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의 식장에서 빠져든 온갖 상념에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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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식장에서 빠져든 온갖 상념에 붙여......

G 8 2,437 2002.04.01 02:54


오늘 조그마한 예식장에서
사랑하는 조카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다소 고루한 주례사가 끝나나 했더니
불과 이삼십분에 다 마쳐졌습니다.



이런 집안의 큰 행사가 아니면
좀처럼 뵐 수 없는 많은 분들께서 오셨고
잘 기억은 나질 않았지만
"누구시더라..."하고 몇번은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겨우 알아볼 수 있는...
핏줄은 속일 수 없는지
한 눈에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셨습니다.



어릴 적 고향 마당
함께 자 치기와 팽이돌리기,
방패연에 沙를 먹여 멋지게 한판 승부를 내시던 형님
머리엔 물동이를 이고
한 손으론 내 손을 끌어주시던 누님과
만취한 채 하수구에 빠져 허우적대던
기억에도 뚜렷한 아저씨도 오셨습니다.



낙동강의
갈대 우거진 그 수로 마다에
경남 일대의 크고 작은 제방 마다에
자신만의 붕어낚시를 펼치셨던
늙으신 영도 형님도 오셨습니다.



몇 해 전
소지도 갯바위에 모시고 갔다가
갯바위를 치고 빠지던 거대한 너울파도에
깊은 몸살을 하시곤
바다와 멀어지신 그 형님은
이젠 하얀 머리칼에다
새카맣고 쭈글쭈글한 노인이 되셨습니다.



결혼한 후로 평생을
파스 하이드라짓드를 끼고 살다
재작년 폐암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누님은
그리도 애잔하고 쓸쓸한 표정으로
"니 아직도 낚시 댕기나?" 물으셨습니다.



소일 삼아 시작하셨다는 기숙사 청소일
요즘엔 무릎이 아파 더 못하겠다며
아무런 고통없이
그저 조용히 눈 감을 수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가을 들녘의 연분홍 코스모스 같았던
누님을 바라보며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한 시대를 마쳐가나 봅니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좀 더 가지나 덜 가지나 할 것도 없이
모두가 꼭 같이
조금씩 늙어가며
자신의 시대를 마쳐가나봅니다.



붐비는 예식장 앞
물끄러미 바라보던 차량들 속에 얼핏
예쁘고 잘 자란 외조카 은주가 있었습니다.
"은주야, 빨리 시집 가라" 큰 소리로 외쳤더니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그래, 빨리 시집 가고
빨리 장가 가서
애들 알맞게 낳아
뼈에 사무치게 키우며
때론 눈물 흘리며
그냥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그러다 지치면 낚시도 하고
술도 마시며
자연주의자가 되고
혹은 낭만주의자가 되고
혹은 전체주의자가 될테고......
끼리끼리 살 부대끼며
찌지고 볶고 울고 불고 살다보면
아이들은 어른이 될테고
또 그렇게 시대는 바뀌어갈테지요.



골목 마다에 넘쳐나던 결핍과 울부짖음
그 갈구하던 욕망의 한 시대에
초량 4동 산의 10번지
아스라한 내 고향의 유년기를 이끌어주셨던
아, 사랑하는 사람들......



빛 바랜 흑백 사진 마냥
홀연히 노인이 되신 그 분들을 뵈며
점점 늙어가는 우리들의 시대를 생각했습니다.
노동에 지친 몸뚱아리
나날이 스스로 추스리며
오늘도 쓸쓸하게
쓸쓸하게
아린 가슴 쓸어내립니다.



조용한 음악과 함께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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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
G 자연사랑 01-11-30 00:00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안녕히... [04/01-09:54]
G 바다야인 01-11-30 00:00
님의글을 읽고 있으니 저도 고향생각이 절로 나네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렸주세요 [04/01-11:53]
G 능선 01-11-30 00:00
어째서 마음이 이리도 아릴까요!!!! [04/01-16:06]
G 동해바위 01-11-30 00:00
아련한 기억들.....바쁘게만 사는 세상,새삼 뒤돌아보게하네요. [04/01-18:37]
G 고래 01-11-30 00:00
사람이 사람이어서... 낚시꾼이 낚시인이 되게해준 당신에게 무한한 애정과 감사를 드립니다. [04/04-00:08]
G 다금바리 01-11-30 00:00
항상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언젠가 낚시터에서 한번 뵐수 있기를~~~ [04/11-13:18]
G 또복이 01-11-30 00:00
정말이지 섬세하면서 황홀한 님의 글솜씨... 경의를 드립니다. [04/12-15:45]
G 01-11-30 00:00
연륜이 묻어나는 글이네요..님 기억할께요.행복하세요!!! [04/14-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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