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veig's song--grieg
새벽 1시가 지나 피곤에 쩔어 침대에 꼬꾸라지면서
3시 50분에 맞춰둔 휴대폰이 울렸는지 말았는지....
"당신, 새벽에 낚시 간다 해놓고, 지금 다섯시에요"
마누라가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용수철처럼 거실로 튀어나왔다.
현관입구에 잘 챙겨진 장비를 보며 그나마 한숨 돌렸다.
마누라가 급히 챙겨주는 식탁
찬 물에 밥을 말아선 열무김치를 우두둑우두둑 씹으며 옷을 껴입었다.
아무리 바빠도 눈뜨면 밥부터 챙겨먹는 게 우리 집.
그렇게 입으며 먹으며
불과 잠깐 사이에 양치질하고 세수까지 끝냈다.
내 흐리멍텅한 생활태도로 보아서
번개불에 콩 볶아 먹는 이 같은 순발력과 칼 같은 약속습관은
낚시를 제외하곤 어떤 영역에서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네시 반에 왕초보 김사장님과 다대포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미 다섯시 반을 넘겼으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
전화를 해놓고선 동서고가도로를 있는 힘대로 밟았더니
불과 20여분 만에 다대포에 떨어졌다.
역시 난 베스트드라이버임에 틀림없다.....^^
요 며칠 계속되었던 비바람을 동반한 주의보가 아침에야 해제되었다는데
바다는 비교적 평온한 것으로 보였다.
벤쳐 김사장님과의 낚시는 첫출조부터 약속을 어기게 된 셈이다.
평소 그분께 낚시의 이론을 조금씩 가르치다보니 결국 실습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는데
난데없이 너무 똑똑한(?) 제자가 하나 생겨 좋긴 했지만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중간 모자섬에 내려 낚시를 시작했다.
이미 찌낚시 기초이론은 실내에서 다 전수한 바
실제로 필드에서의 채비 날리기, 릴링하기, 랜딩시키기, 미끼 꿰기, 수심 조절하기, 낚싯대 파지법과 밑밥던지기 등...
일련의 모든 과정을 지도해야했는데
다행히 고등어와 전갱이가 마릿수로 잡혀
현장 실습은 최상의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50여 마리의 고등어와 전갱이를 잡는 동안 김사장님은 제법 숙련된 동작으로 움직이고
그 옆에 선 나는 계속 시어머니 같은 잔소리를 해대었다.
집중력이 강한 분인지라 누구보다도 빨리 습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혹 나중에 낚시를 좀 알만할 때쯤이면
청출어람 운운하며 또 이 싸부(?)를 무시하지나 않을지......^^
그렇게 포획한 고등어를 잘 갈무리해서
사무실로 돌아오니 피곤이 엄습하였다.
언제나 마음 착한 마실장께 고등어 뒤처리를 당부하곤 대충 세수만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젠 약속된 2차를 가야했다.
이름하여 금요일 밤의 "왕초보낚시대회"
뭐 내가 시상위원이래나? 뭐래나?
어쨌든 가는 중간에 사랑하는 후배 남기리랑 합류하여 온산방파제로 급히 날라갔다.
온산방파제 오른 쪽 석축방파제엔 이미 엽기적인(?) 왕초보 釣卒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사무만 보던 착하고 얌전한 아가씨들과
그를 훈수할 허접한 낚시꾼들인(?) 미남 총각들이
제각기 들뜬 표정으로 바람 부는 방파제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야밤에 착한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이런 바닷가 풍경은 아무래도 신선하고 생동감이 있다.
낚싯대를 처음 잡아보는 아가씨와 제각기 짝지어
주어진 두 시간 동안에 어떤 고기든 잡아야한다는데......
난 스물 두 살의 착한 사무원 아가씨와 짝을 이루었다.
미끼 꿰는 법을 가르치고
무거운 세칸 반 장대에 찌와 봉돌을 달아
바람부는 방파제에 옹그리고 앉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의 파트너에게 속삭여주었다.
"내가 제일 조력이 깊으니까 틀림없이 일등할거야"
"망상어 잡는 비장의 채비를 했으니 틀림없어"하고 큰 소리를 빵빵 쳤다.
그 비장의 채비란 0.6호 목줄.
아니나 다를까 맨 먼저 첫입질을 받았다.
손바닥만한 망상어 한 마리가 탤탤거리며 올라왔고
우리 조는 만세를 부르며 주위가 떠나가도록 환호했다.
다시 미끼를 꿰어 그 자리에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마리가 올라왔다.
"일등은 우리 꺼야"라고 외치며
주위 釣卒들의 경외심에 가득찬 눈길을 받으며(?) 거의 승리감에 도취되어있을 때였다.
대회시간 종료가 거의 다 되어
옆자리에서 아주 큰 씨알의 망상어 한 마리가 올라왔다.
모두들 석축에서 방파제 위로 올라와
타고 온 차마다 헤드라이트를 환하게 켜곤 계측을 시작
역시 아까 옆자리에서 올렸던 씨알 굵은 망상어가 일등이었다.
우리 조는 아깝게 이등....
