그러는 새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네요.
06:20
깍아 논 손톱 모양 같은 이쁜 그믐달이 올라오면서
동쪽 하늘이 훤히 밝아오는데요 바다 한 가운데서 이 광경을
맞이하기 위해 그 추위를 무릎 쓰고 온 것이 아닌가요
매일 아침 집에서 맞이하는 일출과는 또 다른 일출을
사진기에다 담고 또 담았지요.

새날이 훤히 밝았어요.
햇살은 따스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찹니다.
주위가 훤히 밝아지니 발 디딜 틈 없이 지저분한 갯바위가
신경을 거스리게 합니다.
얼마나 자준지 아니면 모처럼이던간에 낚시를 했다면 그
자리에서 낚시한 사람들이 깨끗히 청소를 해놓으면 좋으련만
태운 흔적이 역력한 번개탄 부스러기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쓰레기와 발 디딜 틈 없이 널려있는 미끼하며 미끼 통
뭐 생리적인 현상이야 어쩔 수 없다고 쳐요
낚시꾼의 아내면서 나 또한 낚시 사이트의 회원이지만
이건 너무 한겁니다.

갯바위에 올라서 낚시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무얼 어떻게 먹었던지간에 잠시 머물렀던 자리는 깨끗이
청소만 해놓는다면 갯바위가 더러워지니 그런 염려 섞인
소리는 안 들어도 될 터인데 물론 다들 그렇지는 않지만요
우리 인터넷 바다낚시 팀원님들은 그런 분 없으시겠지요.
어쨌거나 우린 낚시라는 한 배를 탄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늘 처음처럼...
잠시 머물렀던 자리일지라도 처음처럼만 지켜준다면
다음에도 다시 기분 좋게 찾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여전히 바람은 차가왔지만 눈부신 햇살과 반짝이는 바다
일찌감치 낚시 대를 접고 주위 풍광을 구경하면서 배가 오기를
기다렸는데요 한 마리도 낚지 못한 남편의 아쉬운 마음이야
말 할 것도 없겠지만 저야 솔직히 낚시는 뒤전이었지요.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날 주의보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겨울바다 갯바위에 올랐는데 덕분에 해마다 가을이면 심하게
앓는 가슴앓이도 말끔히 씻어버리고 왔어요.
내 다시는 낚시를 하나봐라 밤새 몇 번이나 되뇌이던 마음도
울산으로 돌아오면서 어느새 눈 녹듯 사그러들었구요.
고기를 낚던 못 낚던 자주 낚시를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맘 때문에 자꾸 낚시를 다니는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햇살 따뜻한 봄이 오면 그때 다시 복수하러 가야지요.
고기야 낚던 못 낚던
인생을 낚고 세월도 낚으러...
갯바위를 다녀와서... 향기
* 글이 인낚 운영진 인터넷바다낚시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1-26 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