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섬...Variation On The Ca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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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섬...Variation On The Canon

G 6 1,370 2003.11.1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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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섬

김일석




점점이 섬들
내 넋을 빼앗는 저 놈의 바다풍광에 취해
무던히도 보고싶었던 나만의 갯바위
이른 아침 출근길 차 속에서도
껄껄 웃으며 술잔 부딪던 주점 구석에서도
수면, 그 아래의 무지막지한 힘을 생각한다.
머릿속을 아른거리는 이 수렵욕은
내 마음 어디쯤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잔뜩 휘어져 웅웅 소리를 내는
내 낚싯대가 그립다.


지난 여름부터 계속되어온
나만의 깊은 속앓이
수영여를 휘감던 시원한 본류대의 수면을
아, 자유롭게 펄떡이던 숭어가 나보다 더 행복할테지
깊은 수심의 바닥을 긁던 나를
물 속에서, 혹은 물 밖에서 조롱하는 숭어의 군무(群舞)
어쩌면 놈들은 소리소문없이
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비웃지 않았을까
가지 못해 안달하며
차라리 숭어조차도 그립다.

3.jpg

몇번 째인가, 걸었다하면 터트리는
저 홈통 안쪽의 낚시꾼을 바라보며
그저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푸렝이의 여밭.
백여 미터나 흘러간 채비는 사정없이 출렁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꼬꾸라진 대를 쳐들고 어쩔줄 몰라했던
사자꼬리의 시냇물 같은 물빨이 그립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
수중여가 여기저기 박힌, 얕은 몰밭 귀퉁이
끊임없이 쳐박던 영등감생이와
치고 오르던 물보라를 뒤집어쓰며
앉았다 일어섰다 온 몸으로 버팅기다
2호 목줄이 팡팡 터져나갔던
아, 아직도 그대로 살아
생명처럼 꿈틀거리는 다무래미가 그립다.

myblack10.jpg

깎아지른 직벽의 틈바구니에서
대양(大洋)을 향해 떠내려가는 낚시가방 때문에
불통된 전화기 배터리가 다 닭도록
숨이 넘어가던 직구도의 고랑.
뒷바람을 받으며 위태롭게 섰던 테트라포드에선
붙었다하면 반타작도 힘드는
빵빵한 부시리와의 한 판이 그립다.


그뿐인가
지천에 흐드러진 갈대와 야트막한 구릉
들쑥날쑥 자란 온갖 풀과 나무
작은 밭때기와 좁은 들길 사이
듬성듬성 자란 진초록의 소나무가 이루는
절묘한 미학(美學)의 그 언덕배기가 그립다.

DSC_3271f[1].jpg

부드러운 햇살을 머금은 해거름녁
낚시에 지치고 싫증난 눈으로 바다를 보면
옹기종기 둘러앉은 섬은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뒤돌아서서
햇살에 반짝이는 연갈색의 갈대숲을 볼 수 있는
언제나 심오한 섬, 추자군도가 그립다.


누구네 수퍼
혹은 누구네 민박 간판이 전부지만
마을을 감싼 얕은 뒷산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척박한 포구의 가난함과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그 모든 기억들
하나하나가 생생하지만
어쩌면 목숨 걸고 바늘을 터는 농어보다도
내 깊은 속앓이엔
그곳 사람들에 대한 넘치는 연민과
뜨거운 그리움, 그리고 우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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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새색시와 손 잡고
밑밥통을 주거니 받거니
까르르 웃으며 샛말 갯바위로 들어서던 착한 선장이 있고
새벽 네시면 화장실에 다녀와
온 투숙객들의 새벽잠을 설치게 하는 가이드
더부룩한 머리가 어울린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 투박한 질감의 경상도 머스마와
난데없는 섬으로 끌려와
차라리 갈대보다 더 잘 자라는
그의 천사같은 아이들이 그립다.


청춘을 낚시에 쏟아붓고
어느 날, 이 외딴 섬으로 들어와
프로펫쇼날한 그의 낚시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헤멀건한 미소를 지어주는 선배며
도무지 섬에서 차려진 음식상이 아닐 듯한
맛깔스럽고 푸짐한 밥상을 끼니 때마다 내어놓는
지독히 계산에 서툰 그의 상냥한 부인과
풀어놓아 기르던 개도 그립다.

mycolor3.jpg


뽀오얀 갈대에 취해
터벅터벅 언덕길을 오르내리다
검게 탄 사람들의 표정을 만나도
아무도 우리처럼 사특(邪慝)하지 않으니
그들이 사는 집과 지붕
그들이 타고다니는 허름한 고깃배와 녹슨 자동차
그리고 그지없이 평화로운
그들만의 말씨가 그립다.
그래서 그리운 섬엔
언제나 그리움만 넘치나보다.



music...Pachelbel...Variation On The Canon...황병기
photo....http://www.chuja-fish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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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좋은 글 이군요^^
언제 부턴가 김일석님 의 글을보고
저도모르게 팬이 되었읍니다.
이루고자 하시는 일 소원성취 하시고
인낚인을 위하여 좋은글 많이
부탁하겠읍니다.^^
G 김일석 03-11-15 06:27
감성돔님~감사합니다.
추자도란 섬의 풍광에 취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취해
또 주절이주절이 넋두리를 늘어놓았군요.
사진을 몇장 찍어 배경으로 써보았습니다만
외모가 좀 그렇군요.....^^
극심한 감기몸살로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다
이른 새벽 님의 글을 읽으며 반가움에 글을 남깁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G 03-11-15 20:00
항상 안전 출조 하시길 빌며..... 가정에 평화가 가득히 ......^^*
제주에서.......
G 김일석 03-11-16 21:21
히라스님, 오랜만~
그 새 어떻게 지내고 있어?
하여간에 열심히 잘 할거라고 믿네~
제주 출장 가게되면 연락하겠네~
안녕~
G 개똥반장 03-11-17 18:04


님 !.
건강에 유의하소서....

글구~행복하시구요...그럼.
G 뺀찌 03-11-19 18:13
그 갈대밭 언덕길을 오를 때 마다 ...먼길 떠났다 집에 돌아 온듯 하였는데..

추자가 그립군요~~

아름다운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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