시상과 기념촬영을 마치고는 방파제에서의 숯불 고기 파티가 시작되었다.
미리 준비해온 푸짐한 먹거리들, 이렇게 야외에서 파도소리와 더불어,
젊은이들 특유의 수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대충 고기를 먹고는 다시 그 자리를 빠져나와 학리방파제로 3차를 가야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강행군의 종착역이 학리였다.
세시간 정도 자고 시작된 일정 속에
몸은 쓰러질 듯 피곤했지만 온산에서 학리로 양껏 밟았다.
졸리운 눈을 껌뻑이며 가로등 환한 학리방파제로 들어서니 반가운 얼굴들,
멤버들이 그 쓰레기 더미가 수북한 수면 위로 찌를 드리우고 있었다.
반가운 왕고문님, 쥬보님, 멀리 김해서 온 청산도님 가족, 갈매기님, 왕꼬시래기님, 딱걸렸어님...
최근 독자적인 사업을 시작한 쥬보님께 개업기념선물로 뭘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두칸 붕어장대를 정성들여 개조한 왕엽기대(?)세트를 전해주었더니 무척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엽기대를 전해주면서 그만 내 낚시가방을 방파제에 얹어두고 다들 헤어졌다.
온산방파제에 고기 잘 잡힌다는 소식을 전하며
토요일 쉬신다는 고문님과 함께 釣卒들이 놀고있는 온산으로 달려갔다.
심야에 온산에서 학리로, 다시 학리에서 온산으로.....
석축방파제 귀퉁이에서 장대를 펴신 고문님은
시작과 동시에 씨알 좋은 볼락 한 마리를 올리셨다.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차에 들어가 눈을 좀 붙이기로 했다.
꼬박 스물 네시간 동안 대연동에서 다대포로, 다대포에서 온산으로, 온산에서 학리로, 학리에서 다시 온산으로.....
오직 낚시라는 한 가지 주제로 마치 미친 년 널뛰듯......^^
잠이 쏟아지는데도 선뜻 잠을 들이지 못했다.
운전석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왠지 머릿속이 빙빙 도는 것 같은데다 온 몸의 근육이 은근히 쑤시는 느낌...
컨디션이 빵점이었다.
얼핏 잠이 들었나 했는데 왕고문님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고문님도 이내 시트를 눕히곤 잠에 빠지시고
난 머리가 아파 밖으로 나왔다.
젊은 친구들은 여전히 술과 수다, 그리고 낚시로 새벽을 밝히고 있었다.
새벽 세 시쯤 되어서야 온산을 빠져나왔다.
고문님을 차가 있는 일광까지 모셔다드리고는
가랑비가 흩날리는 을씨년스런 새벽길을 열심히 달려 집으로 향했다.
한기가 느껴져 히터를 틀고 달렸더니 졸음이 쏟아져
몇 번이고 꿈을 꾸다 깨다를 반복하였다.
잠깨기 위해 테잎을 꽂아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려니
이미 목이 잠겨 효과도 없는 듯....
그렇게 비몽사몽간에 집으로 오니 마침 입구에 자리 하나가 비어있다.
트렁크를 열어 마구 흩어진 짐들을 내리는데 오 마이 갓 !
내 낚시가방이 없다.
재빨리 필름을 역회전하니
아까 학리 방파제에서 쥬보님 선물 꺼내며
낚시가방을 가로등 아래 열어놓고 그냥 온 것이 떠올랐다.
그 때 시간이 10시 반쯤이었을텐데
벌써 여섯 시간이 경과한 후였다.
아, 머리가 지끈지끈 미칠 지경이었다.
뜰채 세트, 내가 가장 아끼는 낚싯대 두 세트와 직접 만든 밑밥주걱 하며....
짐을 차에다 주섬주섬 되싣고는
차를 돌려 다시 학리로 행했다.
새벽 5시, 이미 사위가 밝아오기 시작했다.
내 고물지프는 예사로 100km를 오르내리는 명차(?)가 되어버렸다.
날이 훤해질 때쯤 학리방파제에 도착했다.
방파제 위를 뛰며 재빨리 가로등 아래를 쳐다보았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비에 젖은 채 내 낚시가방은 열린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아깐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집나간 자식이 천사가 되어 돌아온 느낌!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이젠 여유롭게 집으로 돌아가자 싶어
도로교통법을 완벽하게 준수하며(?)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의 국도를 달려 돌아왔다.
대연동에서 다대포로
다대포에서 영도로
영도에서 온산으로
온산에서 학리로
학리에서 다시 온산으로
온산에서 일광으로
일광에서 집으로
집에서 다시 학리로
학리에서 집으로........
꼬박 하룻동안 낚시 때문에 헤매고 다닌 코스다.
그나마 아무런 사고 없이
이 끔찍한 하루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해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낚시가방을 잊어먹지 않은 게.....
혹시 내가 너무 사람이 좋아선지.....^^
갸우뚱....^^
(웃자고 하는 농담입니다...)
편안하게 음악을 들으며
님들, 즐거운 휴일 맞으세요.....^^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