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도전! 남녀군도(제3편)

신상품 소개


회원 랭킹


공지사항


NaverBand
[칼럼] 海巖의 바다낚시 이야기
인터넷바다낚시 창설자 해암님의 맛깔나는 낚시이야기입니다.

제6화, 도전! 남녀군도(제3편)

G 0 7,991 2006.12.04 09:48
오전 10시경, 시바야마 아지카 이소쯔리 센타(あじか磯釣センタ) 사장과 첫 대면이었다.
남녀군도는 이곳 히라도에서 약 180Km떨어진 절해고도이며 배수량 20톤에 평속(平速) 40노트를 낼 수 있는 블랙 엠페러(Black Emperor, 검은 황제)호로는 2시간30분, 배수량 19톤에 평속 30노트인 블랙 휜(Black Fin, 검은 해마 지느러미)호로 가면 약 3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타고 나갈 블랙 휜호는 최대 속력이 35노트이나 오늘 기상상태가 나쁘므로 4시간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였다. 오늘 항해 계획은 오후 1시30분경 히라도구찌 다비라항을 출발하여 오도열도(五島列島)의 제일 아래쪽에 있는 후쿠에시마(福江島)의 사키야마항에서 오오사카(大阪)팀 6명과 합류하여 남녀군도로 향한다고 하였다. 사키야마항에서 남녀군도까지 남남서로 약 100Km정도되며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로 예상했다.

또한 남녀군도의 돌돔 적정 수온은 섭씨 18~19도이나 최근 수온이 떨어져 돌돔의 입질이 활발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최고의 시즌은 5월초~중순경이었다고 하였다. 요즈음 돌돔 조황이 좋지 않아 일본 낚시인들은 밤에 다금바리를 노리고 있다고 하였고 최근 잡히는 다금바리는 1~1.5메타가량 중형급으로 지난주 여러마리가 낚였다고 하였다. 필자는 밤낚시로 볼락과 농어 그리고 부시리를 노리고 싶었으나 남녀군도에서 볼락과 농어를 노리는 낚시인이 없다고 하였다. 더군다나 미끼인 청갯지렁이를 구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참돔을 노리고 싶었으나 역시 참갯지렁이나 낙지 등 미끼를 확보할 수 없었고 일본낚시인들은 크릴새우를 미끼로 카-고를 달아 릴 찌낚으로 낚는다고 말한다. 그들과 우리는 노리는 대상어종이 달랐고 낚시방법이 달랐다. 우리 팀은 다금바리를 노릴 장비가 없었으므로 필자와 K씨는 돌돔을, 육순노인인 P씨는 벵에돔 만을 집중적으로 노리기로 하였다.

오후 1시반, 그렇게도 애간장을 태우던 남녀군도로 마침내 출항하게 되었다. 돌돔 미끼인 꼬막조개와 밑밥, 그리고 각종 장비를 싣고 불랙 휜 호는 요란한 엔진소음을 토해 내면서 다비라항을 출항하게 되었다. 히라도대교(大橋)를 지나자 30노트의 쾌속으로 남남서쪽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배는 선두쪽이 2/3가량 떠서 파도를 가른다기 보다는 파도 위를 타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 1,800마력의 힘을 낸다는 3개의 엔진과 3개의 프로펠라(스크류)가 모두 가동되고 바닷물을 높게 차 올려 선미 쪽으로 장관을 이루어내면서 쾌속 항진해 나아갔다.

2시경, 멀리 사세보(佐世保)항을 좌로 하고 히라도(平戶)를 벗어났다. 파도가 3~4메타 정도 높았고 북서풍이 강하였지만 배는 평속 30노트를 계속 유지하면서 우렁차게 파도를 가르면서 나아갔다. 오후 2시반경 오도열도가 가까워 오자 더욱 파고가 높다. 시바타 선장(62세)은 선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미나미 조수(37세)가 배를 운항하였다. 3~5메타의 높은 파고로 몇 번씩 속도를 늦추면서도 교묘하게 파도 밭을 헤쳐 나갔다. 높은 파도를 맞아 운항 속도가 순간적으로 떨어지자 배는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선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선실에 누워 쳐다 보고만 있었다. 상오도(上五島)를 우로하고 남서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오후 3시경, 흔들리는 배를 선실에서 쳐다보고 있던 시바타 선장이 답답하였는지 미나미 조수를 쉬게 하고 조타석에 앉았다. 그러나 그렇게 높은 파도 밭에서 선장은 키를 잡지 않고 속도를 전속으로 올려 놓은 다음 계속 간식으로 빵과 우유를 먹고, 담배를 피우며 딴전만 부리고 있었다. 옆 좌석에 앉아 있던 필자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다. "파도 밭에서 키를 놓고 탄전만 피우는 뭐 이런 선장이 다 있나?"고 말하였지만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잡지책을 보고 음료수를 마시며 가끔씩 레이다만 바라다 보면서 엉통한 짓만 하고 있었다. "애라, 알아서 하겠지..." 하였지만 "선장이 혹시 잠이나 자지 않을까?" 하여 가끔씩 쳐다 보았다.

