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여행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신상품 소개


회원 랭킹


공지사항


NaverBand
[휴게실] 세상사는 이야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게시판입니다.
▶특정인 비방/폭언/모욕/시비성 글은 예고없이 수정/삭제될 수 있으며, 일정기간 이용 제한 조치됩니다.
▶게시판 성격과 맞지않는 글은 예고없이 삭제 또는 이동될 수 있습니다.

인문학 여행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 자버리 13 687 2019.08.25 14:35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중 아테네 사절단이 스파르타에
가서 펠로폰네소스 동맹국 회원들이 모인 회합장에서 한 연설,

“우리 사절단이 이곳에 파견된 것은 여러분의 동맹국과 논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도시가 우리에게 맡긴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입니다만, 우리를 비난하는 고성이 오간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동맹국이 우리에게 제기한 여러 가지 비난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하는 말과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은, 여려분이 동맹국에 설득되어 그런 중대사와 관련하여, 쉽게 나쁜 결정을 내리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판과 관련하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정당하게 획득한 것이며, 우리 도시는 주목 받아 마땅하다는 점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증거라고는 우리 청중의 증언보다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밖에 없는 머나먼 과거사에 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페르시아 전쟁과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사건들에 관해서는 자꾸 들어서 지루하다 해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페르시아 전쟁 때 그런 모험을 한 것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였고 여러분도 그 이익을 나눠가진 만큼, 그러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우리도 그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호의를 비는 사람이 아니라, 증거를 제시하는 처지에서 말할 것이며, 그 목적은 여러분이 나쁜 결정을 내리면 어떤 도시를 상대로 싸우게 될 것인지를 여러분에게 밝히는 것입니다.

단언하건데, 우리는 마라톤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서 페르시아인들과 맞섰습니다, 또한 페르시아인들이 재차 침공해왔을 때, 우리는 육지에서 그들을 막을 충분한 병력이 없어, 모든 시민이 병선에 올랐다가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전은 페르시아인들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항해해가서 도시를 하나씩 파괴하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여러분은 페르시아인들의 수많은 함선에 맞서 서로 지켜줄 능력이 없었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 가장 명확한 증거는 크세르크세스의 태도입니다. 해전에서 패하자 그는 자신의 군대가 더는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대부분의 육군을 이끌고 서둘러 철수했으니 말입니다.

