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조길에 만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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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조길에 만나는 사람들.

G 7 1,900 2003.05.0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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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조길에 만나는 사람들.



    김일석






    오래 전
    남도의 머나먼 섬으로 마음 먹고 낚시 한번 갈라치면,
    그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져
    꼭 어릴 적 수학여행 가는 기분으로 낚시를 다녔다.



    요즘에야 길 좋고 차 좋은 데다
    모든 게 숙련되어 한결 가깝게 느끼고 있지만...
    여전히 머나먼 출조길은 여행의 즐거움이 넘치고
    내 머릿속 어딘가 쯤에다
    여행의 다양한 질감을 저장하기 위해 애쓴다.



    낮은 구릉과 잘 어울리는
    위세 좋은 산을 넘고 넘어야 하고,
    초록빛이 유난히 깨끗해보이는
    논밭과 시골길을 끝없이 스쳐지나야 하며
    평원과 산촌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남도 특유의 저 아늑한 풍광 사이사이로
    지루하지 않을만큼 드문드문 자리 잡은
    읍면 소재지로 보이는 번화가도 지나야 한다.



    눈에 익은 교차로 마다에 서있는 이정표를
    하나 둘씩 읽으며 지나다보면
    드디어 출항지를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고,
    장거리 운전으로 늘어졌던 기분과 얼마간의 지루함은
    서서히 설레임으로 충전되기 시작하는 먼 출조길.



    아무리 잘 봐줘도 몇군데만 빼고는 전혀 고속도로 같지않은
    허접하고 꼬불꼬불한 남해고속도로.
    도처에 늘린 감시카메라를 피해 질주하다
    혹 재수없이 걸리면
    곧바로 만만찮은 액수의 출혈과 징벌이 따르기도 하는
    그 머나먼 출조길은 언제나 가슴 설레이는 한 판의 여행이다.



    화장실 하나 빼고는 마음에 드는 게 없는
    요즈음의 휴게소에서 그 맛 없고 비싼 음식을 사먹어가며,
    지루한 운전 중에 꾸벅꾸벅 졸다가는
    여차하면 골로가는(?) 그런 출조길.
    옛날엔 공유할 만한 정보의 양이 너무 부족하였기 때문에
    순전히 스스로 낚시를 다니며
    온몸으로 그 다양한 포인트를 직접 체득해야 했다.



    오히려 그 시절엔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퍼붓는 비포장길을 달려도
    바다에 간다는 낭만이 넘쳤고,
    조행길에 들르게 되는 부식가게며 식당, 낚시방은
    언제나 사랑방 같은 분위기를 풍겨 좋았다.




    멀리 다른 지역에서 왔다고
    유난히 반기는 그분들과 쾌활한 인사를 나누다보면
    남도 특유의 인정과 넉넉함을 크게 느낄 수가 있어 좋았다.
    언제 보아도 아기자기한 풍광이 좋고
    그곳 사람들의 질펀한 사투리와
    때묻지않은 눈빛이 좋았다.
    조행 중에 만나게 되는 사람은 가능한 한 기억하려고 애 쓰고
    그를 혹시 다시 만나게 되면
    그지없이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곤 했다.



    자주 가는 부식가게 영감님은
    꼭두새벽에 단잠을 깨워도
    멀리서 잊지않고 자신의 집을 찾아주는 낚시꾼을 대하는 표정이 언제나 푸근하다.
    잠옷 차림으로 나와 초장, 된장이며 김치, 커피, 라면 따위를 척척 챙겨주며
    때론 약간씩의 첨가되는 물품은 덤으로 얹어주기도 한다.
    영감님의 덤으로 주는 습관을 잘 아는 짖궂은 조우 중엔
    일차 계산을 마치고나면 의례히 "아차~"하며
    면장갑 따위를 쪼잔하게 얻어나오기도 해서 동료의 눈총을 받기도 하고......



    출항지에 가까워 늘 꼭두새벽에야 만나게 되는
    완도항의 뚱뚱한 곰탕집 아주머니는
    여전히 어머니처럼, 누님처럼 낚시꾼들을 반기고
    추운 겨울, 출항시간이 좀 넉넉히 남았을 경우엔
    잠깐 한 숨 붙이고 갈 수 있도록
    식당방 보일러를 올려 방을 데피기도 한다.



