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FTV에 채널을 맞추니 마침 낚시대회를 예고하고 있었다.
가을철 연이은 주말행사로 평소 좋아하지 않는 산행에 지겹기도 하고
바다내음과 손맛이 그립던 차라 기회다 싶어 와이프를 꼬시기로 했다.
"여보! 나 저기 상타서 당신 낚시복 한벌 장만해줄까 하는데 어때?.
새 낚시복이 탐이 난 와이프가 "상탈 자신 있어요?"하고 다짐을 한다.
물어보나마나 뻔한 대답 "그럼! 두말하면 잔소리지"
"상 못 받으면 집에 못들어 와요"
이렇게 생각외로 쉽게 허락을 받고는 단단한 준비를 착수했다.
오직 대물 한마리로 승부가 결정되는 아마추어대회라 튼튼한 장비로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에 평소 쓰지 않던 1.5호대에 새로 산 3호 원줄을
감은 3000번 릴을 장착, 예비 1호대에는 2000번 릴을 장착, 추가 예비로
1호대 릴 하나씩, 완전무장을 해두고는 대회장소인 금오열도 일대의
포인트정보를 인터넷에서 샅샅이 뒤져 충분한 검토를 마치고,
월요일 출근해서는 인낚 "함께 낚시 가실 분" 코너에 차를 함께 타고
갈 분을 찾는다고 올려놓았다.
11/2일 대회 하루전 드디어 출발하는 날,
당일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쉬겠다고 하고는
오전근무를 하는둥 마는둥 하다 12시가 되자 제까닥 퇴근하여
곧 바로 집으로 달려가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짐을 실었다.
대회당일 아침식사는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이 있지만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했더니, 와이프가 미리 찰밥을 해서
집어먹기 좋도록 김으로 말아서 담아놓은 도시락을 챙겨넣고
"잘 해요!"라는 와이프의 격려의 말을 귀뒤로 흘리며 집을 나서는데
괜한 허풍이 자꾸 캥긴다.
정확히 오후 두시 예정된 시각까지 아무소식이 없어 혼자서 출발.
고속도로 붐비는 구간을 빠져나와 디립다 달려 광양에 도착,
길 가 낚시점에 들러 밑밥용 크릴 5장, 백크릴 1장만 사서 쿨러에 담고
다시 정신없이 달려 여수시청앞을 지나며 시계를 보니 5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일단 대회 소집장소인 소호요트장을 먼저 확인한 다음
멀지않은 곳에 "여수스파월드"라는 찜질방을 찾아 들어가
저녁을 해결하고 일찍 자려고 누웠지만 쉽게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11/3일 01시30분, 비몽사몽중 핸드폰 알람소리에 깨어나 목욕제계하고
찜질방을 나서 대회장으로 가던중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으로 간단히 요기한 다음 대회장에 도착하니
정확히 소집시각인 03시.
대회장 주차장은 거의 다 찬 상태라 겨우 주차공간을 찾아 차를 세우고
짐을 옮기니, 대회장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계획된 대회 참가인원은 360명, 낚싯배 한척 인원에 해당하는 20명씩을
1개조로 하여 모두 18개조로 나뉘어져 있었다.
일단 접수처에서 번호를 부여받고, 기다리는 동안 밑밥을 개기로 했다.
작은 밑밥통에 크릴 4장을 발로 깨어 넣고, 빵가루 큰봉지 2봉, 압맥
2봉을 넣고 섞었다. 빵가루가 물속에서 잘 퍼지고, 압맥이 잘 가라앉으니
굳이 파우더를 첨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 들어서는 파우더
없이 밑밥을 만들어 쓰고 있다.
한참을 기다리니 진행자가 대회규칙을 설명하는데,
나름대로는 최대한 공정을 기하고자한 주최측의 노력이 엿보였다.
대상어는 감성돔이며, 살아있는 감성돔에 한해 조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아마 지난해 사천 낚시대회에서 발생한 문제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시상은 일단 각 선단(조)별로 최대어 1,2,3위를 가려 시상하고,
조에 관계없이 전체에서 1,2,3위를 가려 시상한다는 것이다.
대회규칙 설명이 끝나자 각 조(선단)별 대표자 1명씩 불러내어
포인트추첨을 하고 승선할 배를 지정해 주었는데,
전체 접수인원은 계획보다 조금 모자란 320명 정도가 되는 것 같았고,
내가 속한 조에서는 16명이 참가해서 각자의 번호순에 따라 2명씩
짝을 지어 놓았는데, 나와 또 다른 한 사람이 짝이 없는 상태였다.
차례를 기다려 조별로 배에 짐을 옮겨 실으니 모든 배가
각자의 구역을 향해 동시에 출발하였다.