전투는 그렇게 끝났고, 그것은 곧 헬라스(그리스)인들의 운명이 해군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투가 그렇게 끝나도록 세가지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니, 가장 많은 함선과 가장 능력있는 장군과 불굴의 용기가 그것입니다. 4백 척의 함선 가운데 거의 3분의 2가 우리 함선이었습니다. 장군은 테미스토클레스였습니다. 그는 살라미스 해협에서 싸우자고 강력히 주장했고, 그것이 분명 우리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방문한 이방인 중에 그를 가장 존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여준 불굴의 용기는 유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육로로 아무도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고 우리의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들이 이미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과감히 도시를 버리고 재산을 포기했습니다.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도 남은 동맹국의 공동의 이익을 외면하거나 사방으로 흩어져 동맹국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대신 위협에 맞서기 위해 함선에 올랐으며, 여러분이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은 것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여러분에게 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떠나온 도시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고, 여러분은 그 도시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원군을 보내준 것은 우리가 염려되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염려되어서 였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우리 도시가 아직 온전할 때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망해버린 도시를 뒤로하고 살아남을 가망이 거의 없는 도시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면서 우리 자신을 구했으며, 여러분을 구하는데도 한 몫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영토를 염려하여 다른 나라처럼 미리 페르시아인들 편에 가담했었다면, 또는 나중에 우리가 완전히 결딴났다고 보고 함선에 오를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함선이 부족한 여러분이 적과 해전을 벌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며, 크세르크세스는 편안히 목적을 달성했을 것입니다.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인들이여, 우리는 그때 용기와 결단과 지혜를 보여주었거늘 그런 우리가 지금과 같은 제국을 통치하기로 그 때문에 헬라스인들에게 이처럼 심하게 미움을 받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우리가 그와 같은 제국을 획득한 것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페르시아군의 잔존 부대에 맞서 끝까지 싸우려 하지 않자 동맹국들이 자진하여 찾아와 우리더러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단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보니 우리는 제국을 현재 상태로 확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첫째로, 두려움이, 다음에는 체면이, 끝으로 우라 자신의 이익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맹국이 우리를 미워하게 돠고, 몇몇 동맹국은 반기를 들다가 도로 제압되고, 여러분은 우리에게 이전처럼 우호적이지 않고 우리를 의심하고 우리와 다투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특히 우리 곁을 떠난 동맹국이 여러분 편이 된 마당에, 우리가 제국을 내놓는 것은 모험이며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든 큰 위기에 처하면 제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이며, 그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라케다이몬인들이며, 여러분도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여러 도시를 여러분에게 유리하도록 조직하고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여러분의 페르시아군에 맞서 끝까지 싸우며 통수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못지않게 미움을 샀더라면, 여러분도 틀림없이 우리만큼 동맹국에 엄격했을 것이며, 그래서 동맹국을 가혹하게 다스리거나 아니면 위험을 자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어진 제국을 받아들인 뒤 체면, 두려움, 이익이라는 세가지 강력한 힘에 제압되어 제국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도 아니고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것도 아니며, 약자가 강자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그 밖에도 우리는 우리가 그런 지위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제 여러분 이익을 염두에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는군요. 하지만 힘으로 재산을 늘릴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정의의 논리 때문에 이익을 포기한 사람은 일찍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을 지배하는 인간 본성에 따르면서도 권력을 가진 자에게 요구 되는 정도 이상으로 정의로운 사람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생각건데, 만약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우리 행동이 온건한지 아닌지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공정하게 행동했건만 불공정하게도 칭찬보다 오히려 비난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동맹국과의 소송에서, 국가 간 협약에 따를 경우 우리가 불리하다고 생각되어,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아테네로 사건을 송치하면, 우리는 소송광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가 우리보다 더 가혹하게 속국을 다루어도, 왜 이런 나라들은 비난 받지 않는지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그 까닭은 모든 것을 힘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자는 소송에 말려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속국들은 우리와 대등하게 거래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결정이나 통치권 행사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가져다 준다 싶으면, 아직도 그들에게 남아있는 모든 이익에 더 이상 감사하지 않고, 그런 사소한 불공평에 몹시 분개합니다. 설령 우리가 처음부터 법을 철폐하고 공공연히 우리의 이익을 추구했다면 그들은 그렇게 분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약자가 강자에게 양보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폭행을 당할 때보다 불의를 당할 때 더 분개하는 것 같습니다. 후자는 대등한 자들 사이의 탈취로 간주되지만, 전자는 강자에 의한 강요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페르시아인들에게 이보다 더 험한 꼴을 당했어도 참고 견뎠지만, 우리의 지배는 가혹하다고 여깁니다. 당연하지요. 남에게 예속된 자에게는 언제나 현재가 가장 가혹한 법이니까요..

여러분이 우리를 제거하고 스스로 제국을 인수하려 한다면, 우리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여러분에게 보이던 호의는 틀림없이 금방 잃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페르시아 전쟁에서 잠시 통수권을 행사할 때 보이던 것과 같은 태도를 지금에도 보인다면 말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규범은 외부 세계의 규범과 양립할 수 없을뿐더러, 여러분 중 누가 외국에 나가면 여러분 자신의 규정도, 헬라스의 다른 나라의 규정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은 중대사인 만큼 여러분은 시간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숙고하시고, 남의 의견이나 불만에 오도되어 화를 자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전쟁이란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운 것인지 미리 생각해보십시오.. 전쟁을 오래 끌면 대개 우연의 지배를 받게 되어, 둘 중 어느 쪽도 사태를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과도 예측하지 못하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전쟁부터 시작하는 것은 일을 거꾸로 하는 것입니다. 행동이 앞서고, 피해를 보고 나서야 생각하기 시작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고, 우리가 아는 한 여러분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 조약을 파기하거나 맹세를 어기지 말고, 조약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중재 재판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도록 합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그 이름으로 우리가 맹세한 신들을 증인으로 부르며, 전쟁을 시작한 책임을 여러분에게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공격해오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를 지킬 것입니다.”

이 연설문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제 2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테네가 그리스 도시국가의 패권국으로서 우월적인 지위를 누렸다는 것, 그로 인해 펠로폰네소스 동맹국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는 것과, 제2차 페르시아 전쟁시 (BC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행정과 군사 양면에서 능력이 출중한 아테네의 불세출의 명장, 로마의 카이사르에 비견될 수 있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지휘한 해전에서 승리한 결과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가 본국으로 도망쳤고, 육군은 그의 장군 마르도니우스가 맡아 BC 479년 플라타이아이 평원에서, 스파르타 왕 파우사니아스가 지휘한 그리스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승리한 것 역시 테미스토클레스의 해전에서의 승리가 끼친 영향 덕분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 이다.

