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대를 회상하며......

회원랭킹(월 글등록)


공지사항


NaverBand
낚시인 > 조행기

아버지의 시대를 회상하며......

G 7 2,105 2003.01.04 03:42


solomoon-202.jpg



    • 아버지의 시대를 회상하며...




      김일석



      초량 4동 산의 10번지
      내 어릴 적 아버지께선 늘 술에 취하신 모습으로
      어두운 밤길을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셨다.
      술이 좀 부족하셨던 날에는
      꼭 내게 군데군데 색이 벗겨지고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던져주셨고
      무우김치 한 조각에다 막걸리 한되를
      큰 사발에다 꿀꺽꿀꺽 들이키시곤 주무셨다.
      그렇게 잔뜩 취하시고는 얼마나 깊이 주무시는지......



      어떤 날에는
      집으로 올라오는 골목에 쓰러져 계실 때도 있었다.
      밤마다 아버지 마중을 나갔다
      저 골목 어디쯤에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찬 흥남부두에...."
      그 변함없는 레파토리를 들으며
      초라한 아버지를 부축하여 집으로 들어서던 어린 내게
      아버지의 몸에서 나는 술냄새는 그렇게도 싫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 오면
      네모난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그 옛날 노래와 함께
      이미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나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을 올라오시던 아버지.
      올망졸망한 육남매의 학비와 생계를
      당신의 두 어깨에 다 짊어진 채
      그 험한 시대를 거쳐오시며
      어찌 단 하룬들 맨정신으로 주무실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몸에서 나던 술냄새를 그리도 싫어했는데
      그렇게 취해 비틀비틀 골목을 올라오시던
      아버지가 너무나 싫었는데
      이제야 내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를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은 왜일까?



      설탕과자를 만들다 화상을 입어
      동동 구르는 날 업으시고는
      마당을 빙글빙글 도시던 아버지.
      난데없이 학교에 오셔서 수업중인 창문을 여시곤
      귀하디귀한 과일이었던 바나나를
      한꾸러미 들여주시던 아버지.
      아들이 잡아온 노래미며 망둥이로 매운탕을 끓여
      "좋다"를 연발하시며
      큰 대선소주 한 병을 비우시던 아버지.
      내 손을 꼭 잡으시곤
      용당 바닷가를 거닐며 부르시던 그 노래...



      간밤에 있었던 망년회에서
      몇 차에 걸쳐 돌아다녔는지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주차장에 차는 있는데
      차를 어떻게 가져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다.
      이렇게 걸쭉한 망년회를 거치며
      또 한 살 나이를 먹으며
      문득문득 내 정신의 언저리를 휘돌다 사라지곤 하는
      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



      아버지의 술을 이해하고
      아버지의 시대를 이해하게 되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철부지였다는 뜻일게다.


      아, 언제나 후회가 넘치고 언제나 그립기만한 아버지.
      오늘도 당신과 손 잡고 거닐던
      그 용당 앞바다를 바라보며...







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7 댓글
G 키워서잡자 02-11-30 00:00
참으로 좋은 내용이군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가장으로서 정말로 공감이 가는군요. 내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그리고 지금은 내자신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건만 풍요속의 빈곤인가 ? 참으로 세상은 살기가 어려운가 봐요. 세상의 모든 일상을 휙 던져 버리고 막장애 하나 릴대하나 드고 넓디 넓은 바다로 가는 이유도 그기에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고기야 잡히면 좋고 안잡혀도 그만이고 그냥 망망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무상의 세계에 들고 싶은 마음이 더하겠지요. 생전 처음 만나는 분과 갯바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주잔이라도 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두 컴컴한 룸싸롱에 멋진 아가씨가 없어도 진솔한 이야기와 비릿한 바다 내음을 맡으면 저절로 삶에 찌든 때가 그나마 씻어지는 기분을 느낄수 있으니까요.언제 같이 출조한번 할수 있었으면... -[01/04-09:28]
-

G 버들피리 02-11-30 00:00
그런 때가 있었지요. 제 아버님은 술을 드시지 않으셨지만 몹시 휘청거릴 때가 있었지요. 그때는 그런 아버지가 무척 원망스러웠었지만 지금은 삶의 무게에 휘청거리시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란 자리에 선 지금에사......
이젠 형님이라 불러야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죠?)
새해에도 좋은 글로 늘 가까운 데 있는 듯 자주 뵐 수 있기를 빕니다.
늘 건강하시고 형님의 가정에도 평강이 함께하길 빌겠습니다. -[01/04-09:37]
-

G 섬원주민 02-11-30 00:00
갑장님 몇일전 분당에서 만나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바쁘시면서 이렇게 감상적일 수도 있습니까? -[01/04-12:12]
-

G 개똥반장 02-11-30 00:00
님의글 감사합니다,
어릴때의 저의 모습이군요,
저는 수정3동이였지요,
복마이절위에,,,열칸집동네,,외솔배기,,,오박골,,,,,,,모두그리운이름입니다,,,
이제는 용당에 살구여,,,,,,,
님 건강하십시요,,,,가까이 계시는군요,,,그럼... -[01/04-13:48]
-

G 청물fnw 02-11-30 00:00
김일석님의 글을 보며 즐거워 하고 감명받아 눈시울을 적시고하는 팬입니다.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제가 뭐 옆에서 님의 글을 재미나게 읽는 독자일수 밖엔 없네요. 그리고 술을 자주 하시는거 같은데요. 김일석님의 글을 자주 보고싶은 마음에 부탁하나 하지요. 음주운전하지 마세요. 오래오래 보고싶은 마음에.... -[01/04-15:23]
-

G 청물fnw 02-11-30 00:00
김일석님의 글을 보며 즐거워 하고 감명받아 눈시울을 적시고하는 팬입니다.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제가 뭐 옆에서 님의 글을 재미나게 읽는 독자일수 밖엔 없네요. 그리고 술을 자주 하시는거 같은데요. 김일석님의 글을 자주 보고싶은 마음에 부탁하나 하지요. 음주운전하지 마세요. 오래오래 보고싶은 마음에.... -[01/04-15:24]
-

G 김일석 02-11-30 00:00
키워서 잡자님, 갯바위에서도 좋고 허름한 선술집도 좋습니다. 언제 마주 한 잔 하시지요....^^
버들피리님, 언제나 감사해요...따뜻한 분, 그럼 아우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이러다 깊이 정들면 우얀다지...^^ (물망상어님 버젼~)
갑장 원주민님, 차분하시고 그저 군더더기가 없으신 분....^^ 그날 그 뭐였죠? 명태탕? 참 좋았습니다. 부산 오시면 전화줘요,갑장님...^^
개똥반장님, 고향이 같은 동네군요...아버지의 바다를 지금껏 그리워하는 마음, 이해되시지요....언제 오륙도에 낚시하러 한번 가시지요, 고향얘기나 질펀히 좀 하게 말이지요...^^
청물님, 이렇게 잡문을 챙겨 읽어주시니 감사해요...
님들, 새 해 하시는 일들 술술 잘 되셨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고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01/04-18:52]
-
 
포토 제목
게시물이 없습니다.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