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크스는 파도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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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는 파도를 타고...

G 7 2,721 2002.09.03 12:42
낚시꾼들의 소망은 무엇일까? 큰 고기를 잡아서 자신의 기록어를 갱신하는 게 소망인 꾼도 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장비에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낚시를 갈 수 있게 되는 게 그것인 꾼들도 있을 것이
다. 하지만 나의 소망은 내 낚시 이력 만큼이나 줄곧 달라붙어 있는 질기고 몸서리치는 나의 징크스가 완
벽하게 깨지는 게 소망이다.

꾼들의 징크스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하다. 출조날이 잡히면 그때부터 아예 목욕을 안 하는 꾼, 술
자리에서 왼손으로 따라주는 술잔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는 꾼, 새로 구한 낚시대만 들고가면 황친다는 꾼,
바다를 항해서 소변만 봤다면 신통찮는 조과를 올린다는 꾼 등, 실로 낚시꾼 수 만큼이나 다색다양한게 낚
꾼들이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낚시꾼들의 징크스이다.

내 징크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다는 몸풀이 징크스이다. 몸풀이(?)... 몸을 푼다하니 지래 내가 무슨
애낳는 여자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겠지만, 난 감자 두 개 멀쩡하고 오지(五枝) 튼튼한 사내이다.
여기서 몸을 푼다는 건 순전히 집사람에게 써비스 하는 걸 일컫는다. 그러니까 출조날이 잡혔는 데 내가 뭣
모르고 신분(출조날이 잡히면 그때부터는 낚시꾼의 신분임!) 을 잊고서 열심히 아내에게 의무방어전인지
아니면 선택방어전인지는 모르지만 찐한 봉사(?)를 마치고 낚시를 떠나면 조과는 물론이고 꼭 무슨 변괴
가 일어나는 게 내 징크스이다.

박 사장이 구을비로 여름 고기를 잡으려 가자고 날을 잡았다. 참돔 농어 부시리 같은 게 우리가 안 온다고
그 미끈한 몸매를 사정없이 물속에 내던진단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내들이 그렇게 매정해서는 않
된다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고, 우리 또한 다른건 모르지만 미끈하다는 말이 섞이기만 하면 충실한 봉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게 불문률처럼 지켜져 왔다.

출조날이 잡혔으니 그때부터 우리는 신분상 낚시꾼이다. 군통제 지역에서 우리를 민간인과 같게 취급하고
있는 현실이 무지한 군수뇌부의 탓도 있지만, 무엇 보다도 천 만 낚시꾼들의 결집된 힘을 보이지 못한 우
리 낚시꾼의 책임이 더 클것이다. 차기 대권에서는 국내 감성돔 기록을 갱신한 사람에게 몰표을 하는건 어
떨까? 그래야만 저 더러운 짓거리를 국회에서 못할게 아닌가! 이야기가 좀 이상하게 흘렀다. 야턴 우리는
출조날이 잡혔으므로 낚시꾼으로써 몸가짐을 조신해야 하고 가급적 부정한 일은 삼가해야 했었다.

박 사장이 어디서 무슨 첩보를 남모르게 접수 했는지는 모르지만 배를 거제대교 바로 아래에서 탄다고 했
다. 남해를 순식간에 왔다갔다 한다는 엄청난 배을 수배해 놯다고 하는 그의 말에 우리 일행 일곱은 그야
말로 구을비가 바로 눈앞에 있는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마음이 들떠 있었다. 배을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타는 것도 즐거운데 구을비를 그곳에서 단 30분만에 갈 수 있는 배라니 그져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낚시꾼의 신분인 모양이다. 민간인들이 구을비를 그곳에서 30분에 가던 10분에 가던
뭔 감흥이 있으랴...

그래서 이것 저것 준비물을 챙기다는 명목으로 밤이 깊도록 술을 마셨다. 김 정구씨의 '바다 교향시' 라는
노래가 굳이 없드라도 낚시얘기를 하면서 낚시꾼들 끼리 모여 술자리를 함께 하는 게 흥겹다. 우리들 머리
속에는 온통 그져 가물거리는 을비섬의 부셔지는 파도며 자지르질 듯 퍼덕거리는 그곳의 여름 고기들 뿐이
였다.