이렇게 아테네 사절단이 이해득실을 따져 가며 연설했으나, 펠로폰네소스 동맹은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과의 결전을 결의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졌다(BC431).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양국간의 30년 강화 조약과 스파르타 헌법 리쿠르고스법을 지키고자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정규군의 직접 충돌을 피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것은 스파르타 왕 아르키다모스와 아테네의 대표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우호 관계 영향이 크다. 아르키다모스는 강력한 제국 아테네와의 전면전은 하고 싶지 않았고, 페리클레스 역시 스파르타의 중무장 보병의 위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스파르타는 아테네 북부 아티카 지방을 여름에 공격했다가 가을이 되면 돌아가고,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동,남해안을 각각 따로 따로 공격하면서 몇 해를 보냈다. 침략 받은 도시의 방어는 각 도시가 맡았으나 아테네나, 스파르타에서 소규모의 병력 지원은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테네에 역병이 창궐하고, 전쟁 피로감이 겹쳐 니키아스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전쟁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며 몇 해가 지나자 뭔가 답답해하는 분위기가 되어갔다.

그런 즈음에 시칠리아 서부 세제스타와 셀리눈테의 영토 분쟁이 시작되었고, 셀리눈테 뒤에는 시라쿠사가 있었고 시라쿠사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국 코린토스의 식민지였다. 이를 안 세제스타는 아테네에 구원을 요청하였고, 아테네도 답답한 분위기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원정을 결정한다. 아테네의 원정 소식이 알려지자 시라쿠사는 스파르타에 원병을 요청한다. 스파르타는 중무장 보병인 정규군의 직접 충돌을 피한다는 원칙하에 군사 전략 지휘관 1명에, 비정규군 700명을 파견한다. 전략지휘관 길리포스는 시라쿠사에 도착해서 시칠리아 전역을 돌며 지원군 2,300명을 모집하여 총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시라쿠사에 들어갔다.

아테네는 1차, 2차에 걸쳐 원병을 보내지만 35,000여명 전원이 몰살된다. 시칠리아 원정 실패 원인은 첫째, 시민집회인 민회에서 유능한 최고 사령관 알키비아데스를 헤르메스 신상 파괴 혐의를 물어 전장에서 소환함으로서 평볌한 사령관이 지휘를 하게 된 것. 이것이 아테네 민주정(Democratia)의 폐해인 우중정치로 빠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달리 로마 공화정(Res Publica)은 전장에 있는 지휘관이 범법 혐의가 있다 해도 소환하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에 그 죄를 심판했다.

역사에 가정이란 무의미하지만 만일 알키비아데스가 소환되지 않고 군을 지휘했더라면 아테네는 결코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아테네 군은 시라쿠사 북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그곳을 거점으로 시라쿠사를 공격하려 했으나, 시라쿠사의 탁월한 기병이 공사를 방해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자, 통찰력이 부족한 아테네 사령관이 해군을 운용하기가 불리한 시라쿠사 서남쪽 해안 언덕에 진지를 구축해서, 육로로는 시라쿠사 기병의 공격을 받고, 바다로는 시라쿠사 해군의 포위를 당해 수,륙 양면 공격을 당하여 패한 후 배에서 살아남은 병력이 육로를 통해 패주하다 시라쿠사 기병의 추격을 받아 전원이 몰살당하였다. 또한 사령관 니키아스는 사로 잡혀 처형되고 포로 7,000명은 광산 노예형에 처해졌으나 살아 돌아간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BC415~BC413)

이 참화가 아테네로 전해지자 시민들은 믿을 수 없다. 강력한 패권국 아테네의 전사들이 어찌 이렇게 참패할 수 있는가? 라며 충격에 빠졌고, 이로 인해 델로스 동맹의 결속력도 약화되며 아테네의 국력도 기울게 된다.

시칠리아 원정의 참패로 델로스 동맹이 약화되자, 페르시아 왕의 동생 키로스가 에게해 동부, 소아시아 서부 해상제해권 회복 목적으로 스파르타로 손을 뻗쳐 군자금을 댈 테니 아테네 해군에 맞설 수 있는 군선을 건조하고, 숙련된 해군을 양산(量産)해 보자는 제의를 했다. 스파르타는 제안을 수락했고, 해군 지휘관으로 리산드로스를 선출해서 에게해 동쪽 섬으로 보냈다. 리산드로스는 대제국 페르시아의 풍부한 자금으로 아테네의 군선 제작기술자를 빼내와서 군선을 건조하고, 아테네의 숙련된 노꾼을 모집하여 해군력을 강화한다. 이렇게 해서 전장은 에게해의 동쪽으로 이동되었다.

