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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海巖의 바다낚시 이야기
인터넷바다낚시 창설자 해암님의 맛깔나는 낚시이야기입니다.

제21화, 음주운전

G 0 5,223 2006.12.04 09:56
'80년대 중반, 남해(南海) 미조(彌助)권은 그렇게 좋은 조건의 낚시터가 되지 못하였다. 남해읍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서 그 곳에서 다시 미조행 버스를 갈아 타고 다녔다. 상주(尙州) 해수욕장을 지나는 골짜기 구비구비가 비포장도로 일때라 흙먼지를 들이 마시면서 다녔던 오지(奧地)의 낚시터였다. 간혹 시외버스의 뒷자석에라도 앉은 날이면 머리가 천정에 닿을 정도로 진동과 흔들림이 심하여 곤욕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비포장도로로 힘겹게 다닐 때가 고기를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고흥권 동래도도 그렇고 진도권 팽목도 그렇고 거제권 다대, 여차지역 등 여러 포인트가 비포장도로였을 때 고기들이 많았으며 고생, 고생해 가며 찾아가도 언제나 활발한 어신을 받을 수 있었고 순진성도 간직하고 있었다. 시원스럽게 아스팔트 도로가 나 버리면 많은 낚시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설쳐대므로 낚이는 고기보다 낚시인 더 많을 때가 오히려 많았다.

그 당시 미조 앞바다의 올망졸망한 섬들을 두루 다니며 낚시를 하였지만 두미도는 미조항에서 좀처럼 찾아 나서기가 어려웠다. 이유는, 당시 미조항의 낚시배들은 대부분 소형 어선들이라 바람 불고 파도가 높은 등 날궂이라도 하면 두미도까지 운항하기를 꺼려하였다. 두번째는 두미도(頭尾島)까지 가지 않고 미조(彌助) 앞바다에만 나가도 얼마던지 다양한 고기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도 굳이 멀리 떨어진 두미도까지 나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두미도에서 굵은 볼락을 마릿수로 낚을 욕심으로 가끔 이곳을 드나들곤 하였다.

두미도 시즌 첫 밤볼락

'86년 초봄이었다. 두미도(頭尾島) 굵은 볼락이 탐 나 직장 동료들과 조(組)를 편성한 후 그 해 첫 밤볼락낚시를 떠나게 되었다. 직장동료 8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구포(龜浦)다리 주변에 있는 N낚시점을 이용하여 두미도로 출조키로 결정하였다. 개인 출조 때에는 미조에서 조각배를 타고 가야했지만 낚시점을 이용해 출조 할 경우 남해 미조까지 가지 않고 충무시(현 통영시) 삼덕포구에서 낚싯배를 대절하여 두미도로 곧장 나갈 수 있었으므로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토요일 일과를 마친 후, 기 편성된 일행들은 이곳 낚시점에 모여 들었다. 동료들 중에는 밤볼락 낚시를 처음 가보는 사람도 있었다. 낮의 길이가 짧은 초봄에는 어둡기 전에 포인트에 진입하기 위하여 급하게 낚시 소품과 미끼등을 준비하여야만 하였다. 각종 준비물을 챙기고 난 후 낚시점에서 대절한 버스에 올라 이런저런 낚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충무시(현 통영시)에 도착하곤 하였다. 낚시버스 내에는 우리 일행들을 포함하여 20여명의 낚시인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삼덕 포구에서 두미도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당일 북서풍이 강하여 일행들은 남쪽과 동쪽 만곡 진 곳으로 모두 하선하였다.

신바람나는 밤볼락

그 해 첫 밤볼락 낚시였지만 역시 어떤 낚시보다 재미를 더해 주었다. 민장대 2칸대나 2칸 반대로 발 아래쪽을 노릴 때도 있고 찌를 달아 이리저리 끌어주어도 되었다. 초저녁부터 물고 늘어지는 볼락의 어신에 추위 마져 잊게 만들었다. 자정을 넘기기 전에 조우와 함께 많은 볼락을 잡았다. 자정을 넘기고 나자 비가 오려는지 음산한 바람이 불었고 짙은 구름이 끼어 까만 밤을 더욱 칠흑같이 만들었다. 초봄이지만 새벽녁은 몹씨 추웠다. 그 당시는 거추장스러워 텐트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으므로 봄비를 맞아가며 낚시를 하였고 새벽녁에는 볼락 회와 소금구이로 소주잔을 나누며 추위를 이겨야만 했었다. 갯바위에서 먹는 볼락 소금구이는 가히 일품 중에 일품이며 특히 마음 맞는 조우들과 나누는 소주잔은 피를 나누는 것 같아 우정의 밤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는 활력소가 되기도 하였다.

