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낚시는 적막한 어두움 가운데서도 화려한 어신과 새벽의 기다림이 있고 한밤에 치루어지는 "와당탕탕" 한판 승부의 야성과 고요한 낭만도 있으며 침묵과 공포도 함께 있다.
칠흑같은 어두운 밤바다. 갯바위에 부딪혀 흘러내리는 바닷물 속의 프랑크톤들이 형광 빛을 발하며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채비를 던져 넣으면 파아란 형광물질이 아련하게 원을 그리면서 퍼져 나가고 빨간 전기찌가 오뚝하니 서 있다가 까만 밤바다 속으로 사르르륵 사라질 때의 아름다움도 있다. 너무나 아름다워 살며시 눈을 감으면 가끔씩 떠 올라 가벼운 흥분을 느끼게도 하는 낚시인들 만이 알고 있는 환상이다.
밤낚시의 아름다움과 공포
그렇지만 혼자서 밤낚시를 하다보면 이상야릇한 환상에 빠져들 때가 있다. 홈진 갯바위를 핥으면서 흘러내리는 파도소리는 꼭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소리 같고 때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같으며 때론 동물들의 울음소리로도 들린다. 달밤에 보이는 갯바위의 형상과 주변 정황이 마치 이상야릇한 형태로 변하면서 소름끼치게 까지 만들며 밤이 깊어가면 갈수록 더욱 무시무시한 환상 속으로 빠져들 때도 있다. 이렇게 파도소리가 가날픈 속삭임으로 들리고 바람소리는 마치 곁에서 누군가가 불러주는 노래 소리로 들리다가 무서운 홀림에 빠져 들어가기도 한다.
갑자기 온몸이 오싹해지면서 소름이 끼치고 온갖 잡생각들이 머리를 맴돈다. 오래 전 태종대(太宗臺)에서 낚시하다가 우연히 목격한 사체 - 익사한지 오래되었는지 뻣뻣하게 굳어 있으며 눈을 부럽뜨고 있었지만 까만 눈동자는 없고 전체가 희커멓게 변하였다. 얼굴과 손이 부풀대로 부풀었고 코와 한쪽 귀 그리고 얼굴의 반쪽은 아예 떨어져 나갔는지 뭉겨 졌는지 없었다. 한쪽 손도 반 정도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 뼈에 약간의 살만 흐물흐물하게 붙어있고 하늘을 향해 양손을 약간 벌려 들고 있었다. 머리 껍질이 반 정도가 뒤쪽으로 벗겨져 허연 두개골을 노출하고 있었지만 짧은 머리카락이 몇몇 붙어 있었던 익사체(溺死體)는 분명 남자였다 - 생각도 번득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신이 없어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는데 뒤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이런 날 혼자 낚시를 하다보면 더욱더 소름이 끼쳐 뒤를 바라다 보기가 싫어지기도 한다.
낚시도중 나타난 물귀신
'87년 봄의 일이다
물귀신(?) 머리를 때려 3칸 장대가 박살 났다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거제(巨濟) 구조라(舊助羅)앞 밖섬은 씨알 좋은 볼락이 많이 낚여 봄이 되면 가끔씩 찾아 나섯다. 부산 충무동에서 매물도(每勿島) 방향으로 항해하던 중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이었다. 일찍 도착하여 볼락 채비를 준비해 두고 풍성하게 갯바위에서 식사까지 마쳐도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조우 K씨와 막간을 이용하여 망상어 장대로 이곳저곳 노리면서 모처럼 망상어 손맛을 즐겼다. 수온은 차고 물이 맑았다. 그렇지만 밤볼락은 흐린 물보다는 맑은 물색일 때 어신이 활발하였으므로 해진 후 짭짤한 손맛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해 떨어지기 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오늘은 달이 없는 밤이라 더욱 볼락의 입질이 활발할 것이라는 생각에 잠기면서... 해금강(海金鋼)의 아름다운 낙조(落照)를 뒤로 하고 밤볼락 낚시를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해질 무렵부터 짜릿한 볼락의 입질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청갯지렁이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초릿대를 흔들어 데었다. 민장대 맥낚으로 낚아내는 밤볼락의 손맛과 감칠맛 나는 회맛, 그리고 소금구이 맛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겨울 내내 감성돔을 쫓아 다닌다고 맛보지 못하였던 오밀조밀하고 짜릿한 손 맛이기도 하였다. 자정 때쯤 중치급 볼락을 제법 잡았다. 허기를 느낀 조우와 함께 볼락 회로 소주 한잔 비우고 따끈한 라면으로 야참도 즐기며 모처럼 밤 볼락 낚시로 얘기 꽃을 피웠다.
