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날 밤의 숙취와, 어제 밤 이동간의 선잠, 지금 밤10시. 과도한 피로 때문인가? 잠이 오질 않는다. 어쩌다 잠이 든 모양인데 깨운다. 밥 먹으라 깨운다. 시간을 보니 12시 30분. 아, 이 신 새벽, 아니 야밤에 야참도 아니고 아침을 먹으라 깨운다. 그래서 보초를 섰다.
섬들은 포위되었다. 단 한 마리의 적들의 침투도 용납할 수 없다. 철통같은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니, 고기! 네 놈이 이 섬 그늘에서 쉴 생각은 꿈에도 하지마라.
인간에겐지, 고기에겐지 선언하고 한심해져, 갯바위에 쭈그려 잠을 자다 깨다 5시간 만에 아침을 맞았다. 아 깜박 기도를 잊었어. 바다에 나올땐 먼저 기도를 해야함을 잊었어
7시. 물돌이 시간이 가까워오는데 내가 선 섬과 여사이의 물골이 장마철 시냇물 흐르듯 세차 게 뒤로 흐른다. ‘흐~흐~ 이 놈들 오늘 다 죽었어. 저 물길이 잠시 후 바뀌어 이 앞으로 흐르면 닭 밭고랑인지 닭 발가락인지 뽀인트 좋고, 시간 좋고(새벽), 물때 좋고(초들물), 덤으로 저 뒤쪽에서 열심히 품질해대는 조사님들 밑밥까지 온통 이 몸 앞으로 흘러 들테니.’ 고생한 보람이 있구만. 헐~헐~
시간이 흐른다. 여밭이어선가? 만곡부여서인가? 잡어들이 뜬다. 이크 노래미. 이런 또 망상돔이네. 잠시 조류가 내 앞으로 흐르다 철저히 배신을 한다. 날 때보다 더 세차게 뒤로 흐른다. 지구가 거꾸로 도나? 세 시간. 피곤하다. 잔뜩 차려입은 어깨가 무겁다. 도시락 까먹고 바람속에 웅숭그려 또 잠을 잤다. 아 깜박 기도를 잊었어. 바다에 나올땐 먼저 기도를 해야함을 잊었어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잠잠하다. 모두 기도를 하는군. 섬의 모습이 하도 살풍경해 산위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암벽등반이다. 섬은 서서히 부서러져 가고 있었다. 바위는 조각조각 떨어져 흘러내리고 한줌의 흙은 붙들어줄 풀뿌리가 말라버려 빗물에 바람에 씻겨 이제 생명을 담아낼 능력을 거의 잃어가는 듯 했다. 낚시자리 조금 위로는 입추의 여지없이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지린내가 진동한다. 염소다. 알뜰히도 먹었군. 아니, 저 바위위에 선 대왕염소님 좀 보게. 이미 득도하고 진화까지 마쳐 누리끼리한 보호색으로 갈아입었네. 생명의 신비가 따로 없구만. 따로 없어.
기다시피 정상으로 올랐다. 짐작은 했지만 또 하나의 의문이 풀렸다. 식생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온통 잿빛이다. 하늘도, 바다도, 섬도. 앗찔하다. 이 높이쯤이면 번지점프가 가능할까? 오금이 저린다.
오후가 되니, 방어선이 더욱 강화되었다. 상부의 지시인지 일개 소대병력을 더 태우고 들어온 보급선이 요처마다 경계병을 빽빽이 배치하고는 그도 모자라 바다에다 온통 오색무늬 영롱한 기름 크레모아를 한말쯤 뿌리고 검댕 부비트렙을 설치하고는 사라졌다. 임무에 충실한 초병들이 이제 겨우 머리를 들어내는 일급의 적 침투로에 허벅지까지 적셔가며 매복조로 나선다. 기특하다. 사위가 적막하다. 나는 배가 고프다. 교대선은 언제쯤 오나?
희망보기
때는 영등철. 대물고기는 없고 대신, 나를 포함한 대물인간 인양 하는 국적불명의 인간들로 포구는 오늘도 여전히 파시를 이루는데. 오래전부터 내가 두 대나 장만하여 즐겨 쓰던 그 국산 조구업체의 전시 부스(?)가 하, 아무도 눈길한번 주지 않아 썰렁해 보이고, 오소소 떨고 있는 그 아가씨 포함 직원들의 노력이 가상해 커피한잔 얻어 마시며 책임자쯤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은근짜를 붙였다. “아자씨” “..........” “흰 무명한복에 상모 돌리는 농악패 라면 이 극악한 외세에 한번 대적해볼만한 힘을 영등할미가 주질 않겠소? ” “????” 계면쩍게 웃는다. 나도 민망해 계면쩍게 웃는다.
아, 추자도 비평은 없고 추종만 있구나. 개성은 없고 아류만 있구나. 여유로움이란 없고 극성스러움만 넘쳐나는구나. 그래서 추하다. 그 몰개성이, 그 자연의 황폐가, 그 민심의 피폐가 추하다. 추하다 못해 흉측하기까지 하다.
行政의 不在
거듭 말하거니와 낚시꾼에게 추자만 한 섬은 없다. 짐작컨대 (근거 없는 내가 지어낸 상상속의 이야기여서) 그 옛날 한양에서 제주로 귀양가던 선비가 감잎만한 쪽배에 몸을 싣고 이 바다를 지나다 그 허허하고 삭막한 심사를 달랠 길 없어 문득 눈을 들어 처다 보니, 바다 한가운데 가을무우 뽑아 세워놓은 듯, 시퍼렇게 건강한 그림 같은 섬들이 서로 자태를 뽐내며 잠시 마음을 위로 하더라. 하여 그 형상이 하도 가상해 문자속으로 이름을 지어 내리니, 이름하여 추자 篘子(싸리나 대오리로 둥글고 깊게 통처럼 만든 술이나 장 따위를 거르는 기구. 용수)라 하더라.
** 추자의 한자가 들어가지 않네요. 그리고 앞 글에 리플주신 분, 감사한데, 나에게 한 얘기이니 오해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