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아버지와 아들의 낚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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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아버지와 아들의 낚시이야기-

1 곰동 39 7,928 2014.04.1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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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퍽...
 
햇빛 쨍한 오후...강한 너울이 갯바위를 후려친다.
부서진 바닷물은 멀찌감치 설치해놓은 파라솔밑 내 얼굴까지 튀어올랐지만 숙취가 가시지 않은 나는 피할 기운도 없이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한낮의 열기는 갯바위를 후끈 덥혀놓았고 그 온기가 또 한번 내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는데, 이를 견디기 힘들어 몇차례 토악질을 해댄다.
 
웩...
웩...
 
성난 파도보다 더 사나운 짐승이 목구멍에 들어앉았는지 듣기 거북한 괴성을 질러댔지만...이전보다 사그러들고 있는 너울처럼 내 속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것 같았다. 드디어 머리에 피가 돌고 몸을 움직일만한 힘이 솟더니 이젠 주변을 둘러볼 여유까지 생기니 말이다.
 
잠시후 몸을 추스리고 어지럽게 널려 있는 낚시장비를 뒤로한채 주변 상황을 둘러본다.
파라솔에 튀어오른 바닷물은 무늬만 남겨두고 몇알의 소금알갱이로 변해있고, 부친은 뙤약볕 아래서 뭔가와 씨름 중이다.
갯바위에 와서 낚시는 안하시고 뭘 그리 열심히 하시는지 궁금해 가까이 다가갔더니...
 
한참전에 엉켜버린 내 채비를 쭈그리고 앉아서 풀고 계셨고 그 모습이 또 한번 내 속을 뒤집어 놓는다.
철없던 나는 이를 못참고 날선 단어들을 앙칼지게 쏟아낸다.
 
"걍 끊지...머할라고 풉니까!! 풀지도 못합니다!! 그거..."
 
내뱉은 단어들 속엔 내가 해야할 일을 부친에게 전가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뙤약볕에서 그 고생을 하고 있는 부친의 미련한 모습에 대한 원망이 함께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뱉어낸 나는 이제는 한바탕 전쟁을 치를 마음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부친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으니까...
하지만 부친의 반응은 예상밖이었다.
 
"고기도 안잡히고...나는 이거 푸는게 더 잼있네!!"
 
하며...웃는 얼굴로 답한다.
다소 어리둥절 했지만...이내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입대를 앞두고 있던 나에게 건방진 언행에 대한 꾸지람 보다는 너그럽게 보담아 주려는 부친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갑자기 콧잔등이 찡하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아무 의미도 두지 않았던 부자지간의 출조에 불과했지만 부친은 술만 퍼마시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아들에게 작은 추억과 따뜻한 위로를 선물하고 싶어서 같이 낚시가자 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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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흐르고 흘러 철없던 나는 군시절의 기억도 까마득해질만큼 나이를 먹었고 부친은 손주를 품에 안았다.
당연히 그 때 다대포 갯바위에서의 추억은 기억 저편에 묻혀버렸고, 그 긴 세월동안 부자지간의 동행출조는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너무나도 고대하던 일이 성사되지 못해 부친의 얼굴이 수척해지고 밤에 잠도 못주무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이래선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의욕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내게 작은 위로가 되었던 그 사건들이 머릿속으로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버님께 실로 오랫만의 동출을 제안했고 부친은 흔쾌히 수락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이번엔 나에게 고민거리가 몰려든다.
부친을 감싸고 있는 우울한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을만큼 유쾌하고 재미있는 낚시여행을 기획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보니 결국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다리 선상낚시다.
잔잔한 손맛과 입맛...거기다 마릿수 조과까지...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부친과 나 그리고 지인 1명) 일행은 3월의 막바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구경 대신 도다리를 낚으러 진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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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도착한 진해의 날씨는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이었는데...곧 비를 뿌려도 전혀 어색할거 같지 않았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출항한지 30분만에 비를 뿌려대는데 호수같은 수면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흩어지던 빗줄기가 자꾸만 굵어져 내 마음은 불안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인의 편대채비에 마수걸이 도다리가 올라오고부턴 더이상 이 빗줄기도 문제되지 않았고, 부친도 덩달아 신이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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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 확률을 높이려 편대채비와 원투낚시를 동시에 구사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자 도다리와 쥐노래미가 연달아 걸려들기 시작하고 부친의 원투대까지 챙겨드리느라 정신없는 낚시가 진행된다.
언젠가부터는 빗줄기가 너무 굵어져 모든 사람이 선실로 대피하였지만 오직 우리 부자만이 굳건히 비를 맞으며 도다리를 낚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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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초릿대를 강하게 때리는 큰 입질...건져보니 제법 괜찮은 쥐노래미가 올라온다.
배에 타고 있는 20명 사이에서 가장 좋은 씨알의 고기를 낚아올린 아들이 자랑스러운지 이 고기는 꼭 명태만하다며 크게 웃고 계시는 모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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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문따문 낚아 올리는 도다리 낚시에 시간가는줄 모르고 있다가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선장님은 맛깔스럽게 한상차려 꾼들을 호출한다.
 
