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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11 3,327 2003.05.27 14:31
한 2~3년전 낚시에 미쳤을때가 있었다.
고향이 통영(옛 충무)인지라 어려서부터 노래미, 도다리는 얘들 놀이마냥 잡으며 자랐는 데
우연히 찌낚시를 알고난 뒤부터는 원투 처넣기낚시는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찌낚시는 찌선택에서부터 원줄, 목줄, 바늘, 수심과 조류에 따른 찌선택, 어종에 따라 달라지는
낚시법 등등. 많은것을 배우게 하고 스스로 연구하게 했다. 그래서 매월 월간 바다낚시를
구입해서 두세번 정독하다 보면 다음 번 낚시갈때 어디가서 어떤 방법을 쓸건지 속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도 밤낚시는 채비하기 싫고 아는 포인트인 경우 도래까지 채비를 해
놓는 경우가 있으니 사실 난 게으른 놈인가 보다.
2~3년전 문제의 그날밤도 나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었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세상의 힘든일을 혼자 다하는 것처럼 인상을 쓰며, 양복 윗도리를 휙 집어 던진다.
그러면 부엌에서 저녁짓던 집사람 왈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놀라며 토끼눈을 한다.
"월급쟁이 더러워서 원......" 하고는 옷 갈아 입으러 큰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때쯤 마누라 얼굴이 긴장하며 저녁내내 쉽게 말한마디 건네지 못하면 절반은 성공이다.
저녁을 먹고나서 꼬마들이 잠들기 시작하면 괜히 난 낚시가방을 꺼내어 낚싯대를 닦기 시작
한다. 그리 비싼 낚싯대도 아니건만 무슨 보물도자기처럼 닦고, 릴에 기름치고....
슬그머니 내 눈치를 살피며 다가온 마누라는 무슨 고민 있소? 한다.
별로 기분나쁜일도, 큰 일도 없건만 그냥 지나가면 헛탕이다. 최대한 인상을 쓰며 " 거 있쟎아
김부장님, 내게 무슨 감정이 있는 지... 내만 보면 잔소리고, 하는 일마다 꼬투리고.. 더러워서 원...
내가 어째주면 좋겠소? 한다. 당신이 뭘 어떻게 해.
"정말 오늘같은 날은 시원한 바다바람이라도 한 번 쏘이고 왔으면...아니 쳐다 보기만 하다 돌아
왔으면 소원이 없겠다..이쯤되면 마누라가 "그래 이번 주 낚시한 번 갔다와요. 대신 다음달부터
한달에 꼭 한번만 낚시가야 해요. 그런 대답이 나오고, 난 여전히 찡그린 얼굴로 "알았어" 하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문제의 그날 저녁은 오스카상 주연배우만큼 연기를 잘했건만 마누라 왈
"내가 그 작전에 어디 한 두번 속았나? 왠간하면 인상 기리지 말고 들어가 잡시다" 한다.
작전 실패다. 아니 KO패다. 이렇게 허망할 때가....
그리고 자러 들어가 버린다. 며칠을 연구하고 작전에 돌입했건만 실패의 쓴 맛을 봤다.
밤도 깊어가고 낚시TV나 보다 어느 덧 밤 12시를 가리킨다. 어디 가까운 데 손 맛 볼 데 없나?
그래 고성 지나서 수월리 갯바위가면 볼락이나 될지 모르겠다. 지금가서 새벽 4시쯤 오면 마누라는
감쪽같이 속일수 있겠구나. 방에 들어가 인기척을 살펴보니 거진 시체상태다. 하기야 별난 얘 두녀석
에게 시달리니 몸도 고달프겠지. 에라 모르겠다. 슬그머니 낚시복을 가지고 그날 밤 난 그렇게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중간 이름모를 낚시점에 들러 청개비 한 통, 물 한통, 담배 한 갑 이정도면
저렴하고 두시간 놀다 온다. 한 밤중에
밤에는 도로에 차도 별로 안다닌다. 4~5십분 거리를 삼십분만에 도착했다. 고성 수월리 갯바위
포인트는 차에서 내려 무덤옆을 지나 급경사 100여미터를 내려가서 갯바위에 동아줄을 잡으며
내려가는 곳이다. 그래도 미쳤으니 무서운줄도 모른다. 깜깜한 밤 갯바위에 도착하니 등에 식은 땀이
흐른다. 얼른 장대를 꺼내 청개비 한마리에 4mm 캐미를 달아 사알짝 던진다. 퐁당 소리가 나면
볼락이 도망간다 들었기에 .. 장대를 한 손으로 들고 담배를 입에 물고 쭈욱 빨아들이니 가슴이
시원하다. 오늘밤따라 바다가 유난히 조용하다. 슬쩍 갯바위에 앉아 캐미를 노려보건만 미동도
없다. 볼락은 장대를 살짝살짝 끌어주고 낚싯대 끝을 간간히 흔들어줘야 어신이 온다던 데...
