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추자에
G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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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6
2006.03.12 20:30
나흘째
다음날 네 시 반에 출발해 진도 벽파항에서 9시 객선을 탔다.
난생 처음 보는 경치들.... 평상시 자주 다니던 진도 접도가
스쳐가고 한참 후에는 진도의 끝이 멀어지고 이내 횡간도가 보
인다. 광주발 제주행 여객기를 타고 몇 번 내려다보던 앙증맞은
미니츄어 모양새의 추자군도를 제 눈높이로, 실물크기로 아낌없
이 보여주며 여객선이 상추자항에 도착했다. 마중나온 민박집
차를 타고 하추자 민박집으로 향한다. 운전하던 가이드가 창 밖
으로 멀리 보이는 원뿔 모양의 섬 하나를 가리킨다.
절명여란다. 잘하면 오늘 출조 코스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
벌써부터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 같다. 민박집에 옷가방 하나
를 덜렁 내려놓고 다시 차에 오른다. 점심은 도시락이다. 진수
성찬을 차려놓고 먹으라고 해도 절명여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모 아니면 돕니다. 차라리 확률 있는 자리에 내리시던지요?"
"괜찮습니다. 구경만 해도 영광인걸요..."
<인낚에서 타 사이트 링크를 금지시켜 사진은 나오지 않습니다.>
배는 사자섬에 닿아 도시락을 내려주고 몇분 조사님 자리이동
한 후 절명여를 향해 내닫는다. 하선할 장소는 절명여 배꼽자리
란다. 이미 추자 현지꾼이 낚시 중이니 같이 하면 된단다. 내리
기 직전 가이드가 추자도의 실력자이니 잘 배워두라는 귀띔을
해준다.
하선 후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조류를 보니 애들 식 표현으로 장난이 아니게 흘러간다. 배꼽
자리와 고구마 여 사이(한 7-8미터쯤?)를 숨 가쁘게 통과한 조
류는 콸콸 파도를 일으키며 좌로 흘러간다. 선점한 실력자님의
돌돔 쳐박기에 아직 소식이 없단다. 혹시 몰라 준비한 돌돔 민
장대에 청지렁이를 먹음직스럽게 달아 방석만큼 한 훈수지역을
이리저리 더듬어보지만 입질이 없다. 때는 아홉물, 물이 바뀌려
는지 잠깐 조류가 멈추어선다. 실력자님 돌돔 찌낚시를 해보자
며 권하신다. 그리고 금새 30넘는 돌돔을 한 수 뽑아낸다. 덩달
아 던진 내 채비를 어느 새 부시리가 물고 달아난다. 3호 원줄에
맨 2호 목줄이 힘없이 떨어진다. ㅎㅎㅎ.... 고놈 걸어 고생하느
니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로 돌돔으로 추정되는 강
력한 입질을 받았지만 발밑 굴에 처박혀 할 수 없이 줄을 터주었
다.
무서운 돌돔, 무서운 부시리... 전날 거문도에서 부시리에게
시달렸던 여파가 아직도 오른손목에 남아 시큰거렸다. 돌돔에게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게 바로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로 참돔 찌낚시로 채비 전환을 한다.
태공은 추자도 낚시 명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분의 채비를 곁눈
질 해본다. 실력자님의 잠수찌 채비는 전혀 상상 밖의 채비였다.
대는 1호대, 원줄 3호에 목줄도 3호쯤 되는 것 같았고 잠수찌 밑
에 순강수중 1.5호를 달고 목줄에 다시 3B봉돌 3개를 분납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써본 잠수찌라고 해봐야 기껏 벵에돔 채비에
불과했던 내게, 그러므로 인해 목줄에 봉돌을 붙여봐야 겨우 B봉
돌 한두개 정도였던 내게 그 채비는 실로 충격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채비의 용도는 금새 드러났다. 콸콸 흐르는 본류대에
직접 투척해서 그 본류의 바닥을 더듬는 조법이었다. 바닥에 걸릴
것을 우려해 B찌를 취부해 흘리던 내 채비는 50미터쯤 가면 와류
를 따라가 멈추어버리는데 실력자의 채비는 곧장 150여미터 이상
을 흘러갔다.