약간의 비는 내렸지만 언제나와 같이 새벽녁 볼락의 입질은 활발하였다. 신바람나게 잡아 내며 오랜 만에 잔손풀이를 충분히 하였다. 여명이 밝아오자 이번에는 굵은 떡 망상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담치 쩍을 조금씩 뿌려주자 어디서 모여 드는지 굵은 망상어들이 환장한 듯 미끼를 물고 늘어졌다. 민물새우 한 마리에 굵은 떡망상어가 한 마리씩 낚여 나왔다.

선상에서 볼락회와 소주 파티

아침 9시, 철수시간까지 잠시동안 민물 민장대로 떡망상어와의 화끈한 손 맛까지 본 다음 철수준비를 서둘렀다. 철수 선상에서 동료들의 쿨러를 점검해 보니 함께 한 다른 일행들은 의외로 저조하였다. 쿨러가 무거웠던 필자와 일행들이 잡은 볼락 회 쳐 선상 볼락 회파티를 준비하였다. 피로에 지친 몇 사람은 선실에서 이미 잠이 들었지만 필자의 직장 동료 8명과 선상에 함께 한 다른 팀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아침부터 소주잔을 돌리게 되었다.

필자 옆 자리에는 평소 안면(顔面)이 많이 있다고 생각되는 낚시인 한 분 있었다. 역시 볼락회와 소주잔을 돌리며 함께 한 낚시인들과 정답게 얘기를 나누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필자는 항상 회를 장만하는 담당이었기에 이 날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회를 장만한다고 남들보다 늦게 소주잔을 받았다. 어느 정도 볼락회를 쳐서 여러 낚시인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량을 확보하고 난 후, 직장 동료들이 소주잔을 받았고 잔을 비운 필자는 옆 자리에 있는 평소 안면이 많은 낚시인에게 또 잔을 권하였다. 소주잔이 어느새 한 순배 돌아가자 추위도 어느 정도 잊게 되었고 모두들 어제 밤볼락 낚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구름이 잔뜩 끼었던 하늘에서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피곤한데다 철수 선상에서 소주잔을 과하게 돌렸는지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안면있었던 사람이 버스 운전기사

미륵도 삼덕포구에 도착하자 각자 장비를 정리하여 버스에 싣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버스를 타고 운전석 위쪽 백밀러를 쳐다 보니 선상에서 소주잔을 돌리다가 "어디서 많이 본 분"이라고 생각하였던 사람이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아니! 저 사람은 선상에서 술자리가 벌어졌을 때 옆에 있던 안면 많았던 사람이 아닌가?" 조우가 운전기사의 얼굴을 확인하고 필자에게 말하였다. "어째, 운전기사가 밤새 볼락 낚시를 즐기고 철수 때 선상에서 소주잔까지 돌리다니..." 그러나 다른 일행들은 "뭘 걱정하시요, 충무서 부산까지 몇 발된다고, 알아서 잘 굴러 다녔고 오늘도 잘 굴러 가겠지요..."라고 말하며 필자를 진정시켰다.

버스를 탄 일행들 중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충무대교를 지나기도 전에 의자를 재껴 누워버렸다. 피곤한데다 술을 많이 마신 사람들도 일찌감치 골아 떨어졌고 벌써 코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45인석 일반버스로 20여명이 출조하였기에 좌석 여유가 있어 좌석에 비스듬히 누울 자리도 많았다. 필자 역시 버스 중간쯤에서 두 좌석을 차지하였고 느긋하게 좌석의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 새우잠을 청할 수 있었다. 차창 밖을 바라보니 가랑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피로에 지쳐 모두들 잠에 빠져 들었는데

충무(현, 통영)시내를 벗어날 때쯤, 차내가 다소 시끌벅적하였으나 충무 검문소를 지나자 모두들 잠이 빠져들었는지 이내 조용해졌다. 필자 역시 술기운이 돌아 잠깐 잠이 들었는 것 같았다.
깜박 잠이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갑자기 요란스럽게 고함 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 차가 와이라노!", 앞 좌석에서 들리는 소리였고 뭔가 급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급 브레이크를 밟던 버스가 휘청거리며 좌로, 우로 지그자그 운행을 잠시하더니 이내 크다란 충격음이 들렸고 이어 고함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한꺼번에 들리기 시작하였다.