에게해 동중부 레스보스 섬과 소아시아 서해안(터키 서해 중부) 사이 아르기누사이 해협에서 아테네 해군과 리산드로스가 지휘하는 스파르타 용병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는데(BC406년), 아테네가 이겼으나 철수할 때 폭풍이 불어닥쳐 몇 척의 배가 침몰되자, 분노한 유족들이 사령관 8명 전원을 사형에 처해달라고 민회에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민회는 어리석게도 전쟁 유경험자이자 소중한 인적 자산인 스트라테고스(사령관) 8명에 대해 사형 판결을 내린다. 이것 또한 아테네의 우중정치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하여 2명은 달아나고 6명은 사형에 처해진다. 전투에 이기고도 전쟁이 아닌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로 최고 사령관이 사형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테네 민주정애서 벌어진 것이다.

아테네는 경작지가 별로 없어 주로 밀을 수입했었는데, 그 큰 수입처 중의 한 곳이 흑해 연안이었다. 따라서 아테네 해군은 식량 수송 통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주 임무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시칠리아 원정 참패 후에 새로 군선도 건조하고, 해군도 양성해야 했으나 자금이 부족했다. 따라서 연안 방어외 에게해 해상수송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리산드로스는 아테네의 이러한 약점을 노리고 헬레스폰토스(현 터키 다르다넬스)해협으로 해군 함대를 이동시켰다(BC405년)
아르기누사이 해협의 폭풍우 침몰 사고의 책임을 물어 사령관 6명 처형한 후 리산드로스의 함대 이동을 소식을 들은 아테네는 전투 지휘 경험이 없는 사령관을 급히 선출하고 함대를 편성해서 헬레스폰토스 해협으로 보냈다.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도착한 신출내기 사령관은 수심이 얕고 항이 좁아 해전을 펼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보급선이 너무 먼 아이고스포타모이 항에 함대를 정박시켰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한 차레 양쪽이 맞서보았으나 별 교전 없이 리산드로스는 함대를 물러나게 했다. 아테네 사령관은 리산드로스가 완전히 퇴각한 줄 알고, 배에서 내려 군사들로 하여금 식량을 구해오게 했다. 이 때 리산드로스는 무인지경의 배를 점령하고, 3,000명의 병사들을 참살하고 포로 27,000명을 아테네 본국으로 귀환 시켰다
이 후 리산드로스는 에게해 수 많은 섬에 거주하고 있던 아테네인들을 모두 본국으로 귀환조치 시켰다. 이때부터 에게해 동부의 패권은 스파르타로 넘어갔다. 약 20년후 스파르타 해군과 페르시아 해군과의 해전에서 페르시아가 승리함으로서 다시 페르시아로 넘어갔다.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이 있기까지 50년 동안(BC384~BC334).