밤이 늣어 집에 들어온 나는 술기운에 제 본분을 잊었을까! 도끼눈으로 날 쪼아보는 집사람이 왜 그렇게 매
력적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술이란게 참으로 묘하다. 마치 숭어눈에 낀 지방질 같은 게 술인 모양이다. 한
사코 싫다는 집사람을 반우격다짐 비스므리하게 안고 말았다. 그렇게 조신하고 몸가짐을 단정하게 해야
하는 명색이 낚시꾼의 신분으로써 난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아침 반찬이 좀 다른게 놓여진 것을 보고서 내 한숨은 더 깊어만 갔다. 대체 이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그
렇게 오랫 동안 내 곁에 붙어서 징그럽게 괴롭혔던 그 징크스가 자꾸만 돼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을비섬
은 가물거리는 데...

" 오냐~! 내 이번에 그 징크스를 보기 좋게 함 깨뿌야 하겠다. '

얼마간 고심에 잠겼던 나는 일종의 오기 같은 게 생겼을까. 바다 사나이의 소 힘줄 같은 강인한 의지가 그
런 것에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나의 징크스를 향한 강력한 도전 의식이 생기게 되었다. 사실
출조에 앞서 집사람에 며칠 못볼걸 감안해서 봉사를 하고 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꼭 미운게 미운짓만 한
다고 낚시가는 주제에 무슨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니 부정한 일을 하면 안된다느니 하면서 그 동안 내
가 얼마나 얄미운 짓거리를 했을까! 이제는 그걸 깨봐야 겠다라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윽고 출조날이 되었다. 강열한 땡볕을 피해서 오후 시간대로 섬에 집입하기로 작전설정을 마치고 나름대
로 각오를 다짐하며 출발했다. 물론 나의 각오는 각별한 것이고 절대절명(?) 한 것임은 두 말이 필요치 않
을 것이다. 그러기에 가는 도중에도 같은 일행끼리 내내 재밌게 웃고 얘기해도 늘 그런 생각은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했다.

거제대교을 지나 바로 위회전. 그곳에서 얼마 안 가 이름 모를 어느 방파제. 박 사장 말에 의하면 그곳이
선장과 접선할 장소란다. 왁자지껄 차에서 내린 우리는 서둘러 온갖 짐들을 방파제 위로 날랐다. 3박4일을
계획한 출조라 일행들의 짐이 다소 많다. 거진 모든게 마실 물이며 얼음인지라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 아~! 그란디 박 사장... 우리가 탈 배는 어디 있능기구? "

먼저 방파제 끝까지 돌아본 식육점 주인 이 씨가 의아하게 물었다. 방파제라고 해봐야 겨우 30m 쯤 되는지
라 한 눈에 쉽게 보이는 곳이였다. 그리고 보니 그곳에는 병원선이 한 척 정박해 있었고 아주 작은 FRP선
하나가 얇은 밧줄에 묶여서 파도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 설마 저건 아닐끼구...그람 병원선...??!! "

단 두 척의 배만 있는지라 그 큰 병원선을 타고 낚시를 가는 게 아닌지 우리는 모두 하나 같이 참으로 괴이
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난 그때까지 내 징크스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했었다. 아니! 까맣게 잊고 있었는
지 모른다.

" 내 전화루 알아 봤었는 디 배가 쪼매 크다구 혔싱게루 저 쬑깐은 배는 아닐끼구...모리겠다 마! 확실히... "

박 사장도 병원선의 크기를 보고서는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처음 자신만만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다소 위축되어 그 큰 눈알만 심상찮에 굴리지만 그라고 뭔 뽀족한 수가 있겠는가.

" 아! 그란디 뭔 눔의 선장이 먼저 나와 있질 않구 이렇게 기다리게 헌디야... "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입달린 사람들은 다 한 마디씩 투덜거린다. 평소에 그렇게 침착하고 참을성이 깊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갑자기 딴사람으로 되듯이 낚시꾼들도 선착장에 맥없이 죽치고 기달리는 걸 제일
싫어한다.