    더구나 남도 구석의 여느 낚시방 같은 경우엔
    멀리 부산에서 잊지않고 찾아주니 고마워서
    그저 만나면 언제나 묵직하니 살갑기만 하다.
    오랜만에 듬직한 사투리로 반겨주는 주인장을 만나면
    서로가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때론 일상의 덕담을 주고받으며 예외없이 친근감을 나누곤 한다.



    저 멀리 남도의 끝자락
    불과 몇가구에 불과한 외로운 섬에 둥지를 튼 민박집 내외는
    바람 많은 그 섬에서
    가뭄에 콩 나듯 찾는 낚시꾼들을 만나면
    그저 좋아서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십 수년째 오직 배질만 하는 통통배 선장은
    밤만 되면 민박집으로 찾아와
    이름도 모르는 낚시꾼들에게 술 한잔 권하기도 한다.
    한번이라도 다녀갔던 사람이
    조금이라도 아는 체 하면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재워주는 것도 예사일 정도니,
    사람이 그리워 어쩔 줄 모르는 외딴 섬엔
    내가 낚시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큰 배는 큰 배 대로 작은 배는 작은 배 대로
    출항지의 선장 또한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터여서
    지긋하게 서로를 바라볼 줄 안다.
    서로 다른 터에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고작 몇 마디의 말로 서로를 설명하려들면
    언제나 표현과 전달에 한계를 느끼는 법.
    한번 만나고 두번 만나며 세월이 흐르다보면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서로가 신의를 느껴왔기 때문에
    뱃전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서로에겐 진지한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된다.



    아마도 출조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그저 단순한 상행위이기 이전에
    우리 낚시꾼들과 깊은 동질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낚시를 잠깐 하고 말 게 아닌 이상
    공급자와 수요자간의 동질감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와락~생기는 것은 물론 아닐테고
    또 누구나 꼭 같이 그런 동질감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텐데
    오랜 시간 꾸준하게 지켜보며
    서로에게 감사를 느낄 때
    우리는 분명히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가고싶은 낚시방과 식당이 늘 거기에 있고
    가고싶은 그 포구엔
    변함없이 나를 기억하는 그 선장이 있어서 내가 편안해지듯,
    내가 낚시꾼으로
    열심히 살고 있어야 그들도 안심할테지.
    나는 그들의 단골이고
    그들은 나의 단골이니.....



    출조길에 만나는 소중한 나의 단골고객.
    거제, 통영, 광양, 순천, 여수, 고흥, 완도, 해남, 목포까지......






    music...Secret garden...chaconne
    photo...http://www.chuja-fish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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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
G 석금 02-11-30 00:00
하하하~~그래요 !! 옛날에 사람의 정을 느낄수 있는 그런 낚시터 없네요 !!출조길에 만난사람들 소중한 나의 단골인데.... 김일석 님 !! 옛날이 그립군요 !! 언제나 좋은 글 잘보고 잇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요/ 언제즈음 낚시터에서 만나 뵐런지....... -[05/0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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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pin 02-11-30 00:00
요번 출조길에 또 한번 님의 글이 새롭게 다가 오더군요..좋은 단골과 또한 정감있는 주인장의 대화....지난주 출조길이 좀 심적으로 불편했는데 님의 글오 위안을 받네요..역시 단골이 좋습니다..님의글 잘 보고 갑니다.. -[05/08-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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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nasca2327 02-12-01 03:00
좋군요. 인간은향수를먹고사는 동물이라고누가말했던가요 김일석님을뵌적은없지만 님에글엔항상진한향수가베어있는것같슴니다. 건강하시고 좋은글또부탁드림니다. -[05/08-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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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김일석 02-11-30 00:00
석금님, 반갑습니다~~
올 해가 가기 전에 한번 만나요~~
핀님, 위안이 되셨다니 좋군요. 언제 통영에서 번쩍~~한번 해요~!!
나스카님, 좀 쓸쓸한 분위기가 나는 것 같죠?
제가 쓰고도 읽고나면 그렇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05/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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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야물이아빠 02-11-30 00:00
눈을감으면 글이 움직여 구멍가게가 그려지고 선장님의 입담이 들리는군요~ -[05/09-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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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wsan2167 02-12-02 19:00
우리가 낚시를 다니며 느끼는 감정을 잘 나타내주셨네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시고 즐낚하세요.
항상 좋은글 또 부탁드립니다. -[05/10-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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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태고의섬 02-11-30 00:00
.........살면서 느끼는 .그..어지러운...풍경들이....너무....너무.....눈물나게.....그립습니다........삶은....그리도...잘...흘러가는~데~~~... -[05/12-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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