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낚시신동이 탄생되다.
① 출 조 일 : 2011년 1월 8일
② 출 조 지 : 경남 통영시 한산면 홍도
③ 출조 인원 : 회원 3명 + 비회원 5명
④ 물 때 : 12물
⑤ 바다 상황 : 비교적 양호
⑥ 조황 요약 : 상사리 마릿수
모처럼만에 글을 올립니다.
홍도, 낚시 신동이 탄생되다.
좋은 날씨를 빙자하여 모처럼만에 마다이, 마다이 아들(13세 초교6년 신동휘),
이름도 아름다운 작은갯바위, 방어사랑, 그리고 대구 세분, 다른 개인 손님 2분,
선장님을 포함하면 모두 10명, 사람이 만선인 상태로 먼동이 터올즈음 출항하였다.
손은 시렸지만 맑은 날씨, 조용한 바다에 적당한 조류는 희망적이었다.
참돔을 기대하며 곧장 대를 드리웠다.
그러나 해가 한참 떠올라도 참돔은 커녕 누구하나 입질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호조건을 악조건으로 만들어 버리는 연두색 물빛 !
대방어낚시의 자연적 조건에서 물색이 이탈하였다. 수온는 2차 문제였다.
3대의 배들은 남서쪽, 북동쪽, 남동쪽으로 각각 나뉘어 자리하였지만
모두 황이란다. 헤아릴 수 없는 갈매기들만 온 바다를 가득 메우고....
북동쪽과 남동쪽의 선단들은 이리 저리 포인트의 변화도 시도하였지만 허사 !
줄기차게 한 곳에 붙어 있는 우리에게 가벼운 입질 끝에 올라 오는 상사리..
한우물을 파는 우리 선단의 집중이 미약한 반응을 한 것이었다.
포인트를 옮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똑같은 물색, 똑같은 조류, 똑같은 햇살 아래서
포인트를 옮겨 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반대했다.
그 물이 그 물인데 옮겨서 물밑 고기들의 반응을 불러 오기에는
물색이 너무 탁했다.
우리들은 방어사랑의 14호 원줄, 14호 목줄, 14호 바늘의 채비를 비롯하여
모두 12호 원줄, 10호 목줄이상의 강채비였다.
채비를 흘리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견제는 무용지물이었다.
차가운 날씨로 녹혀 놓은 미끼조차 다시 얼어 붙어 버리는 날씨에 원줄은 용수철이었다.
다른 조우들은 5호, 6호의 원목줄을 사용하고도 있었다.
게다가 쌍바늘, 3개의 가지채비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어사랑이 43cm의 참돔으로 크기 장원을 시작으로 조과는 우리 회원들이 앞섰다.
간간히 참돔 상사리, 그리고 방어사랑의 47cm 농어 등이
입질을 잊어 버릴만 하면 올라 왔다.
다른 두 배는 몰황이었다고 한다.
한동안 선실에서 잠을 자던 동휘가 아빠의 낚싯대를 가로 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사리 한수를 올렸다.
다시 시간이 가는데 제법 강한 입질을 받았다. 어어어 !
아빠도 거들고, 선장님도 훈수를 두고.....
오늘 첫 부시리가 올라 왔다. 75cm 전후의 녀석이다.
이름에 괜히 휘자를 붙여서 이름 버려 놓았다. 그대로 "신동"인데...
남들이 열심히 하는 동안 그는 푹 쉬고 부시시 일어나
채비가 다 되어 있는 아빠의 낚시대를 접수 받았고,
밑밥으로 불러 모아 놓은 고기를 어렵지 않게 잡는 것이었다.
감히 누가 이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낚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
아빠는 잠시 주눅이 들었지만 낚시 신동을 아들로 둔 것에 감격스러워 하였다.
이어서 방어사랑의 부시리 두수를 마감으로 15:00경 철수길에 올랐다.
돌아 오는 길은 약한 백파가 일었지만 험상궂지는 않았고
모두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다음 복수전에 나설 것을 다짐하였다.
작은갯바위님의 선상 첫 출조는 상사리로 손맛만을 보고 그 마음속에 담고 갔었던
온몸낚시를 느끼지 못하였으니 당연히 복수혈전을 다짐할 수 밖에...
다시 뭉칠 날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2011년 첫 출조는 한주 뒤의 신년회와 낚시대회에 바턴을 넘기고 막을 내렸다.
비록 황이었다 할지라도 으랏차차홍도는 화이팅으로 다시 큰 꿈을 꾼다.
홍도야 울지마라 !