오후 3시 반경, 오도열도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후쿠에시마(福江島)의 사키야마항에 도착하였다. 선장은 배를 멈추고 2층에 있는 조타실로 올라 가 배를 항내로 몰아 넣었다. 원도(遠島)로 출조하는 선박의 조타실은 대부분 상.하 두개로 분리되어 있었다. 갯바위에 낚시인들을 하선시키던지 항내로 진입할 때에는 선장은 상조타실에서 넓은 시야를 확보하여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듯 하였다. 오오사카에서 비행기로 이곳까지 온 일본 낚시인 6명이 높은 방파제에서 초대형 쿨러와 각종 장비들을 정돈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나미 조수는 오오사카에서 오늘 출조하는 6명은 남녀군도로 거의 매주 출조하는 낚시광들이라고 말하였다. 내리는 포인트도 험한 곳(속칭 아부나이)만 골라서 내리는 오오사카의 남녀군도 베테랑들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마음속으로 "좋다, 이놈들 남녀군도 광(狂)들아, 어디한번 겨루어 보자"고 중얼거리고는 조타실 아래에 있는 선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이제 2시간후면 남녀군도에 첫 발을 내디딜 것을 생각하니 더욱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높은 파도에 배의 요동이 심하였지만 시바타 선장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 속력으로 남녀군도를 향해 내리 달려 나갔다.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류씨가 필자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조타실로 올라와 보니 저 멀리 남녀군도가 아른거렸다. 류씨는 신나게 남녀군도에 대하여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였으나 제대로 알아 들을 수는 없었다. 오후 5시 30분경, 남녀군도의 제일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남도(男島)를 돌아서자 오오사카(大阪) 낚시인 2명이 하선(下船)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찍이 비디오 테-입으로 보아 왔던 마우라노 다테카미(眞浦の立神(崎))의 다섯개 섬 중 세번째 섬에 2명의 오오사카 낚시인이 먼저 하선하였다. 하선 후 해질 때까지 낚시 조황을 보아 포인트를 이동시킨다고 선장은 말하였다. 역시 오오사키 낚시인 2명이 마우라노 다테카미 첫번째 섬에 하선하였다. 남녀군도의 두번째 섬인 구로키도(ぐろき島) 남동쪽에 오오사키팀 2명이 하선시켰고 세번째 섬인 나카에노도(なが えの島) 북동쪽에 히라도의 낚시인 2명이 하선시켰다. 이제 우리팀 4명만 남았다.

류씨는 강한 남서풍과 높은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낚시인들의 손때가 덜 묻었다는 남녀군도의 제일 아래쪽에 여도(女島)의 마에하마란 곳으로 배를 향하도록 하였다. 필자는 8mm캠코드와 카메라를 들고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팀이 갯바위 하선 광경을 촬영하기 위하여 마에하마에 배를 붙이자 말자 재빨리 뛰어 내려 비디오와 카메라로 갯바위 진입 과정을 담았다. 그런 다음 카메라를 갯바위 위에 던져두고 신속하게 돌돔 채비를 만들어 제일 먼저 채비를 던져 넣었다.

장대는 W사의 다이야마스타 돌돔 장대, 릴은 일산으로 D사의 석조 50H, 원줄은 바리바스 18호, 20호 진공 추에 쿠션고무를 끼웠으며 목줄은 바리바스 18호에 케블라토 25호를 연결해 만들었고 바늘은 K조침의 돌돔바늘 13호였다. 수심은 약 15메타 정도 되었고 초들물을 지난 시간이었으며 미끼는 소금에 절인 딱딱한 참갯지렁이를 풍성하게 달았다.

철수시간이 오후 8시경이므로 지금부터 2시간 가량 낚시가 가능하였으나 마음은 급하였다. 류씨는 꼬막조개를 깨어 알맹이만을 사용하였는데 잡고기가 덤비자 갯바위에 붙은 굵은 삿갓조개(따개비)를 따서 사용하였다. K씨와 P씨는 조금 늦게 채비를 담구었지만 전체적으로 어신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돌돔조황이 좋지 않다"는 아지카쯔리센타 시바야마 사장의 말이 떠 올랐다. 그러나 30여분이 흘렀을까 류씨의 장대에 어신이 왔다. 류씨는 "이시다이 ! 이시다이 !(돌돔)" 외치며 무겁게 릴링을 하였다. 잠시후 45센치정도 되어 보이는 돌돔을 갯바위에 눕히면서 "첫 돌돔이므로 오늘 저녁에 배에서 회 쳐 먹기로 하자"고 말하였다. 아주 소박한 낚시인 이었다. 잠시 후 필자의 장대에 어신이 왔다. 필자의 강한 챔질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순식간에 초릿대가 물 속에 잠겨 들었다. 장대를 세우자 허리까지 내리 박혔다. 무식하지만 이 정도 수심층에서 돌돔은 챔질이후 10초이내 갯바위에 눕혀야 한다. 오른손에 힘을 줘 장대를 세우면서 힘컷 당겨 끌어내보니 45센치급 되어 보이는 벵에돔이었다.

"아니, 남녀군도에는 돌돔채비에 벵에돔도 낚이나...?" 하면서 의아해 하였지만 류씨는 알아듣기 힘든 일본 말로 무엇이라고 중얼거렸다. P씨에게 무슨 말인지를 물어 보니 이 고기는 벵에돔 아니고 "이수주미"란 이름을 가진 돌돔낚시에 가장 성가신 "미끼도둑"이라고 하였다. 고기 맛까지 없어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고기라고 말하였다. 벵에돔과 망상어를 혼합해 만든 고기와 같았다.

