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란 붓, 바다라는 도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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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란 붓, 바다라는 도화지

G 7 1,330 2002.12.21 18:04
밤낚시의 꽁트라 할 수 있을지....고귀한 젊은이들 소개가 목적일지...바다풍경의 매혹이 소재일지...
몇 년 전 밤바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의 제 목선 뗀마 독진호를 타고 놀았던 님들은
"부산 장애인 참배움터" 남녀 야학 교사 8명 정도 였습니다.

어떤 날 바다를 보면 모래알 하나만큼의 흠도 없이 마치 기름의 표면같이 완벽에 가깝게
매끄러운 때가 있습니다. 여인들의 나이트 가운? 백자나 청자의 상감하지 않은 표면? 처럼.

그 물표면이 약간의 높낮이로 오르내리던 날이었고,
달빛은 물에 내려앉아 미끄럼 놀이를 하였습니다. 기인 줄달이 되었다가 구부러진 달이 되었다가
오그라진 달이 되었다가 우리의 그림자를 둘러싼 이불이 되었다가...

줄낚시 몇 개, 청개비 한 통, 통발걷이용 우의 한두 벌, 소주 댓병 몇 병, 초고추장....그것이
그날 밤의 소도구였으며, 바다에서 무언가가 올려지지 않으면 손가락을 안주로 할 셈이었습니다.

통발에서 올라 온 것은 손가락보다 조금 큰 볼락 몇 수, 붕장어 몇 수, 놀래미 몇 수 하여 서너사람이
소주 2홉 마실정도 뿐... 최대한 잘게 썰었고 종이컵 대포 한잔을 부어넘겨야 한입감을 배급받던 날...

노 젓는 배로 밤바다를 나가자 쥐 죽은 듯 고요한 야밤에, 삐걱거리는 놋소리도 크다고 물을 적셔
참으로 적막하게 분위기를 잡은 날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저의 동지들은 물색과 시그리(야광충)색에 혼절하다시피 하더군요. 통발을 건질때 물속서부터 따라오던 시그리의 하양불빛에 가슴찌릿, 물을 타고 노는 달과 가로등 불빛의 화려한 블루스에 혼미....

시가 새어 나오고 조용한 노래가 나오고 권주가가 나온 그 시각 우리는 참으로 하나같았습니다.
종잇장 같은 회 한 점의 안주에도 눈물겹게 감사하며 소주를 감로수마냥 가슴에다 부어댔습니다.

가난과 무시와 장애 등으로 구석에 처박혀 사는 아이들을 업고 다니며 고입 대입 야학 수업을 해 내던 이들이라 오히러 그 부족한 안주가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여자 후배가 그랬습니다. "나는 해 뜨는 걸 보고 돌아갈란다. 선장은 답변하라. 안 그러면 날 여기 내려 주고 너나 가라." 술에 취하고 바다에 취한 그녀가 고마웠습니다. 그러다 그녀가 고꾸라졌기에 날밤은
새지 않았습니다만.

그들은 천사였습니다. 장애인들을 일부러 찾아가서 부모님들을 설득해서 야학으로 오게 하는 것도 힘든
고역이었지만, 그들을 태워 올 차량을 지원받는것도, 그들을 업어 태우고 다시 보내 주는것, 용변 볼때마다 업고다니는 것 마저 소롯이 그 천사들의 몫이었습니다.

늘 방학 때면 장애 학생들을 데리고 거제도로 제주도로 전국 어디로든 여행을 가선 정상인들보다 더 자신있고 밝게 뛰놀수 있도록 만들어 내던 그들의 작업은 창조에 비길 만 했습니다.

야학을 꾸려 나가는 일도 오로지 그들의 몫, 운영할 경비나 교실을 얻기 위하여 일일찻집과 주점을 하면서
늘 신세 끼치는 분들만 괴롭혀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던 그들...

전 그들이 스무살 전후의 젊은 남녀대학생이라는 것에 더 크게 놀랐습니다. 그들을 태웠던 그 배는 태풍에 부서지고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들과 함께 했던 그 밤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그 분들과 우리 참배움터 학생들 모두에게 영원한 건강과 행복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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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G nasca2327 01-12-01 03:00


무이님에글은항상 아득한 그리운 향수를일으키게하는군요. 밤바다는정말사람을취하게하는마력이있죠.아름다운추억잘간직하십시오. --[12/21-18:46]
--


G 물찬제비 01-11-30 00:00
바다의 달, 술잔 속의 달, 천사들 눈동자 속의 달...
그리고 가슴 속에 영원히 아로새겨진 달...
무이님의 아름다운 추억에 공감합니다.
늘 행복한 날들이 되십시오. --[12/21-19:22]
--


G joinoon 01-11-30 00:00
잘 읽었습니다. 그분들과 님의 마음씀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 --[12/23-09:58]
--


G 김일석 01-11-30 00:00
참 좋은 글입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는 언제나 이름 모를 아름다운 헌신과 봉사가 숨어잇다는 것을 느낍니다.
무이님....추운 날, 감기 조심하세요....^^ --[12/23-17:16]
--


G ha1544 01-12-01 20:00
조은글 잘 읽었습니다.저도 시그리를 첨 봤을때 일부러 소주를 사서 폼 잰적이 있었죠 앤 한테 멋있어 보일려구^^! 근데 무이님 두번 뵙는데 구면 처럼 넘 편해서 조아습니다.가게엔 장사 내음이 나질않아 이상하기두 하구요 *^^* 담에 또 뵙겠습니다
누구야 하면 어구 친구고향 갔다가 지세포 방파제 낚시 했던 젊은 친구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12/23-18:06]
--


G melavo 01-11-30 00:00
님은 천사들과동화되고 교감되어 밤바다풍경과 어우러져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저희에게 가르쳐주시는듯 하구료 그리고 또하나 술이란 운취있게 먹어야한다는 메세지같기도 하오 --[12/26-08:46]
--


G melavo 01-11-30 00:00
님 저는 눈내린 공원이 보고싶어 그리고 겨울의 겸허한풍경이 보고싶어 나섰다가 또 그냥 님이 그리웠나이다 그리하여저는 무이님의 글을 접하고가나이다님의 글은 사람이란 생물로태어난 감사를 깊이새기게해주니까요 -[01/03-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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