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울보미소입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선선하지만, 한낮의 햇살은 정말 따가운 시기가 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 15℃에 머물던 수온도 조금씩 오르면서 원도권을 중심으로 긴꼬리 벵에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네요.
특히나 지난 주는 날씨가 정말 좋습니다. 저도 지난 목요일에 시간을 내서 거문도에 다녀왔네요. 한동안 여서도 위주로 출조를 하느라 2년 만에 거문도를 찾았습니다.
출조 일정에 맞춰 미끼로 사용할 크릴을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했습니다. 일반 밑밥 크릴, 염색 크릴, 가공 크릴, 그리고 찐(보일) 크릴까지 모두 4종의 미끼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출조를 통해 여러 종류의 크릴을 사용해 보고 저만의 기준을 정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아직 완성을 못했습니다. 출조 길에 들르는 낚시점에서 판매하는 상품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특히나 찐(보일) 크릴에는 거의 입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 보고 시도해야 할 숙제입니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기에 낚시가 더 재밌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선이 출발하는 녹동항으로 가는 길에 광양에 위치한 "로타리 낚시"에 들렀습니다. 돌돔 낚시인들이 미끼를 공수할 때 애용하는 곳이죠. 거문도 종선 선장님의 부탁으로 돌돔 미끼로 사용할 성게, 참갯지렁이가 담긴 상자 3개를 싣고 녹동항으로 향했습니다.

사선을 타는 곳에 짐을 내리고 일행과 밑밥을 준비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아침 해창 때를 제외하면 한낮에 긴꼬리 벵에돔의 입질을 받기 어렵습니다. 거문도 모든 종선이 4시에 항에서 똑같이 출발하기로 되어 있다고 들어서 조금이나마 더 갯바위 야간 낚시 시간을 확보하고 싶었습니다. 울퉁불퉁한 갯바위보다 훨씬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아직 사선이 출발하려면 30분 정도 남아 있어서 시작했던 밑밥 준비가 한창일 때 항으로 사선이 들어오더니 선장이 한 마디 하네요.
선장 : "밑밥은 오는 길에 낚시점에서 준비하지 뭐 하러 여기서 밑밥을 준비하시냐......"
저 : "출항 1시 아닙니까? 그리고 거문도 현지 종선 출항 4시 아닌가요? 아직 시간 충분하지 않습니까?"
선장 : "출발 안 할 겁니까?"
저 : (......) "받아온 돌돔 미끼는 어디에 둘까요? 그냥 여기 두면 되나요?"
선장 : "예?? 아......여기 두면 됩니다. 주세요."
저 혼자였다면 아마 대신 받아온 미끼만 전달하고 거문도 종선 선장님께 양해를 구한 다음 출항을 취소했을 겁니다. 오랜만에 원도권을 찾은 일행이 있어서 꾹 참고 사선에 오르며 한 마디 했습니다.
저 : "미끼 안 받아 왔으면 벌써 밑밥 준비 다했을 시간입니다. 저한테 뭐가 좋아서 시간 들이고, 기름 써가면서 이거 받아 옵니까? 저는 쓰지도 않는 건데....."
선장 : "......"
저희를 포함한 8명의 낚시인들을 태우고 저희가 들었던 출항 시간보다 15분 일찍 녹동항을 떠났습니다.

두 시간을 달려 거문도에 도착했습니다.
현지 종선인 아티호에 짐을 옮기고 전날 민박에 묵었던 낚시인들까지 합류해서 거문도 갯바위로 향했습니다. 2년 만에 뵙는 강선장님께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항을 돌아 나오자 선장님은 뱃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배치바위로 향했습니다. 민박 손님으로 보이던 2팀을 배치바위에 하선시킨 뒤 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어디에 내리는지 여쭤봤더니 익숙한 "계단바위"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여명 형님, 새엄마는 이계인님과 함께 하선해 즐겁게 낚시했던 곳이네요.
https://blog.naver.com/williams0908/223104717842 / 2023. 5.10. 거문도(계단바위) 벵에돔 낚시

너무 오랫동안 추억에 젖어 있었나 봅니다. "계단바위"라는 얘기를 듣고, 한동안 말이 없는 저를 보시더니, "혹시 내리고 싶은 곳 있으세요? 최근에 고기 잘 나오긴 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네요 ^^;;
급하게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고 하선을 했습니다.
민박의 저녁 식사 시간에는 대부분 낚시인이 다음 날 내리고 싶은 곳을 선장님과 정합니다. 전날 민박에 묵었던 것으로 보이는 낚시인들 다음으로 제 이름을 호명했던 것을 저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좋은 자리라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잘 나오는 자리라는 것을 하선하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널려 있는 밑밥 자국과 고인 물이 풍기는 악취가 저희를 맞았습니다. 짐을 높은 곳에 올리고 바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녹동항에서 못다 한 밑밥 준비를 마치고 바로 채비를 드리웠습니다.
새벽 5시를 지나 조금씩 밝아 오는 긴장감 넘치는 갯바위에 농어가 첫 고기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제철이라는 것이 의심될 정도로 살집이 없었네요. 바로 돌려보내고 낚시를 이어갔습니다.