소금에 절인 참갯지렁이는 잡고기들의 저녁 찬거리 밖에 되지 못하였다. 얼마 후 류씨가 50센치급 돌돔을 한마리 추가하였다. 정확하게 오후 8시, 블랙 휜 달려 왔다. 남도(男島)쪽으로 배를 몰아 마우라노 다테카미(眞浦の立神(崎))에서 오오사카 낚시인 4명을 태우고 구로키도 남동쪽에 하선한 역시 오오사카 낚시인 2명을 태웠다. 나카에도에 내린 히라도 낚시인 2명은 내리자 말자 45~50센치급 돌돔을 2마리 잡았다고 하며 포인트를 이동하지 않고 계속 이 자리를 고수하겠다고 모든 장비를 내려 밤낚시에 들어 갔다. 오오사카 낚시인 6명은 남녀군도의 최고 포인트라고 하는 제일 아래쪽 사메여(상어여)에서 밤에는 다금바리를, 낮에는 돌돔을 노리기 위해 야영낚시를 돌입한다고 모든 장비를 내렸다. 우리 팀은 밤낚시에 필요한 장비와 미끼가 준비되지 않아 부득이 여도(女島) 남동쪽 해상에 닻을 내리고 선상에 머물게 되었다. 도착 첫날 우리 팀의 조과는 류씨가 낚은 돌돔 2마리로 끝나고 말았다.

선상에서는 저녁을 짓고 돌돔회와 우리의 소주, 일본인들의 맥주와 정종 등으로 풍성한 만찬과 함께 술자리가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 우리나라의 초장을 "코리안 소스"라고 소개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일본에는 한국 음식이 상당히 보급되어 김치, 다진 마늘, 고추가루, 고추장, 된장 등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시바타 선장은 자기 간물함에서 다진 마늘을 내어 필자에게 맛보라고 하였다. 시바타 선장은 35년간 남녀군도로 배를 몰고 다녔는데 처음으로 한국인을 만났다고 하였다. 그리고 필자가 한국인 최초로 남녀군도에 발을 내디딘 사람일 것이라고 하였다. 술잔이 한 순배 돌자 시바타 선장은 남녀군도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남녀군도 주변에는 물 속 수중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수중여 주변에는 아름다운 산호초가 어느 지역 보다 많아 예부터 일확천금을 노렸던 사람들이 산호초를 캐기 위해 이곳을 찾았으나 갑자기 몰아치는 풍랑으로 좌초되는 등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이곳 주변에서 죽어갔다고 하였다.
현재 남도(男島)에는 신원을 알 수 있는 3,000여명의 신위(神位)가 모셔져 있다고 하였으며 이름 모르게 죽어간 사람들도 무수하다고 하였다. 지금도 구름이 끼고 비가 오는 날 밤에는 죽은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으며 자신도 이곳에서 여러번 애절하게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하였다. 또한 20여년전에는 히라도에서 이곳까지 12시간 이상 걸렸고 그때는 풍랑을 헤치고 이곳까지 내려오기만 하면 모든 낚시인들이 초대형 돌돔과 다금바리 등 갖가지 대물들을 만나 손맛이라기 보다는 혼줄이 났다고 하였다. 현재 여도(女島)에는 4명의 직원이 24시간 주변의 조류와 바람, 수온등 기상을 관측하고 밤에는 등대불을 밝혀주고 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꼭 시바타 선장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오늘 낮, 이곳까지 내려올 때 3~5메타의 높은 파도가 쳤는데 선장이 왜 키를 잡지 않고 엉퉁한 짓을 하였는지"를 물어 보았다. 시바타 선장과 미나미 조수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블랙휜 호에는 자동 항해(항법)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높은 파도에 기웃거리는 것을 자동적으로 감지하여 벨런스를 잡아 주고 레이더에 포착되는 전방 장애물을 스스로 피하여 나아갈 수 있는 자동 항해장치(크루즈 시스템)가 설치되어 선장은 여유있게 이곳까지 내려온다"고 말하였다. 낚시배가 우리와는 너무 달랐다. 쾌속 운항은 물론이고 높은 파도를 만나도 자동으로 속도와 방향을 제어해 가면서 항해할 수 있도록 첨단설비가 되어 있다는 말에 필자는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저녁식사후 술자리가 무르익어 갔고 한.일(韓.日)간 낚시 얘기로 꽃을 피웠다. 그 순간만은 정치적인 이념이나 역사적,민족간의 갈등(葛藤)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바다를 즐기는 낚시인들이었다. 얘기 도중, 매시 정각만 되면 갑자기 라듸오가 켜지고 방송이 들려 왔다. 선장에게 "무슨 소리냐 ?"고 물어보니 일행들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고만 말하였다. 방송내용은 밤 11시 현재, 남녀군도 주변 해역의 바람방향, 풍속, 파도의 높이, 너울파도의 길이, 1시간전과의 대비, 내일의 예상일기 등이었다. "어디서 방송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여도에 있는 등대에서 정확하게 매시간 방송되며 사이클만 맞추어 놓으면 남녀군도 주변 해역의 일기 상황을 시간대별로 금방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시바타 선장은 가장 남쪽에 외롭게 떠있는 사메여에 내려 둔 오오사카 낚시인들의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바람 방향이 바뀌고 기상이 급변하면 언제던지 철수시킨다는 자세로 화기애애하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도 마음 한 쪽에는 이들 낚시인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궁금증이 너무 많았다. "남녀군도는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알고 왔는데 어찌 낚시가 가능한가?"를 물었다. 우리의 경우 해상국립공원중 일부 지역에서는 낚시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자", 일본의 경우 산 위에 올라 가 야생 동.식물에게 손상을 가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갯바위에서 낚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하였다. 또한 "입어료나 청소비등을 징수하는 곳이 있느냐"는 물음에 "일부 지정된 섬 또는 장소에서는 도선협회에서 도선요금 중 1인당 100~300엔 정도 받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하였다.