어느 정도 몸을 녹인 후 다시 낚시를 시작하였으나 갑자기 어신이 뚝 끊어져 버렸다. 혼자 민장대와 보조빽만 하나 들고 자리를 옮겨 다니며 이곳 저곳을 노렸으나 역시 어신이 없었다. 갑자기 어신이 끊어져 버리자 추위를 느꼈고 몸은 움추려 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음산한 분위기에 접어 들었다. 조우 역시 저 넘어 갯바위에서 졸음을 이기며 낚시를 하고 있는지?, 볼락 입질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물 속에 물귀신이 불쑥 올라와...
칠흙같은 밤이었다. 계속 장대를 좌우로 끌고 또 들어주면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갯바위 발 아래서 물 흘러내리는 소리와 함께 씨커먼 물귀신(?)의 머리가 수우욱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낚시를 하고 있는 필자를 노려보기 시작하였다. 예고없이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너무나 놀랐다. 입가에서 저절로 "으~윽"하는 외마디 비명이 튀어 나왔지만 순간 온몸은 굳어버리면서 떨려 왔고 발은 꼼짝 할 수 없었다. 아니, 너무 겁에 질려 아예 몸을 조금이라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칼이 쭈삣하게 돋아 났고 온몸은 닭살이 되어 버렸다."으으윽~"하는 비명이 입가에서 또다시 흘러 나왔지만 굳어 버린 입이 열리지 않았다. 어신이 끊어진데다 한기를 느꼈고 졸음이 쏟아질 때 일어난 일이었다. 엉둥이를 뒤로 물리면서 용기를 내어 후라쉬를 아래쪽으로 비춰보니 물귀신의 눈에서는 시퍼런 불빛 반사되고 있었고 금방이라고 갯바위로 기어올라 올 듯 필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공포의 순간, 용왕님이 고기 많이 잡아간다고 심판하러 보낸 저승사자와 같았다. "뒤로 물러나 도망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물귀신에 홀린 나머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짧은 순간, 두 눈에 시퍼런 불을 켠 물귀신과 눈을 마주치면서 응시하고 있었지만 잠시 후 물귀신은 다시 물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 가 버렸다. 응겹결에 두발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그 놈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물귀신은 바로 물개였다. 떨리는 몸을 추스리며 뒤쪽 약간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 이놈의 동태를 살피니 잠시 후 갯바위 앞 떨어진 여로 다시 기어 올라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힐큼힐큼 쳐다보기도 하고 특유의 걸음걸이로 갯바위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 큰소리로 조우를 불렀다. 그러면서 "만약 저 놈이 달려와 덤벼 든다면..." 하는 두려움으로 자리를 더욱 위쪽으로 옮겼지만 조우가 있는 건너편으로 도망 갈 힘이 없었다. 아니 도망 갈려고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제대로 갯바위를 타고 넘어갈 수 가 없었다.
일단 후라쉬 불빛을 계속 비추며 큰소리로 조우의 이름을 불렀다. 고함 소리에 놀란 조우가 넘어오자 안도할 수 있었고 용기도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이놈을 멀리 쫓아내기 위하여 코펠로 갯바위를 두들기고 요란스럽게 소리도 쳐대면서 물귀신(?)을 물 속으로 쫓아내는데 성공하였다.