찌를 잠수찌로 바꾸자 태공의 채비도 그제야 100여 미터 이상
풀려나기 시작했다. 30여분을 흘리자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철수
때까지 부시리를 필두로 가다랑어가 간간히 물고 늘어졌다. 노리
던 대상어는 한 수도 잡지 못했지만 콸콸 흐르는 본류대에서 잠수
찌로 본류 바닥을 더듬는 기법을 배웠다는 게 어떤 조황보다 값진
조황이어서 가슴이 뿌듯해졌다.
출조에서 돌아온 조사님들은 그날의 조과물 중에서 제일 맛있는
종류로 횟감을 내놓았다. 거기에 서비스로 무한 제공되는 맑은 술
과 함께 유쾌한 하루가 저물어갔다. 이런 맛에 낚시 다니는 거 아
냐? 어쩌고 하면서....
새삼 마라도에서의 찬바람 불던 민박집 저녁상 풍경이 떠올라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닷샛날
다음날 출조지는 직구도란다. 일명 추자도에서 말하는 3대원도,
절명여 직구도, 노른여를 중심으로 한 횡간도 일대중 하나란다.
일부러 부시리 없는 곳을 부탁했더니 기차바위라는 포인트에 내려
준다. 하지만 조류가 전혀 없다. 어제의 절명여의 급조류, 그리고
오늘은 완전 정지상태의 저수지 같은 바다.좌측 곶부리와 건너
편 곶부리는 조류가 조금 있는 듯 연신 부리시와 가다랑어를 끌어
낸다. 태공이는 미역치와 용치놀래미 입에서 바늘 빼는 연습만 하
다가 오전 시간을 보낸다.
오후에 도착한 곳은 노른여란다. 여섯 명이 한꺼번에 내려 각자
맘에 맞는 자리를 찾아 이동한다. 여 정상에 올라보니 횡간도가
가까워보인다.
오전 내내 발판 좁은 위험한 직벽 자리에서 고생한 게 생각 나
발판 편한 너른 곳에 자리를 잡는다. 조류는 좌에서 우로 흐르던
조류가 발밑으로 파고들더니 금새 반대로 흐르기 시작한다. 밑밥
칠 자리를 정하고 밑밥을 치는 동안 우악스런 힘이 초릿대를 물
속으로 낚아채간다. 드랙을 닫고 버텨봤지만 이미 수중 굴에 박힌
듯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채비 분실....
이내 조류가 빨라지고 참돔을 노린 잠수찌 채비에 부시리가 물
고 늘어진다. 씨알이 90센티가 넘는 듯 가공할 힘이 대를 타고 전
해진다. 2호대 4호원줄 3호목줄, 더구나 시큰거리는 손목으로 겨
루기는 무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대를 일자로 뻗어주자 이내 목줄
이 터진다. 전의를 상실한 채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엿등으로 올
라 나머지 네 사람이 낚시하는 걸 지켜본다. 난생 처음 부시리를
잡아본다는 충청도 조사는 세 마리째의 부시리를 걸어 즐거운 비
명을 지르는 중이고, 반대쪽 남원팀은 고수답게 벌써 서너 마리의
참돔을 걸어 올린 모양이었다.
엿등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도 섬 저기도 섬들이다.시
월 오후의 붉은 햇살은 옹기종기 오리떼처럼 떠있는 추자군도에
아낌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고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니 그제서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좀 전까지만 해도 찌만 바라다보였는데.....
엿샛날
오늘은 철수하는 날이다. 내일이 휴가 마지막 날이지만 집사람
의 부탁으로 하루 일찍 철수하기로 했다. 아직도 집안 정리가 덜
된 모양이었다.
배는 횡간도 옆 보름섬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오늘의 목표는 참
돔이다. 바다낚시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30센티 넘는 참
돔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록이라는 게 있긴
있다. 감성돔을 낚기 위한 채비에 우연치 않게 걸려든 70센티급
참돔 한 수와 기타 씨알급의 참돔들이 몇 마리 있긴 하지만 희안
하게도 참돔을 노린 참돔 채비에는 30미만의 상사리 외에 조황이
없었다.