남녀군도의 돌돔 최대어를 물어보니 우리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체장보다는 체중으로 이야기하였다. 최고 7.25Kg으로 알고 있다고 하며 정확한 길이는 알지 못하나 74~75센치쯤 될 것이라고 하였다. 참돔의 경우 매년 12~13Kg정도로 1메타급 이상의 대물이 낚이고 있으며 한 여름철이 피크라고 하였다.

여러가지 얘기를 하다보니 자정을 넘겼다. 이곳에서는 갯바위 밤낚시를 하지 않고 우리처럼 선상(船上)에서 편하게 잠을 자고 새벽 4시에 갯바위에 하선하는 낚시인이 많다고 하였다. 별도로 야영장비가 필요없다는 얘기였다. 새벽 4시 포인트에 내린 후, 아침 10시경 포인트를 이동시키며 필요시 오후 3시경 다시 포인트를 옮겨준 후 오후 8시 철수하여 선상에서 휴식을 취하는 출장낚시를 하고 있었다. 선장의 자세 명확하였고 직업의식이 투철하였다. 정원 12명을 태우고 내려와 6개 포인트에 하선시키면 1차 임무는 끝난다. 그러나 포인트에 따라 조황의 차이가 날 수 있으므로 하루에 몇번씩 포인트 주변을 돌아 다니면서 조황이 부진한 낚시인들을 여러번이라도 자리를 옮겨 줘 물때에 따라 고기를 낚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여 갯바위로 배달해 주고 식수나 기타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를 수시로 다니면서 물어 보았다. 오전 중에 잡은 고기는 인계받아 선창의 얼음 창고에 넣어 보관해 주었다. 개인별로 쿨러에 넣은 둔 고기는 상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얼음을 보충해 주고 낚시인들은 오직 낚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많은 낚시인들을 태워 일단 포인트에 내려만 주면 임무는 끝난다는 자세는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배를 타서부터 철수하여 출항지로 돌아올 때까지 온갖 배려와 봉사를 해 줘 낚시인들이 다시 찾도록 만들고 있었다.

새벽 4시에 포인트에 하선하기 위해 자정을 넘긴 후 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러나 피곤하기는 커녕 새벽 물때에 우리 장비로 화끈하게 뭔가를 보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 3시 반이었다. 모두들 깊은 잠에 빠진 듯 하여 4시가 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선실 밖으로 나가보니 바람도 잠잠해졌고 바다도 어제보다 양호한 것 같았다.

정확하게 새벽 4시, 선내 라듸오에서 기상예보가 시작되었다. 곧바로 류씨를 불러 깨웠다. P씨는 노령이라 선상에서 계속 휴식을 취하도록 권유하였고 필자와 K씨, 그리고 일본인 류씨 3명만 어제 오후 내렸던 마에하마에 다시 하선하였다. 선장은 "10시경 다시 온다"고 말하고는 남쪽 사메여에 있는 오오사카 낚시인 쪽으로 내려갔다. 갯바위에 하선하자 즉시 꼬막을 깨어 미끼로 사용할 알맹이를 장만하기 바빴다. 껍질은 잘게 부수어 밑밥용으로 확보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간단하게 음료수와 빵으로 아침 요기를 끝냈다. 여명이 밝아올 때쯤부터 각자의 위치에서 낚시를 개시하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계속 소금에 절인 참갯지렁이에 미련이 있었다. 그러나 어제 낚은 돌돔은 굵은 따게비 미끼에 걸려 나왔기 때문에 칼로서 500원짜리 동전만한 굵은 따게비를 많이 따서 필요시 사용코자 준비하여 두었다.

'95년 5월30일(화, 음력 5월2일, 8물때, 구름 많으나 대체로 맑음)

새벽 5시 조금 넘어 해 뜰 무렵 어신을 받았다. 따게비를 미끼로 한 필자의 장대를 억세게 툭~툭치다가 와락 내리 박혔다. 분명히 돌돔의 어신이었다. 강하게 챔질을 하여 힘껏 릴링하였다. 숨돌릴 틈이 없이 감아 올리자 40센치 정도되어 보이는 "강담돔"이었다. 남녀군도의 첫고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낚기 어려운 강담돔은 돌돔과 집안 사촌격으로 역시 강한 어신을 보였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손놀림 또한 바빠졌다. 그러나 해가 뜬 후 이름을 알 수 없는 열대고기가 덤벼들기 시작하였다. 비단잉어같이 알록달록하였고 크기 또한 50센치를 족히 넘는 육중한 힘을 가진 놈들이었다. 이 고기는 회 맛이 좋아 일본인들 쿨러에 담아가는 족보 있는 고기라고 하였다. 계속 크다란 장어(우쯔보)같이 생각 놈과, 침이 온몸에 돋아난 배구공만한 복어,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 한다는 이주수미, 긴 수염이 난 붉은고기(오바산)등 여러가지 잡고기가 환장한 듯이 덤벼 들었다. 강당돔 1마리를 낚은 후 잡고기와 씨름하던 중 어느듯 두어시간이 지나갔다.