터자무도 웃고 꽝이라도 웃자 !
② 출 조 지 : 경남 통영시 한산면 홍도
③ 출조 인원 : 회원 3명 + 비회원 5명
④ 물 때 : 12물
⑤ 바다 상황 : 비교적 양호
⑥ 조황 요약 : 상사리 마릿수
모처럼만에 글을 올립니다.
홍도, 낚시 신동이 탄생되다.
좋은 날씨를 빙자하여 모처럼만에 마다이, 마다이 아들(13세 초교6년 신동휘),
이름도 아름다운 작은갯바위, 방어사랑, 그리고 대구 세분, 다른 개인 손님 2분,
선장님을 포함하면 모두 10명, 사람이 만선인 상태로 먼동이 터올즈음 출항하였다.
손은 시렸지만 맑은 날씨, 조용한 바다에 적당한 조류는 희망적이었다.
참돔을 기대하며 곧장 대를 드리웠다.
그러나 해가 한참 떠올라도 참돔은 커녕 누구하나 입질 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호조건을 악조건으로 만들어 버리는 연두색 물빛 !
대방어낚시의 자연적 조건에서 물색이 이탈하였다. 수온는 2차 문제였다.
3대의 배들은 남서쪽, 북동쪽, 남동쪽으로 각각 나뉘어 자리하였지만
모두 황이란다. 헤아릴 수 없는 갈매기들만 온 바다를 가득 메우고....
북동쪽과 남동쪽의 선단들은 이리 저리 포인트의 변화도 시도하였지만 허사 !
줄기차게 한 곳에 붙어 있는 우리에게 가벼운 입질 끝에 올라 오는 상사리..
한우물을 파는 우리 선단의 집중이 미약한 반응을 한 것이었다.
포인트를 옮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똑같은 물색, 똑같은 조류, 똑같은 햇살 아래서
포인트를 옮겨 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반대했다.
그 물이 그 물인데 옮겨서 물밑 고기들의 반응을 불러 오기에는
물색이 너무 탁했다.
우리들은 방어사랑의 14호 원줄, 14호 목줄, 14호 바늘의 채비를 비롯하여
모두 12호 원줄, 10호 목줄이상의 강채비였다.
채비를 흘리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견제는 무용지물이었다.
차가운 날씨로 녹혀 놓은 미끼조차 다시 얼어 붙어 버리는 날씨에 원줄은 용수철이었다.
다른 조우들은 5호, 6호의 원목줄을 사용하고도 있었다.
게다가 쌍바늘, 3개의 가지채비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어사랑이 43cm의 참돔으로 크기 장원을 시작으로 조과는 우리 회원들이 앞섰다.
간간히 참돔 상사리, 그리고 방어사랑의 47cm 농어 등이
입질을 잊어 버릴만 하면 올라 왔다.
다른 두 배는 몰황이었다고 한다.
한동안 선실에서 잠을 자던 동휘가 아빠의 낚싯대를 가로 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사리 한수를 올렸다.
다시 시간이 가는데 제법 강한 입질을 받았다. 어어어 !
아빠도 거들고, 선장님도 훈수를 두고.....
오늘 첫 부시리가 올라 왔다. 75cm 전후의 녀석이다.
이름에 괜히 휘자를 붙여서 이름 버려 놓았다. 그대로 "신동"인데...
남들이 열심히 하는 동안 그는 푹 쉬고 부시시 일어나
채비가 다 되어 있는 아빠의 낚시대를 접수 받았고,
밑밥으로 불러 모아 놓은 고기를 어렵지 않게 잡는 것이었다.
감히 누가 이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낚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
아빠는 잠시 주눅이 들었지만 낚시 신동을 아들로 둔 것에 감격스러워 하였다.
이어서 방어사랑의 부시리 두수를 마감으로 15:00경 철수길에 올랐다.
돌아 오는 길은 약한 백파가 일었지만 험상궂지는 않았고
모두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다음 복수전에 나설 것을 다짐하였다.
작은갯바위님의 선상 첫 출조는 상사리로 손맛만을 보고 그 마음속에 담고 갔었던
온몸낚시를 느끼지 못하였으니 당연히 복수혈전을 다짐할 수 밖에...
다시 뭉칠 날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2011년 첫 출조는 한주 뒤의 신년회와 낚시대회에 바턴을 넘기고 막을 내렸다.
비록 황이었다 할지라도 으랏차차홍도는 화이팅으로 다시 큰 꿈을 꾼다.
홍도야 울지마라 !
터자무도 웃고 꽝이라도 웃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