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은사님과의 첫 갯바위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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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은사님과의 첫 갯바위낚시

G 10 492 2003.10.0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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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경하는 은사님과의 첫 갯바위낚시




      김일석





      짝달막한 릴대 하나와 지렁이 한 통 챙겨
      퇴근 후 집앞 방파제로 나가
      애꿎은 메가리나 하릴없이 잡았다 놓아주었다를 반복하며 보내는
      두세시간의 낚시는 생각보다 넉넉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동네낚시터에서 메가리나 고등어, 망상어 따위를 잡는 데에도
      자신만의 요령과 섬세함이 동원되어야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까이 사시는 존경하는 은사님과 밤바람을 맞으며
      테트라포드에 나란히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채 나누는
      일상의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오랫동안 민물낚시를 하셨지만
      갯바위낚시는 한번도 해보신 적 없는 선생님을 뵙기만 하면
      난 바다와 섬의 풍광을 늘어놓으며 갯바위로 유혹하였다.




      부산지역의 대학으로 내려오신 지 십수년간 아파트 앞 방파제에서
      잡어낚시만을 유일하게 해오신 분이라 갯바위출조는 늘 환상이었다.
      선생님을 꼬드겨 막상 출조를 준비하려니 준비할 게 여간 많지가 않았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겨우 기본적인 장만을 마쳤는 데도 돈이 꽤 들었다.
      우선 두 세트의 릴대와 뜰채, 장화, 낚시의류, 찌와 봉돌, 후래쉬 등
      온갖 소품들과 아이스박스 따위를 구입했는데
      물건들 하나하나 마다의 특징과 기능들을
      일일이 다 설명 드리는 일도 여간 만만한 게 아니었다.




      적응이 쉽진 않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왕 시작하는 갯바위낚시, 제대로 시작하자고 장만한
      레버브레이크 릴을 얼마나 어려워하시는 지...
      출조 전까지 방파제에서 트레이닝을 좀 하시면 좋으련만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강의일정 탓에 온 집안에 늘어두셨다가
      출조당일에야 부리나케 채비를 꾸리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예의 낚시싸부(?) 특유의
      공자왈 맹자왈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하나하나 챙기다 보니
      밤이 이슥해서야 겨우 장비를 차에 싣고 출발할 수가 있었다.




      폐기처분 직전의 외모를 한 나의 고물차를 타고
      존경하는 은사님과 여수로 가는 길은 한결 여유로웠고
      문화인류학적인(?) 선생님의 강의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주제에 낚시꾼 차랍시고 속도를 올리니 거의 탱크같은 소리를 내고
      두 사람은 어린 애들마냥 목청을 돋우어 얘길 나누다보니 목이 컬컬하였다.
      워낙에 예술과 여행을 즐기는 낭만주의자이신 탓에
      마치 개구장이처럼 껄껄껄 웃으시며 즐거워 하셨다.




      돌산도 남쪽의 작금포구에 도착하니 밤이 깊었다.
      선장님댁에서 잠깐 잠이 들었을까
      인기척에 밖으로 나오니
      어두움 속엔 이미 유령처럼 낚시꾼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거의 두달만에 찾은 작금포구의 익숙한 새벽풍경이 새로웠고
      도시락과 생수, 젓가락, 가스 따위를 보조가방에 챙겨넣고
      배에 짐을 싣고나니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달리기 시작한 배가 누군가의 연락을 받았는지
      두어번 회항을 하고서야 제 속력으로 물을 가르고
      첫 갯바위출조의 가벼운 흥분에 사로잡히신 선생님 표정은 마냥 흥겨웠다.
      금오도와 부도를 가르는 물길을 지나 세상여로 가니
      이미 몇몇 낚시꾼들이 밤낚시를 하고 있었고
      어느 부부가 장비를 주고받으며
      갯바위에 내리는 걸 보시고는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
      소리도 서북방의 작은 돌섬 알마섬 남쪽
      몇 안되는 포인트 마다에도 이미 몇몇 낚시꾼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알마도지사"란 우스꽝스런 낚시별명을 가진 난
      내가 잘 아는 넓은 포인트에 내렸다.
      선생님께선 빨리 낚시를 하고싶어 하셨지만
      배가 출출하니 밥부터 먹고 하자고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꺼내었다.
      안온한 느낌을 주는 갯바위에 퍼지르고 앉아
      먹는 따끈한 밥에다 상큼한 향이 좋은 갓김치는
      언제 먹어도 갯바위 도시락반찬으론 그저그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밥 한 톨, 김치 한 조각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도시락을 해치웠다.