오전 7시를 넘긴 후, 필자의 장대에 강한 입질이 와 닿는다. 초리대를 깔짝거리던 놈이 와락 장대 허리를 통채로 가지고 들어가 버렸다. 타이밍을 약간 늦추어 주다가 강하게 챔질하자 우악스럽게 내리박기 시작하였다. 순간적으로 돌돔임을 알 수 있었다. 강하게 장대를 받쳐 들고 고기를 바닥에서 띄워 올렸다가 장대를 내리면서 감아들이기를 몇번, 50센치가 더 되어 보이는 돌돔이 물위에 떠 올랐다. 필자의 남녀군도 첫 돌돔이었다. 뜰채없이 그대로 번쩍 들어올려 갯바위에 눕힐 수 있었다. 우리의 돌돔 장대도 이제 강한 허리힘을 가졌다고 확신이 서기 시작하였다. 살림뀌미에 뀌어 바다에 던져 넣은 후 이마에 땀을 닦고 담배 한대 피워 물고는 최근 돌돔 조황이 부진하였다는 아즈카 이소쯔리 센타 시바야마 사장의 말에 의아심을 가졌다. 아침 9시, 현재까지의 조황은 필자가 2마리(1마리는 강당돔), 류씨가 1마리, K씨가 1마리로 모두 4마리의 돌돔을 낚아 내었다. 굵은 잡고기들을 여러마리 낚았으나 이는 모두 방생하였다.

10시가 되자 정확하게 블랙 휜이 달려왔다. 류씨는 여도(女島) 남서쪽에 있는 하카 시타노 하나레(무덤밑 떨어진 여)로 옮기자고 하였다. 장비를 들고 배를 타자 말자 또다시 사진촬영과 비디오에 영상을 담기 바빴다. 잡은 고기는 각자의 쿨러에 넣고 얼음을 채워줄 것을 부탁하자 미나미 조수는 선창에 있는 얼음을 퍼내 쿨러에 가득 채워 주었다. 잡은 고기를 신선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선창에 많은 얼음을 싣고 있었다.

여도(女島)를 돌아서자 곳곳에서 여러 낚시인들이 낚시에 열중하고 있었다. 시모노아카세, 니쥬바나 등 비디오를 통해 알려진 포인트에는 다른 낚시배로 온 낚시인들이 장대를 받쳐 들고 초릿대 끝을 응시하며 돌돔을 노리고 있었다. 조류는 곧 썰물로 돌아서는 시간대였다. 우리가 찾는 포인트는 썰물 때 포인트라고 류씨는 말하였다. P씨를 포함한 4명이 물과 기타 간단한 식량을 보충하여 하카 시타노 하나레에 하선하였다.

갯바위 내려 주변을 살펴보니 곳곳에 다금바리를 낚기 위하여 드릴로 구멍을 뚫고 박아놓은 피톤과 녹슨 볼트들이 즐비하여 첫눈에 대물 포인트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깊은 수심, 빠른 조류 등을 미루어 대물 돌돔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였다. 사진촬영을 마치고 다시 꼬막을 깨어 알맹이는 미끼로 준비하고 껍질은 잘게 부셔 밑밥으로 만들어 두었다. 류씨가 몇몇 포인트를 지정하여 주었다. 우리는 서편에 앉도록 하였고 자신은 니쥬바나와 시모노 아카세가 바라다 보이는 남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P씨는 북쪽에서 크릴새우를 미끼로 벵에돔낚시를 시도하였다. 30여분 지났을 때 류씨가 먼저 45센치급 되는 돌돔을 1마리 걸어 내었다. 류씨가 일러준 서쪽 포인트는 조류가 너무 빨라 남쪽으로 포인트를 이동하였다. 남쪽은 직벽으로 가려 류씨 쪽으로 넘어갈 수 없지만 혼자서 낚시하기에 적당한 자리가 한 곳 있었다.

밑밥을 뿌리 주고 장대를 내렸다. 썰물이 시작되어 조류가 다소 빠르게 남동쪽으로 흘렀다. 봉돌을 25호로 바꾼 다음 꼬막조개 알맹이를 달아 바닥으로 갈아 앉혔다. 꼬막조개의 껍질을 계속 밑밥으로 투여하면서 발 밑을 노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꼬막조개 미끼에는 잡고기 성화가 극심하였다. 25호 무거운 채비가 빠르게 바닥으로 내려가는 도중 어신이 와 닿았고 들어보면 미끼가 없어졌다.

굵은 따게비(삿갓조재) 두마리를 껍질 채로 달아 내려놓았다. 강하게 툭~툭 두번 건드렸다. 갈도(葛島)나 남해안 각 섬에서 따게비가 잘 듣는데 이곳 역시 우리와 비슷하였다. 분명하게 돌돔이 건드리는 입질을 받았으나 계속 어신이 이어지지 않았다. 살며시 채비를 들어보면 따께비를 반정도 부수어 먹어버렸던지 아니면 아예 껍질체로 먹어 치워 버렸다. 돌돔 입질임을 확신하고 다시 따게비를 바꾸어 채비를 내렸다. 강하게 툭~툭 건드리다가 초릿대를 살그머니 끌고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때다!" 강하게 챔질을 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감아 올렸다. 수중에서 강한 힘으로 당겼지만 필자의 강한 챔질에는 그들도 이길 수 가 없었다. 올려보니 또 40센치쯤 되어 보이는 강담돔이었다. 재빨리 갈무리를 하고 다시 채비를 내려 놓자 말자 무섭게 입질이 왔다. "야! 이놈들아 모두 나와라! 저 멀리 바다건너서 온 손홍배가 너희들에게 도전장을 보낸다!" "오늘 대한민국 부산낚시인의 맛을 보아라!" "이름 모를 원혼들아! 그리고 이 바다에 있는 돌돔들아 모두 덤벼라!" 큰소리로 남녀군도의 혼백들을 깨웠다. 강한 챔질에 장대가 윙~윙거리며 내리 박혔다.