물귀신을 쫒아 내는데 성공하였지만
물귀신에 너무나 놀란 밤이라 잠도 오질 않았다. 낚시를 해도 어신이 없었다. 다시 조우와 함께 건너편으로 넘어가 낚시를 시작하였지만 몇마리 볼락이 물어 주다가 어신이 또다시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부지런히 장대를 끌어도 주고 또 들어주며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 아래 물살을 가르며 갯바위를 잡고 이놈의 물귀신이 다시 쏟아 올라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내어 쉬며 우리를 올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둘은 얼마나 놀랐는지 몸이 굳어 뒤로 물러설 수 가 없었지만 용기를 내어 "야! 이놈의 물귀신아!" 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필자가 가지고 있던 3칸 민장대로 갯바위를 움켜잡고 있는 물개의 머리를 향해 내려 친 다음 장대로 강하게 밀어 버렸다. 낚시대는 "뻑"하면서 두동강이 났고 그때사 이놈은 젭사게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해가 뜰 때까지 이놈이 또 나타날까 두려움으로 낚시를 접어두고 높은 곳에서 까만 밤바다만 바라다 보고 있었다.
물귀신에 놀라 기절
필자의 경험보다 더 소름기치게 물귀신을 경험을 한 낚시인 이야기이다. 이 낚시인 역시 갯바위 홈통에 파묻혀 신바람 나는 밤볼락 낚시에 열중하고 있었다. 볼락이 잘 낚였다. 잡는대로 쿨러에 넣을 둘 시간이 없어 낚아 올린 다음 옆쪽 갯바위 홈통으로 던져 놓으면서 계속 낚시를 하고 있었다. 끈질기게 이어지는 입질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낚시를 하고 있었고 주변의 상황은 전혀 파악치 못하였다. 얼마간 낚시를 하다가 입질이 뜸해 담배 한대를 피워 물고 홈통에 던져 둔 볼락을 쿨러에 넣어 보관하기 위하여 옆 쪽 홈통으로 손이 갔지만 그 많이 잡았던 볼락이 한마리도 없었다. 이때 낚시인의 뒤에서 어깨를 누군가가 툭~툭 쳤다고 한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 보니 시커먼 물체가 자기 뒤쪽에 우뚝 서 있었다고 하였다. 놀라 후라쉬를 비추어 보니 물귀신이 두 눈에 섬광을 번뜩이면서 금방이라도 덤벼 들듯 바라보고 있었고 그 순간 이 낚시인은 너무나 놀라 실신해 버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바다로 추락하지는 않았다. 뒤에 추측컨대 이 낚시인이 잡아 홈통으로 던져놓은 볼락을 뒤쪽에서 야금야금 받아 먹고 있던 물개가 입질이 뜸해 담배 한대를 피워 무는 순간 빨리 고기 잡아 달라고 어린애 같이 졸라 덴 것이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낚시인 역시 물귀신과 눈이 마주쳤던 순간의 공포는 쉽사리 지울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날도깨비의 출현
'85년 늦가을,
매년 그렇지만 고구마를 캘 무렵 소리도(鳶島) 감성돔은 절정기로 치 닿는다.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여수(麗水)를 향해 달려갔다. 여천군 안도(安島)의 서고지 방파제에서 소리도 역포의 K씨에게 도착했음을 알리면 이내 조그만 종선(從船)으로 우리를 맞으려 달려 왔다. K선장 집에 여장을 풀어 두고 가벼운 낚시장비만 지참하여 출장낚시를 해도 되지만 필자와 조우는 이맘때 재미 본 자리가 있었기에 민박을 하지 않고 곧바로 포인트로 들어가 야영낚시에 돌입하였다. 낚시장비는 갯바위에 두고 텐트는 갯바위 언덕 위 풀 숲에 설치하였다. 텐트자리 밑 평평한 곳을 골라 본부를 정하였고 이곳에 아담하게 식당도 차려 취사도구와 식량등을 모아 두었다. 감성돔 낚시를 하다가 어둠이 내리고 나면 밤볼락 낚시를 하였다.
