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에 취해, 낚시에 취해, 우정에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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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광에 취해, 낚시에 취해, 우정에 취해...

G 13 2,016 2003.04.04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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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광에 취해, 낚시에 취해, 우정에 취해...





      김일석




      사자섬과 푸렝이가 눈에 들어오니 이제 다 왔구나 싶었다.
      육백톤이 넘는 배가 완도항을 떠나서
      마치 기어오듯 세 시간 가까이 지루하게 달려왔다.
      부산을 출발한지 꼬박 12시간 만에 추자에 도착한 셈.
      언제나 그랬지만 이렇게 멀리 떠나올 때면
      살짝살짝 깜빡잠이라도 좀 자 두면 나을텐데,
      객실의 소란스러움과 원거리 출조의 은근한 설레임이 겹쳐
      잠 한 숨 못자고 밤을 꼬박 새기 일쑤이다.



      작은 포구에 배가 들어오니 갑자기 웅성거리고
      몇대의 차들이 오가며 눈에 뛰게 생기가 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와 그 사이를 관통한 도로의 곡선이 정겹고
      즐비한 민박집 간판들과 단골꾼들을 마중하는 차들은
      포구에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자주 못만나니 그저 한번씩 만날 때마다 살갑기만한 가이드 박실장이
      고물 트럭을 타고 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낚시를 위해 이 머나먼 섬까지 달려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내겐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다.



      좁은 길을 달려 산등성이를 넘으니
      군데군데 펼쳐진 유채군락과 연갈색의 갈대숲이 내 눈을 찌르고
      민박집에 들어서니
      '파도'란 이름을 가진 듬직한 개는 몸을 부비며 손님을 환영한다.
      "이 개가 혹시 나를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싶으니
      친구를 만난듯 반가웠다.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이 끝자락 변방의 섬에 들어와
      야인(野人)이 되어버린 선배를 바라보면
      그저 허허로운 표정이어서
      내 우정을 쉬 드러내지 못하는 난 나대로 안달하고
      오랜 지기를 만난 듯 반겨주는 식구들은 모두가 살갑다.



      여장을 풀자마자 우리 낚시꾼들은 마치 훈련된 병사마냥
      오후 낚시를 위한 장비부터 부리나케 챙겨두곤, 식탁에 앉았다.
      닭고기 찜과 갖은 해산물 반찬
      생선구이와 얼큰한 된장찌게가 피곤에 지친 내게 식욕을 돋구고
      예의 오후낚시의 포인트와 낚시방법에 대한 잠깐의 토론이 오갔다.



      다들 초면인 낚시꾼이지만 식탁에 앉아
      술 한잔씩 주거니받거니 어깨를 툭툭 치다보면 금새 친근한 느낌이 들고
      포인트에 내릴 때면 마치 내 것처럼
      서로 짐을 건네며 덕담을 아끼지않으니
      역시 낚시꾼은 낚시꾼이다.


      광주에서 온 꾼들을 섬생이와 수영여에 내려주곤
      우린 마치 동네낚시터 같은 널찍한 본섬 갯바위에 내렸다.
      누가 봐도 포인트 같지않을
      꽤나 허접해보이는 얕은 수심의 여밭에 내려
      동행한 후배랑 낚시를 시작했다.
      거뭇거뭇 수중여가 여기저기 빠져있는 데다
      수심은 불과 4~6m에 불과하고 해초가 전역에 넓게 자라있어
      내심 큰 고길 걸어도 걱정인 포인트였다.



      두어시간 꾸준하게 밑밥을 뿌려주며 원투를 반복하는데
      만조가 가까워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깔짝거리는 예신이 여러차례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를 살며시 당겼다가 늦추어주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갑자기 내가 선 갯바위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무아의 경지로 빠져들고
      눈으로, 손으로 전해오는
      섬세한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원투한 채비를 조금씩 조금씩 끌고 들어오면서 느끼는
      이 까탈스런 느낌들과 집중은
      갯바위낚시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토독~토독~하는 미세한 느낌이
      천천히 끌어주던 대끝을 타고 전해옴과 동시에
      힘차게 포물선을 그리며 챔질을 했다.
      일순 내리꽂히는 탄력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는
      '크다!' 신음처럼 외치며 대를 치켜들었다.