우리 장대의 강한 허리 힘을 확인하였기에 더욱 강하게 장대를 받쳐 들고 있는 힘을 다하여 줄을 감아 당겨 올렸다. 왼손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장대를 더욱 강하게 감아 쥐고서는 몸을 뒤로 제켜 릴을 감아 돌렸다. 이번에는 돌돔이다, 50센치가 더 되 보이는 굵은 돌돔이었다. 양손에 힘을 주고 그대로 벌렁 들어 갯바위에 눕히고 말았다. 25호 케블라토 목줄이 헤어져 있었다. 목줄을 잘라버리고 37번 와이야를 스크류 도래에 갖다 꽂았다. 꼬막 껍질을 밑밥으로 와~락 뿌려 넣은 다음 바로 채비를 내려 보냈다. 그물망 속에 있는 꼬막조개를 통체로 망치로 부수어 밑밥으로 계속 집어 넣었다. 또 다시 입질이 왔다. 강하게 툭~툭 미끼를 받아 먹다가 낚시대를 통채로 끌고 들어 갔다. 허공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장대를 치켜들면서 강하게 챔질을 하였다. 장대는 내려 박혔고 물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 강한 당김이 갯바위를 통채로 끌고 들어 가는 듯 하였다. 이번에는 45센치 정도되어 보이는 조금 작은 돌돔이었다. 연속 3루타를 쳤다. 살림꿰미에 강담돔 1마리와 돌돔 2마리를 뀌어 물이 던져 놓고는 다시 밑밥을 뿌려주었다. 강한 썰물이 계속되자 입질이 갑자기 뚝 끊어졌다.

오후 4시경, 선박에서 도시락을 배달해 주었다. 일본인 류씨, K씨 모두 어신을 받았고 P씨는 혼자서 이름 모를 잡고기들돠 씨름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자고 여러번 불렀으나 모두들 낚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도시락을 챙겨 먹고는 다시 포인트로 진입하였다. 잠시 후 또다시 강한 어신을 받았다. 누가 보면 무식하다고 할 정도로 강하게 감아 들인 후 갯바위로 끌어내 보니 50센치급으로 보이는 돌돔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1마리를 추가하였다. 필자가 한참 어신에 파묻혀 있을 때 서편 포인트에서 K씨도 3마리, 일본인 류씨도 3마리를 낚아 화끈한 손 맛을 보고 있었다. 필자의 경우 오후 물때에 4마리(강담돔 1마리포함)를 낚아 남녀군도의 돌돔과 한판 승부를 벌렸던 하루가 되었다. 일본 낚시인들과 함께 어울려 그들의 조장(釣場)에서 우리의 장비로 당당하게 돌돔을 건져 내었고 그들에게 우리의 기술과 장비를 자랑스럽게 보이게 한 하루이기도 하였다.

오후 8시경 강한 서치라이트를 비추면서 블랙 휜이 달려 왔다. 배를 타자 말자 미나미 조수는 고기를 인계받아 각자의 쿨러에 넣은 다음 얼음을 채워 주었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선상에서 저녁을 먹은 후 내일 일기는 오늘보다 더 좋다는 예보를 듣게 되었고 류씨는 내일 아침 바람의 방향을 보면서 내릴 포인트를 결정하자고 말하였다. 모두들 돌돔과 씨름하느라고 피곤하였는지 밤 10시가 지나자 침대에 몸을 눕혔다. 필자는 여러가지 자료들을 정리하고 내일 아침에 먹을 식수와 간식 등을 보조가방에 챙겨 넣은 후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95년 5월31일(수, 음력 5월3일, 9물때, 대체로 맑음)

새벽 4시, 블랙 휜 호의 엔진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며칠간 강행군하였기에 무척 피곤하였던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제 밤 미리 준비해 둔 낚시장비와 미끼만 가지고 하선 준비를 서둘렀다. 아침 10시경 남녀군도를 철수할 예정이므로 이제 낚시시간은 6시간 뿐이었다. 그러므로 아침 물때에 뭔가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하선할 장소를 선장이 미리 정하여 두고 있었다. 여도 남쪽에 있는 시모노 아카세란 여였다. 어제 오후 이곳을 지나칠 때 선상에서 보니 조그만 여 같았으나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내린 후 주변을 돌아보니 제법 넓은 면적이었다. 류씨가 몇몇 포인트를 지정하여 주었다. 많은 낚시인들이 내려 낚시한 흔적이 군데군데 보였고 남녀군도에서 소문 난 자리라고 하였다.

해가 뜨면 들물이 시작되고 조류가 무척 강할 것이므로 무거운 추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장비를 높은 곳에 올려두고 꼬막조개 알맹이를 미끼로 준비하고 남은 꼬막조개는 모두 밑밥으로 만들었다. 어제처럼 따게비를 사용하려고 갯바위 주변을 두루 찾았으나 이곳에는 따게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여러 낚시인들이 벌써 모두 따 사용한 것 같았다. 장대를 Y사의 "비치 7호대"로 바꾸고 25호 봉돌에 와이어 채비를 사용하였다. 간단히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K씨는 동편에, 필자는 여도가 바라다 보이는 북편에, 류씨는 서편에서 각자 흩어져 낚시를 시도하였다. 아침 6시를 넘기자 조그만 여라 조류가 무서운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와류 현상이 적은 곳을 찾아 낚시를 시도하였으나 잡고기가 많이 설쳤고 꼬막 미끼를 달아 던져 넣기가 무섭게 잡고기들이 따 먹어 버렸다. 1분내 어신이 없으면 미끼가 없어졌으므로 다시 미끼를 갈아 키우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채비를 다소 멀리 던져 깊은 수심층을 노렸으나 강한 조류로 채비 걸림이 심하였다. 초들물 시간대에 그만 바닥에 채비가 걸려 통채로 끊어 먹고 말았다.