오후 9시, 넘기고 난 후 였다. 낱마리 볼락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더 급하여 저녁을 지어 먹으려고 텐트 쪽으로 올라 왔다. 쌀을 씻고, 바나도 피우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텐트 속에서 뭔가 이상한 인기척이 나기 시작하였다. 조우는 저 아래쪽에서 아직 낚시를 하고 있는데 텐트 속에서 인기척이 들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앞섯다. "텐트 출입문 쟈크를 잠그지 않고 내려가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심한 바람도 없었다. 후라쉬를 켜고 텐트 속을 비추어 보니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인기척이 들리니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소름이 끼치기 시작하였다.
"이상하다,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혼자 중얼거리면서 텐트 출입문의 쟈크를 잠궈 놓기 위하여 손을 갖다 대는 순간, 갑자기 텐트 속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깨비 같은 놈이 손살같이 튀어 나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발랑 자빠져 버리고 말았다. 텐트 밖으로 튀어 나온 그 놈은 "쿠억~쿡" 소리를 지르면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인기척의 주인공은 꿩이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날 도깨비 소동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누지 못하는데 조우가 올라 왔다. 날 도깨비 이야기를 하니 오히려 "그러면 빨리 텐트 쟈크를 잠그고 잡지 못하였다"고 핀잔이었다. 맛있는 꿩 요리를 놓쳤다는 아쉬움으로... 이렇게 밤낚시를 하다보면 야생동물에게 홀릴 때가 가끔 있다.
아직도 알 수 없는 헛깨비
헛깨비를 보았는지 아니면 환상의 일치를 보였는지 모를 일이 있었다.
'73년 봄, 그러니까 대학시절의 일 이었다. S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바다낚시를 다녔던 죽마고우였다. 시간만 있으면 쿨러하나 둘러메고 장대 몇 개 들고서는 부산근교의 바다를 주로 나섯다. 다대포(多大浦)로 낫개로 태종대(太宗臺)로 혈청소(血淸所)로 용호동 이기대 등지로 시간이 허락하면 함께 다녔다. 멀리 간다면 나무섬(木島), 형제섬(兄弟島) 등지였고 동해안이나 거제도나 남해 등지의 서부 경남권은 아주 원도로 생각하였다. 원정낚시 역시 자갈치에 있었던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가덕도로 간다 던지 거제도 쪽으로 어쩌다 한번씩 출조를 떠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창 때라 무거운 쿨러와 장비들을 짊어지고도 산을 넘어 다녔고 이삼일 정도 밤낚시를 하여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질 않았다. 지금 보면 "그 무거운 그라스 롯드 장대를 어떻게 들고 낚시를 하였을까 ?"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종류의 장대밖에 없었고 그것도 애지중지하면서 갯바위에 받쳐 흠이라도 생길까 조심조심 다루기도 하였다.
그 해 봄, 대학 축제기간 중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모처럼 거제도(巨濟島)로 2박3일 원정 출조계획을 세웠다. 금요일, 거제도에 도착하자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비포장도로에 흙탕물 튕겨가면서 구불구불한 산길로 돌아 넘어간 버스는 지세포에서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어렵게 넘었고 고개를 넘은 다음 와현을 지나 구조라(舊助羅)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바다낚시를 떠나다 보면 가끔씩 비 내리던 날도 있었지만 오늘은 유달리 을씨년스럽고 초라하기 짝이 없게 보였다.
일단, 섬으로 나가기로 계획하였기에 선착장에서 배를 구해 앞에 보이는 이름도 모르는 섬으로 나아 갔다. 지금 생각하면 안섬인 것 같이 느껴지나 그때는 젊은 패기로 가득차 이름없고 미지의 섬에 발을 디뎌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정처없이 섬의 갯바위를 찾아 다녔다. 섬에 내려보니 돌로 쌓은 조그만 방파제가 있었다. 자그마한 배도 여러 척 있는 아담한 어촌이었다. 안개 자욱한 방파제에 짐을 내려 놓은 후에도 보슬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방파제 위에 페인트를 칠한 요란한 텐트(이 시절 텐트가 귀해 대부분 군용 A형 텐트를 가지고 다녔으며 혹시 군수품이라고 압수 당할까 봐 페인트로 칠을 하여 사용함)를 설치하고 각종 장비들을 텐트 속으로 밀어 넣어 두었다.