"밥묵고 하입시데이!!"
 
메뉴는 도다리와 쥐노래미 그리고 진해산 피조개와 매운탕 각종 반찬까지...
낚시 도중에 이렇게 완벽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아버님 모시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 훌륭한 음식에 배 뒤켠에서는 한바탕 노래자랑이 벌어지고, 누군가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하며 취기가 올랐지만 밥그릇을 비운 부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에 가셨나...'
 
부친의 행방이 궁금했지만 곧 잊어버리고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커피까지 마신 후 엉기적거리며 선실 밖으로 나가본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지...
화장실에 가셨을거라 생각했던 부친은 뱃전에 서서 고패질을 반복하시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멋적은 표정으로 "입질 좀 옵니까?" 하며 여쭸더니..."한마리 잡아놨다. 니도 빨리해바라" 하시며 응답하시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상당히 재미있으신 모양이다.
 
 
이후 구름이 걷히고 해가 쨍하게 뜨는 것이...더 좋은 조과를 기대해볼만한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오전보다 낚이는 빈도가 적다.
그러다보니 선박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을 놓고 있거나 꾸벅꾸벅 조는 상황이 연출되는데...
그래도 아버님은 미소를 잃지않고 끝까지 따문따문 낚아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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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오후 3시가 되어서는 낚시를 접는다.
벌써 끝나냐고 묻는 부친의 얼굴엔 아쉬운 표정이 역력히 드러난다.
그도 그럴것이 점심식사 이후론 그다지 조황이 좋지 못해 살림망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낚은것은 모두 점심식사로...)
살림망 안에는 도다리와 쥐노래미 몇마리가 고작이었는데 그나마도 지인에게 넘겨주고 나니 부친은 빈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만해도 좋은 추억이 될수도 있겠지만 뭔가 허전한 마음에 돌아가는 길은 내 맘대로 핸들을 돌려 용원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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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까지 가면서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헛웃음이 난다.
예전엔 낚시마치고 회를 썰어가는 부친을 그렇게도 말리던 내가 앞장서서 생선을 주문하러 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선 헛돈을 쓰고 안쓰고보다도 모친 앞에 체면 구기고 있는 부친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괴로운지라 도다리와 볼락, 쥐노래미로 구성한 활어회 도시락을 두 개 만들었다.
 
 
 
잠시후...
  
본가에 집결한 모든 가족은 쫄깃한 생선회를 먹으며 아버님의 무용담을 들어야 했는데...이야기를 신명나게 이어가시는 부친의 표정에서 출조전에 보았던 우울함이나 근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이번 출조는 조과를 떠나 성공한 듯한 느낌이 든다.
 