      하늘로 쳐 든 두 손으로 버티기를 시작하는데
      워낙에 여밭인 데다 수초를 휘감으면 큰일이다 싶어
      오른 쪽 갯바위로 몇 발자국 뛰었다.
      큰 놈이다싶으니 마음은 바쁘기만하고
      내 호흡은 거칠어졌다.



      녀석이 달리는 곳으로 온 몸을 일사불란하게 따라 움직이며
      브레이크를 놓아줄까 어쩔까 고민하면서 몇번의 릴링을 계속하던 중에
      아뿔싸, 결국은 수초를 휘감고 말았다.
      한껏 휘어진 대가 몇번 출렁이더니 아예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이럴수가!"



      원줄을 풀고는 10분 여를 기다렸지만 미동도 없다.
      아마 수초를 단단히 휘감은 모양이었다.
      줄을 타고 물속으로 들어가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가슴팍 넘어가는 물 속으론 생전 들어가본 적이 없는 오리지널 깡통인 데다
      다시 채비를 하는게 빠르겠다 싶어 억지로 터트리고 말았다.
      첫고기를 수초탓에 아쉽게 터트리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조급해지던지...



      채비를 한 단계 강하게 셋팅한 후
      초날물이 될 때까지 서너번의 입질을 받았는데
      마음이 급하니 고기가 크든 작든 뜰채고 뭐고 없이 무조건 강제집행 하였다.
      나의 파이팅을 지켜보던 후배가
      무슨 낚시를 그리 무식하게 하느냐며 놀리고 있었지만
      나로선 어쩔 수가 없는 일.



      산에서 물이 내려오는 넓은 물칸이 있어 고기를 던져두었는데
      정작 철수배가 와서 물칸에 갔더니 한 마리 밖에 없다.
      뜰채로 여기저기를 휘저어보았지만
      돌틈에 꼭꼭 숨었는지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태풍이 한 차례 갯바위를 휩쓸기까지는
      아마 민물에서 살아야할텐데 튼튼하게 잘 살 수 있을런지...
      다음에 다시 이 포인트로 와
      물칸에서 고기나 건질 수 있으면 꽝이라도 면할테지만......^^



      직구도의 호쾌한 직벽 틈바구니에서
      후배는 낚시가방을 바다에 떠내려보내고
      마을 가까이 여밭 포인트에선
      때론 숭어를 걸어, 때론 감생이를 걸어 실랑이를 하다보니
      추자 일정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최근 대물감생이가 낱마리로 올라온 부속섬 본류대 포인트에서
      잠깐이나마 둔중한 채비와 밑밥을 원투하다보니
      격한 운동을 한 것 같아 속이 시원하였다.



      만만찮은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는 본섬 도보포인트에서
      잠시 오후물때를 공략하다가
      결국 한방 터트려먹고는 돌아와 짐을 쌌다.
      뜰채도 없이 빵빵한 씨알의 감생이 한 마리를 끌어낸 후배는
      여러분들께 축하를 받으며
      자신이 "몰낚시전문가"라며 넉살을 떨고...



      말끔하게 씻고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당을 나서니
      다들 아쉬운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나눈다.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지만
      며칠동안 정이 들대로 들어서인지 내심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인데
      또 얼마만에 추자 갯바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
      악수를 하며 꼭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예의 느림보배로 엎치락뒤치락 깜빡잠에 빠졌다 깨니
      완도항은 어느 새 밤이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낚시를 마치고 차에 오르면
      집에 갈 일이 꿈만 같은데
      휴게소에서 잠시 깊은 잠에 빠졌다가
      퀭한 눈을 비비며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의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운치가 그저그만이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과 은근히 번지는 안개...
      도로변에 핀 매화꽃이며 연초록의 하늘거리는 버들가지
      그 싱싱한 이른 새벽 봄풍경이 그림같이 좋다.
      단 며칠간이었지만
      풍광에 취해
      낚시에 취해
      우정에 취해
      일상(日常)을 수혈하고 돌아오니 정말 살 것만 같다.