" 걍쌰끼! 이제 나온다네...쩝~! "

서둘러 박 사장이 선장집에 전화를 하니 우리를 기다리다 선장이 잠에 들었단다. 빠져도 한참 빠진 선장인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뭔 바다를 지키겠는가! 갑판위에 집합시켜 쪼글때기라도 시켜야 하겠다. 그런 부글
거리는 맘을 애써 짙누르며 얼마나 기달렸을까 키기 아주 작은 중년의 남자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잠에 겨
웠는지 술에 찌든건지 모르지만 왠지 불안하게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그러고서 별 내색도 없이 그 작은 FR
P선의 얇은 밧줄을 잡아 당기는 게 아닌가!

" 헉~! 보소 선장요. 설마 그걸 타고 가능건 아닐끼구... "

" 와까능교? 이 배가 우짠다구 그랐능교. "

박 사장이 전화상으로 말한 배는 그게 아니지 않느냐고 따지듯 묻는 말에 그 FRP선외기배 주인인 듯한 그
키 작은 남자는 밧줄을 당기다 말고 오히려 자신이 더 이상하는 듯 우리쪽을 돌아봤다. 하지만 이때도 난
내 징크스의 힘을 느끼지 못했었다.

" 그 배로 이 많은 짐과 우리 전부를 태우고 30분만에 을비도에 갈 수 있겠능교? "

누군가 우리 중에서 불안했던가 다시금 그 배 주인에게 확인 하려는 듯 물었다. 사실 아무리 봐도 믿기자
않는다. 선외기 중에서도 좀 큰게 있기는 하지만 그때 우리가 봤던 그 선외기는 너무 작아서 그게 별따는
재주가 없는 한 그 짐을 다 실고서 그 시간내에 그곳에서 을비섬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였다.

" 걱정말고 짐이나 버득 내리이소! 내가 다 알아서 하먼 될낀데 우짜 그랐능교... "

작은 고추라 했던가 다부지게 그 사람은 먼저 배에 올라가 우리를 올려다 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우리
는 조금 내끼지 않았지만 별 다른 대안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줄지여 짐들을 차곡차곡 내려 쌓았
다.

어찌 되었던 배가 바다위로 미끄러지듯 달려가니 나중에 어찌 되던 그 순간만 만큼은 그져 즐겁다. 그런데
배의 속도는 좀처럼 빠르게 올라서질 못한다. 뒷부분이 푹 물에 잠겨서 겨우 달리는 척 하기는 하지만, 그
것도 물이 잠잠한 바다에서 그렇지 저구쪽 바다로 나오자 이건 그야말로 달리는 게 아니라 걸어가는 속도
이다. 아~! 이때서야 난 내 징크스의 찐한 힘을 갑자기 느끼기 시작했다. 이게 뭔가 잘 못된게 분명해 보였
다.

" 보소! 선장요. 구을비섬이 어딩교? "

나는 뭔가 짚히는 게 있어서 그 선장에게 섬이라도 확실히 알고 가는지 물었다.

" 구을비라모...저기 아닝갑요! "

처음 보였던 작은 고추 같은 땡글땡글한 자세는 어디가고 그도 뭔가가 심상찮다는 듯 땀을 뻘뻘 흘리며 주
변을 두리번거리등만 난데없는 간여를 가리키며 구을비라고 한다.

" 닝기리... 그게 을비섬잉가? "

" 아~! 저기 저기군요. 내 깜박 했다이가! "

참으로 이 출조가 어찌 끝날지 걱정이 되었다. 이번에는 등여를 두고서 을비섬이라고 하니 난 한심스러웠
다. 그는 구을비섬의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무작정 배를 끌고가는 것이다. 그것도 큰 배가 한 번씩 옆으로
지니가면 그 높아진 파도가 잠잠해질때까지 기달렸다 겨우겨우 딸딸거리며 힘들게 일단 매물도쪽으로 갔
다. 그곳에서는 소매물도를 지나야 을비섬이 보인다. 그런걸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져 우리의 지시대로
배를 힘들게 끌고 가는 것이다.