이리하여 27년간(BC431 ~ BC404)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최종적으로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다. 아테네는 다수결이 늘 옳은 것 만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400인, 5,000인 회의체로 체제 변화를 꾀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내는 민주정으로 회귀했다. 한 때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에게해의 해상제해권을 장악한 강력한 패권국이었지만, 아테네는 민주정의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지 못하고 우중정치에 의해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정리 후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여느 전쟁과는 달리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정규군이 서로 직접 충돌을 피하는 형태로 27년간에 걸쳐 벌어졌기에 그 동안 벌어진 수 많은 사건을 다 쓸 수도 없고 해서, 메모리가 자극되어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전투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해도 생각처럼 잘 엮어지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어렵더라도 한 번 정리해봐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한 번 읽어봐도 전쟁 발발 원인(세가지 에피담노스 민주파와 귀족파 분쟁, 테베의 플라타이아이 침공, 마케도니아 왕족 분쟁에 말려든 포티다이아의 델로스 동맹 탈퇴, 이 세가지가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전쟁으로 끌어들였다)과 전개가 잘 연결이 되지 않았고, 뭘 읽었는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책을 놓고 어떻게 각각의 사건을 무리없이 연결시킬까를 고민하면서 다시 읽어보기를 반복하며 줄거리를 잡았지만, 졸필로 기억을 꺼내어 글을 쓰기까지는 여러 날 두뇌속에서 정리되도록 숙성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큰 사건 중심으로 이렇게나마 정리하게 된 것을 작은 보람으로 여기며, 이 글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5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13 댓글
1 파란도미 19-08-25 15:55 0  
회고록인지 자서전 인지 일기장 인지.. 다수의 대중에게 알리는 글 치고는 마무리가 조금 거시기 합니다 여기 인낚 유저 들이 선생님께 강의 받는 수강생들이 아닐진대 선생님의 어투는 좀 불편해 보입니다
1 파란도미 19-08-25 16:03 0  
물론 이글이 마무리까지 퍼온글 이라 하시면 더이상 뭐라 말 못하겠지만 선생님의 앞선 글들도 거의 똑같은 문맥 이라 글 남겨 봅니다
1 자버리 19-08-25 20:49 0  
《Re》파란도미 님 ,
이글을 쓰게된 배경은 펠로폰네소스전쟁은 많이 들어봐서, 그 명칭은 알고 있었으나 내용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1:30분가량의 유튜브 동영상이나, EBS 대학교수의 강의를 들아봐도 그 개략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어서,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거지요. 백과사전을 다 뒤져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한 번 읽어봐도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글로 한번 정리 해보고자 햇던거고요. 그 과정이 쉽지만 않았기에 그 소회를 적은 것입니다.

글의 내용보다도 개인적인 소회를 밝힌 부분이 거슬리고 불편했다니, 유감이군요.
글 내용보다 개인적인 소감이 불편했다고 그기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같아
안타깝군요. 님의 철학은 문학적 교감보다 개인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 하군요.

글을 쓰는 관점은 개인 관점입니다.. 자버리라는 닉네임을 가진 개인이 그 개인의 관점으로 전쟁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한 바를 쓴것이지, 누구를 가려칠려고 한것도 아니며,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공감 소통 목적으로 올린것이라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군요
내 관점에서 버라본 역사를 공감하는 분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공감이 아니라 무시해도 상관없습니다.
1 자버리 19-08-25 21:04 0  
《Re》파란도미 님 ,
다시 한번 밝히지만 ,나는 남의 글을 퍼오지 않아요. 그리고 인용한다면 그 인용처를 밝힙니다.
그대가 검색 능력이 있다면 온갓 포털이나 유뷰브,페북을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똑같은 글을 발견한다면, 나는 다시는 글을 올리지 않을것이며, 그런 전쟁사를 쓴 다른글이 있다면 비교해서 어느 것이 나은지, 내가 쓴 글의 부족한 부분이 무언
지 글을 올려주신다면 큰 가르침으로 여기겠습니다.

내가 보완할 부분은 시칠리아 원정 초기부분을 놓쳣네요. 그 부분은 따로 보완할것이며 인낚에는 공개하지 않을 것입니다.
1 자버리 19-08-25 22:15 0  
《Re》파란도미 님 ,
바라건데, 이런 류의 댓글이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하고자하는 사람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는지?

1543년 일본에 조총 2자루가 전해졌지요. 이 조총 2자루가 49년 뒤에
조선,명,왜 3국의 국제전이 벌어지는 역활을 하지요.나비효과 입니다.
그러나 조선에 1590년 대마도주에 의해 전해진 조총은 아무런 역활도 못하고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지요. 같은 조총이 어떤 나라에 전해지느냐에 따라
그 역활에 천양지차가 있었던 거지요
과연 인낚회원 중에 이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나는 이 역사를 같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막 알리고 싶어요.
그런데 이것을 님같이 가르지려 한다, 아는 척 한다 라고
비아냥 거린다면 누가 글을 올리고 싶을 까요?