갯바위 가장자리를 흐르던 구멍찌가 급하게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원한 입질, 끝까지 파고드는 움직임이 긴꼬리 벵에돔임을 알려주고 있었네요. 30cm를 조금 넘기는 작은 씨알임에도 저 미끈한 어체는 언제 봐도 정말 멋집니다 ^^"
벵에돔 낚시에서 첫 밑밥이 들어가고 집어가 되려면 최소 15분 정도는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완전히 날이 밝지 않더라도 밑밥이 들어가기 시작해야 낚시를 시작한 의미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항에서 미리 밑밥을 준비하려고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긴꼬리 벵에돔 이후 계속 벵에돔의 입질이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질이 들어오는 거리가 멀어지고, 씨알이 작아졌네요.
낚이는 벵에돔들의 평균 씨알은 25cm~30cm 사이였습니다. 마릿수 재미를 감안하더라도 멀리서 거문도를 찾은 낚시인들에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씨알이었습니다.

씨알 면에서 남은 아쉬움은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다 잊었습니다. 원도권에서 이렇게 낚시하기 좋은 날이 또 있었을까요.
뒤쪽으로 솟아있는 갯바위가 이날 예보되어 있던 북동풍을 완전히 막아줘서 채비와 밑밥을 제가 원하는 곳으로 날리기 쉬웠습니다.
점차 오름세로 돌아선 수온이 반가웠습니다. 수온의 절대적인 수치보다 최근의 경향이 더 중요하지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전날보다 0.1℃라도 오를 때 좋은 조황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류는 조금 아쉬웠네요. 10물이라 힘차게 뻗어가는 조류를 기대했는데, 낚시하는 내내 수시로 조류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특히나 갯바위로 다가올 때는 수면의 몰이 함께 떠내려와 낚시를 쉬어야 했습니다.
왼쪽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갯바위가 배치바위 1번 자리(높은 자리)이고, 그 옆이 얼마 전 여명 형님이 하선했던 2번 자리(낮은 자리)입니다.
이곳 계단바위는 최대 3명까지 낚시가 가능한 곳입니다. 오른쪽 배댄자리에 함께했던 근선이가 자리를 먼저 잡았네요. 허리가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발판이 편한 곳으로 정하게 했습니다.
근선이 자리 오른쪽 밑에 길게 수중여가 뻗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재작년에 제가 그 수중여에 목줄을 몇 번 쓸렸던 기억이 났습니다.

벵에돔 낚시에서 대표적인 잡어는 망상어와 자리돔입니다.
이날도 여러 마리의 망상어가 크릴을 물고 올라왔습니다. 망상어는 특이하게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데, 꼬리부터 나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저 빵빵한 망상어 뱃속에도 많은 새끼가 들어있을 듯했습니다. 곱게 바늘을 빼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네요.

8시 30분쯤 도시락이 배달되었습니다. 새벽부터 집중하며 3시간 반 넘게 낚시를 하면서 슬슬 허기가 지는 시간대였습니다.
조금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NEW 제립민박"의 저녁 식사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음식 맛이 좋은 곳입니다. 도시락도 마찬가지겠지요.

갓 지은 밥이 뜨끈뜨끈하고, 반찬 가짓수도 정말 많았습니다. 제 입맛에는 삿갓조개(배말) 조림이 특히 맛있었네요. 저 정도 크기면 요리하기 전에는 꽤 컸을 것 같아요. 쫄깃쫄깃 씹는 맛이 좋았습니다 ^^"

냉장고에 있던 오이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시원하게 해서 씹어 먹으면 입가심에 좋더라고요. 제가 낚시할 때 좋아하는 후식입니다!