      Kansas.....Dust in the wind
      photo...http://www.chuja-fish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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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댓글
G 야물이아빠 02-11-30 00:00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04/04-15:47]
-

G 캄피대 02-11-30 00:00
울산입니다. 오랜만에 글 올리셨군요. Refresh 되시어 무척 상쾌해 보이십니다.
집에 가면 꼭 연락드리고 만나뵈리라 생각하지만 늘상 시간과 가족에 쫒겨
늦은 시간 올라오곤 합니다.
항상 이 우리의 놀이터를 정화해주시고 따뜻함을 잃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는
님과 몇분께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04/04-19:14]
-

G 김일석 02-11-30 00:00
야물이 아빠님, 감사해요~아듸가 참 정겹군요...
캄피대님, 언제 시간나면 차 한잔 해요~
재작년까진 울산에 거의 매일 갔었는데, 요즘은 잘 안가지는군요...
늘 건강하시고 낚시를 통해 꼭 만나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안녕히.....
-[04/0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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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찌매듭 02-11-30 00:00
질~풍~! 빨리온~나~ 다도에서 기다린데이~^^ 질풍좋아하는 꼬냑과 맥주도 한드럼 갖다놨다우~~^^;; 다도에서... -[04/04-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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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김일석 02-11-30 00:00
네~~곧 가겠습니다.
밤 새 마감하고 오늘은 종일 오락가락했답니다.
내일 오후에 부산 출발 예정입니다.
하루쯤 늦게 돌아가시면 좋겠어요~~
가서 뵙지요....안녕히.... -[04/04-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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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신천옹 02-11-30 00:00
취해라..
견딜려면 취해야하한다.
-- 보들레르 -- -[04/05-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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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김일석 02-11-30 00:00
신천옹님, 반갑습니다.
학창시절 보들레르와 랭보의 파격에 매력을 느끼곤 했었는데, 좋은 글귀를 주셨군요~
다음에 신천옹님의 좋은 글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세요...
-[04/05-00:57]
-

G 신천옹 02-11-30 00:00
청춘의 한시대. 필독 악의 꽃 입니다.
덧 붙여 하리할라의 황야의 이리 ( H.헷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위고)
타협할수 없었던 우울한 시절의 동반 이었지요. -[04/05-02:07]
-

G 섬원주민 02-11-30 00:00
좋은 분들이 많이 갔었군요. 글을 읽으니 저도 다녀온 기분입니다. -[04/07-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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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gongju31 02-12-01 07:00
흠~ 또 처이 가슴에 불을 댕기시군요 ^^
나뻐요....
-[04/07-20:14]
-

G 신천옹 02-11-30 00:00
어제군요. 지상에 유일한 흔적인 아들놈을 입대 시키고 밤늦게 돌아 왔습니다.
봄비가 옵니다.
감미로운 Kansas.
그리고 제가 펼쳐보는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무디 블루스...
한없이 빠져드는 Quick silver ( Just For love )
독서와 음악은 해후라고 감히 정의해 봅니다.
감사 합니다.
-[04/08-03:11]
-

G 김일석 02-11-30 00:00
갑장 원주민님, 반갑습니다.
언제 갯바위에서 한번 만나야할텐데 말이지요.
공주님....너무 웃겼어요~!!
불을 질러 죄송합니다....^^
신천옹님, 매니아시군요.
아마도 퀵실버 메신저 서비스란 이름을 웹상에서 처음 접합니다.
계신 곳이 어디신지....^^
-[04/08-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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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입질팍팍 02-11-30 00:00
김일석님 님의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매번 님의 글을 대할때마다 느끼는 생각이지만 마치 한편의 잔잔한 영화를 보는듯한 한귀절의 시를 음미 하는듯한....그 뭐랄까? 아무튼 표현 하기는 뭣하지만 제가 그자리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 드리고요 정말 한번쯤 뵙고 싶은 분입니다. -[04/10-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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