부디 자유로운 공감소통에 부정적 보다 긍정적인 역활을 하는 인낚인이 되기 바랍니다.
1 해조락 19-08-26 00:24 0  
정리하신다고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한 글자도 안노치고 세세하게 다 읽어 봤습니다
훌륭한 글이네요
원문을 보셨는지 번역을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그 전쟁 후 소크라테스는 물질 소유를 공공연히 비난하다 불경죄로 고소
당하여 배심원단의 판결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독배를 마시고
숨졌다는 슬픈 역사도 있지요.
이 전쟁이 후세에 남기는 시사점과 아테네는 이 전쟁에서 왜 졌을까 등을
현대 전쟁사에 대비하여 기술 되었으면 더 훌륭한 독후감이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정도의 훌륭한 장문의 글을 쓰실려면 많은 시간의 투자가 필요했을텐데
수고하셨습니다
1 공단이 19-08-26 00:42 0  
《Re》자버리 님 ,
일본은 그 당시 춘추전국시대
쌈박 질만 하다보면 쌈박질만 발전하는 법
춘추전국시대 하두 쌈박질만 하다보니 오히려 유럽에 역수출 할 정도로
총포 기술이 발전 됐죠. 비록 쌈박질은 일본 보다 못했지만 조선의 문화는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 났죠 .
어느 정도로 뛰어났냐면 춘추전국시대때 오다 노부나가가 주는 조선 막사발 하나가
다른 영주와 동맹의 징표이기도 했고 전쟁도 안하고 이길 정도였죠 .
일본의 총포기술은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통일하면서 다시 쇄퇴합니다.
춘추전국시대란 환경이 총포를 발전 시켰던 겁니다 .
1 바커수 19-08-26 09:55 0  
《Re》자버리 님 ,
아니 자버님은 얼마전에 인터넷 어느블로거 글 복사붙여넣기해서 여기서 자기글이라고 올렸다가 아니라고 발뺌하다가 증거 들이밀고 들키자 빤스런하신분 아니십니까?
다시는 여기에 이런글 안올리신다고 하신지 한달도 채 안된거 같은데 또 슬슬 적기 시작하네요.
여기 클럽가는스님도 계시고 거짓부렁하다가 또 무슨 쪽파시려고 세상사는이야기코너에 일기장을 적으시나요?

님이 말하는 빨갱이 사상 가진 친동생분과는 화해하셨나요? 전 친동생조차 설득 못하고 다투고 사이나빠졌다는는것으로보아서 님은 남을 설득하는 재주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그냥 설득이라도 잘하는 윤투브나 성제준같은 유투버들 후원금이나 내시고 그들이 한끼에 25만원짜리 식사하는 동영상보며 좋아요나 눌러주며 여생을 편안하게 사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이런글쓰며 어렵게 설득하고 저같은 어린놈한테 독설듣고 상처받는거보다 낚시하러 나가세요.
나라걱정안해도 윤투브같은 애들이 한끼 25만원짜리 식사하며 일본가서 님이 보내준 쌈짓돈 후원금 받으면서 이제 대한민국은 망했다며 열심히 나라걱정하고 다닙니다.
진짜 님은 설득력이 없어요.
5 오늘도마음만은 19-08-27 07:40 0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내용이군요
지금 세태와 같이 연계해볼 점이 있군요.
아테네가 우리나라인지 일본인지...

아테네사절단 연설내용으로 보면 아테네가 일본이고 펠로폰네소스 동맹국이 한국으로 보시는듯하고...

중우정치를 한다는 관점으로 보면 재판을 인용한걸보면 한국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듯하고 아베와 극우 그리고 매거진의 험한경향이 강한걸 보면 일본의 경우인것도 같고..

한권 사서 읽어보아야겠네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님의 글은 투키디데스의 성향을 그대로 받아들이신다는 생각입니다.
표면읽기에서 벗어나 행간도 보고 이면도 보심 더 좋은 글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 시기상 한번쯤 권장도서로 좋겠다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하루되세요.

1 페스티발 19-08-27 12:17 0  
《Re》바커수 님 ,
제가 자버리님 한국당은 왜참패했는가?
블로거에서 퍼온글 처음지적하였던 일인입니다 저분글은 다퍼온걸로 생각이들까요?
1 바커수 19-08-28 00:56 0  
《Re》페스티발 님 ,
한번의 실수치고는 너무 뻔뻔하게 자버리님 자기가 쓴글이라고 주장하셨지만 그 뒤로도 그랬을거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할일없이 시간만 쪼개는 뒷방늙은이가 되어버린...
어느새 가족들과도 어색한 사이가 되어있는 놀아줄 사람없어서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데 주위의 누구도 자기말에 동의하지않는데 여기는 그나마 덧글 달아주는 사람도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여기다가 일기장써놓는 거겠지요.

저렇게 장문의 과거 역사에서 배울게 많다는걸 역설하고 억지로 자기논리에 역사를 끼워맞추려하는 모습이 불쌍하기도하고 아버지세대의 씁쓸한 모습인거같아 짠하기도한데 주장하는 논리가 역겨운부분이 많았던분이라 그냥 넘어가지지않네요
 
포토 제목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