바람은 북서풍이라 별 걱정은 없었지만,
배가 금오도 용머리를 돌아서 나가자 너울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속으로 "제발 너울이 안닿는 곳에 내려야 할텐데"하며 왠지 조짐이
별로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가 첫번째 포인트에 닿았지만 11번인 나는 한참 멀었거니 하는데,
우리조의 심판이 나와 또 다른 한 분을 불러서는
"두분이 짝이 없으니 여기에 함께 내리는게 어떠시냐" 하기에
이것저것 따져 볼 엄두도 못내고 그러마 하고 얼떨결에 내리고 보니
자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사람 채비흘리기에는 너무 좁은 홈통, 더구나 너울이 거의 정면으로
닥치고 있었기에 아차! 이거 잘 못 걸렸구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포인트에 내리자마자 우선 함께 내린 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서울서 오셨다는 자영업을 하시는 김사장님으로,
바다낚시 7년에 5짜는 수도 없이 잡아봤고 기록어는 6짜라는 말에 기가 죽어
"저도 낚시는 오래했지만 큰 고기는 못 잡아봤는데요"라고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각자 채비를 시작.
우선 뜰채부터 조립해 두고, 미리 완성해서 가져간 채비(원줄 3호, 목줄 1.7호
2발, 감성돔바늘 2호, 장대찌 + 조류타기 + 1호 구멍봉돌 + 목줄 분납 2개)
바늘에 5호 봉돌을 달아 수심을 재어보니, 주변이 직벽지형임에도
가까이는 10m 정도, 멀리는 13m 정도 밖에 안돼 너울이 심한 상황에서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 채비를 끝낸 김사장께 수심을 일러주고,
백크릴 중에서 씨알 좋은 놈을 골라 꿰어 첫 캐스팅을 날리고
시계를 보니 7시, 초들물에서 중들물로 넘어가는 시간 이었다.
사전에 국립해양조사원 홈피에서 확인한 11/3일은 12물에 간조 05:25시,
만조 12:21시인데, 대회시간은 07:00시 ∼ 11:00시로,
주최측에서 날을 잡을 때 물때 시간을 충분히 고려했음을 알 수 있었다.
(좀 더 시간을 앞당겼으면 했지만 안전을 염려한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담배를 한대 꺼내 물고 약간의 안정을 되찾자
와이프에게 약속한 허풍이 생각나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무거운 1.5호대를 힘주어 쥐고 눈은 크게 뜨고 찌를 지켜보고 있으니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찌가 힘차게 물속으로 사라진다.
순간 "볼락인가?"하면서 힘차게 챔질을 해서 감아보니 이리저리
옆으로 째는게 볼 것도 없이 전갱이.
한참을 전갱이와 씨름을 하다 포기하고 미끼를 바꾸기로 결정.
밑밥통 주머니를 뒤져보니 지난번에 준비해 갔던 보릿가루가 남아있었다.
빵가루와 함께 크릴을 이겨서 즉석 떡밥을 만들고 새끼손가락 끝마디
정도의 크기로, 가능한 둥글게 뭉쳐서(전갱이 가 쉽게 뜯지 못하도록)
바늘에 꿰어 던져넣으니 조금은 견디는가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
다시 빵가루를 더 넣고 주물러 좀 더 딱딱하게,더 크게 만들어서 달아보니
그제서야 전갱이가 뜯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야주 약은 입질이 감지되어 힘차게 챔질하니 덜컥!.
제법 흥분이 되어 릴을 감아보니 처박기는 하지만 그리 큰 씨알은 아닌듯.
심한 너울속에서, 끝이 제맘데로 출렁이는 질 나쁜 뜰채로
혼자 끙끙대고 있으니 옆에서 낚시하던 김사장님 뜰채를 잡아주면서
한마디 하신다. "뜰채 좋은걸로 바꾸소".
겨우 올려놓으니 35도 채 안되어 보인다. "상 탈려면 좀 더 커야겠는데"
뜰채를 대준 옆에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나중에 충분히 보상해
드렸지만 내용공개는 곤란함) 잽싸게 다시 채비를 날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 겨우 25 한마리 추가,
조금 있다가 다시 걸어 올려보니 방생사이즈.
더 이상 어렵구나 생각이 드니 배가 고프기 시작했지만 옆에 김사장님
역시 도시락 드실 생각은 없는듯 하여 준비해간 김밥을 꺼내놓고 반씩
나누어 먹으니 일단 허기는 면하였지만 올라오는 것은 계속 전갱이.
평소 같으면 감지덕지하면서 담아 넣었겠지만 명색이 대횐데...
결국 더 이상 별다른 조과없이 철수배에 올라 조과를 신고하고
다른 포인트의 조과를 하나씩 확인해 보니 나머지 포인트는 전체 몰황.
역시 심한 너울 때문에 모두들 실력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민망하게도 결국 내가 잡은 놈이 우리 선단에서 최대어 였다.