다시 채비를 만들어 수심 10여메타로 고정하여 낚시를 시도하였다. 꼬막 조개도 껍질 체로 여러마리를 뀌어 사용하였다. 발 밑을 노리는 중 툭~툭 강하게 초릿대를 건드리다가 장대를 끌고 들어갔다. 강한 조류와 같은 방향으로 끌고 들어가는 어신으로 보아 잔챙이라고 생각하고 챔질을 조금 늦추었다. 초릿대가 완전히 물 속에 잠기는 것을 보고 있는 힘을 다하여 강하게 챔질을 하였다. "그래, 이 놈들아 덤벼라! 물 건너 대한민국에서 갈고 딱은 장대 맛 봐라!" 강한 조류에 휩쓸려 떠오르는 줄무늬 선명한 돌돔이 45센치는 족히 넘어 보였다. 갯바위에 올려 눕혀 놓고 스크류 도래에 새로운 와이어 줄을 걸었다. 밑밥을 발 밑에 많이 투여하고 다시 채비를 내려 보냈다. 강한 조류에 채비가 휩쓸려 이내 발 밑으로 들어 왔다. 잠시 후 다시 어신을 받았다. 강한 조류로 왼손에 더욱 힘이 들어 갔다. 올려보니 50센치가 넘는 크다란 "이주수미"란 고기였다. 그러나 내려박는 손 맛은 대단하였다.

아침 8시를 넘긴 후부터는 조류가 너무 빨라 낚시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낚시를 잠시 멈추고 비디오와 사진촬영을 끝냈다. 사진촬영을 마치고 포인트로 내려와 보니 갈매기와 독수리 떼들이 꼬막조개 알맹이를 모두 먹어버렸고 밑밥으로 사용할 꼬막조개 껍질까지 먹어치워 버렸다. 할 수 없이 몇몇 남은 꼬막조개 중 굵은 것들을 와이어에 풍성하게 달아 조류가 약한 곳에 채비를 내리자 물 속에서 채비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어신이 와 닿았다.

초리대를 가지고 들어가는 폼이 잡고기가 아니었다. 돌돔 특유의 삼단입질이었다. 강한 조류를 의식하여 더욱 힘차게 챔질을 하였다. 장대는 휘어질 대로 휘어졌고 강한 조류 속에서 저항하는 고기의 힘과 어울려 윙윙거리며 내려 박았다. 장대를 눕히면서 릴링을 하였지만 제대로 감기지 않을 정도였다. 있는 힘을 다해 끌어 당기면서 줄을 감기를 여러번, 이놈은 줄무늬도 선명한 50센치급으로 남녀군도 탐사의 마지막 돌돔이었다.

오전 10시, 불랙 휜은 정확하게 달려왔다. 선상에서 조과를 살펴보니 포인트가 밝은 오오사카 낚시인중 한사람만 13마리를 잡아 대형쿨러를 가득하였다. 다른 일행들도 대부분 대여섯마리 정도 낚았다. 그들은 "이 정도 조황으로는 시즌이 지났다"고 판단하였으며 제 시즌에 한 물때의 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의 장대만을 사용하여 그들의 낚시터에서 그들과 어울려 함께 낚시를 시도한 결과 이제 우리 장대는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돌돔의 경우 W사 "다이야마스타 돌돔"장대에 18호 원줄과 진공봉돌 25호를 사용하였고 50센치급 돌돔을 인정사정 없이 당겨 올렸지만 장대에는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강하였다. 필자 스스로 의심이 갈 정도로 초릿대가 연하여 돌돔 어신을 쉽게 식별할 수 있었고 허리 힘은 강하여 일단 띄워 올린 돌돔을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Y공업사의 "비치 7호" 장대를 사용하여 돌돔낚시를 시도하였다. 역시 부드러운 초리대와 강한 허리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원투용이라 직벽을 더듬는 낚시를 시도하기에는 가이드가 너무 큰 것 같았다. K조침의 바늘과 D사의 구멍찌, 수중찌등 소품 역시 국제적인 수준까지 올랐다고 판단되었다. 결론적으로 돌돔, 벵에돔 장대의 경우 이번 필드 테스트에서 일본 낚시인도 놀랄 정도로 좋은 반응을 보였고 필자 역시 외제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현지 2박 동안 그들과 낚시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느낀 점이 많았다. 그들은 돌돔을 몇마리 더 잡았느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고 같이 출조한 낚시인들이 얼마나 안전하게 낚시를 즐겼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먼저 원해(遠海)던, 근해(近海)던 낚시배는 쾌속선에다 자동항해장치, 통신장비, 각종 구명장비 등을 완벽하게 확보하고 있었다. 낚시선의 정원도 12명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출조인원이 적으므로 자연히 선장이나 가이드의 입장에서는 낚시인들이 대상 어종과 충분히 겨룰 수 있도록 포인트를 여러번 옮겨주는 등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또한, 선박에서 직접 선식(船食)을 만들어 갯바위로 배달하였고 잡은 고기는 냉장 보관해 주는 등 낚시인들은 낚시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편리를 도모하고 있었다.