식사 후에도 벵에돔은 꾸준히 모습을 보였습니다.
잠시 낚시를 쉬었다가 다시 채비를 넣었을 때 상대적으로 큰 씨알의 벵에돔이 입질할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30cm 언저리의 벵에돔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계단바위의 왼쪽 자리는 높은 편이어서 잡어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자리돔, 망상어, 볼락 등 많은 잡어들이 갯바위 앞쪽에 가득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30m 이상 떨어진 곳까지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가끔 벵에돔들이 부상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밑밥을 치면 자리돔이 먼저 반응을 하다가 벵에돔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에 맞춰 밑밥을 30m 이상 주고, 10~15초 후에 밑밥보다 채비를 멀리 던져주면서 낚시를 했네요. 벵에돔의 입질층에 따라 적당히 봉돌을 가감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약속된 철수 시간이 오후 1시 보다 30분 일찍 철수를 하자는 선장님의 전화를 받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캐스팅에도 벵에돔이 올라왔습니다.
평년보다 수온이 낮아도 역시 절기의 흐름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완연한 벵에돔 낚시의 시즌이 시작되었네요.

이날의 기준치는 25cm로 정했습니다. 작은 녀석들은 바로 돌려보냈음에도 철수할 때는 15마리 정도 벵에돔이 살림통에 들어 있었네요. 양수기가 없던 예전이었다면, 꼭 살려야 하는 5마리 정도만 남기고 다 돌려 보냈을 듯합니다 ^^"
이날 근선이와 둘이서 50마리 정도의 벵에돔을 만났습니다. 30분 일찍 철수해야 된다는 아쉬움이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마릿수 낚시를 했습니다.

12시 30분 저 멀리서 아티호가 갯바위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거문도 역시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낚시인들 입장에서 더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가끔은 예전의 거문도가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쯔리겐FG 거제지구에서 같이 활동하는 근선입니다. 쯔리겐FG 가입한지 1년이 채 안 되었지만, 동갑이라 최근 동출 횟수가 잦습니다.
근선이는 거문도에 안 와본지 정말 오래되었다고 하네요. 오랜만의 거문도 출조가 즐거웠다는 말을 듣고 출조를 준비한 제 마음도 한결 편해졌습니다.

발판이 편하고, 너울이 높으면 뒤로 올라갈 공간도 충분한 "계단바위"입니다. 거문도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해가 늦게 뜬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설레며 이곳에 하선하겠지요. 깨끗하게 유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황 사진을 남겨드린 다음, 상대적으로 작은 벵에돔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결국 여섯 마리만 챙겼습니다. 어차피 조황 사진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갯바위에서 살려줬겠지요.
근선이가 조과를 가져가지 않는다며 씨알급 벵에돔들을 몇 마리 제 살림통에 넣어줬네요. 30cm가 넘는 씨알의 벵에돔 여섯 마리면 저희 가족이 배불리 맛보고 남을 정도의 양입니다.

새벽의 좋지 않았던 기분은 이미 다 날려보낸 채 사선에 올랐습니다.
싱싱하게 조과를 살릴 수 있는 해수 펌프가 마음에 들었네요. 점점 날씨가 더워지게 되면 특히 중요한 부분이겠지요. 2시간이 흘러 녹동항에 도착했을 때도 싱싱하게 벵에돔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번 출조를 앞두고 구입한 TC-212 쯔리겐 모자도 마음에 듭니다. 챙이 길고, 메쉬 소재로 되어 있어서 올여름에 잘 사용할 것 같습니다.
조끼와 모자를 한 쪽에 잘 세워두고, 기절한 듯 잠이 들었습니다.

고흥 녹동권을 찾은 낚시인들에게 정말 유명한 곳이죠. "과역기사식당"에 들러 삼겹살 백반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약간 오른 듯한 가격은 애써 모른 채 하고, 변함없는 맛에 만족했습니다. 추억에 대한 비용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

벵에돔 세 마리를 썰어서 가족들과 둘러앉았습니다. 사실 저 접시에 올리지 못한 회도 있었습니다. 아내가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이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긴꼬리 벵에돔의 식감도 좋았지만 지금 시기에는 통통한 일반 벵에돔의 맛이 더 좋게 느껴졌습니다. 기름기가 올라서 정말 고소했습니다. 손질할 때 뱃속 내장에 가득 껴 있던 지방을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남은 회는 초밥으로 만들어 다음날 아침 식사로 냈습니다. 아내,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저도 몇 점을 맛보았네요. 배꼽살, 지느러미 살 부위가 특히 맛있었습니다.
2년 만의 거문도 출조였습니다.
출발 전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지만,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라는 말이 딱 생각나는 출조였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어느 한곳만 고집하지 말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경험을 쌓는 것이 제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많이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녁 맛있게 드시고, 다가오는 휴일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즐거운 출조를 마치며 돌아오는 배 안에서 슬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의 고향, 저의 예전 직장이 있던 포항에서 전해진 소식에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네요. 지난 주말 시간을 내어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걱정해 주시며 연락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모든 분들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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