집으로 돌아와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본다.
분명 군입대 전 부친과 함께 했던 낚시가 내게 작은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도다리 선상낚시로 부친께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 드린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거워 진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의지할 일 보다 타인이 내게 의지할 일이 많아지는 위치까지 왔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 아버님께 제대로 힘을 실어드리긴 했나 봅니다. 언제 또 갈꺼냐고 물어보시네요~^^;  아래는 제 블로그 주소 입니다.
더 많은 조행기와 이야기들이 있으니 편하게 놀러오시길 바래요~!!
http://judas5296.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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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댓글
1 물꽁1 14-04-19 02:51 0  
읽다보니 콧등이 시큰해 지네요...
저도 예전에,  안가실려는 거제도여행을 억지로시켜드린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내 좋아하시던 어버이 생각이 납니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는 갈수록 많이 그립습니다.
우린 왜 꼭 아버지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될까요?
오늘도 내 아버지의 발자욱 뒤를 따라 갑니다....
최고로 훌륭한 조행기 덕분에  잠시 옛추억에 젖어 행복해지기에,  곰동님에게 감사드립니다.
1 곰동 00-00-00 00:00 0  
너무 큰 칭찬에 많이 부끄럽습니다..언제나 행복하시고 항상 안낚 즐176847051
1 형제섬에서 14-04-19 18:52 0  
눈물이 메치고 가슴찡한  조행이네요.  저또한 아버지께서 울릉도  관광가셔서 만원짜리
낚시대에 고등어  한쿨러잡으셔서 동네 분들 고등어 잔치를 하셨다고 . 예전에  말씀하셨는데.
그후로 가족여행가면서.  낚시점에서  밑밥살때.  슬그머니 계산해주시던  그...추억..그리움
저희는  낚시만했지... 아버지 낚시 하시겠어요.  그한마디.  없이 낚시에집중했지요  자식들
 낚시하는 보습으로
즐거워하셨던  아버지 ... 지금은 마음속으로 아버지 ... 그리운아버지  불러봅니다  이 글을 쓰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네요  .
  앞으로도  아버님과함께.  행복한 낚시 ~ 추억의조행기  기대하겠습니다..  부럽습니다!!
1 곰동 14-04-20 00:36 0  
낚시 커뮤니티인만큼 많은 분들이 아버님과 낚시에 얽힌 추억이 많은 것 같습니다..그 중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있었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모질게도 좋은 것만 남아 더욱 가슴을 후벼 파는듯한 느낌이네요..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박민수아빠 14-04-21 14:16 0  
아버지는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지난추억이 다시떠오르네요
앞으로 좋은추억거리 많이만드시길바랍니다.
59 폭주기관차 14-04-21 18:30 0  
제경우엔 어렷을적 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운건 아니지만,그리고 지금은
함깨하려해도 계시지않기에 곰동님의 조행기를 보면서
멀리가신 아버님을 다시한번더 생각하게 되네요.

곰동님~ 참 멋지십니다.
생각만으로도 멋지신데 실천하시어 아버님과
좋은곳을 가시고 챙기시어 시름을 잊게하시고
많은 웃움을 드렷으니 달리 무엇이 효도겟습니까.
정말이지 오랫만에 가슴이 따듯한 조행기를 보앗네요.
잘 보았습니다.
1 부산준피싱 14-04-23 03:55 0  
다들 아버지손을 잡고 낚시에 입문을 많이들 하셨군요
저또한 초등학교때 손을잡고 용당에서 첫경험이 40이 넘은 지금까지도
낚시가 벗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계셨으면 일흔다섯 되셨을 터인데
20대때 같이 함께하든 생각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또한 제가 30대 때까지 둘이서만 다니는 낚시 친구였었죠
참으로 바다를 좋아하셨었죠

양친다 보내고 나니 늘 그립습니다
 
가까운 곳이라도 도시락 싸서 바람자주 쐬 주십시요
떠나시고 나니 후회 됩디다

효도하시길 바랍니다 ㅎㅎㅎ
1 내사랑감시 14-04-24 09:55 0  
하아~~우리 아들들도 날 좀데려가 줬으면! ㅎㅎ
16 진정한 14-04-28 03:09 0  
to~~곰동님!!!!!!!.  어휘력, 문장력,젊은친구로서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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