      커피를 한잔 타드리고나서
      밤눈이 어두우신 선생님의 민장대채비를 하나 만들어
      홈통입구에서 낚시하실 수 있게 포인트를 안내해드렸다.
      갯바위에 널부러진 것들을 주섬주섬 한쪽으로 챙겨두고는
      가벼운 스트레칭과 심호흡을 몇번 한 뒤에 아침낚시를 준비하였다.
      쪼그려앉아 채비를 준비하다 캄캄한 홈통 쪽을 바라보니
      선생님께선 연신 뭔가를 열심히 올리고 계신다.
      낭창거리는 대를 타고 전해오는
      작은 물고기들의 앙탈이 얼마나 좋으셨을까...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 갯바위는 역시 환상적이었다.




      날이 샐 동안에 밑밥을 부지런히 뿌려가며 아침입질을 기다리는데, 맙소사!
      날이 밝으니 물이 거울처럼 맑았다.
      어디고 마찬가지지만 물이 너무 맑으면 입질이 없는 법
      첫 출조에 뭔가 쇼킹한 일을 기대했건만
      이런 조건이면 아무래도 어려워보였다.
      하긴 조금물때에 바다는 장판같이 고요하니 물이 맑을 수 밖에...




      수심 15m에서 드문드문 올라오는 굵은 볼락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고
      함께 나란히 서신 선생님께선
      처음 사용해보는 레버브레이크릴에 적응이 안되어
      연신 꼬인 줄 푸느라 애를 쓰셨다.
      원투를 하다 줄이 꼬이면 난 달려가 다시 채비를 봐드려야 했고
      스풀에 줄이 엉키면 난 대를 세워두고 가서 풀어드리기도 했는데
      선생님께선 매 순간 탐구심 가득한 자세로 일관하셨다.
      아무래도 원터치 레버브레이크가 첫출조에 무리인 듯 했지만
      어차피 습득해야할 거면 처음부터 연습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볼락이 광범위한 지점에서 계속 올라오고
      난 대물감성돔 한 마리 쯤 언제 교통사고 날 지 몰라 잔뜩 기대하며
      선생님 자리를 바쁘게 오가면서도
      틈틈이 집중해서 쪼아보았지만 역시 무리였다.
      릴에 적응을 못하셔서 애쓰시는 모습이 힘들어보여
      드랙릴에다 채비를 해드렸더니 한결 좋다시며
      아까와는 달리 상당히 부드럽게 채비를 던지셨다.
      매어드린 매듭이 잦은 원투에 이동하여
      채비가 제 수심에 내려가질 않았으니
      선생님의 낚싯대는 침묵을 지켰고
      뒤늦게 그걸 발견하여 고쳤더니 앙증맞은 볼락 한 마리가 올라왔다.




      연이어 50cm쯤 되는 농어의 교통사고로 몸부림치는 손맛을 선물했고
      난 뜰채를 들고 갯바위를 내려가 그놈을 건져올렸다.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아침 내내 스풀에 꼬인 줄 푸느라 힘들어하셨던 선생님께선
      파안대소하시며 어린 애처럼 좋아하셨고
      곧 이어 감생이까지 한마리 올리셨으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책에서나 보았던 감생이를
      "아휴, 예쁜 놈"하시며 연신 감탄을 감추질 못하시니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도 얼마나 흐뭇한지!