그 동안 배운 이론대로 다 해봐도 고기 그림자도 없다. 1시간여를 지나자 체념상태가 되고, 은근히
출근도 해야 함이 걱정이 된다. 30분만 더 쪼아 보자. 새벽 3시 30분 낚싯대를 접으며 스스로 위로
한다. 바다야 ! 너에게 와서 너의 냄새와 너를 보니 한 일주일은 살 것 같구나. 다음에 또 오마..
차로 돌아오는 오르막길은 유격훈련 같다. 등에서 땀도 나고 다리도 아프고 멀기도 느껴졌다.
그 짧은 거리가 왜그렇게 느껴지는지. 아마 평소 운동이 부족하다 쉽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도로가 더 한적하다. 원래 밤잠이 없는 편이라 크게 걱정할 것은 없지만
노래를 크게 틀고 흥얼거리며 무사히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행여 옷에 갯내음이 묻어 마누라에게 들킬까봐 옷도 좀 털고, 매무새도 고치고. 그러나 일어날 리가
만무하다. 잠이들면 업어가도 모른다. 현관앞에서 사알짝 비밀번호를 눌렀다. 평소 같으면
비밀번호를 다 누르면 철걱 하면서 문이 열려야 하는 데 아무리 눌러도 열리지를 않는다. 으으~~~
건전지가 다 됐는데. 교체를 안한 모양이다. 어제 저녁까지도 이상없이 작동되더니 갑자기 왜
왜왜........, 하느님이 벌을 주시는 건가? 어째야 하지. 고민스러웠다.
벨을 누르면 마누라가 일어날까? 일어나 문열고 나오면 뭐라고 말하지..밖에 무슨 소리가 나서
나와봤다가 현관문이 안열리더라고 거짓말을 할까? 눈치구단 마누라가 눈치 못챌리가 없다.
바닷가 드라이브나 했다고 할까? 이 밤중에 혼자서. 아니다 괜한 오해만 산다. 뭐라고 할까
만약 잠에 골아 떨어져 안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차에 가서 아침까지 자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눌렀다 힘차게. 그런데 소식이 없다. 두번, 세번 네번 음악이 한 밤중에 꽤 크게 울리건만 소식이
없다. 휴대폰으로 집으로 전화를 했다. 아무리 전화벨이 울어도 소식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눌러보고 안나오면 차에 가서 자야지. 쿡우욱 눌렀다. 제발 잠좀깨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시후 현관문이 열렸다. 들어서는 나를 보며 마누라 왈 "어디 갔다
와요? 으응 밖에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나왔다가 현관문이 안 열리네. 건전지 갈아야 되겠어.
그런데 갑자기 마누라 눈빛이 독사눈으로 바뀌면서 하는 말 " 왠수야! 밖에 무슨 소리가 나면
몽둥이 들고 나가봐야지, 낚시모자는 왜 쓰고 나가아~~~~~그러게 말이여. 잠질이었나 봐
산통이다. 더 이상 변명은 집안만 시끄럽다. 짧으면 2~3분, 길면 5분. 잔소리 세례가 퍼붙는다.
참아야 한다. 내가 여기서 성질을 내면 다음을 기약할 수가 없다. 3분이 경과 했을때쯤 의미있는
말 한마디로 잔소리를 그치게 했다. 이건 내가 무슨 시체하고 사는 건지.. 밤 10시만 넘으면
시체가 되니. 어느 남편이 좋아하겠어. 순식간 마누라가 할 말을 잃었다. 이때를 놓치면 안된다.
