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대한등, 형님과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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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대한등, 형님과 수영

G 1 2,205 2002.11.20 22:42
생각이 납니다. 둘째 형이 그 친구들과 낚시 간다고 뗀마를 타고 나갔던 그 날이 떠 오릅니다.
그 배가 떠날 때 일기가 좋았는지는 모릅니다. 이웃 사람이 집으로 달려와 덴바람에 이집 둘째 아이가
탄 배가 항구 밖으로 떠내려 갔다고 이젠 보이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큰형, 저랑 식구들은 바다로 달려 나갔습니다. 이미 3키로 정도되는 항구안에는 배가 없었습니다.
지세포항을 벗어나면 바로 태평양 수평선이 보입니다. 큰형이 칼 하나를 차고 그 추운 늦가을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처 나갔습니다. 아마 큰형이 고교 갖 졸업했을 때쯤이었지 싶습니다.

헤엄을 쳐서 3키로 이상 앞선, 바람에 떠내려 가고있는 배를 잡을 수 없을 건 뻔한데도 발을 동동 굴리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들어간 큰형의 몸체도 멀어져 보이지 않을 만큼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들 둘을 한꺼번에 다 잃을 상황이었으니, 부모님의 마음이야...

마을에 한 두척 있던 통통배! 산중에 사는 그 선장을 찾아와 출발하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울고 고함치고 뒹굴던 마침내 목이 쉬어버린 아버지의 눈물범벅된 발악은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통통배는 한참만에 뗀마 한 척을 뒤에 달고 팬티 하나만 달랑 걸친채 사금파리 처럼 떨고있던 큰형과
작은 형, 그 친구들을 싣고 항구에 닿았습니다. 뗀마에 탔던 형들도 모두 물에 빠져 옷이 다 젖었더군요.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바람에 밀리자 전부 물에 들어가 헤엄을 쳐서 배를 끌어 보았다더군요.

아버지는 밤에만 낚시를 다녔더랬습니다. 저녁 오고 어스럼이 밀려올 때 산능선을 넘어가셨다가 밤 열두 시나 한 시쯤에 귀가하셨습니다. 심약하신 어머니는 언제나 불안한 마음으로 초조하게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셨는데, 우리 오형제는 그때부터 위병소 보초를 섰습니다.

마루 오른쪽 끝에 돋움발로 서면 산능선이 보입니다. 그 추운날 얇은 내복 하나 입고 마루에 나가 10여분씩 아버지가 들고 간 대한등 불빛이 나타나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낚시하는 아저씨들이 갯바위에서 많이도 죽었습니다. 이름난 꾼들은 거의 다 바다에서 돌아가셨죠.

맨날 밤마다 남편의 생사를 걱정하여 가슴이 새카맣게 타버리던 어머니, 낮이면 홍개비 파고, 모랫개 잡고, 대한등 닦고, 밤이면 보초 서던 우리 형제들, 행여 낮에 어머니가 실수로 아버지 대나무 낚시대를 걸어 넘었다 하면 쏟아지던 아버지의 불호령에 귀가 아프고...아버지는 가족의 심혈을 짜서 낚시를 하셨습니다.

지금은 대낮에도 진입하고 빠져 나오기가 무섭기 까지 한, 그 깍아지른 절벽들을 야밤중에 오르내리며, 도깨비불을 몇 번씩이나 보면서 온몸에 멍들도록 도망치면서도, 고기 몇 마리 잡아 오지 않으면 쌀을 구하지 못하던 가난이 아버지로 하여금 그 힘들고 무서운 밤낚시를 하게 하였답니다.

아버지는 강직한 성격때문에 직장을 제법 많이 옮겼으며, 재취업까지의 실업기간동안 밤낚시를 주업으로 하셨답니다. 남을 속이지 않고 청렴결백하게 살아 온 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더 고마워 집니다.
아버지의 생이 올곧았다는 것이 익명성이 통하지 않는 이 시골에선 자식들에겐 뿌듯한 긍지가 되더군요.

부모의 자식사랑과 형제간의 우애는 다른 여러 사건에서도 많이 확인하였지만, 누군가 아주 위태롭고
곤궁에 처했을때만 발휘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부모형제는 제 배우자, 자식, 그 이상으로 저의 어려움에 가장 마음 아파하고 도와주려하는 사람들인데....전 그분들에게 무얼 제대로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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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댓글
G 하이코스 01-11-30 00:00


가고싶습니다. 님의글을 읽고난기분은 .아마득한 옛날... 내고향.. 갯가옆에와있는듯한 환상에 ......글잘읽었습니다. --[11/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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