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엔 고기보다 사람이....

회원랭킹(월 글등록)


공지사항


NaverBand
낚시인 > 조행기

그 곳엔 고기보다 사람이....

G 1 2,790 2002.06.04 17:09

대양을 향해
포효하듯 선 저 거대한 직벽들.
끝없이 펼쳐진 광대무변의 바다
크고 작은 바위의 뾰족탑들.
작은 섬들마다의 곶부리엔 거센 조류의 힘이 넘실거리고
남해바다 최고의 장렬한 입김을 내뿜는 섬,
그 섬은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다.



여름낚시를 그곳에서 시작하리라 난 진작부터 결심하고 있었다.
그래, 망설임 없이 가자.
고기가 낚이고 안낚이고는 거의 내 관심영역이 아니었다.
오직 작렬하는 여름 갯바위에 서서
그것도 가장 선이 굵은 바다가 전해주는 생명감각(生命感覺)을 흠뻑 느끼고 싶었다.



꼭두새벽
어둠을 뚫고 달린 지 두어 시간
어두움 속에서 온몸으로 반기는 듯 오랜만에 다시 찾은 섬.
후줄근한 느낌
갯바위에 내려서자 난 도시락부터 열었다.
따스한 온기가 아직 그대로인 도시락, 꿀 같은 맛이었다.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
나의 폐부를 톡톡 쏘는 담배연기
그것은 달콤함, 설레임, 그리고 작은 감동이었다.



동이 터 올 무렵에야 몇 번의 심호흡과 준비운동을 마치곤 채비를 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졌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
그것은 갯바위가 내게 주는 속삭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어슴프레 여명이 밝아오면 올수록 이미 그 섬은 머나먼 섬도, 외로운 섬도 아니었다.
눈 닿는 곳마다의 갯바위엔 꿈틀대는 유령같은 그림자들...



크고 작은 섬 둘레의 앉을만한 곳엔
어김없이 사람들이 있어 참으로 생경스런 느낌이 들었다.
아마 대물을 포획하기 위한 갖가지 장비와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리고 어쩌면
고기들도 이미 사람에 길들여져 있을 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낚싯배가 좋아지면서
10여년 전부터 들쑤시기 시작한 절해고도인 그 섬도
이미 인간의 체취에 물씬 젖어있는 듯 했다.



밑밥을 스무주걱 쯤 발밑에 뿌렸다.
그리곤 서서히 가라앉게 하는 저부력의 간소한 채비를 대의 탄력으로 튕기듯 던져 넣었다.
그렇게 던지고 당기기를 몇 번쯤 했을까?
잡어 한 마리도 반응하지 않음에 난 놀랐다.
이게 웬일이지? 강한 의문이 생겼다.
무엇이 문제일까?
수온? 물색? 조류? 물때? 포인트?
얼마나 지났을까?
지독히 간사한 입질이 드문드문 대 끝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몇 번의 헛챔질을 거듭하다가 채비를 두어번 수정하고서야 겨우 잔챙이 한 마릴 건져낼 수 있었다.
거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오버랩 되었다.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잔챙이 몇 마리를 그리 힘들게 건져내고 나서야
난 물속의 조건이 최악의 상태라고 판단하였다.



다시금 채비를 개선했다.
저층을 훑으며 멀리 흘려보낼 고부력의 둔중한 채비를 꾸렸다.
본류에 태워
난바다로 무한정 밑밥과 함께 흘려보내는 낚시
해는 이미 하늘에 걸리고 조금씩 조금씩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고기를 낚아야 하는 단순한 의미의 낚시란 무척 힘들단 생각이 들었다.



떨어져 앉은 동료에게 휴대폰을 날렸더니 입질 한번 못 받았다며 투덜거렸다.
아마 전역의 조건이 비슷한 듯 했다.
‘자세를 가다듬자’라고 되뇌이길 몇 번이었던가?
그런저런 상념과 습관적인 움직임을 계속하던 중에
짧고도 미묘한 느낌이 날 툭 건드렸다.
마치 전광석화처럼…
온몸을 튕기며 자세를 추스렸다.



찌가 잠겨들기 시작하고 2초쯤 지났을까
연하면서도 질긴 나의 개조릴대 끝이 느닷없이 수면 아래로 내리꽂혔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장대는 극한의 휨으로 몸부림치고, 그 힘이 내 한쪽 팔을 사정없이 당길 때
낚싯대 끝은 허망하게도 수면 밖으로 튀어 올라왔다.
맙소사, 목줄이 한방에 터졌다.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난 늘 이랬다.
조건이 악화되어 채비를 예민하게 가져가면 잔챙이 몇 마리야 건질 수 있지만
꼭 이렇게 한번에 뒤통수를 사정없이 얻어맞는 것이었다.
그리곤 상황 끝.
지난번 연화도에서도 그랬다.
갑자기 속이 뜨거워져 옴을 느꼈다.
흐지부지 된 이 판을 뭔가 정리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채비를 걷고는 냉수를 들이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예의 숙련된 자세로 모두들 집중하고 있었다.



아, 역시 이 한방의 터트림으로 오늘 낚시도 끝이 아닐까?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엄습해 왔다.
철수길 배 위에선 입질 한번 못받았다며 아쉬움 그득한 표정으로 제각기 열변을 토했다.
하기야 물속 사정이 악화되면 제 아무리 절해고도인들 어쩔 도리가 없으리라.



그래, 바다란 얼마나 변화무쌍한 곳인가?
낚시란 이름의 함축된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였음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키로 했다.
그랬다.
대물을 포획하는 일에 앞서
저 바다의 미지의 세계에 순응해야지.



오랜만에 다시 찾은 고도(孤島)는 오히려 내게 포용력을 보너스로 주었다.
언제 다시 찾을지도 모르는 그 섬은 그렇게 멀어져갔다.
채비와 조과에 대해
민감한 시기(Sensible Period)가 지났기 때문일까?
선실에서의 통속적인 사후약방문은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과
그것에 동화되어 즐길 줄 아는 멋이 있어
낚시인생의 스펙트럼 속에
지금도 그 섬은
가당찮은 직벽들의 이미지와
장렬한 바다의 이미지로 내 머릴 스칠 뿐….
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1 댓글
G k1238822 02-01-07 22:00
일석님^^ 늘 님의 글을 읽으면서 글의 재미를 흠뻑 누리고 있습니다...늘 감사드립니다^^ [06/06-11:58]
 
포토 제목
게시물이 없습니다.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