이후 텐트 한쪽 귀퉁이에서 고체연료(고체알콜) 켄에 불을 지펴 라면밥을 끓여 요기를 마친 후 모처럼의 원정 출조를 준비하였다.
비옷을 입고 낚시장비와 미끼를 챙겨 넣었다. "ㄱ"자로 꺾어진 군용 후라쉬를 허리띠에다 야무지게 차고 가벼운 낚시용품은 오른손에 들고 왼손에는 살림망과 미끼통을 들었다. 나머지 소품들은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나름대로 멋 떨어지게 중무장을 한 후 마을을 거쳐 동쪽 갯바위로 넘어갔다. 안개 자욱한 오솔길을 따라 걸어 올라 갔다. 마을 끝 부분쯤에 초라한 가옥이 한 채있었다. 갯바위 쪽으로 가는 길을 정확히 물어보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 갔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힌 머리켤이 산만하게 흩트러진 노파가 혼자 앉아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왠지 소름이 끼쳤지만 일단 집으로 들어 갔으니 길이나 물어 보고 가기로 하였다. 할머니에게 "저쪽 바닷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할머니는 귀가 어두운지 아니면 불쑥 들어 선 젊은 이방인들에게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우리들을 아래 위로 훑어 본 다음 탁한 목소리로 "무엇하러 왔느냐?"고 되물었다. "부산에서 낚시를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잠시 후 "그곳에서 낚시를 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노파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탁한 음성으로 그 곳에서 배질하던 사람이 빠져 죽은 후 누가 자살하였다는 둥 우리를 붙들고 여러가지 얘기를 하였다.
사람빠져 죽었다는 말이...
어두운 방안, 흩트러진 머리결의 노파, 탁한 목소리, 음산한 주변 분위기, 부슬부슬 내리는 비, 옅은 안개 등 갑자기 공포감이 사로 잡혔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은 후 "할머니 고맙습니다"하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섰으나 뭔가 불유쾌한 기분이라 옮기는 발길은 무겁기만 하였다. "그래도 고생고생해서 모처럼 거제도까지 원정을 왔는데 그냥 방파제 낚시만 할 수 있느냐?", 둘은 안개 짙은 갯바위 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갯바위에 도착하여 포인트를 찾았다. 안개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지만 청갯지렁이를 단 민장대 맥낚 채비를 담구자 말자 게루치, 볼락이며 망상어 등 다양한 어종들이 장대를 던져 넣기가 무섭게 잡혀 나왔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바다를 짙게 누르고 있는 물안개 뿐이었다. 가랑비만 약간씩 내릴 뿐 바람도 없고 바다는 너무나 평온한 것 같았다. 완전히 어둠이 내리고 난 후부터는 볼락이 왕성하게 물고 늘어졌다. 둘은 신나게 잡아내느라고 추운 줄도 배고픈 줄도 모르고 오직 낚시에만 열중하였다.
밤 10시쯤 되었을까?, 입질이 뚝 끊켰고 바람이 약간 불어 와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어신이 끊어지자 담배 한대씩 피워 물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 노파의 얘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순간, 뒤쪽에서 뭔가 인기척이 들렸다. 머리칼이 쭈삣하게 서면서 이상한 공포에 사로 잡혔다. 그렇지만 이 근처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가 생각났기에 뒤를 돌아다 보기가 싫었다. 담배를 깊이 빨아 내품어면서 조우를 슬그머니 쳐다보니 둘은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갑자기 시선이 마주쳤다. 조우의 얼굴도 뭔가 공포감에 사로 잡힌 듯한 표정이 역역하였다. 잠시 마주친 눈을 서로 바라다 보다가 함께 머리를 뒤로 살짝 돌리면서 후라쉬를 비춰 본 순간 "으~악"하는 비명을 함께 토해냈다. 어둠 속에 힌 머리결을 흩트리고 힌색 옷을 입은 여인이 저 멀리 뒤쪽에서 우리를 보고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고기고 뭐고 다 버려두고 둘은 후라쉬를 켜 들고 마을 쪽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갯바위에서 일어나 마을로 뛰어갈 순간 다시한번 뒤쪽으로 후라쉬를 잠시 비추어 보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사람이 함께 공포 분위기에 휩쌓여 있었기에 재빨리 마을로 돌아 가고픈 마음이 일치되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뒤를 돌아보기가 무서워 앞만 보고 소리소리 지르며 뛰어 갔다.