핏대 세우지 말고 자러가자. 잘~자 으응. 또 시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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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댓글
G 석경 02-11-30 00:00


ㅋㅋㅋ. 손맛이나 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좀 억울하시겠어요. -[05/27-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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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신형냉장고 02-11-30 00:00
ㅎㅎㅎ 님 잼있읍니다..야반도주씩이나?? 혹 출조후 손에 냄새는 맏지않턴가요?
담에 뽈칠때 연락 함 주세여..지가 님 직장 상사님 밥숫까락 던지뿟다고 연락드릴께염.
이번 저희 뽈사모 번팅에 어려운분들을 위하여 몇분은 서로전화하기로 굳은약속!
바리 밥숫까락 떤지기로 했음다..헉! 이건 비밀인디..ㅋㅋㅋ -[05/27-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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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16호묶음추 02-11-30 00:00
와아^^*...정말 재미있는 글입니다...항상 즐낚하세요^^~~~~ -[05/27-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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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pin 02-11-30 00:00
히히~!! 취미 잘못선택한 탓에 고난의 연속입니다...저도 바다 다녀 온지 어제 인데..
벌써 가고 잡네요..
잘보고 갑니다.. -[05/27-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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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nasca2327 02-12-01 03:00
ㅎㅎㅎ 동감함니다. 야밤도주는다반사죠, 혼자갯가에 밤에있을라치면 내가뭐하는건지 참한심타하는생각도들고 ㅎㅎ 지친몸에후회감으로집에들어와 자리에누우면 이내치드는갯바우며 채비며 ..ㅎㅎ 중병인가봄니다. 행복하세요. -[05/27-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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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삼계초보 02-11-30 00:00
ㅎㅎㅎ 이거 재밋다고 해야할지... 저도 그동안 주위분들 많이 팔아먹었지요.^^ 그라고 냉장고 행님 천기누설하면 천벌 받습니다. 기냥오늘 행님 초상치고 낚쑤한번 갔다와 말어...안돼지 암 요번주는 참아야지.(아 참기 힘들다) 미녀 사냥꾼님 사실 님처럼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거 아시죠.^^그럼 항상 즐낚 하세요... -[05/27-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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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신형냉장고 02-11-30 00:00
ㅎㅎㅎ 그래 쥐이라~쥐이! 니죽고 내죽자!!!!
ㅋㅋ 넘의집 안방에서 이 머하는짓일꼬???ㅎㅎ 미녀사냥꾼님 지송!지송!
지금 보디가드님이 진동에(?) 가셨다는데 갈까싶은데...
아~~미쵸! 어제 잠이안와서 2시경에 잠들고 오늘은 좀 자야되는데...
그래야 낼또 민준이 아빠님을 볼수 있을낀데...아~~미쵸! 가고싶단말이여~~
아~~아~~~~아~~~~~~~~ 피휴~~ 나도 중병인겨!
-[05/27-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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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개똥반장 02-11-30 00:00
으음....
남편 하기 나름인데요.(남의일 같지가 않넹.)
차라리 바람이나 난다고....공갈작쩌널 써보심이......호호호호호.... -[05/27-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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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야전사령관 02-11-30 00:00
미녀사냥꾼 님의 재밌는 글... 공감합니다. ㅎㅎㅎ 개똥반장님... 저도 그 심오한 전술 써봤는데예... 내 성격을 넘 잘알고 있어 통하지 않데예... 그래서 요즘은 미리 선수 칩니다. 나 몇일 몇일 낚시간께 그리 알고 있어라. 땅! 땅! 땅! 일방적으로 말해삔께 별말 못하데예. 갈때 잔소리 좀 해서 그렇지...ㅎㅎㅎ 미녀사냥꾼님 이하 좋은 님들 글... 즐거운 맘으로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날 되시길... 꾸우벅. -[05/27-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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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야전사령관 02-11-30 00:00
그런데 신형냉장고님... 민준이아빠님과 언제 접선 합니꺼? 그리고 어디로? 낼 촌에 갔다가 올라옴시로 함 들릴란가 모르는데... 저도 우물가에서 손가락 입에 물고 우두커니....^^ -[05/27-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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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hyungheea 02-11-30 00:00
낚시 고만하시고 신춘문예에 함 도전해보세요. 정말 재밌네요 -[05/29-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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