감독관이 본부에 조과보고를 위해 뱃속에서 계측을 하길래 지켜보는데,
계측기에 그냥 고기를 올려놓으니 33을 겨우 넘고, 조금 찍어누르니 34,
감독관이 두팔을 걷어부치고 으랏차 하니 35까지 간다.
감독관이 두손으로 고기를 찍어 누른채 고개를 훽 돌리더니 "봤지요 35!"
나는 속으로 "우와! 대단한 기술이다"하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잡아다가 자기 침대에 맞춰 억지로 늘였다는 프로크루스테슨가
뭔가 하는 무서운 사람이 이 사람인가? 아뭏든 내 조과를 최대한 올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고문당하는 감생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단과의 무선연락을 들어보니 전체적으로는 빈작이었고,
2,3개 선단에서는 제법 조과가 있었지만 1개 선단은 고기 구경도 못했단다.
대회장에 도착해서 확인해 보니 나의 조과는 공동 8위? 정도,
결국 조 1위로 만족해야 했고, 와이프 낚시복은 허풍으로 끝나고 말았다.
대회시상식이 시작되기 전에 참가선수들을 잡아두기 위해
시덥잖은 상품으로 이사람 저사람을 무대로 불러 올려
이목을 끄는 잔수를 부리더니 소개하는 내빈은 왜 그리도 많은지,
내 속 좁은 생각에는 그들 대부분이 대회를 마치고 나면 벌어질
자연산 감성돔회 파티를 노리고 참석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었다.
나야 조 1등을 했으니 뭐라도 하나 챙길 욕심에 자리를 지켰지만,
상당한 인원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지리한 시간이 지나고서야 시작된
시상식에서는 절반인원 밖에 남지않았다.
우리조에서는 내가 35로 1위가 되어 단상에 올라가서 상을 받았는데,
엿도 바꿔먹을 수 없는 유리트로피와 함께 주는 부상을 확인하고는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다. 그 부상이란 것이 부시리대와 릴이었는데
수년전 구입하고는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 팔아치울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 바로 그 부시리대였던 것이다.
나와 함께 내렸던 김사장님이 25로 2위를 하여 청국장제조기를 받았으며,
전체대상에는 43.7을 잡은 모씨가 3백만원의 상금을 받고 대회를 모두 마쳤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게 좀 이상한게,
어떤 조의 경우는 조황이 상대적으로 좋아 35 이상을 잡고도 3위에 그쳤기에
받은 상품이 겨우 2,3만원대의 요상한 물건인데, 제출한 고기는 반환이 안되고,
그럼 결국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다.
제돈 8만원을 내고, 4시간동안 허기진 배를 달래가며
열심히 낚시해서 잡아놓은 귀한 자연산 감성돔을
겨우 2,3만원대의 처음 듣는 이상한 물건을 주고 뺏아가버렸다는 이야긴데,
당한 사람은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철수하는 뱃속에서, 생전 처음 본다며 내 채비에 자꾸 관심을 보이던
김사장님과 그 친구분에게 가지고 있던 조류타기를 몇개 나누어 드리고,
서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명함을 주고받고 헤어져, 불이나게 달려 집에
도착하니, 와이프가 날아간 낚시복을 아쉬워하면서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끝으로, 처음 참가해 본 공식적인 낚시대회에서 느낀 점 몇가지.
1. 재미가 없다 : 대회라 보니 상금이 탐이나 여유가 없었음.
2. 허황하다 : 전체 1,2,3위야 뿌듯했겠지만 나머지는 글쎄...
3. 남는게 없다 : 주최측 경비를 대충 계산해 보니 현금으로 남을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투자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근 50마리에 가까운 감성돔은 주최측 진행요원과 내빈들
뱃속으로 사라졌겠지만, 그 분들 노력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다)
4. 운이 따라야 : 토너먼트식 프로대회도 운이 크게 작용한다는데,
아마추어대회는 오죽할까.
5. 역시 장비는 가벼워야... : 대물 걸어 볼 욕심에 1.5호대를 계속 들고있다가
양손,양팔에 쥐가 나 혼났음.
인낚에서는 언제쯤이면 낚시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까?
각자 자신의 닉네임을 달고 대회에 참석한다면
평소 좋은 글 자주 올리시는 분들도 뵙고,
대회경비는 참가비로 충당하고, 잡은 고기 몽땅 썰고, 구워서
전원 참석한 파티를 연다면 더없이 즐거운 자리가 되지 않을까 꿈꿔 봅니다.
참볼락님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대회주최측을 욕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제글의 내용만을 놓고 볼 때 오해를 살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미처 설명드리지 못한 사항들, 예를 들어 많은 양의 행운상,
행사시설, 많은 진행요원들의 수고 등을 고려한다면
주최측을 그렇게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뭏든 저의 설명 부족으로 오해를 빚은 점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