출조경비는 출조인원이 적으므로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많이 소요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물가와 간접적으로 비교해 보면 껌 100엔, 켄 콜라 110엔, 세븐스타 담배 220엔, 생수 1,8리터 1병 약 300엔~400엔, 택시 기본요금이 580엔 등으로 우리보다는 상당히 비싼 것은 사실이었다. 남녀군도의 출조 경비는 1박2일에 35,000엔, 2박3일에 45,000엔을 받고 있었으며 물가와 비교해 보면 출조비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등대에 근무하는 사무원들도 주변 해역의 기상을 매시간마다 정확하게 방송하여 낚시인과 어로 작업을 하고 있는 선박들에게 정확한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등 살아 움직이는 등대를 운영하여 해상 안전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장비 역시 그들은 다금바리, 돌돔 등 초대형 어종에 적합하도록 다양하게 제작하여 어종에 따라 낚시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고 특히 실전 테스트를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여 낚시인들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세계시장에 내놓고 있었다.

남녀군도를 떠나오면서

남녀군도를 뒤로 하는 선상에서 휘날리는 머리켤을 가다듬으며 이국(異國)의 정취에 젖어들기 보다는 암담한 심정만이 가슴을 눌렀다. 그들은 분명히 우리보다 선진국이었다. GDP를 보아도 그렇고 며칠간 다니면서 보아온 주변의 여러 정황(情況)들을 판단해도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 정부는 명철(明晳)하지 못하여서 인지 낚시인들의 안전을 위하여 "갯바위 낚시를 금지"하는 각별한 배려를 하지 않고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갯바위에서의 낚시는 당연한 국민의 권리로 허용"되고 있었고 더욱 편리하게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초고속 낚시선에다 각종 안전장비까지 완벽하게 비치하도록 하고 있었다.

안전 문제 역시 낚시인 스스로 취미생활 이전에 "안전우선" 정신이 철저히 베여 있었다. 근대 법치국가에서는 재량행위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으나 우리의 경우 아직도 "...을 고려하여 ...을 할 수 있다"라는 자유재량의 범위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법률이나 행정지시에 의하여 낚시인을 보호하는 방법이 "갯바위 낚시 금지"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국민의 복지 향상"일 것이다. 국민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다양한 취미생활 중 하나인 바다낚시, 이를 위험하다고 통제하고 금지시키는 것보다 국민복지 차원에서 수용되었으면 하는 것이 부산 낚시인 한 사람으로써의 조그만 바램이다.

부주의 또는 과실로 갯바위나 낚시 선박에서 안전사고를 당하는 사람들 때문에 "낚시인의 위험을 사전예방"하고자 낚시를 금지시킨다면 차라리 그렇게 많이 발생되는 교통사고의 방지하는 차원에서 "자동차의 운행도 금지"시키던지 아니면 아예 자동차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의 생산 금지"까지도 고려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사망사고가 계속될 경우 사람들의 통행까지 제한할 것 인가를 묻고 싶다. 더 넓은 안목으로 바다낚시의 세계화가 이루어져야 할 시기에, 엔고(円高)의 현실에서 우리 장비가 세계화의 주역으로 나아가야 할 호기(好期)에 여러가지 이유로 바다낚시를 금지시키는 것은 많은 낚시인들에게 행정 편의주의요, 무사안일한 발상이란 지탄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우리 조구업체의 세계화를 가로 막는 장애 요인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낚시인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낚시배의 수요도 계속 요구되는데 "금지"시키고..., "단속과 규제를 강화"하고 ..., "위법한 행위라고 잡고 잡히고"..., "벌금"을 물리고..., 이는 우리의 바다낚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고조될 뿐 숨바꼭질과 악순환의 연속일 것이다.
부산(釜山)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다일 정도로 우리 부산은 바다와 친밀한 해양도시이다. 이런 부산에서 처음으로 갯바위낚시가 금지된 것은 낚시인의 한 사람으로써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가 온 지방화 시대에 그 지방의 특산물이나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는 지역 주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한 일이다. 바다낚시의 고장으로 전국의 낚시인들을 불러 모우고 바다낚시의 상징 도시가 되는 것이 그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부분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낚시인들의 편리를 위해 낚시배를 쾌속화시키고 낚시인의 안전을 위한 법령을 제정비하는 등 급증하는 낚시인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험하므로 "바다낚시를 금지"시킨다고 낚시대를 모두 부셔버리고 취미생활을 아예 바꾸어 버릴 낚시인이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니, 규제와 단속망을 피해 더 위험한 시간대, 더욱 위험한 선박으로, 더욱 위험한 방법으로, 더욱 머나먼 곳으로 낚시를 떠날 것이다. 금지조치 이후 현재까지도 감시망을 교묘하게 피해 위험한 시간대에 더욱 위험한 방법으로 남해안 각 섬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비(非) 꾼들이 모르는 우리 낚시인의 생태이자, 찌든 도시(都市)를 잠시나마 벗어나 말초신경을 자극 받으며 원시(原始)의 낭만(浪漫)을 즐기려고 하는 낚시인들 만의 원초적 본능이며 생(生)에 활력(活力)을 더해 주는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낚시인으로서 그렇게도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그들의 남녀군도...,
그들의 낚시터에서 우리 장비로 그들과 당당하게 어울려 대한(大韓) 남아(男兒)로서 기상을 높혔지만 현실에의 도피처가 된 듯한 느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리고 있었다.

0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시면 "추천(좋아요)"을 눌러주세요!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0 댓글
 
포토 제목
 

인낚 최신글


인낚 최신댓글


온라인 문의 안내


월~금 : 9:00 ~ 18:00
토/일/공휴일 휴무
점심시간 : 12:00 ~ 13:00