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며 추자군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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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내며 추자군도에서...

G 5 1,528 2003.11.10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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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내며 추자군도에서...



김일석




몇 가지 일들을 동시에 수행하느라
몇달 동안 참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집 앞 방파제는 물론이고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곳으로 쏠쏠하게 낚시를 다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문득문득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날 만큼 가고 싶었던 곳이어서
결국 친구를 꼬드겨 함께 집을 나섰다.



밤새 차를 달리며 나누는 친구와의 수다도 오랜만이지만
남도의 국도를 달리는 도로변 밤풍경도 무척 새로웠다.
하루일을 억지로 마치고 달려온 몸은 천근만근이고...
완도읍내 시장통에서 시원한 조개탕 한그릇을 비우고
배에 오르자마자 우린 곧바로 곯아 떨어졌고
그래도 좀 잤다고 섬에 도착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다.



거의 6개월만에 추자엘 오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살갑고 모든 것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마중 나온 가이드에게 갑판에서 크게 손을 흔들어주곤
언제나 그랬지만 배에서 내리자마자
터벅터벅 그에게 다가가 힘껏 부둥켜 안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만나는 특유의 경상도사나이지만
그도 이젠 내게 참 살가운 사람이 되었다.



터덜거리는 짐차를 타고
뽀오얀 갈대빛이 넘실대는 언덕배기를 오르는데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마당에 나와 반기는 사람들
반가움에 겨워 나누는 몇 마디의 짧은 대화였지만
억지로라도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장을 풀고나니
멀리 뉴욕에서 온 오십대 중반의 플라이낚시꾼과
몇몇 낚시손님들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의사이자 미국 동부지역의 유명대학 교수이신 그분은
이미 며칠 째 갯바위 플라이낚시를 시도하고 있었다.
미터급 삼치와 부시리의 파괴적인 손맛에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시던 그분만의 낚시에서
여러가지로 배울 점이 많았다.




도착 첫날 오후엔 친구와 작은 수영여로 나갔다.
조금 물때임에도 조류변화가 워낙 심하여
밑밥을 조심스럽게 던지며 멀리 본류대가 꺾이는 지점으로 채비를 던졌다.
굵은 청볼락 몇마리와 용치놀래기, 노래미 따위의 잡어들이
연신 올라오는 중에 낚싯대가 끌려가는 강렬한 입질이 들어왔다.
직접 만든, 가장 아끼는 장비인 4.5m의 케블러 릴대에다
원줄 3호에 1.7호 목줄을 사용한 보통의 감성돔채비였는데
워낙 힘이 센 놈이어서 다루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깊은 수심의 바닥층에서 받은 입질인 지라
대물참돔이라 여기며 한참을 겨루었는데
수면에 뛰워놓고 보니 굵은 부시리였다.
약한 채비로 다루는 부시리낚시는
과연 낚싯대 성능향상(?)과 개인의 기량연마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무튼 가공할 만한 손맛을 제공하는 재미있는 낚시임에 틀림이 없다.



철수하는 길에 추포도를 지나오다보니
플라이 장비를 셋팅한 미국서 오신 손님이
길게 뻗은 곶부리에 서서 대를 휘두르고 계셨다.
잔잔한 수면의 무릎까지 들어가 마치 계류낚시를 하듯 채비를 던지는 모습.
큰 섬을 배경으로 우뚝 선 낚시꾼 하나.
수십년간의 타향살이, 며칠간의 휴가를 위해
이역만리 고향의 외딴 섬에 낚싯대 두개 달랑 들고 온 그분의 삶이 그림이었고
끝바리에 발을 담그고 서서 플라이를 휘두르는 모습은
그대로 예술이었다.



