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딴 시골의 한적한 호숫가에서 ....
산모퉁이를 돌아
늬엿늬엿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꼬불꼬불 올라가 멈춰서니
내 고물차는 숨이 찬 지 씩씩거리고
눈 앞에 펼쳐진 초록빛과 산등성이의 곡선
그리고 온갖 새소리는 자지러지는 노을빛과 함께
내 심장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 깊은 산 속에 뎅그라니 놓인 호수엔
숨막힐 듯한 정적이 감돌고......
거울 같은 수면에 비친 산자락의 풍광
마을 어귀에 선 당산나무는 수면위로 그 초라한 가지들을 드러내고
그것이 풍기는 절묘한 조화미가
아, 참 잘 왔구나 생각이 든다.
듬성듬성 아스팔트가 호수 속으로 뻗어있고
철거된 집터들과 주춧돌은 아마도 수몰된 지 꽤 된 듯 하였다.
한 마을이 물 속에 잠겼을 때엔
틀림없이 그만한 생채기가 있었을 것이고
원주민들의 삶의 흔적과 역사가
송두리째 호수 속에 가두어졌으니
마을사람들은 그만큼 그리움이 깊을 것이다.
주섬주섬 자리 잡아 낚싯대를 펴며
내 숨소리가 내 귀에 또렷이 들리는 이 완벽한 정적에
약간의 두려움이 내 어깨를 타고 돌았다.
섬세한 부력조절을 마친 찌를 끼우곤
두 칸 대 하나를 펼치고 나니
새삼 주변풍광에 넋을 잃었다.
입질이야 올 때 되면 오겠지만
바늘 끝에 걸치듯 드리운 떡밥도 갈아주기가 귀찮았다.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들이마셨다.
해질녘 호숫가의 풍광은
언제보아도 설레일만큼 미학적이다.
산 너머로 해가 사라지자
어둠은 급격히 호숫가로 몰려왔다.
저쪽 떨어진 자리에서 한 마리를 걸어 올리는지
희미한 케미라이트 불빛이 춤추었다.
커피 한잔을 호호 불며 마시고 나니
온갖 상념과 고요한 풍광에 빠져들며,
낚시보다 그저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를 걸쳐두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잔 숲을 헤치며 차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어둠은 마치 숯가루처럼
온 산에 짙게 깔리고
기억의 늪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한 소절의 멜로디.
“갈 숲 지나서 산길로 접어 들어가......”
가끔씩 집 주소도 까먹는 내가
그토록 오랜 노래를 정확히 흥얼거릴 수 있는 게
참 신기한 일이다.
김민기의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올라 가는데
유령처럼 희끄무레한 게 시야에 들어왔다.
낡은 기와 몇 장이 바닥에 흐트러져있고
어느 문중에서 세워둔 큰 비석과 사당 같은 곳.
순간 찬바람이 스산하게 날 감싼다.
내 낡아빠진 차 옆엔
들어올 때 없었던 낯선 승용차 한대가 있고
속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다.
짐짓 무심한 듯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고물 지프의 요란한 엔진소리가 무척 크게 느껴졌지만
그나마 그 소리에 위안을 삼으며 시트를 눕혔다.
왠지 을씨년스러운 게 마음이 은근히 심란해졌다.
난 언제나 그랬듯이
집에서 포근하게 이불 덥고 자는 것 보다
갯바위나 텐트 속에서, 또는 차 안에서 쉽게 잠든다.
깊은 산중 호숫가에 홀로 차 안에 있으니
바람소리가 차창을 때리고
나뭇잎이 서걱거리는 소리에 잠이 들려는 순간
옆에서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얼핏 들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듯 했다.
반사적으로 시트를 올리고 창밖을 내다보니
맙소사, 아까 분명히 아무도 없었던 옆의 차 안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아, 순간 얼마나 놀랬던지!
차의 문을 쾅 하고 닫으며 나온 이는
놀랍게도 바다고 민물이고 할 것 없이
오랜 세월 낚시를 즐겨온 친구였다.
뒷좌석에서 침낭을 덮고 자다가 인기척이 있어서 나온 것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서로 장난을 하며 난리를 피웠다.
한 순간 나를 엄습했던
두려움은 씻은 듯 가시고
대자연 속에
이렇게 벗과 함께 있음이 너무 행복했다.
뼘치의 붕어 몇 마리와 앙탈을 즐기며
친구와 보냈던 행복한 하룻밤이
내 낚시인생의 한 페이지에 또 기억되었다.
Neil Young...Running Dry ...Requiem For The Rock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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