" 으윽~! 우짠다지... "

거제대교를 떠나 30분만에 간다는 을비섬을 아직도 저 멀리 두고서 겨우 2시간여만에 소매물도 등대밑을
통과하니 이미 해는 떨어지고 어스럼한 시아속에 검푸른 물결을 보자 그는 잔뜩 겁을 먹는다. 소매물도를
벗으나면 물색깔이 좀 다르다. 짙은 쪽빛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검푸른게 처음 대하면 오싹 어떤 전
율 같은 게 느껴진다. 그는 여기까지 내 짐작으론 그의 머리털 생기고 처음 나온게 분명해 보였다.

" 고마 이쯤에서 하능게 우짠는교? 더 이상 못가심더... "

넘실거리는 파도에 우리가 봐도 그런 배로는 구을비섬까지 간다는 건 무리 같았다. 시간도 엄청 걸려서 그
시간에 갯바위에 접안 한다는 것도 그런 배로는 어러울 것 같고, 어쩔 수 없다. 일단 반은 소매물도 그것도
접안하기 다소 쉬운 곳에 내리게 되었고 남은 우리는 매물도로 가게 되었다. 배의 마력수가 그러니 무슨 포
인트인들 맘대로 내릴 수 있겠는가. 그 파도속에 그져 무사히 내리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형
편였다.

파도가 잠잠한 곳에 겨우 내린 우리는 서둘러 늣은 밤끼니를 해결하고 늣께나마 참돔 흘림을 시도해 보지
만 그런 곳에서 물이 갈 이유는 없다. 난 내 징크스의 위력앞에 그져 두 손 다 들고 맑은 물 두어잔 걸친 다
음 침낭에 들어가 아무 생각없이 그져 씁쓸하게 잠이나 청했다.

참으로 징크스를 깨는 게 힘들다는 느낌이 든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앞으로는 출조날이 잡히면 아무리 분
단장에 가진 애교를 다 떨더라도 허벅지를 바늘로 찌를지언정 방어전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도
끼눈으로 날 잡아 먹을 듯 위협을 하드라도 좀 더 찐하게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서자 마자 걍 쓸어져 골아
떨어진 척 해야 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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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G 왕초보조사 01-11-30 00:00
ㅎㅎㅎ ㅋㅋㅋ [09/03-13:57]
G nodong2001 01-11-30 01:00
ㅋㅎㅎㅎ~, 대단히 재미 있으신 분이군요. 글 솜씨를 보니 굳이 의무방어전을 치르지 않더라도(그것도 징크스를 감수하면서) 될듯한데... 그나 저나 그 선장도 선장이려니와 배에 탑승한 분들의 배짱도 대단하네요.^^ 담부턴 안전조행 하시길... [09/03-15:51]
G ichobo 01-11-30 00:00
인터넷상에서 이정도의 글을 쓸라면 보통이 정성이 아니고..글 중간중간에 섞여있는 살아가는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처럼 진합니다. 그리고 저는 언젠가 징크스가 깨질것이라는 것에 한표 던질랍니다요.. ^^; 깨지라고 있는 것이 기록과 징크스 아닌가요 ^^; [09/03-16:20]
G 김일석 01-11-30 00:00
오랜만에 뵙는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09/03-16:58]
G 섬원주민 01-11-30 00:00
징크스 땜에 모험을 하셨네요.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입니다. [09/03-21:53]
G 버들피리 01-11-30 00:00
물망상어꾼 님,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그나저나 그 작은 선외기로 구흘비도까지 갈 작정을 하셨다니 잘못했으
면 영 못 볼 뻔 했습니다.ㅎㅎㅎ 안전이 최고지요. 어떻든 그 징크스가 하루바삐 깨어지기를 빌겠습니다. *^^* [09/04-00:03]
G 은칼치 01-11-30 00:00
큰일닐뿐하셧네요 바다배든 사람배든 잘 골라타셔야 화를면합니다 [09/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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