첫날 오후낚시를 마치고 민박집으로 돌아와 사이트를 검색하다
후배의 생일축하메시지를 접하곤 달력을 보니 맙소사!
내 생일이었다.
부부가 다 바쁘게 살다보니
서로의 생일도 잊고 살만큼 깜빡깜빡할 정도인데
이렇게 머나먼 섬에 떨어져 있는 내게 전하는
후배들의 생일 축하를 인터넷으로 받고보니 새삼 얼마나 감사한 지...^^
결국은 생일을 핑계 삼아
혹은 반가움을 핑계 삼아
민박집에 투숙한 분들과 함께
상추자의 빵 좋은(씨알이 굵은?) 주점으로 가서
몇잔의 술과 노래 몇곡으로 회포를 풀고는 제각기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둘 째 날엔 수심 얕은 다무래미 몰밭에 혼자 내렸다.
지난 영등철
힘들게 포획한 굵은 감생이 두 마리를
넓은 갯바위물칸에 던져두었다가 애석하게도 고기찾기를 포기한 곳.
다시 물칸에 가보았지만 감생이의 행방은 묘연하고
6개월만에 다시 찾은 이곳에서
혹시 하고 물칸을 들여다보는 나도 꽤나 좀스런 사람인 듯.



조금 물때인데다 파도까지 없는, 거의 장판 같은 바다.
여밭의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물색이니
고기가 있어도 입질할 리가 없는 조건이고
유난히 자신감이 있는 곳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포인트 선정을 잘못한 것 같았다.
날이 밝자 갯바위 가까이에서 삼치, 숭어 따위의 회유어들이
거대한 군집(群集)을 이루고 왔다갔다하고 있었지만
두어 시간 집중하던 아침낚시를 포기하고 갯바위 구석에 드러누웠다.
따뜻한 늦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얼굴을 수건으로 덮고는 얼마나 깊이 잤는지...
철수배가 오는 것도 모르고 단잠에 빠졌으니 말이다.



오후엔 친구가 있는 섬생이 동쪽으로 가서 합류하였다.
조금 전에 대물을 걸어
두번이나 터트렸다는 친구와 나란히 서서 낚시를 시작하였는데
역시 대물벵에돔으로 보이는 강렬한 입질을 받아 한참을 겨루더니 또 터트렸다.
대물과의 파이팅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마지막 날 아침엔 평소보다 일찍 서둘러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직구도로 들어갔다.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와 모기에게 시달리게 하나 했더니
워낙에 포인트 경쟁이 심한 곳인지라
연신 배가 포인트 주위를 왔다가곤 하였다.
마치 미끄럼틀처럼 경사가 심한, 그 유명한 대물포인트인 제립처.
경사진 갯바위엔 습기가 축축한 데다 이끼와 김발이 서려있어
자칫하면 바닷속으로 미끄러지기 일쑤인,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포인트.
나같이 모기허리를 가진 사람들은
경사면에 서서 낚시하다가는 거의 허리를 망칠 듯한 포인트이다.



세 사람이 내려
두 사람은 경사진 직벽에 서서 벽면 가까이를 노리는 낚시를 했고
난 바깥바다를 보고 서서
시냇물처럼 흐르는 고랑의 경사면에 붙여서 흘려주는 낚시를 시작했다.
오직 한 마리의 대물과 겨루겠다며
가장 아끼는 케블러 릴대에다 원줄 4호에 목줄 2.5호를 채웠다.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80cm 정도의 부시리도 감당했던 채비여서
웬만한 씨알의 돔이면 이 정도면 족하리라고 생각했다.



갯바위 가까이로는 수심이 7~8m에 불과하지만
그 두배쯤 되도록 수심을 깊게 주고
멀리 던진 후에 계속 당겨서 채비를 갯바위 가장자리로 붙였다.
낚시를 시작한 지 한 시간 쯤 되었을까
전광석화처럼 찌가 사라지더니
챔질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대가 꼬꾸라졌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내리 꽂히던지 레버를 쥔 손에 쥐가 내릴 지경이었다.
엄청난 힘으로 놈은 당기고
적절히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맹렬한 역회전이 이루어졌다.



따개비가 덕지덕지 붙은 경사면 아랫쪽에 버티고 서서
"캬~엄청 큰 놈이다!"를 외치며 오른 손으로 릴대를 강하게 받쳤지만
워낙에 당기는 힘이 강하여 도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무지 이 놈은 한번 당기고 약해지는 기색도 없이
끝없이 아래로 쳐박았다.
상당량의 줄이 풀려나갔을 때
브레이크를 강하게 잡았음에도 거침없이 풀려나가는 원줄.
벽면을 타고 빠른 속도로 치고나가는 놈은 정말 대단한 괴력이었다.
갯바위가 너무 미끄러워 운신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사력을 다해 버티며 겨우 갯바위 윗쪽까지 몇걸음 옮겨가자
계속 쳐박더니 갑자기 꼼짝을 하지 않았다.



