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을비도에서......
하나의 거대한 생명인 섬 그지없이 섬세한 해안선과 꿈틀대는 듯한 육중한 몸집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거제도
그 장구한 해안선을 타고 파도를 가르며 동남부를 한 바퀴 돌다 이제 바깥 손대를 지나 매물도 남단의 깎아지른 직벽을 지나 거친 아홉 개의 돌섬, 구을비도에 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오직 꿈이었던 곳.
안경섬, 홍도와 함께 남해동부, 그 드넓은 바다 넘실대는 대한해협, 어느 수중협곡에 숨었을 한 마리 꿈같은 대물을 포획하기 위해 거친 사나이들의 세계, 그 수렵의 기예를 갈고닦으며 꿈을 쫒아 찾아온 대양을 향해 심지를 돋우는 구을비도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른 새벽 이미 갯바위 마다엔 유령 같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어디서 왔는지 서치라이트를 켠 쾌속선이 아침해가 밝도록 덤벼댄다.
이 절해고도에 고기보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붙어살던 놈들은 죄다 끌려 나갔을 테고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온갖 밑밥에 현혹된 철부지 물고기들이나 겨우 걸려 올라올 뿐인 섬. 한 시간이면 예까지 달려올 수 있으니 구을비도는 이제 꿈도 환상도 아니다.
채비를 던져 저 멀리로 흘려준다. 알 수 없는 협곡의 언저리쯤에서 흘러내려오던 밑밥을 주워 먹으며 재수 없는 놈 하나 그것도 아주 큰 놈이 나의 숨겨진 바늘을 삼킬지도 모른다.
놈은 목숨을 걸고 저항할 테고 피차간에 몸서리치는 전율로 몸을 떨 것이다. 놈이 이기면 내가 지는 것이고 내가 이기면 놈은 수명을 다 한다. 그렇게 한판의 밀고 당기는 거친 승부가 있어 그리도 가슴 설레이던 섬 내가 낚시꾼임에 언제나 꿈꾸었던 섬 구을비도
그러나 내겐 이제 더 이상의 꿈이 없는 섬 구을비도 아, 꿈을 잃어 슬픈 섬이여.
상념의 바다 거친 포말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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