큰 충격음과 함께 버스는 급정거

교통사고가 발생함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의자 팔걸이에 머리를 데고 의자 위에 몸을 눕히고 있던 필자는 충돌 순간 좌석 사이 공간으로 떨어지면서 버스 바닥으로 몸이 내리 박혔다. 차내에서는 비명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하였고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 뒤 잠시 정신을 잃었는지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위치를 확인해보니 필자는 의자와 의자 사이에 끼여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의자 밑을 통해 복도 쪽으로 기어 나와 보니 정면 충돌시 충격으로 뒷자석의 의자가 모두 앞 쪽으로 쏠려 있었다.

필자가 내리 박혔던 곳 역시 의자 아래쪽 의자를 비딕에 고정시키는 볼트가 빠져 좌석이 앞 쪽으 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순간적인 충격으로 필자는 의자와 의자 사이에 떨어졌고 좌석 밑 볼트가 빠지면서 좌석이 앞 쪽으로 쏠렸고 쏠린 좌석 사이 바닥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기울어진 의자 틈새를 밀면서 빠져 나와 머리를 들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버스 밖으로 빠져나가 있었고 앞 좌석에 앉았던 일행 K씨는 이마와 코 사이에 유리가 박혔는지 피를 흘리면서 앉아 있는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차창을 두들기는데 몸은 말을 듣질 않고...

일행 한 사람이 "다친 곳이 없느냐?, 빨리 밖으로 나오라고"며 유리창을 두들기고 있었다. 좌석 밑에 내려 박혀 있던 필자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일어나려고 하였지만 다리가 좌석 틈새에 끼어 창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었고 몸도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허리에 힘을 주고 끼였던 다리를 빼 내려고 하였지만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양팔로 상체를 누르고 있는 의자를 힘 컷 밀어 올린 다음 좁은 공간에서 약간 몸을 펼 수 있었다. 일어나 보니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아마 의자를 밀어 올린다고 힘을 주다가 주변 흩어진 유리조각이 손바닥에 박힌 듯 하였다. 그리고 가슴 쪽에 무엇에 맞은 것 같이 압박감을 받고 있었고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다. 어렵게 몸을 일어킨 다음 깨어진 유리창을 통하여 밖을 바라보니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사람, 팔이 부러져 신음하는 사람 등 버스 주변은 피폭 후 아수라장이 된 전쟁터와 같았다.

운전석 쪽을 바라보니 크다란 덤프 트럭이 정면으로 박혀 있었다. 트럭에는 운전기사가 휘어진 철판에 끼여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이를 구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철판을 당기고 문짝을 제키면서 빼내고 있었다. 트럭 기사는 몹시 아픈지 비명을 계속 질렀지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야 할지 몰라 가슴만 조이고 있는 듯 하였다.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 국도

버스 앞 좌석에서 부터 대여섯번째 좌석까지 앉은 낚시인들은 충격시 유리 파편이 튀어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다. 정면 충돌시 튄 유리 조각들이 머리와 얼굴 등에 박혀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이 많았고 일부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도로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 현장을 쳐다보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일행 중 먼저 빠져 나간 낚시인들이 차내를 보고 빨리 밖으로 나오라고 창문을 두들기며 계속 고함을 치고 있었다. 충격시 순식간에 몸이 앞으로 밀리면서 앞 좌석에 얼굴을 부딪힌 직장 동료는 콧등이 내려 앉은 것 같았고 붉은 선혈이 얼굴과 앞가슴을 적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바로 앞 좌석에는 함께 간 중년 여인이 있었다. 필자처럼 의자 밑에 떨어졌는지 울음 소리에 가까운 신음소리만 들렸고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후 바닥을 짚고 기어 나왔는데 오른팔 뼈가 부러졌는지 덜렁덜렁 거렸고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피흘리는 신음하는 낚시인들 위로 봄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피 묻은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사람을 지나가는 차에 급히 태우는 모습이 차창 밖으로 보였다. 좌석 위 선반에 있던 낚시대 케이스와 보조가방, 낚시장비들이 충돌시 충격으로 떨어져 피 흘리고 신음하는 낚시인들 사이에 어지럽게 깔려 있었다. 차창밖에도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사람들과 좌석 밑의 화물칸에서 쏟아져 나온 쿨러며 장비들이 뒤범벅되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안팎으로 구조를 위해 달려던 많은 사람들이 뒤엉겨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위로 봄비는 피와 진흙 범벅이 된 속세(俗世)를 적시며 소리없이 모든 것을 씻어 내리고 있었다. 웬지, 필자의 눈가에는 서글픈 눈물 핑하게 고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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