아뿔사!
수중여 틈 새에 쳐박았구나, 생각하니
지난 봄, 다무래미에서의 악몽이 떠올랐다.
초반 기세로 보아 아마도 대물벵에돔이거나 긴꼬리 벵에돔인 듯.
원줄을 풀어놓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어 최대한 힘껏 당겨보았다.
원줄이 조금 당겨지는 느낌이 들어 다시 한번 대를 당겼는데
그만 와자작~대가 박살이 났다.



맙소사!
숱한 갯바위에서 십년 이상을 무탈하게 써온 장비였는데
여기서 박살이 나는구나, 생각하니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원줄을 잡고 몇번 당겨보았지만 푸드득 거리기만 할 뿐이어서 줄을 끓고 말았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몇 시간이 남았지만 깨끗이 미련을 접기로 했다.
이렇게 참패한 마당에
남은 약한 대를 꺼내어 낚시를 해 본들
그리 즐거울 것 같지 않아 장비 정리를 하고 낚시를 마쳤다.
그나마 이번 추자행에선 가당찮은 대물 손맛을 본 걸로 스스로 위안하였다.



몇 마리의 고기를 아이스박스에 담아들고 객선에 올랐다.
무에 이리 피곤한 지 쏟아지는 잠을 못이기고 쓰러졌다 깨어나니 완도항이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는 친구는 하루를 더 완도에 있어야겠다고 하니
교통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완도에서 부산까지 택시를 탔으니 세상에!
몇 해 전, 일본에서 택시비로 이십여만원을 지불해보았지만
앞으로 살면서 이렇게 먼 길을 택시로 가는 일은 없을테지.
나원, 이것도 내 인생에 기록이군.....^^




photo...http://www.chuja-fishing.net
Moody blues...Melacholy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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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G 갯사랑 03-11-10 13:32
완도에서 부산까지 그것두 택시루..? 흐미....

조행기 잘 보았습니다.건강하시지요 김일석선생님..

저희들두 어제 여수에서 정출을 가졌더랬습니다.

손맛은 보지못했지만..

손맛이상의 많은 정을 나누고 다들 무사히 귀가를 했더랬습니다.

오랜만에 선생님의 글을 접하니..맘이 다 푸근해집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주입니다..늘 건강 유의 하시길 바라고요

언제까지나..좋은글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__)

G 뺀찌조사 03-11-11 08:09
님 조행기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지두 9원말경 하추가 댕기왔는대 같이간 박XX 조사 9방 총소고
기젛합(실신) 지는마 1방쏘고 조심 조심 채미 올려
돌돔 , 감생이, 농어 포획하는데 성공 ..ㅎㅎ
추자권에는 채미를 단단히 하셔야 될낀디
아무턴 님의 조행기 속에 진정한 조사의 냄새가 물신 풍기내요
앞으로도 대물 하시길 지는마 글솜씨가 없어 조행기는 쫌
댓글 올려주는 수준
님 건강하시고 꼭 대물하셔요 잘 읽었습니다
G 오륙도 03-11-11 18:54
인낚의 나그네 인지라 선생님을 잘 모르겠지만
낚시판에서 만나기 어려운 격조있는 글....
참 좋습니다.
G 섬원주민 03-11-12 20:26
멀리서 오셔서 우리나라의 오지 섬에서 플라이 낚시를 하는 분!
예사롭지 않습니다. 영화 River runs through it 생각나네요.

갑장님 이번 11월 15일 시간나면 우리집에 한번 오세요.
G 연탄 03-12-06 18:47
늘 어깨너머로만 님의 글을 훔처 읽고 혼자 말없는 감동을 느끼며 지나갔던
사람입니다. 가식없는 진솔한 글 한줄 한줄에 갯바위의 서정이 그대로 살아 오는듯 합니다.
잘 읽었읍니다.
안전한 조행과 풍성한 조과 있으시길
연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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