보름섬 인근의 작은 섬 곶부리에 혼자 내렸다.
이틀간 이렇다 할 조황이 없어서인지 오늘은 그동안 시큰거리던
손목이 말끔한 느낌이다.
물돌이 시간인지 조류가 서서히 죽어간다. 발밑에 밑밥 몇 주걱
을 던져놓고 채비를 던진다. 잠시 후 1호대에 달아 던진 기울찌가
사정없이 물속으로 파고든다. 30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선홍 빛 상
사리가 달려 나온다. 눈 위에 코발트 빛 아이쉐도우가 화장을 곱
게 한 예쁜 아가씨처럼 풋풋해 보인다. 바늘 곱게 빼서 제 고향으
로 돌려보낸다. 이내 강력한 어신을 받는다. 무작정 밑으로 파고
드는 게 틀림없는 돌돔이다. 강력한 대응으로 맞선다. 잠시 후 돌
돔이 배를 뒤집으며 물 위로 떠오른다.
자세히 보니 바늘이 돌돔의 항문에 박혀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올라온 돌돔의 사진을 찍고 갈무리하는 동안 조류는 추자도 특
유의 빠른 조류로 바뀌어 있다. 2호대로 채비를 바꿨다. 4호 원줄
에 3호 목줄, 잠수형 기울찌에 1.5호 순강수중찌를 달고 조류를
태운다. 밑밥도 넉넉히 뿌려주니 기분 좋은 속도로 원줄이 풀려나
간다. 스풀에 원줄이 바닥을 보일 무렵 이내 시원한 원줄 풀림이
느껴진다. 대를 세우고 베일을 닫으니 손잡이대 까지 휘어진다.
드디어 나도 참돔을 걸어보는구나 싶어 가슴이 쿵쾅거린다. 50여
미터를 힘겹게 감고 나니 고기가 떠오른다. 부시리였다. 대를 펴
터트릴까 하다가 맘을 바꾼다.
가져가면 맛있게 먹어줄 이웃들이 있지 않는가? 하지만 급조류
에서 70센티급 부시리를 걸어서 100여 미터 이상을 감는 건 손맛
도 몸맛도 아닌 땀나는 노동과도 같았다. 특히나 뜰망을 보면 사
력을 다해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부시리를 떠내는 건 더욱 힘든
노동이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잡는
재미가 있으니 엄밀히 말해 노동을 아닌 셈이었다. 혹시나 목표로
했던 참돔 30센티 이상 급을 기대하며 연신 채비를 날리지만 혹시
나는 역시나 부시리였다.
피를 뽑아놓았던 부시리 여섯 마리를 넣으니 30리터 쿨러가 꽉
찬다. 잠시 고민에 빠진다. 더 담을 데가 없으므로 앞으로 잡는
고기는 다 살려줘야 했다. 먹지 않을 고기는 사려준다는 나름대로
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아직 철수 시간도 얼추 두 시간 가
까이 남았고 밑밥도 남았지만 대를 접는다. 남은 밑밥을 발밑에
쏟아 부으니 부시리 수십 마리가 떠올라 먹이를 탐한다. 똥침 맞고
끌려나온 재수 없는 돌돔은 살려주는 게 마땅했으나 기포기를 킨
살림통에 보관했다. 낚시꾼 서방 만나 입만 고급으로 변한 마나님
입맛이 돌돔 취향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미물인 돌돔은 이런 내
마음을 알까?...
철수 준비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나니 저만치서 철수배가 다가
오고 있었다.
추자에 있는 내내 맛있는 회를 얻어먹기만 했다. 더구나 철수하는
날 겨우 돌돔 한 마리와 부시리를 잡았으니 마지막 점심까지 얻어
먹기만 했다.
이 자리를 빌려 날마다 맛있는 돌돔이며 참돔을 제공해주신 남원
조사님과 정성스레 회를 떠 만찬을 즐기게 해주신 민박집 두 형제
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얻어먹기만 한 회, 다음에는
꼭 갚아야 할텐데..
잘 될랑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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