      철수하자마자 선장님댁에서 준비해주신 콩국과
      경남 거창의 어느 낚시꾼들이 썰어준
      회 몇점을 깻닢에 싸서 맛있게 먹고나니 집으로 갈 일이 꿈만 같았다.
      느긋하게 이것저것 챙겨먹고
      포구의 아는 분들마다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오르니
      이미 어둠살은 가득하고 경치구경마저 못하니 졸음만 쏟아졌다.
      길 가에 차를 세우고 몇번을 잤는지 모른다.
      적당한 휴식도 없이
      돌격대처럼 강행한 당일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역시 피곤하였다.
      늦은 시간, 선생님댁으로 가서
      드시기 좋게 고기를 다 장만해드리고나니 밤은 깊었고
      몸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존경하는 은사님의 첫 갯바위출조는
      그런대로 유쾌하고 성공적이었던 듯 하여 다행이었다.





      music...Pachelbel...Variation On The Canon...황병기
      photo....김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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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댓글
G 눈썹달 02-11-30 00:00
갯바위서의 도시락맛은 호텔부페 안부럽죠.....
건강하시지요?
-공주- -[10/09-12:19]
-

G 더불어정 02-11-30 00:00
은사님의 피곤한 심신을
몸과 마음을 바쳐 달래 주시는
선생님의 하해와 같은 너그러운 마음이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만물이 결실을 맺는 가을에
은사님을 되내이게 하는 선생님의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10/09-15:48]
-

G 월광 02-11-30 00:00
일석님의 글을 읽으니 예전에 우리 와이프 처녀 출조가 생각나네요..채비가 얼마나 꼬였는지 그날 전 낚시한번 제대로 못하고 머슴이 되었고..지금은 채비도 자기가 알라서 하는 낚시벗이 되었습니다.. -[10/09-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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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빗방울 02-11-30 00:00
언제나 멋진글 감사 합니다..언제나 도움이 되는글귀 마음 한곳에 깊히 간직하며 살아가렵니다. -[10/09-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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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개똥반장 02-11-30 00:00
김 일석님.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10/10-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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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낚수부인 02-11-30 00:00
안녕하십니까
조석으로 쌀쌀한 날씨에 건강하시죠
선생님이 쓰신글은 잊지않고 읽고 있지만 언제 봐도 내용하나하나가 정감이 있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마음이 가슴를 찡하겠만드는것 같습니다
사진까지 여유로운모습 비교를 하자만 인자하시고 자상한모습 친정어버님같은느낌
너무나 보기가 좋습니다
향상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과 화목이 깃드시길 진심으로 바라며 김해에서
-[10/10-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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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생각만해도감시 02-11-30 00:00
정말 멋진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참 참 감동입니다... 인간과 낚시... -[10/10-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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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김일석 02-11-30 00:00
눈썹달님~이름이 뭔가 중첩된 의미가 있는 듯 하고 어감도 훨씬 좋아요....^^
반장님~반갑습니다. 귀여운 늦둥이 잘 크고 있죠?
더불어정님~반가워요~알게 모르게 님의 정서를 이름으로 느낍니다.
월광님, 빗방울님~그리고 감시님~반갑습니다....^^
낚수부인님~오랫동안 가보질 못했군요~죄송합니다.
언제나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든 님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들 조금씩 잘 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10/1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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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히라스 02-11-30 00:00
김일석님 안녕 하시지요?
님이라고 하니 이상하넹~ 일석형! 일석형님! 헤헤헤 ^^*
영남쪽 가고 싶엉~ ^0^ ^0^ -[10/11-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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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바다백호 02-11-30 00:00
안녕 하십니까? 예전에 실리도에서 잠시나마 인사를 드려던 바다백호입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늘 건강하시며 늘 평화로운 글에 감사 드립니다. 꾸뻑 -[10/15-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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