얼마간 마을 쪽으로 달려오자 공포감이 약간 수그러졌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 몸을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두 사람은 무작정 뛰어가다가 처음 발길이 닫는 집으로 뛰어 들어섰다. 집 앞에 서서 여러번 소리 내어 불러 보았지만 집안에는 사람이 없는지 대답이 없었다. 방문을 살짝 열어 보니 호롱불만 어스름하게 방안을 밝힐 뿐 사람은 없었다. 잠시 문 앞에 앉아 공포에 떨며 가쁜 숨을 내어 쉬다가 다시 담배 한대를 피워 물고 대문 쪽을 바라다 보았다. 그런데 허연 머리켤을 흩트린 귀신이 괴상한 표정으로 아무 말없이 우릴 쳐다보고 서 있었다.
그 순간 또 다시 "으~아악"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담장 옆으로 빠져 나와 밖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겁에 질린 나머지 방파제에 설치해 둔 텐트까지 단숨에 달려왔고 텐트 속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잠그고 둘이 껴안고 부들부들 떨면서 밤을 지세웠다. 두 사람의 눈에 분명히 뭔가에 홀렸던 공포의 밤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헛깨비를 본거야.
해뜬 후 용기를 내어 다시 그곳으로 넘어가 얼른 장비만 챙겨 재빨리 넘어왔고 본 섬으로 나가는 조그만 어선을 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철수하였다. 선장에게 어젯밤 일어났던 일들을 얘기를 하자, 선장은 "그런 노파는 없어... 헛깨비를 본거야..." 하면서 짤막하게 쏘아 붙였다.
그래도 밤바다는 아름다워...
그래도 밤바다는 아름다움과 화려한 매력이 있어 바다낚시인을 항상 유혹을 당한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80년대 초반 케미컬라이트가 나오고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부터는 더욱 밤낚시가 즐거워졌던 것 같다. 초릿대에 둘둘 말아 사용하므로써 초릿대의 움직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으니 밤낚시가 한층 즐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밤낚시를 자주 다니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일을 접하게 된다.
동해안 방파제에서 간첩으로 몰려 발사되는 총탄 속에서 도주...,
전설로만 알았던 파란 도깨비불, 바람따라 떠도는 정체 모를 인광...,
어떻게 뭍에서 섬으로 넘어 왔는지 그리고 또 다시 육지가 그리워서 인지 목멘 듯한 흐느낌으로 울부짓는 섬 노루의 가슴을 말리는 울음소리...,
사람 빠져 죽었다는 자리에서의 밤낚시 도중 밤새 뭔가에 끌어 당김을 당하였던 야릇한 밤...,
휘파람 소리를 내며 섬을 맴도는 이름 모를 새의 괴이한 흐느낌...,
머리 위에서 맴돌던 이상한 불빛 그러나 어디론가 쏜살같이 날아가 버리는 비행물체...,
몸둥이는 어딜 가고 머리통만 굴러 다니고 있는 사체(?), 알고 보니 육지에 올라와 갯바위에 우뚝허니 서서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바람 난 문어... 등등...,
밤이면 바다에 가고 싶던 충동들이 나이가 들면서 사라졌지요 젊음이 있기에 광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쟝르로 생각이되는 글들이 복합적이면서 종합적으로 가을에 다가오는 날입니다. 같은 사물들을 보면서도 다양한 생각과 느낌들이 있으니 바다와 낚시는 더욱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